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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자 (행2:22-24 )
누가 그러는데 이 주변에 있는 교회 하나가 연성지구로 완전히 옮길 것이라고 합니다. 왜 옮기냐고 물어보니 글쎄 연성지구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이 시화보다 2배나 된다나 어쩐다나요. 설마 생활수준이 높아서 옮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연히 선교차원에서 옮기는 것이겠지요. 저는 이 시화가 좋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좋습니다. 무지무지하게 좋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저를 좋아하시니 저도 여러분을 좋아하는 겁니다. 사랑은 서로 뒤엉키는 상호작용입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상호작용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저보고 이런 말씀을 하십디다. '저는 전도사님이 좋으시다면 뭐 든지 해드리고 싶습니다.' 원래 제가 그분을 좋아하지만 그 말씀을 듣고 더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무슨 충성심 경쟁을 조장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예요.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다. 사랑은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는 상호작용이다.' 정말 그렇지 않아요. 이 사실을 강조하려다보니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말 안 해도 잘 알지.' 정말 웃기는 말씀입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지, 어찌 말 안 해도 잘 안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무슨 투시의 은사라도 가졌나요. 하나님이시라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르신단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외아들 이삭을 바치자 그제서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사랑을 인정하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창22:11-12)'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시라도 우리 속마음에 있는 사랑을 다 모르실 수 있단 말입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런데 우리 인간이 어찌 남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내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당신은 다 알아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나는 다 알고 있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요.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입니다. 그저 알아주겠지 하는 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입니다. 아무리 어린 자식이라도 부모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게 있거든요. 하다 못해 부모님 얼굴에 뽀뽀라도 해 드릴 수 있잖아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입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그렇게 기록돼 있어요. (약4: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 드리는 것만큼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이런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도 감정이 있어요. 특히 질투의 감정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해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게 돼 있어요. (잠8: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사랑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지요. 저는 여러분이 좋습니다. 무지무지하게 좋습니다. 우리 한 번 표현해 봅시다. '저는 여러분이 좋습니다. 무지무지하게 좋습니다.' '우리도 전도사님이 좋습니다. 무지무지하게 좋습니다.' 옆에 계신 분하고도 인사 한 번 합시다. '저는 당신이 좋습니다. 무지무지하게 좋습니다.' 정말 그래요. 저는 여러분이 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저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좋아하니 여러분도 저를 좋아하시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좋고 또 이 시화도 좋습니다. 왜 이 시화가 좋습니까. 바로 여러분이 살고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교회가 부자 꽁무니 따라다녀서 되겠는가. 교회는 축복의 강물이 흘러 넘치는 곳이지 않는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 찾아와도 복 받게 해 주는 곳이 교회이지 않는가.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영적인 부자로, 물질적인 부자로, 사회적인 부자로 만들어주는 곳이지 않는가.' 실제로 그래요. 6.25사변 이후에 월남한 북한 사람들 중에서 영락교회를 통해서 부자가 되고 귀족이 된 사람들, 많아요. 70년대, 80년대에 서울 올라온 시골 사람들 중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통해서 부자가 되고 귀족이 된 사람들, 많아요. 이제 이 서부 경기도 일대에 사는 분들은 우리 충인교회를 통해서 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귀족이 되는 사람들, 많아질 겁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얼마든지 제2, 제3의 정주영 회장 같은 거부가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가 되면 제2, 제3의 요셉 같은 국무총리도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생기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은 쩨쩨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하면 열방을 주시는 아주 통크신 분입니다. (시2:8)'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예요.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 적용될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는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믿음은 놀랍습니다. 믿으면 그렇게 되거든요.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은 기쁘시니 자기 돈주머니를 팍팍 풀어 베푸시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믿음 큰 사람이 장땡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따라지예요, 따라지.
