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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받은 그리스도인 (디모데후서 4:22)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닭 한 마리와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집은 없고 이미 날은 저물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길옆에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 귀퉁이에 묶어두었습니다. 이 랍비가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하고 아침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랍비는 천막 안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등잔이 넘어지면서 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 기도를 올리고 잠을 청했습니다. 이 랍비는 온종일 걸어다녀서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눈을 붙이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에 맹수들이 이곳을 습격하여 나귀와 닭을 물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찢어진 천막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이 바로 동네 어귀에서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동네로 들어가 보니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유인즉 간밤에 떼강도가 몰려와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만일 등불이 켜져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냈었다면 자기도 틀림없이 죽었을 터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비록 작은 것을 잃었지만 더 큰 것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 순간 얼마나 많은 위기를 넘겼는지 모릅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안내를 잘 하시던 집사님이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아 물어보았더니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갑자기 다른 차가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것입니다. 차가 부서진 것은 물론 그 집사님도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크게 둘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일반은혜요, 다른 하나는 특별은혜입니다.
일반 은혜는 예수님을 믿거나 말거나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예수 안 믿어도 아들 딸 잘 낳고, 예수 안 믿어도 출세하고 서울대학에 들어가고, 예수 안 믿어도 부자로 살고, 예수 안 믿어도 잘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특별은혜는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받는 은혜로,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되는 은혜입니다.
택함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학식이 많고 이 세상 지혜가 넘쳐도 도무지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일반은혜에 대하여서도 감사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특별은혜에 더욱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신자답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은혜,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면서 살 수 있는 은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 수 있게 하시는 은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은혜, 이런 은혜를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헬렌 켈러 여사는 삼중 장애인입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훌륭하고 귀한 일들을 많이 했으며 저술도 했습니다. 말년에 어떤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한평생 살아오셨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은 없습니까?” 그러자 헬렌 켈러 여사는 빙그레 웃으며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는데,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는 줄 믿습니다. 이처럼 은혜 받은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런 은혜를 받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부터 히브리서까지 바울이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면, 언제나 맨 마지막에 가서는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원하는 말씀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히 13:25).
■은혜 받은 성도들은 은혜 받지 못한 성도들과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1. 회개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 전과 달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되기 시작합니다. 은혜를 받은 순간부터 자신의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부족하고 비양심적이며 거짓되고 악독하고 교만한 인간인가 깨닫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무슨 설교를 듣고 혹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이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알기 때문에 함부로 잘난 척 하지 못합니다. 또 남들의 잘못을 보고도 함부로 욕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옛날 영국의 황제인 루이스가 민정을 살피기 위해 국내를 순시하는 도중에 어떤 동리 한 모퉁이에 있는 물레방앗간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레방앗간에서 기쁘게 부르는 노래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황제는 그 노래소리에 도취되어 듣다가 그곳으로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기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인이었습니다.
황제는 그 물레방앗간 노인에게 그가 방금 불렀던 노래를 다시 청했습니다. 그 노인은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라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다시 황제는 그 노인에게 둘째 소절은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해.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라고 부르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2.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생활을 잘 하고 얼굴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마태는 전직이 세리였습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로마의 묵인 아래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그 돈으로 고리대금을 놓아 재산을 불리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이었기에 세리와 죄인과 창기는 천한 인간으로 취급당했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큰 죄인이 구원을 받은 것을 감격하여 일평생 자기 이름을 기록할 때 세리라는 이름을 붙여 ‘세리 마태’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본래 세리였소”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선포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존 뉴턴은 한 때 포악한 노예상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노예 사냥꾼이었으나 예수님을 믿고 변화 받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40여 년간을 주의 일을 했지만 마음속에 한 가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고 하지만, 과연 나 같은 노예상인을 용서하셨을까? 문득문득 자신의 과거가 떠오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마음이 떨렸으며, 그럴 때마다 그는 벽에다 이사야 43:4의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노라」는 말씀을 써 붙여놓고 그 말씀을 되뇌이며 위로를 받고 다시 회복되곤 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82세로 숨을 거두면서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아마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반드시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세 번째로 노예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3.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품의 변화가 있습니다. 사랑이 많아집니다. 예수를 믿어도 은혜 받기 전에는 자신밖에 모르고 따지기를 좋아하고 똑똑한 척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착해집니다. 의롭고 진실하고 겸손하고 온유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며, 인생관이 달라지고 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점점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4.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은혜를 받게 되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오직 주님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로마서 14:6~8에서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12:1).
