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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축복 (창32:1,2)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이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창세기 32 : 1,2
인생은 만났다가 헤어지면서 살아갑니다. 한 번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납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헤어집니다. 헤어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이별과 사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사별은 참으로 마음이 아픈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사랑스러워도 일단 만났으면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귀엽고 예쁜 자식도 키워 놓으면 언젠가는 결혼을 해서 헤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서 일생을 행복하게 사는가 하면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만남이란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유익하지 않은 해로운 만남도 있습니다. 친구를 잘못 만났다든지 아니면 악한 사람을 만났다든지 하면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좋은 사람, 좋은 스승, 좋은 선배,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만남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1. 만남과 확신
인생의 만남은 어머니 뱃속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혈통적인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아니 일 분이든 이 분이든... 그러나 에서와 야곱은 동시에 만났습니다. 쌍둥이라 할지라도 일 분, 혹은 이 분 정도 시간 차가 있는데 에서와 야곱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창세기 25 : 24 이하에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와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으니 시간 차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헤어짐을 경험합니다. 창세기 27장을 보면, 교묘한 방법으로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고 하란 땅 외삼촌 댁을 향해 도망을 갑니다. 이것은 사람과의 헤어짐입니다. 헤어짐은 고독과 불안을 가져옵니다. 야곱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이르러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광야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며 외롭기도 합니다. 이것은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야곱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중요한 만남을 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창세기 28 : 12 이하에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안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로 가든지 야곱을 떠나지 않으시고 야곱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여기서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친구를 만나고, 이성을 만나고, 혈통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불안하거나 고독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6 : 32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이 모두 도망할 것을 주님께서 아셨습니다. 배신의 아픔도 있고 고독의 고통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혼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 하란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하란에 도착하여 외삼촌과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외삼촌을 만나므로 많은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만나고 물질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대가족을 이루게 되고 거부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만남과 물질의 만남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갈등을 일으킵니다. 고독하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창세기 31 : 1, 2에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다시 하나님을 만납니다. 창세기 31 : 3에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고, 13절에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행동하기 쉬우나 거느린 자가 많으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불안과 걱정만 합니다. 야곱은 식구도 많고 물질도 많자 고향을 향해 갈까 말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불행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갈등 끝에 결단을 내리고 진행했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하나님의 사자 곧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므로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은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야곱에게 '마하나임'의 축복, 곧 임마누엘의 축복, 언제나 함께하시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야곱은 만남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확신, 그것은 '마하나임'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무엇보다도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싸워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만남과 불안
야곱은 첫 번 헤어짐을 경험할 때 불안하고 고독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만남을 통해서도 불안을 경험했습니다. 가정을 만나고 물질을 만나 거부가 되고 보니 외삼촌과의 만남에서 불안을 느꼈습니다. 외삼촌보다도 거부가 되니까 외삼촌의 안색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을 만날 때마다 불안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고향을 향해 가는데 앞에서 형 에서가 원수 갚기 위해서 기다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에서가 이십여 년의 원한을 품고 사백명의 군인과 함께 '감정'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리던 형님과의 만남이 있기도 전에 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2 : 3에 보면, 사자들을 보내어 먼저 강을 건너게 합니다. 자기가 먼저 가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했습니다. 32 : 7에 보면 "야곱이 두렵고 답답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면 헤쳐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원한을 품은 에서와 그의 군대의 마음을 돌이켜 기쁨으로 야곱을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면 모든 불안과 고독과 걱정이 물러가고 화평과 기쁨이 생깁니다. 모든 원수의 관계가 풀려 화해하게 됩니다.
여러분! 야곱과 같이 문제가 풀리지 않고 계속해서 불안하게 하고 답답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1992년도를 맞이하기는 했으나 불안하고 초조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새해에는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면 모든 난관과 장벽을 헤쳐 나갈 줄 믿습니다. 야곱의 문제가 쉽게 해결된 것처럼 여러분의 문제도 놀랍게 해결될 것입니다.
3. 만남과 발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발견입니다. 이 자기 발견은 하나님을 만나므로 가능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얍복강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습니다. 32 : 27에 그가 묻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그때 그는 "야곱이니이다"고 대답합니다. 야곱이란 '교활한' '간사한' '꾀가 많은' '변덕스러운' '교만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 동안 이름대로 간사하게, 교활하게, 꾀로 살아왔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챌 때에도 교묘한 방법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될 때도 간사한 방법을 썼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가 이름을 물을 때 솔직하게 '야곱'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여기서 자기를 발견한 것입니다.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또 한번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입니다. 32 : 28에 "그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기를 발견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곧 변화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 축복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입니다.