여러분,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어요. 아무리 무능한 지렁이라도 태산을 팍팍 쳐서 부수는 포크레인으로 만드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사41:14-15)'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땅을 파먹고 사는 지렁이를 땅을 쳐 부수는 포크레인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어요. 하나님은 아무리 천한 인생이라도 왕 같은 인생으로 바꾸어주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고전1: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하나님은 천민을 왕족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벧전2: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하나님은 천한 사람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어요. 하나님은 얼마든지 여러분 중에서 제2, 제3의 정주영 회장이 나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습니까. 그런 믿음을 원하시는 분은 구하십시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2, 제3의 정주영 회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뜨거워지는 분이 계십니까.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이 있다면 제2, 제3의 정주영 회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어요. (욥42:2)'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어요.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시2:8)'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시81:10)'...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여러분, 저는 복에 미친 사람입니다. 복이 너무 좋습니다. 복이라는 말만 들어도 환장하게 좋습니다. 저는 복에 목마른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복에 미친 사람은 복을 찾아가게 되고 복도 그 사람을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다 복에 미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잠을 자도 소원은 복, 깨어 일어나도 소원은 복, 꿈에도 소원은 복, 우리 모두 다 복을 받읍시다. 큰 복, 작은 복 다 받읍시다. 싹쓸이로 다 받읍시다. 우리 모두 다 복에 미칩시다.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복 받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다 됩시다. 우리 옆에 계신 분이랑 이렇게 한 번 인사합시다. '아, 복받고 싶어 미치고 환장하겠네.'
여러분, 사람은 어차피 미쳐서 살게 돼 있어요. 다 보면 무언가에 미쳐 있어요. 어떤 사람은 우상숭배에 미쳐 있고 다른 사람은 술에 미쳐 있어요. 미칠 바에야 참 신이신 하나님께 미치고 미칠 바에야 하나님의 신령한 복에 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상숭배에 미치고 술에 미쳐서 되겠습니까. '아, 복받고 싶어 미치고 환장하겠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민14:28)'...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여러분,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어요. 하나님은 창조주 예수님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주 예수님이 어떻게 여자의 몸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이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남자의 정자처럼 작아지고 작아져서 여자의 몸 속으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창조주이시지 않습니까. (요1:1-2)'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에 창조의 말씀으로 계셨던 예수님, 이 창조주 예수님이 어찌 여자의 몸 속으로 들어오실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남자의 정자처럼 작아지고 작아져서 여자의 몸 속으로 들어오실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습니다. (눅1:34-37)'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우리는 잘 알 수 없어요. 태초에 창조의 말씀이셨던 예수님이 어떻게 남자의 정자처럼 변해서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오셨는지 잘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40:8)'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사55:11)'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렇게 약속하셨으니 그대로 된 것이지요. 어찌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를 덮으심으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뿐입니다. 여러분,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만 함께 하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던 날로부터 승천하시던 날까지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10: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될 때부터 함께 하셨고 세례 받으실 때에도 함께 하셨고 공생애 사역에서도 함께 하셨고 십자가 죽음에서도 함께 하셨고 부활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마3:16-17)'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세례시에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눅4:14)'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시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에서도 이 사실이 부각돼 있습니다. (행2:22)'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사61:1)'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예수님은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공생애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행2: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으로 부르짖으십니다. (마27:46)'...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중에 큰 소리로 부르짖으십니다.