제가 이번에 미국 LA에 가서 선교대회의 강사로 여러 목사님들을 만나는 중에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님으로서 학위를 따자마자 바로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된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출세가 보장된 평탄한 길을 마다하고 주위로부터 미쳤다는 비난의 소리를 감수하며 교회를 개척하여 오늘날 수백 명이 모이는 대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나이 30세가 될 때까지 신학박사, 음악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철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딴 천재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가 아마 보통 사람들의 길을 갔더라도 독일의 유명한 학자로 이름을 날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프리카로 들어가 흑인들을 위해 의사로 복음전도자로 90평생을 보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겁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을 그렇게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예수 믿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보다 예수 믿은 후 얼마나 변화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남은 여생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서 영육간에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정필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닭 한 마리와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집은 없고 이미 날은 저물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길옆에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 귀퉁이에 묶어두었습니다. 이 랍비가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하고 아침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랍비는 천막 안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등잔이 넘어지면서 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 기도를 올리고 잠을 청했습니다. 이 랍비는 온종일 걸어다녀서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눈을 붙이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에 맹수들이 이곳을 습격하여 나귀와 닭을 물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찢어진 천막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이 바로 동네 어귀에서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동네로 들어가 보니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유인즉 간밤에 떼강도가 몰려와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만일 등불이 켜져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냈었다면 자기도 틀림없이 죽었을 터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비록 작은 것을 잃었지만 더 큰 것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 순간 얼마나 많은 위기를 넘겼는지 모릅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안내를 잘 하시던 집사님이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아 물어보았더니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갑자기 다른 차가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것입니다. 차가 부서진 것은 물론 그 집사님도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크게 둘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일반은혜요, 다른 하나는 특별은혜입니다.
일반 은혜는 예수님을 믿거나 말거나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예수 안 믿어도 아들 딸 잘 낳고, 예수 안 믿어도 출세하고 서울대학에 들어가고, 예수 안 믿어도 부자로 살고, 예수 안 믿어도 잘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특별은혜는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 받는 은혜로,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되는 은혜입니다.
택함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학식이 많고 이 세상 지혜가 넘쳐도 도무지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일반은혜에 대하여서도 감사해야 하겠지만, 특별히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특별은혜에 더욱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신자답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은혜,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면서 살 수 있는 은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 수 있게 하시는 은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 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 항상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은혜, 이런 은혜를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헬렌 켈러 여사는 삼중 장애인입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훌륭하고 귀한 일들을 많이 했으며 저술도 했습니다. 말년에 어떤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한평생 살아오셨는데, 당신은 하나님을 원망해 본적은 없습니까?” 그러자 헬렌 켈러 여사는 빙그레 웃으며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는데,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은혜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는 줄 믿습니다. 이처럼 은혜 받은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런 은혜를 받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원했습니다. 갈라디아서부터 히브리서까지 바울이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면, 언제나 맨 마지막에 가서는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축원하는 말씀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히 13:25).
■은혜 받은 성도들은 은혜 받지 못한 성도들과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1. 회개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 전과 달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되기 시작합니다. 은혜를 받은 순간부터 자신의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부족하고 비양심적이며 거짓되고 악독하고 교만한 인간인가 깨닫게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무슨 설교를 듣고 혹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이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알기 때문에 함부로 잘난 척 하지 못합니다. 또 남들의 잘못을 보고도 함부로 욕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옛날 영국의 황제인 루이스가 민정을 살피기 위해 국내를 순시하는 도중에 어떤 동리 한 모퉁이에 있는 물레방앗간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레방앗간에서 기쁘게 부르는 노래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황제는 그 노래소리에 도취되어 듣다가 그곳으로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기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인이었습니다.
황제는 그 물레방앗간 노인에게 그가 방금 불렀던 노래를 다시 청했습니다. 그 노인은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라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다시 황제는 그 노인에게 둘째 소절은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해.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라고 부르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2.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생활을 잘 하고 얼굴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마태는 전직이 세리였습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로마의 묵인 아래 백성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그 돈으로 고리대금을 놓아 재산을 불리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이었기에 세리와 죄인과 창기는 천한 인간으로 취급당했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큰 죄인이 구원을 받은 것을 감격하여 일평생 자기 이름을 기록할 때 세리라는 이름을 붙여 ‘세리 마태’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본래 세리였소”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선포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존 뉴턴은 한 때 포악한 노예상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노예 사냥꾼이었으나 예수님을 믿고 변화 받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40여 년간을 주의 일을 했지만 마음속에 한 가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고 하지만, 과연 나 같은 노예상인을 용서하셨을까? 문득문득 자신의 과거가 떠오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마음이 떨렸으며, 그럴 때마다 그는 벽에다 이사야 43:4의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노라」는 말씀을 써 붙여놓고 그 말씀을 되뇌이며 위로를 받고 다시 회복되곤 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82세로 숨을 거두면서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아마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반드시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세 번째로 노예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3.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품의 변화가 있습니다. 사랑이 많아집니다. 예수를 믿어도 은혜 받기 전에는 자신밖에 모르고 따지기를 좋아하고 똑똑한 척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착해집니다. 의롭고 진실하고 겸손하고 온유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며, 인생관이 달라지고 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점점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4.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은혜를 받게 되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오직 주님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로마서 14:6~8에서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며, 더 나아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12:1).
제가 이번에 미국 LA에 가서 선교대회의 강사로 여러 목사님들을 만나는 중에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님으로서 학위를 따자마자 바로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된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출세가 보장된 평탄한 길을 마다하고 주위로부터 미쳤다는 비난의 소리를 감수하며 교회를 개척하여 오늘날 수백 명이 모이는 대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나이 30세가 될 때까지 신학박사, 음악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철학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딴 천재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가 아마 보통 사람들의 길을 갔더라도 독일의 유명한 학자로 이름을 날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프리카로 들어가 흑인들을 위해 의사로 복음전도자로 90평생을 보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겁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을 그렇게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예수 믿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보다 예수 믿은 후 얼마나 변화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쪼록 남은 여생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서 영육간에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정필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