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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가 되라 (창26:1-5)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
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한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세기 26:1-5)
어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우리 나라는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영어 발음을 빙자하여 ‘We are chosen people’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치고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조선 피플>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은연 중에 자기들은 복을 약속 받고 있는 민족이란 대단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들만이 하나님께로 부터 선택 받은 족속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로 한 때 독일의 히틀러로 부터 민족말살정책까지 받아 600만명 이상이 가스실로 들어가 희생되기도 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기네들은 야훼로 부터 복을 약속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무엇을 해도 복(福)과 연결을 지었습니다.
모든 생활용품에 복(福) 복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옷깃에도 복자를 새겨 달고 다녔고,
베개머리에도 복자를 새겼고,
밥 그릇에도 복자를 넣었고,
심지어 숟가락에도 복자를 써 넣었습니다.
그렇게 복을 추구하고, 복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보아도 복 있게 생겼다고 말하고,
신체 부분마다 복과 연결지어서 보고, 말하였습니다.
귀가 복 있게 생겼다고,
복스럽게 먹는다고 했고,
결혼해서 좋은 일이 생기면 복덩이 며느리가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종교를 복과 연결지었습니다.
샤마니즘적 신앙도 복을 달라고 빌었고,
최소한 화를 면케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불교도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 본질적인 것들이 변해버렸습니다.
기독교도 죄로 부터의 구원과 영생의 진리보다 이 세상에서의 복 받는 일로 신앙의 본질이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면 복이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주어지는가?
1. 복(福)은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창세기에 나타난 축복의 선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모든 것을 지배하고, 주관하고, 다스리라!
그러나, 이 축복의 통로가 죄가 들어오면서 막혀버렸습니다.
다시 그 막힌 축복의 통로를 열어놓은 것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의 통로를 통하여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에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예언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축복을 예언했습니다.
창12: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즉 복의 통로가 너를 통하여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약속입니까!
이 축복의 통로를 이어 받은 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이삭이란 인물입니다.
<이삭>은 누구입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사실 이삭은 크게 무슨 업적을 남긴 인물은 아닙니다.
단지 순종의 대표자이었습니다.
그는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묶여 반항하지 않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런 이삭이었기에 하나님은 이삭에게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삭에게 “네 자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삭 자신 보다 그 아비 아브라함의 순종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잘못 되면 조상 탓으로 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상이 적선(積善)을 쌓았으면 그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것과 상통하는 말입니다.
역사의 인물도 조사해 보면 그런 통계를 자주 보게 됩니다.
조상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법도를 지킨 사람들 치고 망한 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복을 받아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아침 드라마 ‘강이 되어 만나리’를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화성에서 제일 내노라 하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아무런 고생 없이 자란 송사장이 요즘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재산 다 날리고, 갯벌에 조개를 뿌려서 3년 후에는 거부가 된다던 꿈도 바다 기온이 상승하여 적조현상으로 모두 폐사되어 정말로 길 바닥에 내어쫓김을 받게 될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옛 어른들이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하던 말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말에‘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이 복을 내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복의 통로를 모르고 노력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 없이 복이 하늘로 부터 떨어질 수는 없지만,
그 노력이 어떤 노력이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송사장 처럼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福)은 누구에게나 다 받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복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경청하고 따라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삶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영적 지혜가 주어져야 합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통로를 따라 복을 관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2. 복은 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바로 가져야 하겠습니다.
전도서 9:11-12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하고 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주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면 돈을 못 벌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실패로 끝납니다.
요즘 개미와 베짱이의 새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것과 정 반대의 이야기로 꾸며냈습니다.
개미는 여름 내내 뼈 빠지게 힘들게 일했으나 결국 척추 수술로 입원 했고, 베짱이는 음반을 내어 힛트 쳐 거금을 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현대인의 역설적 풍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은 노력만 해서도 아니란 교훈입니다.
복은 하나님께로 부터 주어지는 은혜요,
그 복을 받을 통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삭은 바로 그 아비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깊습니다.
자식에게는 그 부모의 신앙적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 복으로 나타납니다.
저는 지금 저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목회에서 저는 부모님들의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시골 개척 전도사로서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오직 복음 전함에 사명을 다 했던 부모님의 순종의 결과라고 봅니다.
교회를 세 곳 세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강냉이와 잡곡밥으로 자란 건강한 육체를 소유했습니다.
그러했기에 목회생활에서 별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특별히 상도교회 59년의 역사 속에서 다섯분의 선임 목사님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교회의 원로목사가 된 것은 특별한 은혜인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나 자신의 무슨 특별한 재능이나, 영력에서 된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희생의 결과가 내게 미쳤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이삭이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그 아비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복의 통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복을 받게 하는 통로입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자녀들을 둘러놓고 축복으로 예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야곱도 12 아들을 불러놓고 각각 그들에게 축복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흉년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나선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애급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면서 2절과 3절의 복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 후 성경을 보면 이삭이 간 곳 마다 하나님의 복으로 잘 되어 재산이 증식되고 나중에는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찾아와 동업을 제의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이렇게 특별 대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5절에서 설명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큰 복을 받게 된 것은 그 아비 아브라함 때문이란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어려운 환경에서 이 말씀을 듣는 분들이라 해도, 아브라함 처럼 말씀대로 순종할 때,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자녀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
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한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세기 26:1-5)
어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우리 나라는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영어 발음을 빙자하여 ‘We are chosen people’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치고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조선 피플>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은연 중에 자기들은 복을 약속 받고 있는 민족이란 대단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들만이 하나님께로 부터 선택 받은 족속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로 한 때 독일의 히틀러로 부터 민족말살정책까지 받아 600만명 이상이 가스실로 들어가 희생되기도 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기네들은 야훼로 부터 복을 약속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무엇을 해도 복(福)과 연결을 지었습니다.
