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마그리트(Rene Magritte)
활동년도 : 1898~1967
작가소개 : 1898 11.21 ........ 벨기에 레신느에서 태어났다.
1913 ........ 마그리트의 어머니가 Sambre강에서 자살하였다.
1916-18 ........ 브뤼셀의 Fine Art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뒤, 벽지공장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광고를 의한 스케치를 그리게 되었다.
1922 ........ Georgette와 결혼. G. 키리고의 "사랑의 노래"라는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의 천재성에 감동을 받았다. (형이상 회화파와 일맥상통하는, 신변 물체의 결합과 병치(竝置), 변모 등으로 신선하고 시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쪽을좋아했다.) 이 일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일로 화풍의 변화를 가져온다.
1926 ........ 브뤼셀의 한 화랑의 지원을 얻어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초현실주의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였다.
1927 ........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당시의 비평가들에게는 그의 작품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기에서 그는 시인인 앙트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를 포함한 초현실주의자들과 알게 되어 가까이 지냈으며 막스 에른스트의 콜라주도 접하게 되었다.
1930 ........ 브뤼셀로 돌아온 후에는 여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지냈다.
1930-40 ........ 인상주의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양식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고 그는 차츰 이러한 실험을 그만두었다.
그 후로는 그만의 고유한 양식으로 비논리적이며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를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1940-45 ........ 히틀러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였다.
1953 ........ Casino at Knokke-Le Zoute 에 있는 카지노에서 벽화의 테마를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1960 ........ 미국에서 첫 번째 회고전이 열렸다.
1965-66 ........ 미국내에서 회고전과 순회 작품전을 열었다.
1967 ........ 그의 그림에서 따온 이미지를 토대로 8개의 청동조각을 만드는 일을 감독했다.
1967 8.15 ........ 사망
1992 ........ 현재는 안하고 있지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시카고의 미술기관에서 그의 주된 회고 작품전이 있었다.
작품명 : 폭풍우의 조짐
제작년도 : 1928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54*73cm
소장위치 : 런던 롤란드 펜로즈 컬렉션
작품설명 : 벨기에 태생으로 1926년에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리게 되는 마그리트는 소년 시절에 영화에 미쳐, 그의 상상력을 크게 발전시키게 됐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보들레르며 말라르메의 문학 세계와 에드가 알란 포우의 괴기 소설에서도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가된 그는 회화의 출발점을 다다이즘과 키리코에 두었다.
마그리트의 최초의 초현실적인 작품은 1925~26년에 그려지지만, 파리로 가서 브르통과 엘뤼아르의 친구가 되어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가하는 것은 1927년의 일이다. 므르통은 그가 <자동기술의 방법이 아니라, 완전히 의식적인 방법으로 1929년 이후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뒷받침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도 여인의 토르소와 튜바와 의자를 그것들이 일상적으로 놓여졌던 장소부터 물결이 일기 시작한 바다와 해안의 상공이라는 엉뚱한 환경으로 옮겨 놓아, 일상 생활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신선한 시점을 빚어내고 있다.
작품명 : The Great Table
제작년도 : ****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푸른 해변에 거대한 과일 접시가 놓여 있습니다. 마그리트에게 있어서 해변이란 소외된 정서를 표현하는 무대로서 등장하는데 피카소의 여섯시대중 하나인 청색시대에 그렸던 해변을 배경으로 하는 피카소의 해변의 의미와 마그리트의 해변의 의미는 소외감을 의미합니다.
화면을 보면 해변을 배경으로 거대한 돌 사과 접시가 놓여있는데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사과는 이전에 설명 드린바 대로 과일=천연양식=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커서 먹기에 힘들고 돌이라서 먹기 힘들며 그래서 해변에 나와 거대한 모습으로 우뚝 기념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즉, 소외되거나 왜곡 되어 사용되는 하느님의 진리의 현실적 모습에 대한 작가의 심정을 묘사한 작품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진리의 현실을 뒷받침하듯 독일의 카톨릭 신학자 칼.라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하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명 : 해방자
제작년도 : 194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배경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배경을 보면 개선문처럼 생긴 문들이 가득 쌓여 성을 이루었습니다. the heart string(심금)이라는 작품처럼 구름이 반겨 맞으며 내려앉은 것으로 보아 인생이라는 선악의 전투에서 승리한 분들이 모인 천국의 입구 같습니다. 생명을 의미하는 강줄기가 성문의 입구에서 흐르기에 푸른 초원이 이뤄져 있으며 강물(생명)이 이쪽으로 흘러 내려오고 있습니다.
