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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시 59:16-17)
세상을 살면서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도 참 행복한 삶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 이웃하며 살아가는 삶은 기쁘고 만날수록 행복한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좋지 않은 만남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면 마음이 불화하고 갈등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도 축복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울과 다윗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참으로 불행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었고 불화가 있었고 미움과 증오가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시편 59편을 보면 표제가 “다윗의 믹담”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믹담”이라는 말은 “교훈을 주는 시”라는 뜻입니다. 다윗과 사울은 정적관계입니다.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백성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는 다윗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언제나 다윗을 의식해야 하였고 급기야는 정적으로 여겨 다윗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다윗을 전장에 내 보내 위험에 처하여 죽도록 하였고 그러면 다윗은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 매번 싸워서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백성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사울은 속에서 일어나는 증오심을 불태웠고 그래서 여러 차례 다윗에게 위협을 가했고 마침내는 앞에 앉아있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간신히 피신한 다윗은 집으로 피신합니다. 그때 사울은 군대를 다윗의 집에 보내 포위하게 하였고 체포하려고 집으로 군인들이 들어갔을 때 사울의 딸인 다윗의 아내는 다윗이 병들어 누워있으니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시 군인들을 보내 다윗이 누운 침상 채 들고 오라고 호령을 합니다. 그래서 재차 다윗의 집에 갔을 때는 이미 다윗은 피신한 후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무사하게 생명을 구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다급한 마음으로 쓴 기도문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읽은 시편 59편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입은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절까지는 탄원하는 내용의 기도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나를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소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의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피소서.” 얼마나 다급하고 위기감에서 나온 기도입니까. 그리고 16-17절을 보면 결국 다윗은 자신이 승리할 것을 믿고 간구하는 기도문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란 날에 피난처이시니 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은 “나는 주님만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인연
다윗은 사울로 인해서 픽업되어 정치에 입문하게 된 사람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살아 가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남들이 때로 나의 인생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진로와 직업과 운명이 결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교류하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신비하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원래 정치가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느 날 쏘크라테스라는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를 만나는 순간 장차 철학자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서 두 문화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사도바울을 만나게 되면서 디모데는 전도자의 길을 걷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디모데라는 진실한 전도자가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전장에 나가있는 형제들을 위한 아버지의 심부름 차 갔다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이스라엘을 욕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에서 역류하는 의분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골리앗 앞으로 나아가 싸워 이김으로 순간 사울로부터 눈에 띄어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다윗이라는 정치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 같은 만남의 기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에는 두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살아 가다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참으로 행복한 삶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할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좋은 사람으로 만나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유익이 되어야 하지만 나로 하여금 상대방이 유익이 되고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변화하게 만들어 준다면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난 것 보다 더 좋은 만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이끌어 준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만남의 법칙입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만나 주는 것이 더 좋은 만남일 것입니다. 모두 축복입니다.
다윗의 충성
다윗은 참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군신이었던 사울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였습니다.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백성이었습니다. 이렇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로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행복이고 은혜입니다.
그런 충성하는 직원을 가진 회사가 있다면 회사도 축복이고 사장도 축복입니다. 오늘 노동계를 보면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는 직장에 충성을 다하는 직원이 드문 시대입니다. 그런 충신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축복이고 임금도 축복입니다. 오늘은 이런 충신을 만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한 지혜로운 충신이 왕의 친서를 들고 이웃나라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외교사절로 이웃 나라에 갔습니다. 가서 왕에게 말했습니다. “본국의 왕은 초승달이고 대왕은 보름달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두 나라간의 오랜 갈등이 순식간에 해소되었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이 사신이 돌아왔습니다. 본국이 왕이 그 말 한마디에 화가 나 있었습니다. 돌아온 신하에게 “나를 초승달이라고 했다면서”하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때 이 지혜로운 신하가 말합니다.“ 폐하 보름달은 기울어 끝나는 달입니다, 그러나 초승달은 이제 시작하는 달입니다, 초승달은 미래가 있지만 보름들은 소멸하는 달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노여워하던 왕의 마음을 풀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충성스러운 백성이 적습니다. 모두 자기 이익적 입니다. 그래서 속이고 배반합니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사람이 적은 것도 문제이지만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비웃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소하고 불이익을 줍니다. 충직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칭찬하고 고임 받으며 사랑받고 살아야 함에도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적당히 눈치껏 살아가는 꾀돌이들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다윗은 너무 충직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살았습니다.
