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진 약속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교회학교 교사 시절 교사대학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강사 목사님께서 엉뚱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약 가운데 최고의 약이 무엇입니까?” “이 약 두 첩만 지어먹으면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과 영혼까지 건강해 질 수 있는 약이 있는데 그 약이 무엇입니까? 답은 구약과 신약 두 첩이랍니다.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구약을 Old Testament, 신약을 New Testament라고 합니다. 여기서 Testament는 “언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으로 약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Testament라는 말은 유언과 같은 일방적인 약속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한 마디로 말하면 약속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보내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하나님께서 새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을 통해서 펼치실 구원 역사에 관해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이런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성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의 뚜렷한 내용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약속과 성취라는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이루어졌다.”라는 내용적 구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약속과 성취라는 구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도 이 약속과 성취라는 구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에 관한 참 많은 약속이 있습니다. 먼저 구약의 약속 가운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 32:15을 보면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장차 메시야가 통치하는 시대가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겔 36:26-7을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사람들의 심령 속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새사람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욜 2:28-9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사람들에게 부어 주셔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런 약속들은 놀랍게도 한 가지 사건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바로 행 2:1-4에서 말씀하고 있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의 성령에 관한 약속은 바로 이 사건으로 성취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관해 중요한 약속을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이 약속의 특징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에 바로 성령을 보내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구약의 성령에 관한 약속이 포괄적이고 개략적이라면 이 약속은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합니다. 물론 이 약속의 말씀도 그대로 지켜졌습니다.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교회력으로 오늘이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그 사건을 기리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성령 강림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약속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성령 강림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이 약속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약속이 지켜진 사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약속은 오늘도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성령은 약속대로 강림하고 계시고 약속대로 우리에게 임하셔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에 관한 약속이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성취되었고 또 성취되고 있는 지를 살피는 일은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오늘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성령에 관해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것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첫째,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행 1:5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언과 같은 약속입니다. 주님을 대신해서 성령이 오실텐데 그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말은 주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물 속에 잠기거나 물이 온 몸에 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 심령이 성령에 잠기거나 성령이 우리 심령 위에 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배추에 소금을 뿌린다거나 아예 소금물에 넣어두면 절여집니다. 소금이 배추 안에 스며들어가 배추를 변하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우리 심령 속에 부어지면 성령으로 우리 심령이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다음으로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씻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안팎에 더러운 것들을 물로 씻어냅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 심령이 성령으로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학교 다닐 때 대청소를 할 때면 늘 물청소를 했습니다. 일본말로 ‘미시나우시’라고 했던가요? 비로 쓸고 걸레로 닦을 때 씻기지 않던 것까지 물청소를 하면 깨끗이 씻겨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철저하게 씻기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는 이것을 불로 태운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과거와 단절하고 성결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제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제 주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에 적시는 것과 불로 태우는 것은 다릅니다. 물에 젖은 것은 말리면 다시 되돌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에 탄 것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철저하게 예수의 사람이 되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을 말합니다.

결국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심령 속에 부어져서 철저하게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철저하게 새사람이 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약속은 최초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사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문도는 성령이 강림하면서 철저하게 새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사도들의 사역 가운데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행 8:18을 보면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행 10:44에 보면 고넬료의 집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행 19:6을 보면 에베소 교회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순절 사건 이후에 계속해서 이 성령 세례의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미 성령 세례를 받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아직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속히 성령이 임하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지금까지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가르쳐 주시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갈 길 몰라 방황할 때 갈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저들 곁에 주님이 계셨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들 곁을 떠나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저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직접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저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아주 뜻밖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 대신 다른 보혜사가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특별히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사건 이후 실제로 이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후에 행 2:14을 보면 예루살렘 성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주님 대신 이제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2:42를 보면 사도들이 교회에서 가르쳤습니다. 주님 대신 이제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 볼 말씀이 있습니다. 행 4:13입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 지라” 당시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이 볼 때 사도들은 배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남 앞에서 가르치고 선포할 훈련을 받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 기탄없이 즉 두려움 없이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크게 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들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주님 대신해서 가르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 말을 생각나게 해 주시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기 때문에 이런 체험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원래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저는 남 앞에서 말할 줄 모르던 사람입니다.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제가 주저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설교하기 위해 섰을 때 지금까지 두려워 떨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야 말로 기탄없이 말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얼마 전에 광양 대광교회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출신 우리 청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예배 후에 문상 차 상가를 찾았습니다. 마침 위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인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 때 예고 없이 그 자리에서 저보고 설교해 달라는 것입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찬송하는 동안에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갑자기 성경 본문이 떠올랐습니다. 제 마음 속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올랐습니다. 그 본문 그대로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며 전했습니다. 많은 은혜가 있었다고들 했습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깨닫게 해 주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셋째, 성령을 통해 능력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안타깝게도 예수님께서는 그 능력이 어떤 능력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능력의 역할만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즉 그 능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능력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능력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귀신을 내 쫓고 병자를 고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종임을 알게 되는 그런 능력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원수들이 대적자들이 골리앗처럼 나가떨어지는 그런 능력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이 능력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려면 성령이 강림하신 뒤에 그 사람들에게 어떤 능력이 나타났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성령 강림 후에 성령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능력은 한 마디로 “죽는 능력”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능력”입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다 체포당했습니다. 협박을 받았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옥에 갇혔습니다. 잡으면 잡히고, 가두면 갇히고, 때리면 맞았습니다. 심지어 야고보는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물리칠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협박을 받아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채찍에 맞아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옥에 갇혔다가도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치 오뚜기와 같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능력, 포기하지 않는 능력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능력입니다.

물론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치유의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베드로는 바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더 큰 고난을 당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치유의 능력은 여기서 말하는 성령의 능력의 핵심은 아닙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죽으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고난을 막는 능력이 아닙니다. 고난을 당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대적과 싸워 간단히 물리치는 능력이 아닙니다. 대적에게 철저하게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기는 능력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죽었으나 사는 능력입니다. 졌으나 이기는 능력입니다. 패배했으나 승리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러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이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주님께서 다른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먼저 이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성령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