국경선처럼 돌무더기가 횡으로 놓여 있고 그 돌 위에 해방자가 앉아 있습니다. 화면 앞쪽을 살펴보면 초원이 아니라 돌멩이(다양한 실존적 아픔)가 흩어진 땅이며 바위위에 앉아 있는(청빈의 수도자적 삶) 해방자가 (절대자와 그의 자녀들) 얼굴이 없는채(인간의 모순적 理性의 배제) 성전의 제단에서 사용하는 성물에 눈과 입을 새긴 채(본질적 세계의 이성과 언어로) 가슴엔 열쇠(구원) 포도주잔(성혈=생명) 새 (하늘의 백성) 파이프(제압 하여야할 다양한 습관)를 다짐하며 남루한 가방과 지팡이가 유일한 소유물인(청빈) 해방자가 이곳을 향해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직자나 수도자가 가져야할 즉, 제도적 교회가 가져야할 자세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제도적 교회는 신자들보다는 교회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오늘날의 일반적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그리트는 복면을 쓴 사과를 그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라함은 신 구교 모두를 지칭하므로 개신교 신자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작품명 : 살아있는 예술
제작년도 : 196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이 작품은 마그리트가 세상을 떠난 해에 그린 작품으로서 걸작 중 하나 입니다. 양복을 빠져나와(인간의 의식의 감옥을 빠져나와) 온 몸의 육체가 머리로(육적인 감각이 영적 이성으로 통제가능 하게 된)변하여 공중에 떠있는 상태(완전 해탈의 상태)를 그린 것입니다. 이 상태가 살아있는 진정한 예술이라는 것이지요 미술 음악 문학은 도구가 필요합니다. 도구가 없다면 예술도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살아있는 예술은 행위로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니까 이웃의 얼굴(이성)에 직접 그리는 것이지요 美的理性의 상호 충돌과 폭발하는 듯한 행복! 그것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이러한 천국의 행복을 감지한 마그리트는 같은 해인 1967년에 3색 사과를 그리게 됩니다. 빨강 노랑 파랑=성부, 성자, 성령, 모든 발랄한 행복의 색을 창조 할 수 있는 삼원색의 사과=작품 제목이 young love 이니까.. 젊은 하느님을 마그리트는 발견하게 됩니다. 신 구교를 막론하고 성전에서 젊은 하느님을 발견토록 설교하는 성직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젊은 하느님을 받을 힘이 부족하고 받아들일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것입니다..그래서 수천 년의 말씀의 역사가 흐른 21세기에도 흰 수염의 노인인 미켈란젤로의 하느님이 신의 이미지로 인간 앞에 제시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그래서 마그리트는 악마의 미소라는 작품을 그립니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감춘 악마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곳에는 La Gioconda 로 제목이 되어있는데 devil's smile 1966 이라는 작품도 이곳에 있는 La Gioconda 라는 작품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그려 있으므로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작품명 : 교사
제작년도 : 1955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달이 뜬 밤에 중절모의 신사가 사람이 사는 거리를 바라봅니다. 제목이 교사이므로 중절모의 신사는 사람이 사는 거리에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느끼며 마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교사란 인간의 학문을 가르치는 교사의 의미가 아니며 세상에 가로등을 켜는 자로서의 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인 R.M 릴케의 "엄숙한 시간" 이라는 작품이 등불을 켜는 교사로서의 의식을 잘 표현한 작품이며 마그리트의 이 작품의 설명을 대신 할 수 있는 詩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우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슬퍼 울고있다. 지금 이 밤 어디에선가 웃는 사람은,까닭없이 이 밤에 웃는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가고 있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걷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죽어 가는 사람은, 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 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있다.
작품명 : 헤라클리투스의 다리
제작년도 : 1935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헤라클리투스는 B.C 500년경의 희랍 철학자로서 그의 글은 무겁고 알기 어려운 말로 되어있어 어두운 철학자로 불리웁니다. 이 분의 가르침 중에 이 작품의 그림에 해당하는 말을 적어본다면 "모든 것은 변화의 와중에 있고 흐르고 있으며 사람은 두 번 다시 똑같은 흐름 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헤라 클리투스의 다리" 라는 이 작품의 제목을 의역 해 본 다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다리 중간이 잘라져 있고 강물에 얼비친 그림자로 다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끊어진 다리인데 다른 차원에서는 연결되어 있다는뜻이지요..