오늘은 순교가 없는 시대입니다. 오늘의 순교는 피 흘림이 아니고 양심껏 살고 충직하게 살아가는 동안 불이익을 당하고 비난과 조소를 이겨가며 살아가는 삶이 오늘의 순교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양심껏 소신껏 살아가기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하늘의 보상
그런데 이렇게 충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피해를 입게 되지만 오래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하늘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불이익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백부장이 그렇게 소신껏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십니다. 그래서 어느 날 천사를 보내셔서 “네 구제와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전해 주십니다. 요셉이 충직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늘 그와 함께 합니다. 어느 날 그의 주인 보디발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 다니엘이 너무나 충직하게 살아가므로 모든 신하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와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다니엘을 하나님이 언제나 곁에서 보호막이 되셨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충직했습니다. 백성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왕의 증오는 더 깊어졌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다윗을 죽으려고 전장에 내 보냅니다. 다윗은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전장에 나가 그때 마다 싸워 이겼습니다. 그러면 백성들로 하여금 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더 작아지고 다윗은 더 커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형통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하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길을 열어주시기로 작정하면 사람들이 아무리 길을 막으려 해도 길은 열리고 방법은 만들어집니다. 그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문제는 사람들이 자꾸만 억지로 형통하려고 해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잠시는 형통하겠지만 후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은총을 입는 삶이 충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하늘이 보상해 주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우직할 만큼 충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그를 제거하려고 전장에 내 보내고 전쟁을 하다가 죽게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승승장구 승리하게 했습니다. 그럴수록 다윗의 인기를 더 올라갔습니다. 사울은 마침내 증오심에 불타 다윗을 죽으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다윗으로 하여금 피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복입니다. 은총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그 결과 날이 갈수록 사울은 쇠하여 갔고 기울어 갔고 일마다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을 궁지에 빠지게 하고 곤란에 처하게 했지만 다윗은 그때마다 형통합니다. 죽을 길로 몰아넣었지만 승리의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그것이 은총을 입은 사람의 삶입니다. 그 결과 사울은 그믐달처럼 쇠하여 갔고 다윗은 보름달처럼 흥하여 갔습니다. 그것을 누가 당할 것 입니까. 그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장래는 그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은총을 입는 길을 버리고 별 수단과 방법과 빽을 동원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배경과 빽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는 삶입니다. 그것이 다윗을 통해서 입증되었습니다. 다윗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그는 어려울 때마다 늘 하나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 때 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삶은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금방 즉시 신속하게 응답이 주어지거나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보이게 분명하게 뜨겁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신앙인들이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 좋은 신앙인들조차도 이유 모를 시험과 고난을 통해서 시험받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삶에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때가 되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모든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리고 그 결과는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보아야 진정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가 아르트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3.25~1957.1.16)는 소년 시절 음악재질이 아주 특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심한 근시안이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그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눈을 밝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간절한 기도와는 상관없이 날이 갈수록 그의 시력은 더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때 그는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왜 응답이 없을까.” 그가 간절하게 기도했을 때 즉시 응답해 주셨더라면, 그의 어두운 눈을 밝게 하셔서 악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응답은커녕 날이 갈수록 시력은 더 떨어져 마침내 그는 악보를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그에게 악보를 송두리째 외울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보를 송두리째 외워서 자신 있게 첼로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연주회를 하던 날 지휘자가 갑자기 병으로 누워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임시로 악보를 송두리째 외우는 토스카니니가 지휘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악보를 모두 외우는 그로서는 자신 있게 지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유명한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비로소 자신의 심한 근시안 때문에 위대한 지휘자가 될 수 있었음을 깨달아 알고 그는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한 때는 실망하기도 했지만 어두운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즉시로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묘미입니다. 언제나 깊은 진리는 감추어있는 법입니다. 강자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쫓기던 사람이 언제나 약자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그믐달처럼 기울게 하시고 다윗을 보름달처럼 흥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당신은 나의 요새시오 나의 바위시오 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늘 나의 등 뒤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로 함께 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기에 형통이 있고 인도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그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삶입니다.
