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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살전 4:13~18
제목 :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버려진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시설의 실태에 관한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40년전 살기가 어려웠던 과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없이 자기 아이를 남의 집에 양자로 보내거나 시설로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관계의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이혼하면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깨어진 가정으로 인하여 어른들이 겪는 고통도 문제이지만 버려진 아이들은 참으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아직은 천진난만한 모습과 표정이었지만 저들이 성장하면서 어른들에 대한 불신과 증오심, 냉혹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리포터와 한 아이의 인터뷰 내용이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돈을 벌면 저를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 아빠는 꼭 올꺼예요.” 부모들이 자기를 버린 줄 모르는 그 아이의 소박한 기대가 과연 채워질 수 있을까요? 과연 그들의 부모는 그 아이들을 다시 찾으러 올 것인가?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하여 “예”라고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아이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둘이 항상 함께 학교에 다녔는데 그날따라 학교 수업이 마쳤지만 한 아이는 왠지 집에 일찍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듯 뒤로 쳐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한 아이만 먼저 집에 들어와 왔는데 남아있던 그 아이는 해가 어두컴컴해 질 무렵에야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분이 매우 우울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사실 그 날은 학교 시험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집에 들어간 아이는 100점을 받아서 일찍 집에 들어가 부모님께 자랑하고 칭찬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중 아이는 시험 성적이 나빠서 부모님께 혼이 날 생각을 하고 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방금 소개해 드린 두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가 있습니까? 자기를 낳은 부모는 자기의 자녀를 혹시 버리고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다시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원하든 원치않든 상관없이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마지막 날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시어 우리의 행한대로 갚아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날이 되면 학교 시험에서 100점 맞은 아이가 부모님의 귀가를 기다리듯이 우리 성도들은 신랑되신 우리 예수님의 오심을 고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그 때에 큰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처소에 들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던 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신약성경에만 하더라도 약300회에 달합니다. 가장 확실한 말씀 중의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쳐다보고 있을 때 천사가 한 말입니다. 행1:11에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환상이나 이론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실제적으로 확실하게 오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 살전4: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 하였습니다. 계1:7에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신경에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산 자와 죽은 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살아있는 자들과 죽어서 무덤에 있다가 주님 오실 때에 다시 살아나서 일어날 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고백은 ‘구원받을 자와 버림을 당할 자’를 구별하시고,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족속’을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토록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부르게 되지만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서 신음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진리를 가르칩니다. 그것은 첫째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이요, 다음으로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죽음과 죽음 이후까지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세상의 것은 우리가 죽을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모두 다 불에 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상급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때로 어려움과 희생과 핍박까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왕은 다음과 같이 전도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전12:1,7~8 “너희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은 죽음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은 다만 남의 일일 뿐이요 자기 자신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자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는 등한시하고 현실의 만족에 도취하여 사는 사람에게 경종을 주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눅12:18~20에서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공자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으므로 별세한 조상들에게 제사함으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후손과 연관을 지으려 하였습니다. 석가는 심산수도(深山修道)하여 열반(涅槃) 또는 극락(極樂)에 이르렀다고 생각함으로써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 쿤다라는 사람의 집에서 차려 주는 음식에 잘못 들어간 독버섯을 먹고 죽었느니 그 역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구원의 소망으로 고백합니다.
카톨릭에서는 죽음과 천국 사이의 중간지점에 연옥(煉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신자와 불신자 상관없이 연옥에 일단 머물렀다가 세상에 살 때 잘못한 것이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을 때 땅에 살아남아있는 사람들이 미사나 기도를 드리게 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바로)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있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는데 부자가 죽고 나서 눈을 떠보니 자신은 연옥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져 있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회개한 강도에게“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르침에서 죽음과 지옥 사이에 중간지대는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한 번 죽은 다음에는 오로지 심판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 진리는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것이며 진지하게 살아가도록 해 줍니다. 우리의 삶을 ‘일생’(一生)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 인생에는 연습이 없고, 한 번 지나버린 시간은 다시 되돌이킬 수가 없으며, 우리는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며, 단 하나뿐인 생명이라는 뜻이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짧은 세월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통하여 영원한 천국과 심판이 결정되어집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문제로 수많은 이단이 생겨나고 사라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살후2:1~3에 의하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유혹하는 이단자들에게 넘어가지 않기를 경고합니다.
또한 살후2:11,13에서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유혹하는 자들을 우리 가운데 두시겠다는 것과 또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대로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불의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워져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5)고 하였습니다.
통일교의 문선명은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음으로 실패하였다. 그래서 나 문선명이 이 세상을 구원할 진정한 메시야로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 자칭 예수,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가 30여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불의한 자들에게 유혹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말게 하옵시고”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한편 이런 시대적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가 되면 수많은 적그리스도와 미혹케하는 자들이 출현하여 믿는 자들을 유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이 더욱 가까웠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큰 축복과 위로를 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의 것에만 소망을 두고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때로 많은 것을 얻기도 하고, 뜻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인생이 끝나는 순간 세상의 그 무엇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지옥의 심판뿐입니다. 그가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을지 몰라도 실패한 인생이요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소망가운데 살아갑니다. 요14:1~3에“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확실하게 말세 중의 말세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헌신되어야 합니다. 요일3:3에“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만으로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십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예수님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심판주로 오실 그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한대로 큰 상급과 면류관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신의 몸을 입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소망,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은 바로 저 천국입니다.
주님의 오시기를 기대하는 우리 성도들은 고전15:58절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마음에 암송하고 새깁시다. 고전15:58의 말씀을 함께 찾아 봉독함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