이 다리의 성격을 좀더 자세히 알려면 카톨릭 신학자인 라너의 "죽음의 신학"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한다면 영적 자살(육체적 자살이 아님!!)을 통하여 인간은 신을 만나고 성장해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형이상학적 자살인 영적 자살은 육체적 자살과 그 결단에 있어서의 심각함은 동등한 비중을 차지한다는것이 라너의 견해이며. 어렵지만 그러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연결되어 있다(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서적으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루 세끼가 보장된 파라오 통치하의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버리고 모세를 따라 홍해로 향하는 결단과 같다고나 할까요..즉, 사막으로 향하는 길인 거죠 그리고 그 사막의 행군에서 고대인이 아닌 20세기 현대인이 깨우친 결과가 바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인 것입니다.
작품명 : 결혼한 성직자
제작년도 : 1961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The Married Priest(결혼한 성직자)1961" 라는 작품을 해석을 하면, 성직자분들이 섭섭할 것입니다. 속 깊은 작가 혼자만의 독백 같은 작품들은 해석을 안하는게 오히려 작가나 독자에게 예의 라고 생각하며 이 작품의 설명을 대신 할수있는 다음의 시로 해설을 대신 합니다.
긴 것
짧은 것
cross
cross에는 기름이 묻어있다.
추락
부득이한 평행
물리적으로 아팠었다.
(以上平面幾何學)
작품명 : The Tomb of the Wrestlers, The Listening Room
제작년도 : 1960, 1953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두 작품은 동시에 비교 설명이 되는 작품으로서 쉬운 작품이 되겠습니다.
두 작품 모두 실내를 묘사하고 있는데 어째서 레슬러(레슬링 선수=난봉꾼의 은어)에겐 무덤이 되는가를 설명하려면 장미와 과일의 의미를 알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과일=천연 양식=말씀이며 장미=정열적 사랑=味色입니다. 방안에서 장미를 크게 키웠으니 그 방이 영적 무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강실" 이라는 작품은 당연히 "레슬러의 무덤"과는 반대의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과일=천연양식=말씀을 표현하니까 크게 자란 과일은 장미와는 반대로 은총의 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문학적으로 살펴보면 보들레르의 거녀(巨女)라는 詩가 레슬러의 무덤에 해당하는 심리에 젖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마그리트도 "거녀"라는 작품을 그리고 그림 우측을 검게 칠한후 보들레르의 "거녀"라는 시를 적어 넣은 작품이 있으며 이 홈페이지에 있는 The Giantess 라는 작품이 마그리트의 "거녀"라는 작품입니다. 제가 볼 때 "거녀"와 "레슬러의 무덤"은 마그리트가 보들레르를 겨냥해서 그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8
작품명 : 공동발명품
제작년도 : 1935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바닷가에 상체는 물고기 하체가 사람인 생명체가 쓰러져 있습니다. 인어공주와는 반대의 경우인 것입니다. 인어공주는 바다에서 육지를 원했고 그래서 상체가 사람이며 이 작품의 물고기는 육지에서 바다를 원했기에 상체가 물고기 입니다. 바다를 원했다는건 자연을 원했다는 것이며 자연을 원했다는건 바다=자연=본질=존재자 지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의 의지와 절대자의 의지가 공동으로 작용해서 현실의 자기모습이 그림속의 물고기의 모습이라는 입니다.
8
작품명 : 사랑의 노래
제작년도 : ***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바닷가에 머리가 물고기이고 다리가 사람인 한쌍의 생명이 사랑을 노래합니다. 바다로(저쪽으로) 가지도 못하고 내륙으로(이쪽으로) 오지도 못하는 운명이지만 한쌍이 다정하게 해변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 두마리의 물고기는 마그리트와 조르제 입니다.
8
작품명 : 최후의 장면
제작년도 : 1967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이 작품은 전체=개체=하나라는 의미 입니다. 한 개의 나뭇잎을 눈에 바짝대고 바라보시면 한그루의 나무 처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그루의 나무를 멀리서 바라보면 한장의 나무잎처럼 보이게 되지요.. 나무가 인류라면 나뭇잎은 1명의 사람 입니다. "만인일체의식" 그것이 마그리트가 사망한 1967년에 그린 최후의 장면이라는 이 작품 되겠습니다.
