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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의 하나님" (출32:1~10)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한 선배의 부인이 출산을 위해 모대학 병원에서 한참동안이나 산고를 겪다가 뒤늦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술 중에 그치지 않는 출혈로 인해 아기는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지만 산모는 그만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대학 병원은 국내 최고의료시설과 의료진을 자랑하는 병원이었으나 결국 산모의 생명을 건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같이 공부하던 많은 신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단체로 병원 당국의 무책임한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 병원으로 몰려갔습니다. 의사들은 당황하여 불가항력적이었다고 변명하기에 바빴으나 분노한 일가친척들과 신학생들로 인해 병원은 큰 소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산모의 부모님들은 한쪽 구석에서 말없이 눈물만 훔치고 계셨습니다. 그 두 분이 잠시 무엇인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병원 당국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리 앞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자식 문제로 흥정이나 분란을 일으키지 말아주십시오. 제 여식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제 여식은 마치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도 같이 착한 아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사의 모습을 28년 밖에 보여주시지 않았지만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 딸아이와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물론 의료진의 잘못도 있었겠지만 지금 하나님의 품속에서 안식하고 있는 우리 아이를 놓고 병원과 다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을 들은 모두는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 더 이상의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신학생들은 그 친정 부모님들의 신앙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의료 사고로 자신의 딸을 잃어버렸음에도 끝까지 임마누엘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그 분들의 모습은 예비 목회자인 우리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었습니다. 자칫 신학 서적 속에 매몰되어 삶 속에서 임마누엘 신앙을 체험하지 못하기 쉬운 신학생들이었기에 그 감동은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신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하였던 사람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수여받았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모세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히브리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젊은 시절을 애굽 왕궁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했던 애굽 궁정 생활 뒤에 모세를 기다리는 것은 미디안 광야의 혹독한 더위와 모래바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광야를 돌아다니는 무명의 목자로 늙어버린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이라는 대역사를 일으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모세는 극적인 삶을 살아간 불꽃같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일평생 늘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홍해를 건너 출애굽의 장정에 들어섰을 때에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애굽 왕정에 있을 때에도, 억울한 일을 당하여 도망칠 때에도, 미디안 광야에서 이름 없는 목자로 살아갈 때도 하나님은 늘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모세의 삶을 되짚어 보며 임마누엘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며 그 무리를 서편으로 인도하여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그 곳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나무가 타지 않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혈기등등한 애굽 왕궁의 모세가 아니라 혹독한 광야의 시련을 통해 비로소 그 혈기가 꺾이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된 모세를 만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출애굽의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라고 되묻습니다.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모세는 스스로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지도력을 의심하고 인정하지 않을 것도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면서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3:15)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 여호와를 계시하시면서 그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셨던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모세와 또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계심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러한 자기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히브리 여인들의 남자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애굽의 공주를 통해 애굽 궁정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유모가 되어 애굽 궁정에서도 히브리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신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포들에 의해서 광야로 쫓겨난 일과 광야에서 보낸 수십년의 세월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 출애굽이라는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자신을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셨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과거의 자신의 삶이 기구하여 늘 혼자뿐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이켜보면 기쁘고 행복한 일도 있었지만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오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있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저주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 일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도 함께 계시며 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거기에 함께 계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고통만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비록 그 순간은 힘겨워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전도사역을 돌이켜 보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그렇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서 고백되어야 마땅합니다. 에벤에셀이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 7:12)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2. 지금 여기에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가끔 과거에만 머문 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옛날에는 기도를 많이 했고 성경도 많이 읽었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기도와 말씀 생활에 게으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또 교회 봉사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지금은 아무런 봉사도 하지 않는 분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의 신앙 상태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했어도 지금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오늘 나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놀라운 하나님 체험을 금새 잊어버리고 오늘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죄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하여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만은 그 재앙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돕기 위해서 홍해를 가르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셨고 그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려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금새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스라엘의 배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후 신속히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32:1) 결국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을 위하여 금송아지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금송아지를 그들의 신으로 선포하였습니다.(출3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금붙이를 모아 만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섬기며 그 앞에서 광란의 춤을 추었습니다. 출애굽의 대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그들이 금새 광야의 우상 숭배자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출32:9)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일로 인하여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출32:28) 출애굽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과거의 하나님 체험을 간직하지 못하고 오늘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심각한 죄악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도 신실하게 지켜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린 채 오늘 하나님을 떠나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미래에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지난 우리의 삶가운데 늘 동행하시며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에벤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앞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앞일도 미리 앞서 예비하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시작과 끝 모두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앞일에 대하여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을 가지고 우리 앞날을 책임져 주시는 최고의 보험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복된 인생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각 지파의 대표 한 명씩 열 두명의 정탐꾼에게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열명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민13:27~28)라고 보고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민족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생활과 오랫동안 계속된 광야생활로 인해 전혀 군사훈련이 없는 오합지졸의 무리였습니다. 이에 비해 가나안에서 사는 족속들은 싸움에 능한 무서운 종족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민14:6~8)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또 계속하여 이르기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고 백성들에게 역설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족속들이 싸움에 능한 족속이란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가나안 족속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14:22~2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끝까지 신뢰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만은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땅을 차지하리라"(민14:24)고 축복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라 결코 식언치 아니하십니다. 