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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세계적 명절입니다. 그래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심지어 다른 종교가 국교로 지정된 나라들도 이 날을 기쁜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나신 날입니다. 그는 마구간에서 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나사렛에서 목수일을 하며 살았는데 정혼한 마리아와 호적을 하러 조상의 본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었을 때 예수님께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다윗의 동네라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며, 당시에는 작은 베들레헴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여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유할 만한 곳은 적어서, 만삭이 되어 늦게 도착한 요셉과 마리아는 유할 만한 여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겨우 얻은 곳이 마굿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예수님은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면 불륜의 아들이 아닌가 걱정할 수 있습니다. 잘 아는 대로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뜻대로 태어났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되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그러므로 예언에 의한 탄생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지 물었을 때, 서기관은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예언된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미 5:2). 그러므로 박사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천군천사들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112) 하셨습니다. 그 후 하늘에서 천군과 천사들의 노래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그들은 급히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에게 절하였습니다.
예수의 나심은 이렇게 성령의 역사로, 또는 하늘의 별과 음성으로 알려졌던, 하나님의 역사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2천년 역사중에서 12월 25일을 성탄일, 즉 크리스마스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날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며 어떻게 전할 것입니까? 모든 성도들이 바로 알고 즐거워하며,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르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기쁜 날입니다.
인류의 죄악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셨으므로, 모든 인간은 그를 기쁜 마음으로 맞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하면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이것은 예수의 나심은 그렇게 기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은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주는 것은 일시적이며, 내가 만든 기쁨도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만든 기쁨은 희극에서 웃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얼굴에서 시작해서 얼굴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식고 맙니다.
그리고 인간의 기쁨은 물질로부터 옵니다. 어떤 여인이 미국에서 복권이 당첨되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그만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물질은 좋은 것이지만 위험한 것입니다. 물질이 반드시 인간에게 기쁨을 주지는 못합니다. 어떤 때에는 기쁨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은 인간적이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 생명력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됩니다.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왔습니다. 아니, 앞으로 세상 끝날까지 성탄일은 기쁨의 날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쁨의 날로 모든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고, 교회마다 좋은 순서로 축하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자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축하하는 순서들입니다. 교회당에서 밤을 새우며 찬송하고 또한 성도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새벽송을 부르는 것은 매우 즐거운 행사들입니다. 누가 기뻐합니까? 인간적인 목적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은 향락적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신앙인들의 성탄에 대한 기쁨은 주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그 높은 하나님 나라의 보좌를 버리고 이 낮은 세상에 오셨다는 데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바로 자신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신앙인은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쁨은 본질적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깊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날은 모든 신앙인들이 깊이 감사해야 할 날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으로 보내셔서 희생제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죄는 구약시대에 제사들처럼 짐승을 잡아 희생함으로 용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는 항상 드렸습니다. 아니, 매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몸으로 직접 드린 제사는 단번에 드려졌습니다(히 9:28).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장 고귀한 피를 흘리심으로 나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하셨습니다. 가장 고귀한 피로 인하여 용서해 주셨으니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적 에로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가페입니다. 에로스는 남녀간의 성적 사랑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아가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사랑을 예수님을 통하여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조건이 있어서도 아니요, 아무 조건 없이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주시기 위하여 이 낮은 세상에까지 오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신 사건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직접 고쳐 주셨고, 직접 귀신을 내쫓으셨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직접 집에까지 가셔서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은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기적입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전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유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천국을 소개하셨습니다. 그의 복음은 곧 천국을 전하는 데서 나타났습니다. 그가 세상에 오심은 천국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만큼 천국은 귀중한 나라이며, 그 소식은 인간에게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어디서 들을 수 있습니까? 새로운 뉴스라고 해도 이런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들리는 것은 모두 비극적인 것 뿐입니다. 그리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소식은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 생명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소식을 전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3. 전파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기뻐하고, 노래부르는 이유 중 하나는 천군천사들의 모범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떠나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까지 내려와서 예수의 나심을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별을 동원해서까지 예수의 나심을 전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나에게도 같은 책임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기쁜 소식이니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만 전할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옥 창살 앞에 가서 성탄 축하송을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세상에 물들어 있는 죄인들을 향해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전할 것입니까? 노래로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성탄절에는 반드시 음악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이유도 모른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음악예배를 드리는 것은 천군천사들처럼 찬송으로 주님의 오심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성도들에게만 들려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세계를 향한, 아니 우주를 향한 찬송입니다. 이 노래는 교회에서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란 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많이 불러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가서 노래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노래하고, 어두운 곳이라도, 한 사람이 들어도 필요한 사람에게 성탄절 노래를 들려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선물로 전합니다. 성탄절에 반드시 있는 것이 선물교환입니다. 교회행사에서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성탄절에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냅니다. 가정에서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라는 전설에 의해서 자녀들에게 양말에 선물을 담아서 줍니다. 이 선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의미에서 수용해야 합니다. 선물을 받는 것보다 선물을 하는 사람이 성탄을 전하는 일을 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선물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선물은 꼭 물질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할 수도 있으며, 또한 사랑의 마음으로 이룩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전합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때 목사님으로부터 성탄메시지를 듣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나심을 전달받는 시간입니다. 몰라서 받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새로운 은총의 역사로, 오늘을 맞는 기쁨의 소식으로 듣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평생을 들어도 싫지 않고, 새로운 것이며,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식입니다. 말씀은 귀중한 것입니다. 메시지를 잘 듣는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축하해야 할 날입니다. 현대인은 휘황찬란한 네온싸인 속에서 기쁜 성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박해가 심한 시대에는 토굴 속에서, 또는 감옥에서 성탄을 맞았고, 표면적인 기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갈 때, 실제로 공포와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찬미하며 가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매를 맞고 쓰러졌을 때, 그도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그 찬송은 슬픔의 찬송이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러나 찬송이란 기쁨의 표현입니다. 오늘도 저 북녘 땅에서 성탄을 맞아 찬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많이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할 것입니다. 진실로 마음속으로부터 성탄을 축하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자세로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바른 믿음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그를 찾아왔던 박사들이나 목자들은 오늘 우리들과 같은 기쁨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초조와 공포 속에서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편하지도 못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탄은 왔습니다. 우리들은 진실로 가장 아름다운 때에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치있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최선의 축하를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