8
작품명 : 대전쟁
제작년도 : 1964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작품 화면을 보면, 중절모를 쓴 신사가 있고 푸른 사과가 얼굴 앞에 떠 있습니다. 푸른 과일만을 바라보게 되겠지요.. 마그리트 그림에서 사과는 사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이 첨가되지 않은 천연의 양식=영혼의 양식=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말씀을 지향하게 되면 그 사람 안에서 선악의 싸움인 대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의미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의미이지만 니이체의 말처럼 시적 감상이란 광기와 같은 것입니다. 광기 속에서는 감동의 크기가 다르게 전달되어 오기도 하므로 이 작품이 시시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8
작품명 : 피레네 산맥의 성곽
제작년도 : 1959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바다 위 공중에 거대한 바위가 떠 있습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면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지요, 무척 힘이 들것입니다. 더구나 그 바위는 피레네 산맥에서 온 바위인데 그 위에 성이 있습니다. 깊고 깊은 산맥 속에 성이 있다면 분명 세상과는 많이 단절된 비밀스런 이야기가 있겠지요 저런 바위와 성이 정반대의 환경인 바닷가 벌판에 떠 있다면 아마 생존하는 게 기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땅에 뿌리도 박지 않은채 양분을 흡수하며 구름의 높이까지 성장해서 생존해 있는 "오아시스"라는 작품이 탄생 하게됩니다. 그러니까 피레네산맥에서온 성곽이 있는 바위와, 작품 "오아시스"는 마그리트 자신의 이 세상에서의 실존적 입장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른 화가들이 일부러 스캔들을 만들어 낼 때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생활하며 지내려고 하였다고 하며 그는 여행하기를 싫어하였고 자신의 상상력과 더불어 살았으며 보호색을 띤 세속적 성공으로부터 그 자신을 숨기려고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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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대가족
제작년도 : 1963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작품을 보면 거대한 새가 해변(이쪽세상)을 향해 날아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새와 알은 자주 등장합니다. 새는 알과 병립하는 개념으로서 새가 결과(인류의 완성)라면 알은 과정(인류의 역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에게 역사라는 시간이 허용된 것은 인간이라는 알이, 새가되기 위해 허용된 시간이라는, 시간론적 역사관을 이 작품은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쪽 세상의 새들과 다가오는 거대한(집단) 새가 합해지면 대가족이 되겠지요..
그래서 제목이 대가족입니다. 지금은 거대한 저쪽의 새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시기이므로 모두 자기라는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내용이 이 작품에 있어 마그리트의 의도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알에서 깨어난 새도 절대자를 향해 나는 법에 익숙지 않고 또한 실존의 무대는 여전히 이곳이기에 새와 식물이 합해지거나 물고기와 사람이 합해져 해변에 쓰러져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문학에 있어서 살펴본다면 보들레르의 신천옹이라는 작품이 새의 실존적 아픔을 노래한 작품에 해당됩니다.(신천옹-흔히 재미 삼아 뱃사람들은 커다란 바닷새, 신천옹을 잡는다.
태평스런 여행의 이 동반자는 깊은 바다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른다. 일단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들은 어색하고 수줍어 가련하게도 크고 흰 그 날개를 노처럼 그들 옆구리에 끌리게 둔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어설퍼 기가 죽었는가! 전엔 그처럼 아름답던 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추한가! 어떤 친구는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을 올리고 다른 친구들은, 창공을 날던 이 병신을 절름대며 흉내낸다. 시인도 구름의 왕자와 같아서 폭풍우를 다스리는 사수를 비웃지만 야유 소리 들끓는 지상으로 추방되니 거대한 그 날개는 오히려 걷기에 거추장스러울 뿐...
작품명 : 빛의 제국
제작년도 : 1954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빛의 제국"은 밤과 낮이 동시에 병치된 작품이기에 마그리트가 아인쉬타인과 대담을 가진바 있다하여 상대성 이론을 거론하면서 해설을 하거나 철학적으로 그림을 해석하려고 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현실을 넘는 현실 즉, 초현실(참현실)을 그리는 화가이며 철학적 관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상징을 도구로 하여 작품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그리트는 신자이며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은 신앙과 체험 그리고 영적 깨우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작품 빛의 제국의 설명
은 간단합니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은 높은 건물이라야 대개 100m이내일 것입니다.
