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1:12-17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타락한 이 세상이 본래의 창조의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친히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을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몸 된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빛이요 등대입니다.

썩어져 가는 세상의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내는 소금입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둡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가운데라도 영롱한 빛을 발하는 등대의 불빛이 비추어진다면 항해하는 선박은 곧 구원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등대의 불빛이 꺼져있다면 배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암초로 인하여 난파되거나 엉뚱한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보아 맛있어 보이는 요리라 할지라도 소금으로 간을 하지 아니하면 싱거워서 먹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싱싱한 보이는 생선도 소금을 치지 않으면 금방 부패하게됩니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이 사회 안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어두운 세상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고난을 받는 자와 죄인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 메이며 방황하던 사람이 교회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찾아올 때 맞아주어야 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합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세상을 향하여 진리의 말씀을 힘있게 선포하여야합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걸어간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교회가 들어가는 곳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이 변하였고 사회가 변하였습니다.



캘빈이 복음을 들고 제네바에 들어감으로 제네바시가 변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성령운동은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세운 교회가 오늘의 부강한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길선주목사의 새벽기도 운동으로부터 일기 시작한 평양교회의 부흥운동은 평양거리의 문화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주일날 상가가 철시되고 음주문화가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때 교회의 왕성한 부흥에 대하여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음력 11월 20일(양 1904. 12. 26)경에 평양 야소 교회당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할 때 황평 량도의 일반 교인들이 구름같이 모였는데 그 때에 착한 사업을 경영하는 것이 많아 회당교회는 날마다 왕성 한다 하더라"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떠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이 극도로 타락하고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여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이유가 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등대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더욱 잘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복음의 영롱한 빛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맛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아름답게 지어진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이미 빛을 잃어버렸고 내부적으로 다 부패하여 썩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부패하였고 썩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오죽하면 예수께서 이렇게 책망하였겠습니까?

마 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그들의 부패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전가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당시 성전이 얼마나 타락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①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할 예배가 형식적이 되었음을 봅니다.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제물입니다.

희생제물은 인간의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과 만남을 이루는 중보자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물을 준비할 때 깨끗하고 흠 없는 것을 미리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희생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손쉽게 제물을 장만할 수 있다는 핑계로 자신이 소중하게 기른 흠 없는 양이나 소나 비둘기 대신에 장사꾼들에 의하여 적당히 마련한 제물을 하나님 성전에 바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벨이 드린 향기 나는 제사가 아니라 가인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어떻습니까?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하여 점점이 흘리신 보혈의 피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의 이름은 부르고 있지만 여러분의 생각과 생활 속에 예수의 그림자만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감격으로 흐느끼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입술로 고백하며 그 분의 사랑과 용서,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자녀로 설 수 있는 영광을 마음껏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는 예배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②성전이 물질적(돈)으로 철저히 오염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물질(돈)로 교회와 성직자와 교인들을 시험합니다. 예수님도 시험하였습니다.

물질(돈)은 그 자체가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물질은 바른 방법으로 벌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른 목적에 쓸 때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하였는데 너무 욕심을 부립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은 성경에서 올바른 말이 아닙니다. 쓰는 것도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서만 사용하고 선한 일에는 매우 인색한 사람이 많습니다. 사치와 쾌락을 위하여 돈을 물쓰듯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도 그랬습니다. 예배를 경건하게 이끌고 물질에 대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가르쳐야할 하나님의 성전에서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하여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대신에 물질로 드리는 가증스러운 예배가 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벌어드린 돈으로 상류층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이용하여 그들의 배를 불린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13절)고 통탄하시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물질로 오염되고 있음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③모든 가난하고 병든 자와 죄인들이 가까이하기 매우 힘든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세운 목적은 병든 자와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고 죄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여 사함을 얻기 위하여 입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대하 6:26-27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성전이 고급 사교장이 되거나 끼리끼리 모이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죄인들이 기쁨으로 나올 수 있는 곳이 되어야합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교회에서 구제할 사람이 너무 많아 구제를 특별히 맡아 수고할 일군들을 특별히 뽑아야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니 눈이 보이지 않는 자와 저는 자들이 예수께 나아왔고 예수께서 고쳐 주실 때에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신 일과 더불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행한 추하고 더러운 일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히 하고 성전에서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 고쳐 주시는 일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사람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세상에서 특히 소외당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가, 죄인들이 들어오기는 매우 힘든 곳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채찍을 들어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은 성전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 값을 주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 된 교회가 이 사회 속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는 교회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다울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 교회답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고쳐야할 것입니다. 부단히 자신을 개혁하지 아니하는 교인이나 교회는 세속의 물결에 스스로 빛과 맛을 잃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