출처/이정익목사 설교 중에서
세상을 살면서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도 참 행복한 삶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대화하고 이웃하며 살아가는 삶은 기쁘고 만날수록 행복한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좋지 않은 만남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면 마음이 불화하고 갈등하는 만남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도 축복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울과 다윗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참으로 불행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었고 불화가 있었고 미움과 증오가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시편 59편을 보면 표제가 “다윗의 믹담”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믹담”이라는 말은 “교훈을 주는 시”라는 뜻입니다. 다윗과 사울은 정적관계입니다.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백성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는 다윗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언제나 다윗을 의식해야 하였고 급기야는 정적으로 여겨 다윗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틈만 있으면 다윗을 전장에 내 보내 위험에 처하여 죽도록 하였고 그러면 다윗은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 매번 싸워서 이기고 돌아왔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백성으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사울은 속에서 일어나는 증오심을 불태웠고 그래서 여러 차례 다윗에게 위협을 가했고 마침내는 앞에 앉아있는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간신히 피신한 다윗은 집으로 피신합니다. 그때 사울은 군대를 다윗의 집에 보내 포위하게 하였고 체포하려고 집으로 군인들이 들어갔을 때 사울의 딸인 다윗의 아내는 다윗이 병들어 누워있으니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시 군인들을 보내 다윗이 누운 침상 채 들고 오라고 호령을 합니다. 그래서 재차 다윗의 집에 갔을 때는 이미 다윗은 피신한 후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무사하게 생명을 구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다급한 마음으로 쓴 기도문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읽은 시편 59편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입은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4절까지는 탄원하는 내용의 기도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나를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소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의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피소서.” 얼마나 다급하고 위기감에서 나온 기도입니까. 그리고 16-17절을 보면 결국 다윗은 자신이 승리할 것을 믿고 간구하는 기도문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란 날에 피난처이시니 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은 “나는 주님만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인연
다윗은 사울로 인해서 픽업되어 정치에 입문하게 된 사람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살아 가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남들이 때로 나의 인생의 방향이 바꾸어지고 진로와 직업과 운명이 결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교류하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신비하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원래 정치가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느 날 쏘크라테스라는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를 만나는 순간 장차 철학자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플라톤이라는 철학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서 두 문화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사도바울을 만나게 되면서 디모데는 전도자의 길을 걷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디모데라는 진실한 전도자가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전장에 나가있는 형제들을 위한 아버지의 심부름 차 갔다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이스라엘을 욕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에서 역류하는 의분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골리앗 앞으로 나아가 싸워 이김으로 순간 사울로부터 눈에 띄어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다윗이라는 정치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 같은 만남의 기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에는 두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살아 가다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참으로 행복한 삶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할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좋은 사람으로 만나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유익이 되어야 하지만 나로 하여금 상대방이 유익이 되고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변화하게 만들어 준다면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난 것 보다 더 좋은 만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이끌어 준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만남의 법칙입니다. 어쩌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만나 주는 것이 더 좋은 만남일 것입니다. 모두 축복입니다.
다윗의 충성
다윗은 참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군신이었던 사울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였습니다.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백성이었습니다. 이렇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로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을 주변에서 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행복이고 은혜입니다.
그런 충성하는 직원을 가진 회사가 있다면 회사도 축복이고 사장도 축복입니다. 오늘 노동계를 보면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는 직장에 충성을 다하는 직원이 드문 시대입니다. 그런 충신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축복이고 임금도 축복입니다. 오늘은 이런 충신을 만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한 지혜로운 충신이 왕의 친서를 들고 이웃나라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외교사절로 이웃 나라에 갔습니다. 가서 왕에게 말했습니다. “본국의 왕은 초승달이고 대왕은 보름달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두 나라간의 오랜 갈등이 순식간에 해소되었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이 사신이 돌아왔습니다. 본국이 왕이 그 말 한마디에 화가 나 있었습니다. 돌아온 신하에게 “나를 초승달이라고 했다면서”하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때 이 지혜로운 신하가 말합니다.“ 폐하 보름달은 기울어 끝나는 달입니다, 그러나 초승달은 이제 시작하는 달입니다, 초승달은 미래가 있지만 보름들은 소멸하는 달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노여워하던 왕의 마음을 풀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충성스러운 백성이 적습니다. 모두 자기 이익적 입니다. 그래서 속이고 배반합니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사람이 적은 것도 문제이지만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비웃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소하고 불이익을 줍니다. 충직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칭찬하고 고임 받으며 사랑받고 살아야 함에도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적당히 눈치껏 살아가는 꾀돌이들이 무난하게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다윗은 너무 충직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살았습니다.