인간이란 진정한 자기(절대아)가 자기 아닌 자기 속에 갇혀서 시간과 공간 속에 던져진 모순적 존재이니까 사람이 지배하며 사는 지상 100m이내는 모두 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이상의 공간은 낮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빛의 제국"이라는 작품은 물리적인 빛과 어둠의 개념이 아니고 선과 악의 개념으로서의 빛과 어둠을 말하는 것이기에 낮과 밤의 병치된 상태를 동일한 화면에 그리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거대한 선의 제국을 드러내며 악의 제국인 인간세상의 초라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심리가 이 작품의 제작 동기가 되며 또한 바른 해설이 됩니다.
그림을 보면 어두운 밤의 세상에서도 빛을 밝히는 가로등이 있습니다. 작품속 가로등을 보면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많은 별을 돌아다닌 어린왕자가 가로등에 불을 켜는 사람이 사는 별에도착 후 그 별을 떠나면서 하는 말이 가로등에 불켜는 사람이 사는 별이 지금까지 방문한 모든 별들중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 켜진 하나의 등불!
작품명 : 천상적 완전성
제작년도 : 1930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이 작품은 마그리트가 30대 초반에 그린 작품으로 구름 시리즈중 하나 입니다.마그리트의 구름 시리즈에는 하늘에 구름만 떠있는 작품도 있는데 특이한 점이 우리가 느끼는 구름에 대한 일반적 감상과는 다르게 마그리트는 그 작품의 제목으로 CURSE(저주)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왜..그는 저주라는 제목을 선택하였을까..마그리트는 하늘의 구름을 구약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욥이 악마의 저주에 의해 온 몸에 피부병이 생겨 개와장으로 가려운 데를 긁었듯이 구름을 하늘의 피부병 즉, 저주의 흔적으로 본 것입니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하늘을 합판무늬로 얼룩을 그려서 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구름이 가운데 십자형을 기준으로 하여 4조각으로 나눠집니다. 저주로부터의 해방의 시작을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구름이 갈라지며 더 큰 행복을 맞이하므로 뒷배경이 밝은색으로 묘사되어야 회화적 상식인데 이 그림에서는 검은색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건인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표현 했다기보다는 배경이 검은색인 점으로 보아 개인적 체험에 의한 영적 해방을 구름의 갈라짐으로 표현한 것이며 배경이 검은것은 영적체험 후에도 지상에서의 실존적 아픔만은 그대로 마그리트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존적 아픔을 마그리트는 그의 많은 작품속에서 표현합니다. 국내 문학에서 살펴본다면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김춘수씨의 "하늘수박"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하늘수박=바보야,우찌 살꼬 바보야, 하늘수박은 올리브빛이다 바보야, 바람이 자는가 자는가 하더니 눈이 내린다 바보야,우찌 살꼬 바보야, 하늘수박은 한여름이 다. 바보야, 올리브 열매는 내년 가을이다 바보야,우찌 살꼬 바보야, 이 바보야)
작품명 : 과대망상증
제작년도 : 1949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이 작품은 비교적 이해가 쉬운 작품입니다.뉴욕 맨하탄의 빌딩처럼 생긴 상자들이 구름과 같은 높이에 있고, 옥상위에 여자의 토로소가 통일되지않은(잠재의식적) 성적 욕망을 표현하듯 3등분되어 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라는 작품에서 인간의 삶의의지의 핵심은 性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회적 상승을 향한 망상은 세속만이 아니라 종교적 구원의 여정에 있어서도 개인의 내면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신앙적 자기실현의 계획과 의지 속에서도 제도적 사회적 상승의 의지가 발생하며 그 의지의 핵심에는 성적인 무의식의 욕망이 자리를 잡고있으며 그것이 종교성에서 발생하는 과대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자들의 감성적 理性이 빚은 오류를 지적하는 작품이 false mirror(오류의거울)입니다
작품명 : 천리안