4. 만남과 축복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축복은 마하나임의 축복입니다. 마하나임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입니다. 또한 야곱이 이스라엘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야곱이 야곱의 생애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사는 축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32 : 30을 보면 , '브니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브니엘의 축복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축복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과정마다 걸음마다 하나님을 만나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날 자'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이성을 만나도, 친구를 만나도, 사업 거래상 누구를 만나도, 물질을 만나고 명예와 권세를 만나도 만날 자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모든 것이 축복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만날 자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만나고, 예배하고 만나며, 찬송하고 만나는 성도가 됩시다. 그러면 그 만남이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먼저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을 먼저 만나면 모든 것이 형통하는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새해에 여러분 가정에 야곱이 받았던 '마하나임의 축복'과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과, 하나님을 대면하는 '브니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이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창세기 32 : 1,2
인생은 만났다가 헤어지면서 살아갑니다. 한 번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납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헤어집니다. 헤어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이별과 사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나 사별은 참으로 마음이 아픈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사랑스러워도 일단 만났으면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귀엽고 예쁜 자식도 키워 놓으면 언젠가는 결혼을 해서 헤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서 일생을 행복하게 사는가 하면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느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만남이란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유익하지 않은 해로운 만남도 있습니다. 친구를 잘못 만났다든지 아니면 악한 사람을 만났다든지 하면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좋은 사람, 좋은 스승, 좋은 선배,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만남이란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1. 만남과 확신
인생의 만남은 어머니 뱃속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혈통적인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아니 일 분이든 이 분이든... 그러나 에서와 야곱은 동시에 만났습니다. 쌍둥이라 할지라도 일 분, 혹은 이 분 정도 시간 차가 있는데 에서와 야곱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창세기 25 : 24 이하에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와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으니 시간 차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헤어짐을 경험합니다. 창세기 27장을 보면, 교묘한 방법으로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고 하란 땅 외삼촌 댁을 향해 도망을 갑니다. 이것은 사람과의 헤어짐입니다. 헤어짐은 고독과 불안을 가져옵니다. 야곱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이르러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광야에서 무슨 일을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며 외롭기도 합니다. 이것은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야곱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중요한 만남을 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창세기 28 : 12 이하에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안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로 가든지 야곱을 떠나지 않으시고 야곱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여기서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친구를 만나고, 이성을 만나고, 혈통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불안하거나 고독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6 : 32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이 모두 도망할 것을 주님께서 아셨습니다. 배신의 아픔도 있고 고독의 고통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혼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 하란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하란에 도착하여 외삼촌과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외삼촌을 만나므로 많은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만나고 물질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대가족을 이루게 되고 거부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만남과 물질의 만남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갈등을 일으킵니다. 고독하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창세기 31 : 1, 2에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다시 하나님을 만납니다. 창세기 31 : 3에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고, 13절에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행동하기 쉬우나 거느린 자가 많으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불안과 걱정만 합니다. 야곱은 식구도 많고 물질도 많자 고향을 향해 갈까 말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불행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갈등 끝에 결단을 내리고 진행했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하나님의 사자 곧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므로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마하나님은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은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야곱에게 '마하나임'의 축복, 곧 임마누엘의 축복, 언제나 함께하시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야곱은 만남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확신, 그것은 '마하나임'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여러분! 금년에는 무엇보다도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싸워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만남과 불안
야곱은 첫 번 헤어짐을 경험할 때 불안하고 고독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만남을 통해서도 불안을 경험했습니다. 가정을 만나고 물질을 만나 거부가 되고 보니 외삼촌과의 만남에서 불안을 느꼈습니다. 외삼촌보다도 거부가 되니까 외삼촌의 안색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을 만날 때마다 불안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고향을 향해 가는데 앞에서 형 에서가 원수 갚기 위해서 기다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에서가 이십여 년의 원한을 품고 사백명의 군인과 함께 '감정'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리던 형님과의 만남이 있기도 전에 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2 : 3에 보면, 사자들을 보내어 먼저 강을 건너게 합니다. 자기가 먼저 가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했습니다. 32 : 7에 보면 "야곱이 두렵고 답답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면 헤쳐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원한을 품은 에서와 그의 군대의 마음을 돌이켜 기쁨으로 야곱을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면 모든 불안과 고독과 걱정이 물러가고 화평과 기쁨이 생깁니다. 모든 원수의 관계가 풀려 화해하게 됩니다.
여러분! 야곱과 같이 문제가 풀리지 않고 계속해서 불안하게 하고 답답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1992년도를 맞이하기는 했으나 불안하고 초조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새해에는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마하나임의 축복을 받으면 모든 난관과 장벽을 헤쳐 나갈 줄 믿습니다. 야곱의 문제가 쉽게 해결된 것처럼 여러분의 문제도 놀랍게 해결될 것입니다.
3. 만남과 발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발견입니다. 이 자기 발견은 하나님을 만나므로 가능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얍복강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습니다. 32 : 27에 그가 묻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합니다. 그때 그는 "야곱이니이다"고 대답합니다. 야곱이란 '교활한' '간사한' '꾀가 많은' '변덕스러운' '교만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 동안 이름대로 간사하게, 교활하게, 꾀로 살아왔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챌 때에도 교묘한 방법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될 때도 간사한 방법을 썼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가 이름을 물을 때 솔직하게 '야곱'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여기서 자기를 발견한 것입니다.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또 한번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입니다. 32 : 28에 "그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기를 발견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곧 변화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 축복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입니다.
4. 만남과 축복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축복은 마하나임의 축복입니다. 마하나임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입니다. 또한 야곱이 이스라엘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야곱이 야곱의 생애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사는 축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32 : 30을 보면 , '브니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브니엘의 축복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축복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과정마다 걸음마다 하나님을 만나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날 자'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이성을 만나도, 친구를 만나도, 사업 거래상 누구를 만나도, 물질을 만나고 명예와 권세를 만나도 만날 자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모든 것이 축복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만날 자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고 만나고, 예배하고 만나며, 찬송하고 만나는 성도가 됩시다. 그러면 그 만남이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먼저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을 먼저 만나면 모든 것이 형통하는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새해에 여러분 가정에 야곱이 받았던 '마하나임의 축복'과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과, 하나님을 대면하는 '브니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