이때 성령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그 고통을 나누시면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시는 일치의 영이십니다. 지금 성령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과 하나가 되도록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시는 사랑의 영이요, 일치의 영이십니다. 지금 십자가 상에서 성령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십니다. 지금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십니다. 사랑의 영이요, 일치의 영이신 성령으로 하나가 되십니다. 예수님만 십자가에서 고독하게 매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습니다. 사랑의 영이요, 일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매달리도록 내어주셨습니다. (롬4:25)'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은 자기 품으로 거두어 들이시고 자기 외아들은 저주의 십자가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고 나서 그냥 뒷짐만 지고 계셨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의 영이요, 일치의 영이신 성령의 교통하심 속에서 예수님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셔야 했습니다. 자기 외아들 예수님이 저주의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그것을 그대로 두시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미 약속하신 말씀대로 자기 외아들 예수님을 저주의 십자가에 내어주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사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이 절대절명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것, 성령이 그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하나되게 하시는 것,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의 영이요, 일치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누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인간 구원이라는 절대절명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을 함께 당하고 함께 견뎌내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님의 부활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롬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성령께서는 부활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은 몸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도 함께 하셨습니다. (행2:23-24)'...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해체해 버리시고 예수님의 죽은 몸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이미 약속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신 것입니다. (마17:22-23)'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이미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고전15:3-4)'...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은 이미 성경에 약속된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전15:4-8)'...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 위협이었습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소동시키는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심지어 이런 망발을 내뱉었던 것입니다. (요11:49-50)'...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그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제사장 무리는 예수님을 죽여야만 온 나라가 잠잠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 형벌에 내어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 나라가 잠잠해 졌습니까. 아닙니다. 점점 더 소란스러워 집니다. 죽었던 예수가 살아났다는 소문이 들불처럼 쫙 번져 나갑니다. 500여명의 장년 남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이들의 입이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번져나갑니다.
예수만 죽이면 모든 일이 다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웬 걸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50일만에 예수님을 따르는 나사렛 예수파 사람들은 장년 남자만 해도 3500명이 넘습니다. 그 당시 기득권층 사람들에게는 비상사태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습니까. 시체만 찾아낼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겠지요. '여기 예수의 시체가 있다. 이 시체를 보아라. 부활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데, 이 시체를 보아라. 이것을 보고서도 정신 못 차리겠느냐. 너희가 그토록 따르던 예수는 죽어서 이렇게 시체가 되고 말았다.' 이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잠잠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시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시체만 찾으면 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단 말입니다. 그 기세등등하던 제사장 무리가 가만있었을 리 없습니다. 이리저리 백방으로 시체를 찾아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허수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거든요. 그래서 제사장 무리는 술책을 부립니다. (마28:11-15)'...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모여 함께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 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제사장 무리는 이 세상 최악의 거짓말을 퍼뜨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봉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그 따위 거짓말에 봉쇄당할 리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퍼져 나갑니다. 들불처럼 퍼져 나갑니다. 일시에 500여명의 장년 남자들에게 퍼져 나갑니다. 하루에 3천명의 장년 남자들에게 퍼져 나갑니다.
온 나라로 퍼져 나갑니다. 온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시대에서 시대를 넘어서 계속 퍼져 나갑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까지 퍼져 나갑니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까지 퍼져 나갑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한 번 고백합시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 몸은 일단 죽은 뒤에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의 죽은 몸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도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은 몸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신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몸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서 우리 믿는 자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보증인이 되셨습니다. (고전15:17-20)'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러분, 예수님은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위대한 정신이 부활하고 그 위대한 사상이 부활하고 그 위대한 가르침이 부활했다.' 뭐, 이 따위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뭐니뭐니 해도 육체의 부활인 것입니다. (눅24: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육체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생선을 잡수시기도 하십니다. (눅24:41-43)'...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님은 그 육체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냥 그 정신이, 그 사상이, 그 가르침이 부활하신 게 아니라 육체가 부활하신 것입니다. 아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 몸도 예수님의 그 영광스러운 몸처럼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3:20-21)'...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믿는 자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부활까지도 보증합니다. (롬8:19-21)'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몸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들의 부활도 보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가 참으로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시어 십자가에서 어린 양처럼 희생당하심으로 이제 짐승을 잡아드리는 희생 제사는 필요 없게 됐습니다. 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이겠습니까. 아니, 이 얼마나 짐승들에게 복된 소식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 몸도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부활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생물들은 어떻게 될까요. 생물들도 부활하게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하늘 나라에는 사람들만 있을까요. 생물은 없을까요. '혹시 사슴은 있을지 몰라도 뱀은 없을 거야. 혹시 동물은 있어도 모기나 파리나 거머리 같은 곤충은 없을 거야.' 정말 그럴까요. 사람도 흙으로 만드시고 동물도 흙으로 만드셨는데 하나님이 사람만 하늘 나라에 거두어 들이시고 동물들은 다 버리실까요. 사람만 하나님의 생기가 있고 동물에게는 하나님의 생기가 없기 때문에 동물은 버리실까요. 동물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없다면 어째서 살아 움직이겠습니까.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구요. 그래서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구요. 노아 방주에 사람만 들어갔나요. 동물도 들어가지 않았나요. 하늘 나라에는 동물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하나님인 동시에 모든 생물의 하나님이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어차피 폐기처분해 버리기 위해 동물을 만드신 것은 아닐 테니까요.