제작년도 : 1936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이 작품은 비교적 이해가 쉬운 작품입니다. 새의알을 보며 새를 그리고 있습니다. 헤르만헷세의 아프락사스를 향해 날아가는 새도 알을 깨고 나오고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희망을 이라는 작품에서도 애벌레를 벗고 나비가 됩니다. 아프락사스를 향해 날아가는 새나 트리나포올러스의 작품속 나비 모두인간을 상징 하듯이 천리안 이라는 마그리트의 작품속 알과 새는 모두 인간을 상징합니다. 자고있는알=범인,,날고있는새=거듭난인간,,애벌레=범인,,나비=거듭난인간,,마그리트는 천리안 이라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의 성격을 우리에게 시사 합니다.즉,,알=현실속에서..새(미래의현실=초현실)를 그리는 것이라고,,스스로를 천리안 이라고 하면 좀 건방져 보이지만 우리나라의 문학에서도 그러한 흔적들이 발견됩니다.이상의 날개라는 작품 첫 페이지를 보면 이런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지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 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여기서 여왕봉은 미혼녀를 상징하고 미망인은 기혼녀를 상징합니다. 남편이 있는 모든 여자는 어째서 미망인인가..그것은 모든 사람이 알의상태 즉,,자고있기 때문 입니다. 영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란 생명의 가능성은 있으나 죽은상태라고 할수있지요.가능성으로서의 존재이며 자고있는 상태인 알(인간)들에게 깨어 있는 결과로서의 새(자유와 생명)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을 그린 성자 그분이 바로 마그리트인 것입니다. 마그리트는 혼자있을때 가끔 성직자의 제복을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작품명 : 이것은 사과가 아닙니다
제작년도 : ***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마그리트는 그림을 그릴 때 같은 그림을 여러번 그리기도 하고 주제별로 그림을 그립니다. 즉, 사과시리즈, 중절모 시리즈,돌 시리즈,구름 시리즈,새 시리즈..등등 이 작품은 그분의 사과 시리즈 중 양식이란 작품과 함께 이해하여야 작가가 이것은 사과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던지는 간접적 질문에 답을 할수 있습니다. 양식이라는 작품에서 사과의 의미는 "천연양식"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성서에 보면 예수가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실때 허기진 예수에게 악마가 말하길 네가 신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 하자 사람이 빵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 하며 악마에게 답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빵은 인공적인 양식이며 과일은 천연양식=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에서 작가가 이것은 사과가 아니라고할 때 그의 모든 작품에서 사과의 참뜻은 말씀인 것입니다. 마그리트의 양식이라는 작품에서 빈 액자위에 과일을 액자와 평면이 아닌, 액자와 수직으로 과일을 그려 올리는데 그 의미 또한 액자위에 그려지는 작품들은 살아있는 양식 즉,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그려지는 그림 그것이 바로 마그리트의 초현실 세계이며 작품세계인 것입니다. 마그리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상징은 아니라고 말했으나 그것은 초현실은 비현실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현실임을 강변하기 위하여 자신의 작품에 상징은 없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마그리트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상징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의 초현실적 상징은 상징에 그치지 않고 더욱 참된 현실과 연결되기에 작가는 상징이라는 단어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작품명 : 불가능한 시도
제작년도 : ***
작품재료 : 캔버스에 유채
작품크기 : ***
소장위치 : ***
작품설명 : 르네 마그리트가 여성의 나체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팔은 아직 그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즉 나머지 팔을 그려 완성함은 불가능한 시도라는 것이지요 다시말하면 회화라는것은 대상의 재조명입니다. 재조명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화가와 화공이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체의 여자를 그린다는 의미의 뜿은 성에관한 재조명 즉 깨끗하고 거룩하며 완전한 성을 현실적으로 인간이 나누고 소유할수 있느냐라는 문제를 놓고 인간적 윤리와 자연이라는 본질적 자유와의 대립적 관계속에서 결국 성적 자유란 사악한 악마의 충동일뿐 자연의 본질이라는 미명하에 용인될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즉, 불가능한 시도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성적자유를 합리화하는 이론이나 행위는 죄악이다. 라는것을 표현한 것이며 "불가능한시도"라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그리트의 "사악한 악마"라는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때 더욱 분명해 집니다.
이러한 종교적 신앙과 성적 충동과의 갈등과 내적 깨우침을 표현한 국내의 문학적 흔적을 살펴보면 황석우씨의 벽모의묘, 김춘수씨의 눈물이라는 작품이 있으며 그중 눈물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눈물-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