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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계1:9-20)
오늘은 우리 모두가 너무도 사랑하고 감격하며 섬기고 있는 우리 안산빛나교회가 창립17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17년 전 우리 안산빛나교회가 출발할 때에는 많은 것들이 부족했습니다.
예배당도 지하였고 환경 또한 열악했습니다.
처음 두 가정을 만났으니 성도들 또한 많이 부족했습니다.
많은 것들로 부족했지만 지금이 그러한 것처럼 처음 그때도 많이 행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처음 우리들 가슴에는 하나님의 원하심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처음 우리들의 결정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었습니다.
지난 17년 언제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원하심이 중요했고 하나님의 뜻이 중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산빛나교회는 언제나 빛들로 나타나는 교회여야 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교회로서의 소망을 안고 달려왔고 또 달려가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들끼리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회 상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고 생각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교회의 설립자요 또 머리가 되기시 때문입니다. 사실 그 주님의 원하심 앞에 우리 안산빛나교회는 오늘도 여전히 많은 것으로 부족한 교회입니다. 사실 그 주님의 원하심 앞에 연약한 목사 또한 오늘도 여전히 많은 것으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주님을 머리로 한 주님이 세우신 교회요 주님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주님은 우리 안산빛나교회에 원하시는 바가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우리 안산빛나교회를 향한 기대가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제 아내가 더 예쁘고 사랑스럽고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내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좀더 공부도 잘하고 좀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는 너무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기에 그런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저를 향한 기대도 있습니다. 우리 아내에게 더 좋아 보이는 남편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아빠로 보여 지고 우리 성도들에게 최고의 목사로 보여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많이 부족한 사람인지라 할 수 있거든 성형수술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키도 좀 더 크게 하고 목도 더 길게 하고 코도 손을 좀 대고 피부도 조금 하얀색으로 바꾸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는 창립 17주년을 맞는 우리 안산빛나교회를 성형수술 해 보려 합니다. 더 큰 교회로 되기 원하는 것 보다는 요한이 말했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장점을 하나하나 가져다가 우리 안산빛나교회 모습으로 꾸몄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주님의 원하심을 창립17주년을 맞는 우리 안산빛나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처음 에베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교회는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성장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수고하는 교회였다고 복음을 위해 인내하는 교회였다고 진리를 위해 사수하라는 교회였다고 주님을 위하여 부지런한 것까지 많은 것으로 칭찬하셨지만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안타까움은 왜 처음 사랑을 버렸느냐는 것입니다.(4절) 주님은 지금 처음 믿음을 처음 사랑이 회복되길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렸던 사랑이 주님을 향한 사랑인지 이웃을 향한 사랑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은 우리에게 처음에는 믿음을 물으시지만 너는 나를 믿어하며 나중에는 사랑을 묻는 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물으시던 주님은 이제 사랑을 묻고 사랑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놀랍게도 보이지 않는 주님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행한 것을 주님을 향한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 하늘에 가면 너도 나에게 어떻게 했는가 보다 너에게 맡긴 작은 소자에게 어떻게 했느냐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끼리 좋아하는 교회되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대상을 넘어 사랑의 대상이 되실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사랑을 묻고 계십니다. 왜 처음 사랑을 버렸느냐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성장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 교회에서 보여 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사랑을 잃었다면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9절을 보닌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을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합니다. 10절에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합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평가에 성경의 평가에 인정받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가난하지만 부요한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사람의 평가에는 여전히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에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입니다. 성도들 또한 사람의 평가보다는 하나님의 평가가를 더 목말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어라 하는 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성도도 세상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에 목말라 하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한 또 하나의 주님의 음성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합니다. 주님은 사람이 보기에 한없이 가난하고 궁핍한 교회를 향하여 충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충성을 구걸하진 않습니다. 당당하게 헌신 충성을 요구합니다. 주님은 왜 충성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되십니다. 만약에 주님이 무엇인가 부족하여 충성을 요구한다면 더 큰 부자에게 요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궁핍하고 가난한 너희들이 헌신하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과부옆전 두닢의 헌신을 받으셨던 주님이십니다. 사실 주님은 아무에게나 충성을 헌신을 요구하시 않으십니다. 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음성속에서 우리는 어떤교회여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성도여야 하는가? 사람의 평가보다는 하나님의 평가에 더 목말라할 수 있는 성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를 통해 시84:10절의 고백이 있어집니다. 주님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입니다. 더 많이 충성되고 더 많이 헌신 된 성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헌신되지 않은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했습니다. 헌신을 포기하고는 교회가 교회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헌신을 먹고 자라는 공동체입니다.