어떤 사람이 거봉 포도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답니다. 그런데 상자를 열어보니 거봉 포도 잎사귀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붙어 있습니다. 하도 신기해서 키웠답니다. 파리도 잡아주고 모기도 잡아주고 해서 길렀는데 잘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불 짐을 옮기다가 그만 잘못해서 깔아 죽이고 말았답니다. 그 사람은 너무 슬펐답니다. 아무리 청개구리라도 너무 애지중지 길렀기 때문이겠지요. 너무 슬퍼하다가 하루는 밤에 차를 몰고 어느 한적한 길을 지나가는데, 글쎄 헤드라이트 불빛 사이로 청개구리 한 마리가 팔짝 뛰어가더랍니다. 그러면서 그 청개구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답니다. '나는 이렇게 빛 가운데 살아 있어요.' 그 사람은 아주 깜짝 놀랐겠지요. 그는 이런 헛것을 보고 이런 헛것을 들었다면서 책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하찮은 청개구리도 빛 가운데 살아 있다 잖아요. 물론 그 죽은 청개구리가 그렇게 부활해서 살아 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아주 하찮은 미물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영원히 살지 않을까', 그냥 그런 상상을 한 번 해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또 책에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하늘 나라에도 원숭이가 있답니다. 원숭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나무에 매달려서 쭉 늘어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보잖아요. 하늘 나라에도 원숭이들이 그렇게 손에 손을 잡아 서커스를 한답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나무를 붙잡지 않고 그냥 하늘에 붕붕 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미 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지요. 우리가 저 하늘 나라에 가보지 않고서는 자신 있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겠지요.
여러분, 부활이 없다면 우리 인생이 너무 시시하지 않아요. 아무리 부자라도 죽으면 그뿐 아니예요.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죽으면 그뿐 아니예요. 부활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참 불쌍한 인생일 겁니다. (고전15: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예수님의 죽은 몸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주신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은 언젠가는 죽을 저와 여러분의 몸도 찬란하게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서도 부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병든 자에게 건강해 지는 부활을 주십니다. 가난한 자에게 부요해 지는 부활을 주십니다. 낮은 자에게 높아지는 부활 주십니다. 실패한 자에게 성공하는 부활을 주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그토록 사랑한다던 예수님을 바로 면전에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50일 전만 해도 배반의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그런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또 그 부활을 가능하게 했던 성령을 체험하고 난 뒤에 베드로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됐습니다. 여종 앞에서 무서워 벌벌 떨었던 베드로, 이제 그는 수천명의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외칩니다. 배운 게 짧았던 베드로, 이제 그는 배운 사람들 앞에서 유창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여러분도 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증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죽은 몸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그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게 하옵소서. 병든 자에게 모든 건강함의 부활을 주옵소서. 가난한 자에게 모든 부요함의 부활을 주옵소서. 낮은 자에게 모든 높아짐의 부활을 주옵소서. 마침내 우리 모두에게 그 영광스러운 몸의 영원한 부활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김종춘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