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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롬12:1-2)
신약 성경 로마서는 건축물로 말하면 골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교리서에 해당합니다. 바울 사도는 11장까지 에서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를 다룬 후 12장에 들어와서는 실천 사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인이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난 후 이제는 그리스도인 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 중에 본문은 서론 격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십니다. 바울 사도의 이 분부는 말세에 처한 우리 성도들이 신중하게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이제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⑴,영적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영적 예배'란 말은 '이치에 맞는 분별력이 있는 성경적 예배'란 뜻입니다(1절). 여기서 말하는 영적 예배에 관해서 예수 님께서는 요4: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성령의 감화가 있는 예배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배는 교회의 숨통과 같습니다. 교회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건강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경건하면서도 성령의 감화가 있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영적인 예배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복되심 그리고 엄위하심과 자비로우심을 경험할 수 있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일 천 번제는 영적 예배의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왕상3:1-15). 우리 예수 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서 예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적 예배는 드림과 응답이 있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번제 예배는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가 모든 신앙 생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최대의 보배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성도의 만남입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배의 타락으로 인해 급속히 부패했습니다. 종교 개혁은 예배의 개혁이었다고도 말씀할 수 있습니다. 예배 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우리 예수 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22: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목숨까지라도 다 바치려는 충성심으로 예배에 참석하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 님의 십자가 예배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극한 고난을 받으심으로 몸 전체를 드리신 예수 님,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 님, 하나님을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님이셨습니다. 이런 예수 님처럼 예배하여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요 힘써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요 거룩하면 거룩할수록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배드릴 때 온전한 번제로 하나님을 감동하시게 해 드렸던 저 사무엘 이나 엘리야 처럼 온전한 예배들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예배가 타락되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예배 자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구하여야 할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좋은 것에 성공합니다. 예배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거니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성공적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진정 기쁘시게 하여 드리고 주시는 복을 받도록 영적 예배가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⑵,이 세대를 본 받지 않아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이 세대를 본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세상 사람들의 모습으로 빚어져서는 안된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성도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더욱 적극적으로는 예수 님을 닮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복음에 물드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 적인 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신앙을 버리고 사람의 쾌락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입니다. 딤전5:6절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하였습니다. 또 약1:27절에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라" 하였습니다. 노아 당신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면서 타락한 세상 적인 생활을 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인본주의로 살다가 멸망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망각하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사는 동물적 본능에 매달려 살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육적 쾌락에 도취되어 살기를 좋아하면서 그들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몰아낸 그들은 참된 자유를 누렸습니까? 아닙니다. 완전한 파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큰 축복은 다름 아닌 성경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따라 사는 것은 속박이 아니고 오히려 자유입니다. 궤도를 달리는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탈선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말씀을 따라 살려면 세속화되지 않고 예수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화 되려면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 성경 중심적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인본주의 중에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것이 배금주의입니다. 돈을 행복의 척도로 삼습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 즉 돈을 우상으로 삼는 타락한 생활에 이르고 맙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이렇게 경계합니다.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하였습니다.(딤전6:9-10)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돈을 모든 것의 목적으로 생각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단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물질 문제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물질은 "①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② 누리게 하심으로 누리는 것이요 ③ 주께서 필요하다 하시면 다 돌려 드리리이다" 하는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세속 주의는 이 물질 문제에 대하여 "①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으라 ② 돈으로 쾌락을 사라 ③ 그 후의 일에 관하여는 모르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② 우리가 세상에 올 때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③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6:20) ④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말3:10)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께서 온전한 십일조 헌금으로 물질 생활의 다스리심을 주께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물질 생활이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가나안 복지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맡지 말고 하나님이 맡으시게 하여야 합니다. 십일조 헌금은 물질의 신앙 고백입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부으시는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체험하는 현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⑶,마음을 새롭게 변화 받아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새롭게 하라"는 말은 "생기를 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오순절 날 120문도 들이 성령 충만하여 천국을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가 새롭게 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됩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성도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만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케 되면 사단을 이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 님을 사랑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분별케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겸손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면 예수 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고난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에도 동참케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는 그 첫째 비결은 성령 충만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주를 주로 섬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라 할 자도 없습니다.