모든 생활용품에 복(福) 복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옷깃에도 복자를 새겨 달고 다녔고,
베개머리에도 복자를 새겼고,
밥 그릇에도 복자를 넣었고,
심지어 숟가락에도 복자를 써 넣었습니다.
그렇게 복을 추구하고, 복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보아도 복 있게 생겼다고 말하고,
신체 부분마다 복과 연결지어서 보고, 말하였습니다.
귀가 복 있게 생겼다고,
복스럽게 먹는다고 했고,
결혼해서 좋은 일이 생기면 복덩이 며느리가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종교를 복과 연결지었습니다.
샤마니즘적 신앙도 복을 달라고 빌었고,
최소한 화를 면케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불교도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 본질적인 것들이 변해버렸습니다.
기독교도 죄로 부터의 구원과 영생의 진리보다 이 세상에서의 복 받는 일로 신앙의 본질이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면 복이 도대체 어디에서 부터 주어지는가?
1. 복(福)은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창세기에 나타난 축복의 선언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모든 것을 지배하고, 주관하고, 다스리라!
그러나, 이 축복의 통로가 죄가 들어오면서 막혀버렸습니다.
다시 그 막힌 축복의 통로를 열어놓은 것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의 은혜의 통로를 통하여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에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예언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축복을 예언했습니다.
창12: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즉 복의 통로가 너를 통하여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약속입니까!
이 축복의 통로를 이어 받은 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이삭이란 인물입니다.
<이삭>은 누구입니까?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사실 이삭은 크게 무슨 업적을 남긴 인물은 아닙니다.
단지 순종의 대표자이었습니다.
그는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묶여 반항하지 않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런 이삭이었기에 하나님은 이삭에게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삭에게 “네 자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삭 자신 보다 그 아비 아브라함의 순종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잘못 되면 조상 탓으로 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상이 적선(積善)을 쌓았으면 그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것과 상통하는 말입니다.
역사의 인물도 조사해 보면 그런 통계를 자주 보게 됩니다.
조상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법도를 지킨 사람들 치고 망한 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복을 받아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저는 아침 드라마 ‘강이 되어 만나리’를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화성에서 제일 내노라 하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아무런 고생 없이 자란 송사장이 요즘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재산 다 날리고, 갯벌에 조개를 뿌려서 3년 후에는 거부가 된다던 꿈도 바다 기온이 상승하여 적조현상으로 모두 폐사되어 정말로 길 바닥에 내어쫓김을 받게 될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옛 어른들이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하던 말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말에‘재수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이 복을 내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복의 통로를 모르고 노력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력 없이 복이 하늘로 부터 떨어질 수는 없지만,
그 노력이 어떤 노력이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송사장 처럼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福)은 누구에게나 다 받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복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경청하고 따라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삶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영적 지혜가 주어져야 합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통로를 따라 복을 관리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2. 복은 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바로 가져야 하겠습니다.
전도서 9:11-12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하고 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주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면 돈을 못 벌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실패로 끝납니다.
요즘 개미와 베짱이의 새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것과 정 반대의 이야기로 꾸며냈습니다.
개미는 여름 내내 뼈 빠지게 힘들게 일했으나 결국 척추 수술로 입원 했고, 베짱이는 음반을 내어 힛트 쳐 거금을 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현대인의 역설적 풍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은 노력만 해서도 아니란 교훈입니다.
복은 하나님께로 부터 주어지는 은혜요,
그 복을 받을 통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삭은 바로 그 아비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깊습니다.
자식에게는 그 부모의 신앙적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 복으로 나타납니다.
저는 지금 저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목회에서 저는 부모님들의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시골 개척 전도사로서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오직 복음 전함에 사명을 다 했던 부모님의 순종의 결과라고 봅니다.
교회를 세 곳 세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강냉이와 잡곡밥으로 자란 건강한 육체를 소유했습니다.
그러했기에 목회생활에서 별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특별히 상도교회 59년의 역사 속에서 다섯분의 선임 목사님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교회의 원로목사가 된 것은 특별한 은혜인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나 자신의 무슨 특별한 재능이나, 영력에서 된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희생의 결과가 내게 미쳤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이삭이 받은 축복이었습니다.
그 아비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복의 통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복을 받게 하는 통로입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자녀들을 둘러놓고 축복으로 예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야곱도 12 아들을 불러놓고 각각 그들에게 축복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흉년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나선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애급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면서 2절과 3절의 복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 후 성경을 보면 이삭이 간 곳 마다 하나님의 복으로 잘 되어 재산이 증식되고 나중에는 블레셋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찾아와 동업을 제의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이렇게 특별 대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5절에서 설명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큰 복을 받게 된 것은 그 아비 아브라함 때문이란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어려운 환경에서 이 말씀을 듣는 분들이라 해도, 아브라함 처럼 말씀대로 순종할 때,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자녀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