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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로 볼 것인가? (수2:8-16)
사람이 과거만 집착하다 보며는 오늘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고, 땅에 것만 추구하다 보며는, 하늘의 것을 읽을 수가 없으며,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다 보며는 더 낳은 것이나, 더 좋은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 더 낳은 것이 무엇인지, 더 의미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진리에 눈을 떠야하며, 무엇인가를 바로 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흘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냥 아무렇게나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정말 무엇인가를 깨닫는 사람에게 어떠한 삶의 이치를 부여해 주듯이, 무엇을 바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짐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여리고 성을 칠 수 있나 정탐하려 내려간 두 이스라엘 정탐군들과 여리고에 사는 기생 라합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주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엇을 바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이다.
비록 술을 팔며서 이방인의 기생이었던 라합은 그야말로 천한 직업의 여성이었지마는 그녀는 누구 못지 않게 바로 보는 눈을 가진 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실제적 의미를 부여한 여인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히브리서 11:31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 하였도다"라고 기록이 나타나며, 그녀의 행위에 대하여는 야고보서 2:25에 이르기를 또 이와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使者)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녀가 이방인으로서 믿음의 눈을 떳기에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음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그녀가 바로 본 진리에 말씀에 대하여 상고해보자.
1. 사람을 바로 보아야 한다.
본문 8-9절에 기생 라합이 정탐군들에게 한 말을 보며는 그녀는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예호슈아가 여리고에 보낸 두 정탐군들은 어떤 면에서 보며는 자기 나라를 영탐하는 보잘 것 없는 간첩에 볼과했으나, 케나안에 거주하는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로, 주 하나님께서 여리고 땅을 주심을 알고, 고백한 것을 볼 때에, 이 여인이야말로 얼마나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졌는가 모른다.
오늘날 사람을 바로 보고, 알며, 사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너무나 많은 자들이 사람을 바로 보지 못하므로, 그로 통하여 상처를 받고 배신을 당하고 있다. 바른 말하는 자 보다는 아부하는 자를 좋아하고, 진리에 편에 서는 자보다는 진실의 탈을 쓴 자를 더 좋아하고 있다.
창41:38에 보며는 이집트 왕이었던 파르오가 이스라엘인이었던 요세프를 바로 보므로 말미암아 이집트 땅에 7년의 흉년을 이겨낸 것을 알 수 있듯이, 9절에 보며는 기생 라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그들에게 안전 대책까지 세워주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을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앞서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교만을 앞세우고, 사람을 바로 아는 눈이 없기에 쓸만한 인재에게 투자하지 못하며, 사람을 바로 인식하는 마음이 부족하기에 독선으로 치우칠 때가 너무나 많다.
2. 역사를 바로 보아야 한다.
본문 10절에 보며는 기생 라합은 역사를 바로 볼 줄 아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갈대 바다를 갈라 물을 마르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냈다는 것과 요단강 저편에 있는 아모리 백성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사건을 그녀가 듣고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장하시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도 이 땅이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변함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눅24:42에 두 행악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 보면서, 하나는 그 분을 비방하였지만, 또다른 하나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는 고백은 바로 이 땅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우리 인류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는 다는 것을 은연 중에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오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말하며, 미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대를 평가하는 것이라 한다면, 과거의 역사의 흐름은 오늘을이어가고 미래를 연결해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들은 누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역사를 더듬어 가면서 시대 속에서 순간 순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짚어가면서 우리 자신들의 위치와 존재를 파악하고 역사를 바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을 바로 보아야 한다.
본문 11절에 기생 라합은 하나님을 바로 보았다.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은 높은 하늘과 낮은 땅 아래에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전지 전능하시고, 하늘과 땅을 지배하시는 유일한 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아는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한 일꾼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보아야 한다. 시편 1:2에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고백하였듯이, 전지전능하시고, 이 시간에도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나 하나님을 바로 볼 수가 있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진리의 영의 눈을 뜬 사람만이, 그리스도에 접붙임을 받은 사람만이, 말씀과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영의 세계가 혼란하여 저마다 하나님을 바로 보고 살아간다고 자랑하나,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한 믿음의 눈을 가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바로 볼 수가 없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도 너무나 많은 추잡하고, 더러운 것을 보게된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하여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바로 보았으며, 앞으로 무엇을 바로 보고 살아가야 되겠는가?하고 말이다. 사람을 바로 보고, 역사를 바로 보며, 하나님을 바로 보고 살아야, 기생 라합처럼 바른 영의 눈을 뜬 자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출처/생명수교회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