버가모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진리가 진리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진리로 수호되는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안에는 하나님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함께 활동하고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안에는 핍박이 있었습니다. 충성된 안디바가 순교를 당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안에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 등 이단의 사상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특별한 음성으로 강조합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입니다. 무엇입니까? 교회는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진리로 지켜지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익집단이 아닙니다. 재산을 늘이고 손익계산을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때로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가치 있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익의 개념 앞에 믿음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이단의 사상 앞에서 진리가 진리 되는 교회 말씀이 말씀되는 교회여야 합니다.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거룩이 거룩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거룩이 중요한 것입니다. 2:19절을 보니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에는 믿음에는 섬김에도 인내에도 계속하여 성장 부흥을 보는 교회였습니다. 문제는 거룩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거룩을 양보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세벨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행음하게 합니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이세벨은 무엇입니까? 쾌락주의 입니다. 풍요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교회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교회로 간 것입니다. 여기에 사랑도 믿음도 섬김도 인내도 성장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아디라교회와 처음 에베소교회와는 반대인 것 같습니다. 에베소교회가 약한 자를 용납지 않고 거짓것들이 들어오면 사정없이 드러내어 쫒아냈지만 그래서 사랑을 잃었던 교회였습니다. 두아디라교회는 사랑도 섬김도 인내도 있느나 악한 것들을 용납한 것입니다. 교회의 표지는 거룩입니다. 거룩이 무너진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주기도문에서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입니다. 거룩의 개념은 구별입니다. 세상과 섞여서는 안됩니다.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것 안됩니다. 세상의 것들과 완전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이자 거룩을 욕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다가 거룩하게 죽어야 합니다. 두아디라교회는 거룩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부흥도 있었습니다. 사랑도 섬김도 인내도 점점 좋아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행음하게 했으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게 하였고 우상을 가볍게 여겨 함께 겸하여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외형은 부흥이었다지만 내면에는 거룩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요즘교회들 또한 숫자를 늘리기 위한 편법적 수단에 목을 매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거룩을 먹고 거룩이 지켜질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데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영적파산에서 다시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1절에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파산된 교회입니다. 껍데기만 남은 교회입니다. 행하고 싶어도 행할 힘이 없는 교회입니다. 오늘의 유럽교회의 모습이요 점점 유럽교회를 따라가는 한국교회의 모습니다. 영적으로 파산되어 갑니다. 도무지 영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도 영적이었던 교회들이 영적인 묘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외모는 대형교회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났습니다. 그 교회안에는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파산되어가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팔팔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속은 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진리가 진리되지 못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사데교회는 거짓명성을 가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데는 기독교 역사상 명목뿐인 기독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최초의 교회 일 것입니다. 그들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었지만 실상은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영적이어야 합니다.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성도도 영적일 때 매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소멸되어가는 한국교회는 무덤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교회가 영성이 회복되어질 때 영적파산에서 부요한 자로 변화 될 것입니다.
빌라델피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일곱교회중에 유일하게 칭찬을 들은 교회였습니다. 3:8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이름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노라 10절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겼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절에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합니다. 어떻게 칭찬만 들었을까요? 놀랍게도 저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입니다. 저들은 큰 사람도 화려한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충성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를 통한 음성은 무엇인가요? 끝까지 승리하고 끝까지 충성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잘하지만 끝까지 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매력입니다. 상급을 빼앗기지 않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했습니다. 상급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승리하는 교회되어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 할 것이 있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끝까지입니다. 중간에 믿음을 사명을 포기했던 사람들이여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빌라델피아교회에게 지금도 잘하지만 끝까지 잘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3:15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합니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합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뜨거움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교회의 매력은 성도의 매력은 뜨거움입니다. 성령충만입니다. 3:17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할때 부족한 것이 없도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합니다. 왜 미지근 합니까? 적당히 믿고 싶은 것입니다.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저들은 영적으로 보면 비침한 것입니다. 이것이 라오디게아교회의 모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부요할지 모르나 영적으로 부요할 수 있다면 축복일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 불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야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를 향한 주님의 가장 큰 원하심은 성령충만입니다.
2:1절은 무어라 합니까?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합니다. 일곱교회 사이를 다니시는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 우리는 그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 처음이
교회는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평가를 믿고 충성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요
진리가 진리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요
거룩이 거룩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요
영적파산에서 다시 일어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요
끝까지 승리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요
성령충만으로 뜨거운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일곱가지로 화장을 하던지 성형수술을 하던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18주년을 향해 또 달려갔으면 합니다. 안산빛나교회 성도들이여! 우리함께 승리합시다.
출처/유재명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