예수 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성령 충만 받지 못했던 자들은 영접치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유대인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 나라 사람은 될 수 없었습니다.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세 번씩이나 닭 울기 전 부인했던 사람이 성령 충만 받은 후에는 예수 증거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행4:17-20). 살든지 죽든지 예수만 자랑하였습니다. 성령 받지 못했을 때는 율법만을 최고 가치로 알고 예수를 율법 폐기론 자인 줄로 알아 지독하게 핍박했던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케 되고 난 후(행9:17), 가장 충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사람들이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변화된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노라"(고후5:17)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성령 충만 받은 삶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자기의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려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나 죽으나 내가 주의 것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최후까지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결코 뒤돌아 서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 못 받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가장 유능한 그리스도인 됩니다. 예배가 기쁨입니다. 새벽기도가 영광입니다. 전도가 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됩니다. 예수밖에는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 유혹을 다 이깁니다. 늘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쉬지 않고 승리하게 됩니다. 마귀를 몰아내는 기도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려 승리하는 삶을 날마다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신약 성경 로마서는 건축물로 말하면 골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교리서에 해당합니다. 바울 사도는 11장까지 에서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를 다룬 후 12장에 들어와서는 실천 사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인이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난 후 이제는 그리스도인 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 중에 본문은 서론 격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십니다. 바울 사도의 이 분부는 말세에 처한 우리 성도들이 신중하게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이제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⑴,영적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영적 예배'란 말은 '이치에 맞는 분별력이 있는 성경적 예배'란 뜻입니다(1절). 여기서 말하는 영적 예배에 관해서 예수 님께서는 요4: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성령의 감화가 있는 예배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배는 교회의 숨통과 같습니다. 교회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건강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경건하면서도 성령의 감화가 있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영적인 예배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복되심 그리고 엄위하심과 자비로우심을 경험할 수 있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일 천 번제는 영적 예배의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왕상3:1-15). 우리 예수 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서 예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적 예배는 드림과 응답이 있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번제 예배는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가 모든 신앙 생활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최대의 보배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성도의 만남입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배의 타락으로 인해 급속히 부패했습니다. 종교 개혁은 예배의 개혁이었다고도 말씀할 수 있습니다. 예배 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우리 예수 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22: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목숨까지라도 다 바치려는 충성심으로 예배에 참석하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 님의 십자가 예배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극한 고난을 받으심으로 몸 전체를 드리신 예수 님,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 님, 하나님을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님이셨습니다. 이런 예수 님처럼 예배하여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이요 힘써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요 거룩하면 거룩할수록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배드릴 때 온전한 번제로 하나님을 감동하시게 해 드렸던 저 사무엘 이나 엘리야 처럼 온전한 예배들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예배가 타락되고 있는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예배 자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구하여야 할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모든 좋은 것에 성공합니다. 예배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거니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성공적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을 진정 기쁘시게 하여 드리고 주시는 복을 받도록 영적 예배가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⑵,이 세대를 본 받지 않아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이 세대를 본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세상 사람들의 모습으로 빚어져서는 안된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성도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더욱 적극적으로는 예수 님을 닮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복음에 물드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 적인 정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신앙을 버리고 사람의 쾌락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입니다. 딤전5:6절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하였습니다. 또 약1:27절에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라" 하였습니다. 노아 당신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면서 타락한 세상 적인 생활을 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인본주의로 살다가 멸망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망각하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사는 동물적 본능에 매달려 살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육적 쾌락에 도취되어 살기를 좋아하면서 그들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를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몰아낸 그들은 참된 자유를 누렸습니까? 아닙니다. 완전한 파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큰 축복은 다름 아닌 성경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따라 사는 것은 속박이 아니고 오히려 자유입니다. 궤도를 달리는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탈선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말씀을 따라 살려면 세속화되지 않고 예수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화 되려면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 성경 중심적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인본주의 중에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것이 배금주의입니다. 돈을 행복의 척도로 삼습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 즉 돈을 우상으로 삼는 타락한 생활에 이르고 맙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이렇게 경계합니다.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하였습니다.(딤전6:9-10)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돈을 모든 것의 목적으로 생각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단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물질 문제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물질은 "①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② 누리게 하심으로 누리는 것이요 ③ 주께서 필요하다 하시면 다 돌려 드리리이다" 하는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세속 주의는 이 물질 문제에 대하여 "①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으라 ② 돈으로 쾌락을 사라 ③ 그 후의 일에 관하여는 모르겠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② 우리가 세상에 올 때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③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6:20) ④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말3:10)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께서 온전한 십일조 헌금으로 물질 생활의 다스리심을 주께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물질 생활이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가나안 복지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맡지 말고 하나님이 맡으시게 하여야 합니다. 십일조 헌금은 물질의 신앙 고백입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부으시는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체험하는 현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⑶,마음을 새롭게 변화 받아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새롭게 하라"는 말은 "생기를 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오순절 날 120문도 들이 성령 충만하여 천국을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가 새롭게 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게 됩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성도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만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케 되면 사단을 이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예수 님을 사랑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분별케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겸손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면 예수 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고난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에도 동참케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는 그 첫째 비결은 성령 충만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주를 주로 섬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라 할 자도 없습니다.
예수 님께서 자기 땅에 오셨으나 성령 충만 받지 못했던 자들은 영접치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유대인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 나라 사람은 될 수 없었습니다.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세 번씩이나 닭 울기 전 부인했던 사람이 성령 충만 받은 후에는 예수 증거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행4:17-20). 살든지 죽든지 예수만 자랑하였습니다. 성령 받지 못했을 때는 율법만을 최고 가치로 알고 예수를 율법 폐기론 자인 줄로 알아 지독하게 핍박했던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케 되고 난 후(행9:17), 가장 충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사람들이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변화된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노라"(고후5:17)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성령 충만 받은 삶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자기의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려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나 죽으나 내가 주의 것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최후까지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결코 뒤돌아 서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 못 받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가장 유능한 그리스도인 됩니다. 예배가 기쁨입니다. 새벽기도가 영광입니다. 전도가 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됩니다. 예수밖에는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 유혹을 다 이깁니다. 늘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쉬지 않고 승리하게 됩니다. 마귀를 몰아내는 기도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려 승리하는 삶을 날마다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