자신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날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오지 않은 앞날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오직 우리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도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에든지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한 선배의 부인이 출산을 위해 모대학 병원에서 한참동안이나 산고를 겪다가 뒤늦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술 중에 그치지 않는 출혈로 인해 아기는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지만 산모는 그만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대학 병원은 국내 최고의료시설과 의료진을 자랑하는 병원이었으나 결국 산모의 생명을 건질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같이 공부하던 많은 신학생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단체로 병원 당국의 무책임한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 병원으로 몰려갔습니다. 의사들은 당황하여 불가항력적이었다고 변명하기에 바빴으나 분노한 일가친척들과 신학생들로 인해 병원은 큰 소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산모의 부모님들은 한쪽 구석에서 말없이 눈물만 훔치고 계셨습니다. 그 두 분이 잠시 무엇인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병원 당국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리 앞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자식 문제로 흥정이나 분란을 일으키지 말아주십시오. 제 여식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제 여식은 마치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도 같이 착한 아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사의 모습을 28년 밖에 보여주시지 않았지만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 딸아이와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물론 의료진의 잘못도 있었겠지만 지금 하나님의 품속에서 안식하고 있는 우리 아이를 놓고 병원과 다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을 들은 모두는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로 더 이상의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신학생들은 그 친정 부모님들의 신앙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의료 사고로 자신의 딸을 잃어버렸음에도 끝까지 임마누엘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그 분들의 모습은 예비 목회자인 우리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었습니다. 자칫 신학 서적 속에 매몰되어 삶 속에서 임마누엘 신앙을 체험하지 못하기 쉬운 신학생들이었기에 그 감동은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신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하였던 사람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수여받았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모세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히브리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젊은 시절을 애굽 왕궁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했던 애굽 궁정 생활 뒤에 모세를 기다리는 것은 미디안 광야의 혹독한 더위와 모래바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광야를 돌아다니는 무명의 목자로 늙어버린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이라는 대역사를 일으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모세는 극적인 삶을 살아간 불꽃같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일평생 늘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홍해를 건너 출애굽의 장정에 들어섰을 때에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애굽 왕정에 있을 때에도, 억울한 일을 당하여 도망칠 때에도, 미디안 광야에서 이름 없는 목자로 살아갈 때도 하나님은 늘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모세의 삶을 되짚어 보며 임마누엘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며 그 무리를 서편으로 인도하여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그 곳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나무가 타지 않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혈기등등한 애굽 왕궁의 모세가 아니라 혹독한 광야의 시련을 통해 비로소 그 혈기가 꺾이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된 모세를 만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출애굽의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라고 되묻습니다.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모세는 스스로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지도력을 의심하고 인정하지 않을 것도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면서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3:15)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 여호와를 계시하시면서 그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셨던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모세와 또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계심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러한 자기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히브리 여인들의 남자 아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애굽의 공주를 통해 애굽 궁정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유모가 되어 애굽 궁정에서도 히브리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신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동포들에 의해서 광야로 쫓겨난 일과 광야에서 보낸 수십년의 세월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 출애굽이라는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자신을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셨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과거의 자신의 삶이 기구하여 늘 혼자뿐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이켜보면 기쁘고 행복한 일도 있었지만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오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있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저주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 일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도 함께 계시며 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거기에 함께 계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고통만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비록 그 순간은 힘겨워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전도사역을 돌이켜 보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그렇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을 만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서 고백되어야 마땅합니다. 에벤에셀이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 7:12)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2. 지금 여기에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가끔 과거에만 머문 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옛날에는 기도를 많이 했고 성경도 많이 읽었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기도와 말씀 생활에 게으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또 교회 봉사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지금은 아무런 봉사도 하지 않는 분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의 신앙 상태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했어도 지금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오늘 나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놀라운 하나님 체험을 금새 잊어버리고 오늘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죄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하여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만은 그 재앙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돕기 위해서 홍해를 가르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셨고 그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려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금새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스라엘의 배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후 신속히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32:1) 결국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을 위하여 금송아지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금송아지를 그들의 신으로 선포하였습니다.(출3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금붙이를 모아 만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섬기며 그 앞에서 광란의 춤을 추었습니다. 출애굽의 대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그들이 금새 광야의 우상 숭배자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출32:9)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일로 인하여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출32:28) 출애굽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과거의 하나님 체험을 간직하지 못하고 오늘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심각한 죄악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도 신실하게 지켜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린 채 오늘 하나님을 떠나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미래에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지난 우리의 삶가운데 늘 동행하시며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에벤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앞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앞일도 미리 앞서 예비하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시작과 끝 모두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앞일에 대하여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을 가지고 우리 앞날을 책임져 주시는 최고의 보험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복된 인생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각 지파의 대표 한 명씩 열 두명의 정탐꾼에게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열명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민13:27~28)라고 보고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민족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생활과 오랫동안 계속된 광야생활로 인해 전혀 군사훈련이 없는 오합지졸의 무리였습니다. 이에 비해 가나안에서 사는 족속들은 싸움에 능한 무서운 종족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민14:6~8)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또 계속하여 이르기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고 백성들에게 역설하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족속들이 싸움에 능한 족속이란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가나안 족속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14:22~2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끝까지 신뢰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만은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땅을 차지하리라"(민14:24)고 축복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라 결코 식언치 아니하십니다. 자신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날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가오지 않은 앞날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오직 우리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도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에든지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