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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동역자 (행 18:1-4)
일본 동경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경기장 확장을 위해 부근에 지은 지 3년밖에 안 되는 집을 헐게 되었는데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는 도중에 꼬리 쪽에 못이 박혀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부들이 집주인을 불러 이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을 짓던 3년 전에 못을 박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혀 움직이지도 못하였을 텐데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습니다. 그래서 인부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숨어서 도마뱀을 온 종일 지켜보았더니 얼마 있으니까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못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하루에 몇 번씩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삼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도마뱀의 우정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생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좋은 환경을 만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훌륭한 부모, 훌륭한 친구, 훌륭한 스승, 훌륭한 선배와 상사, 훌륭한 목회자나 믿음 좋은 분들을 만나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인생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육신의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행복 중에 하나가 되지만 그러나 믿음이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 됩니다. 육신적으로도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겠지만 그를 통하여 영혼까지 구원받고 천국을 향해 가는 거룩한 순례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영혼이 얼마나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그리스도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가 어떤 교회를 선택하여 그 교회를 중심으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중대하고 우선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사람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사람을 만나야 하고 또 사람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 위대한 사도 바울 같은 인물을 만나서 세계 선교 역사의 장을 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위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가운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는 '어떤 일에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3-4절) 여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으로 우리는 어떤 개인을 위한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을 돕는 자들이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권적인 사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동업자라고 말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동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숭고한 목적을 위해 함께 희생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로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실제로 행18장에 저들의 이름이 세 번이나 등장하고 있고 (2절, 18절, 25절) 그리고 고전16:19, 롬16:3, 딤후4:19 이렇게 6번 나오는데 그 중에 4번은 브리길라와 아굴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절에 보면 아굴라는 소아시아의 본도(Pontus) 출신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말살정책을 폈던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추방령에 따라 로마를 떠나서 고린도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위대한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화가 오히려 복이 된 것입니다. 바울과 아굴라 부부는 생업이 같았습니다. 그들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여 번 돈으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전도하는데 드는 비용으로도 사용하였습니다.(행18:3, 20:34)
이들과 동일한 일을 했던 사도 바울을 만나 그가 사도인 것을 알고서 바울의 동역자로 일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그들은 텐트를 만들면서 사도 바울을 만난 후에 전도에 힘쓰게 되었는데 바울이 가는 곳마다 다라 다니며 그의 사역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 후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었을 때 로마에 다시 돌아가서 전도활동에 힘썼는데 로마에 살던 자기 집을 교회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바울을 충성스럽게 섬긴 바울의 심복들이 되었습니다. 저들이 바울을 만난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가장 위대한 사역자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저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습니다. 바울이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말씀으로 잘 양육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저들의 일생을 통한 최대의 축복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들 부부의 이름이 성경에 여섯 번이나 기록될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마틴 부버가 참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듯이 이들의 만남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는 의 말씀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은 신앙의 간증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같이 때로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추방당한 신세같이 어렵고 외로운 순간을 지나게 될 때라도 그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 기쁨의 샘으로 솟아나게 하시는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교인이 좋은 교회와 좋은 사역자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더욱이 외롭고 어려울 때 좋은 교회와 성도를 만나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그런가하면 사역자들도 좋은 교회와 좋은 교인을 만난다는 것이 역시 일생의 최대의 축복입니다. 결국 교회가 좋은 목사로 만든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과 동업자가 되었고 또한 아주 짧은 시간에 바울에 의하여 신앙훈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지나 놓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요, 인도요, 역사입니다.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을 존재론적으로 정의하면 매우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흙과 하나님의 신과 그리고 사람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특제품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면 기능적으로 정의하여야 하는데“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이 훨씬 더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즉 존재보다는 기능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고린도에서 시작됩니다.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습니다. 만남은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아굴라 부부는 바울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바울을 적대하고 있던 때에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위해서라면 목이라도 내어 놓으려고 했으니 바울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얻었겠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16장 3절에 아굴라 부부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하나님의 종 바울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물질은 물론 자기들의 생명까지도 바치기를 소원했습니다.
세 종류의 사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람들 중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남에게 도움을 끼치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남에게 있으나 마나 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남에게 도움을 끼치며 산 사람들입니다. 바울뿐 아니라 마게도냐와 아시아와 로마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끼치며 산 사람들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한 평생을 참으로 가치 있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끼치며 살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사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 피난 와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고린도에 와서 선한 직업을 선택했다.