오늘은 순교가 없는 시대입니다. 오늘의 순교는 피 흘림이 아니고 양심껏 살고 충직하게 살아가는 동안 불이익을 당하고 비난과 조소를 이겨가며 살아가는 삶이 오늘의 순교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양심껏 소신껏 살아가기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하늘의 보상
그런데 이렇게 충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일시적으로는 피해를 입게 되지만 오래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하늘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불이익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백부장이 그렇게 소신껏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십니다. 그래서 어느 날 천사를 보내셔서 “네 구제와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전해 주십니다. 요셉이 충직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늘 그와 함께 합니다. 어느 날 그의 주인 보디발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 다니엘이 너무나 충직하게 살아가므로 모든 신하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와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다니엘을 하나님이 언제나 곁에서 보호막이 되셨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입니다.
다윗이 그렇게 충직했습니다. 백성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왕의 증오는 더 깊어졌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다윗을 죽으려고 전장에 내 보냅니다. 다윗은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전장에 나가 그때 마다 싸워 이겼습니다. 그러면 백성들로 하여금 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더 작아지고 다윗은 더 커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형통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하늘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길을 열어주시기로 작정하면 사람들이 아무리 길을 막으려 해도 길은 열리고 방법은 만들어집니다. 그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문제는 사람들이 자꾸만 억지로 형통하려고 해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잠시는 형통하겠지만 후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은총을 입는 삶이 충직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하늘이 보상해 주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우직할 만큼 충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그를 제거하려고 전장에 내 보내고 전쟁을 하다가 죽게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승승장구 승리하게 했습니다. 그럴수록 다윗의 인기를 더 올라갔습니다. 사울은 마침내 증오심에 불타 다윗을 죽으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은 그때마다 다윗으로 하여금 피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복입니다. 은총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그 결과 날이 갈수록 사울은 쇠하여 갔고 기울어 갔고 일마다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을 궁지에 빠지게 하고 곤란에 처하게 했지만 다윗은 그때마다 형통합니다. 죽을 길로 몰아넣었지만 승리의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그것이 은총을 입은 사람의 삶입니다. 그 결과 사울은 그믐달처럼 쇠하여 갔고 다윗은 보름달처럼 흥하여 갔습니다. 그것을 누가 당할 것 입니까. 그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장래는 그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은총을 입는 길을 버리고 별 수단과 방법과 빽을 동원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배경과 빽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는 삶입니다. 그것이 다윗을 통해서 입증되었습니다. 다윗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그는 어려울 때마다 늘 하나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 때 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삶은 한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금방 즉시 신속하게 응답이 주어지거나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보이게 분명하게 뜨겁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신앙인들이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 좋은 신앙인들조차도 이유 모를 시험과 고난을 통해서 시험받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삶에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때가 되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모든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리고 그 결과는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보아야 진정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가 아르트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3.25~1957.1.16)는 소년 시절 음악재질이 아주 특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심한 근시안이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그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눈을 밝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간절한 기도와는 상관없이 날이 갈수록 그의 시력은 더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때 그는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왜 응답이 없을까.” 그가 간절하게 기도했을 때 즉시 응답해 주셨더라면, 그의 어두운 눈을 밝게 하셔서 악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응답은커녕 날이 갈수록 시력은 더 떨어져 마침내 그는 악보를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그에게 악보를 송두리째 외울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보를 송두리째 외워서 자신 있게 첼로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연주회를 하던 날 지휘자가 갑자기 병으로 누워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임시로 악보를 송두리째 외우는 토스카니니가 지휘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악보를 모두 외우는 그로서는 자신 있게 지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그 유명한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비로소 자신의 심한 근시안 때문에 위대한 지휘자가 될 수 있었음을 깨달아 알고 그는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한 때는 실망하기도 했지만 어두운 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즉시로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묘미입니다. 언제나 깊은 진리는 감추어있는 법입니다. 강자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쫓기던 사람이 언제나 약자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그믐달처럼 기울게 하시고 다윗을 보름달처럼 흥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당신은 나의 요새시오 나의 바위시오 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늘 나의 등 뒤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로 함께 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기에 형통이 있고 인도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그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삶입니다.
출처/이정익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