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감사    (시 142:5-7, 눅 17:11-19)


현대인에게 잊혀진 계명은 감사이다. 더구나 추수감사주일의 유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이 있다. 감사는 신앙생활의 기본적 요소인데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은혜를 느끼면서 신앙은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 116:12)라는 감격이 곧 감사이고 신앙의 시작이다. 예수님이 낫게 하신 10명의 나환자 가운데 1명만이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였다는 것은 감사가 어려운 일인 것을 말하고 있다. 더구나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당시의 감사는 아홉 사람이라는 다수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는 소수였다.


1. 한 사람의 감사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조이다.
유대인은 마땅히 감사해야 할 사람이었다. 선택받은 사람이었고 많은 은총을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사마리아인은 천한 사람이었고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이 감사하였다. 받은바 혜택을 당연시하고 감사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러한 것을 배은망덕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 때가 많이 있었다. 우리도 많이 가지고 있고 흔한 것의 고마움을 알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죄를 짓고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한다.


2. 한 사람의 감사는 우선의 문제였다.
아홉 사람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병이 나았지만 제사장에게 보이고 자신이 정상인으로 인정받는 것을 더 급하게 생각하였고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다시 와서 감사하는 것을 더 급하게 생각하였다. 무엇 때문에 분주한가는 중요한 인간의 가치관이다. 아무리 분주하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나음을 감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분주한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우선의 문제를 바르게 가지고 있는 자는 항상 감사할 수 있지만 우선의 문제가 잘못되어 있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한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그 감격을 잊기 전에 감사하고 자신의 일을 하기 전에 예수님께 와서 감사한 우선을 아는 사람이었다.


3. 한 사람의 감사는 신앙중심의 삶이었다.
아홉 사람의 유대인은 제사장에게 달려가 자신의 나음을 보이고 확인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대단히 신앙적인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세속적이다. 종교의식을 자신의 세속적 생활의 이용물로 사용하였다.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은 세속적인 것 같지만 실제는 신앙적이었고 종교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전도서에는 날 아래의 일과 날 위의 일을 대조하고 있다. 날 아래의 일을 위하여 사람들은 분주하고 힘을 다 하지만 결국 날 아래의 일은 헛되다고 한다. 감사하는 생활은 날 위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하늘 위의 창고를 채우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신앙중심의 생활이 감사할 수 있게 한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 감사하는 것은 놀라운 기적을 낳는다.

우리가 배은망덕한 아홉 사람의 유대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 같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