장막을 만들어 파는 직업이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는 우상과 향락과 퇴폐산업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굴라 부부는 선한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손으로 수고하며 사람들이 거처할 수 있는 장막을 만들어 파는 일이었습니다. 그 직업 때문에 저들은 사도 바울을 만날 수도 있었고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불행이 오히려 저들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바울의 동역자
제자훈련과 전도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 다니면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는 유대인은 학문과 웅변에 뛰어난 인물로서 에베소에 와서 성경을 가르치며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여 가르쳤지만 아볼로는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굴라 부부는 그를 데려다 가는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가르쳤다고 말씀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렇게 가르치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 부부가 바울을 만난 후에 놀라운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저들은 바울을 통해서 좋은 그리스도인이며 충성된 증인으로 그리고 훈련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부부가 조화롭게 함께 손잡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걸음을 맞추어 봉사하는 아름다운 축복의 가정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실한 봉사와 말씀의 깊이를 더하셔서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바로 인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고 다음에는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나중에는 로마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행16:18).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로 갈 때는 바울이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에 남겨 두며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분부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신학자 아볼로에게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로마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재물과 집을 내 놓고 목을 내 놓으면서까지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진정한 헌신에는 재물과 몸의 헌신이 따릅니다. 아굴라 부부는 저들의 직업은 목적이 아니라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바울의 선교사역을 돕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저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을 재정적으로 도왔고 그리고 자기들의 집을 교회처소로 제공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굴라 부부는 자기 집을 교회처소를 제공했습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고전16:19). 로마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자기 집을 교회처소로 제공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국라에게 문안하라 .또 저희 교회에게도 문안하라"(롬16:3,5).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록입니까!
바울을 섬기는 자세
아굴라 부부는 주님을 위하여 또한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교회와 교역자들을 섬기는 일에 철저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수리아로 떠나갈 때 함께 동행하였습니다(18-19). 또한 바울이 에베소로 갈 때에도 함께 갔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해 오던 사업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에베소에 복음 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자원해서 따라 나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과 관련해서 이사해 본 일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서, 교회봉사를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교역자와 더 잘 협력하기 위해서 이사할 수 있을 정도의 열심이 여러분들에게도 있습니까?
로마서 16장 3-4절을 읽으며 우리는 감격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평신도에게 바울과 같은 목회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목회자에게 아굴라 같은 평신도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바울 곁에는 그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끈끈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교역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를 위해서 서로 섬기며 절대적으로 헌신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바친 부부
오늘은 많은 교회들이 개인이 제공한 가정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지만 영원히 가정교회로 남아있을 수가 없고, 마침내 큰 교회들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넓은 대지를 교회에 바쳐서 예배당 건물을 신축하기도 하고, 또는 좋은 산을 바쳐서 기도원, 교회묘지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런 성도들의 이름은 역사 속에 길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숨은 전도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며 순식간에 자라난 그들의 신앙으로 위대한 인물 아볼로를 가르쳤으며,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바울이 위기에 처할 때는 바울의 목숨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참형을 당할 위험도 감수하였으며, 마침내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던 주택을 교회당으로 사용하도록 선뜻 내어놓은 그런 부부였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부부의 신앙은 오늘날 모든 기독교 가정의 모범이 되고도 남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모범된 부부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금년에 처음으로 시작한 부부 다락방 모임은 너무나 성공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5-8 가정 정도의 순원들을 순장 부부가 지극한 정성을 들여 기도와 관심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부부를 보는 목회자의 마음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지금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같은 부부가 더 많이 있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는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사 짝 믿음의 가정을 합심되는 가정이 되어, 절대로 낙심 말고 새벽부터 밤까지 눈물과 사랑으로 그리스도 복음의 씨를 뿌려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같이 죽도록 충성하여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오르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가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교회에서 목회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교인 중에 한 나이 많은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주일날 교회에 나올 때마다 언제나 그날 새로 등록한 초신자 스무 명의 명단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또 모든 시험을 이기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평생 기도를 했습니다. 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스펄전 목사는 장례식을 인도하면서 “그는 나의 가장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교역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큰 동역입니다. 새로 믿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목회자에게는 큰 동역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 위대한 동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사람 보기에는 작은일 같아도 하나님께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모릅니다. 가장 귀중한 것은 이런 영적인 것들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역자들(구역지도자, 부부 다락방과 남성 다락방의 순장들, 지단체 회장들, 교회학교 교사들, 항존직분자들)이 교인들과 속한 회원들을 위해,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는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차례차례 기도하는 일이야말로 목회자의 큰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험한 항해를 하는 동안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줄 수 있는 동역자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쉽게 지치고 자칫 인생의 항해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그 동역자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무한히 복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동역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합당한 동역자가 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