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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7:24-29
본문은 크게 어려운 내용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반석위에 집짓는 자로 비유하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셨고 그렇지 못한 자를 그 반대로 설명하시니 듣는 자들이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에 크게 놀랬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제목을 연구한다면 “반석 위에 집짓는 자” 또는 “지혜로운 자”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권세 있는 가르침” “견고한 집” “무너짐이 심함”등으로 떠올릴 수 있지만 이 말씀에서 강조하시는 교훈은 말씀을 듣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듣고 행하는 자가 되자”는 제목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1. 초두의 “그러므로”는 앞에 있는 말씀을 연결하는 것으로 “어떤 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사역과 능력을 나타냈을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으므로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상기시킨 말씀이요(마 7:15-23), 따라서 진리와 생활의 일치를 도모하여 지혜로운 성도가 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24절에서 “나의 이 말을 듣고”하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인 진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옛날에는 말로 외치고 귀로 듣게 하는 전달 수단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듣고 깨달으라” (마 15:10,막 7:14)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바울사도께서도 “듣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마 13:23,롬 10:14) 고 하셨으나 그 후 초대교회 당시부터 진리의 말씀이 편지로 전달되면서 읽어서 깨닫게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계1:3,엡 3:3-4,골 4:16).지금은 여러 방도를 전달수단으로 이용하지만 듣고 글을 읽어 깨닫게 하는 방식이상 더 좋은 것이 없다고 봅니다.
2) 그런데 “나의 이 말을 듣고”란 중요한 뜻은 진리의 의미를 바르게 깨닫는 것입니다. 눅 12:47에서 “주인의 뜻을 알고” 란 말씀과 “그 뜻대로 행치 않는 자가 많이 맞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인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 곧 듣는 것입니다. 마 25:26에서 악한 종은 “주인의 입장과 뜻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므로 큰 책망을 받았으니 저희들도 잘 듣고 잘 배워서 바로 깨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2.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믿음이 행함과 함께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라는 말씀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약 2:17,22). 성도가 말씀을 듣고 행하여야 하는 이유는
1) 말씀 순종함이 성도의 의무이고(삼상15:22),
2) 행동실천이 나타날 때 진실한 성도라는 인정을 받게 되며(마 7:16)
3) 계명 순종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명이 되고(요 14:23),
4) 또 복 받는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신28:1-6).
3. 예수님께서 듣고 행하는 자를 반석위에 집지은자로 비유하셨습니다(24절-27절). 반석위에 세워진 집은 그 기초가 든든하므로 비나 창수나 바람에 잘 견딥니다. “비나 창수나 바람” 은 환난을 비유하므로 성도는 어떤 환난에도 잘 견디는 신앙을 가져야하는데 그것이 곧 기초가 든든한 신앙입니다. 또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창 49:24). 따라서 반석위에 집을 지은 신앙은 ① 예수님과 성경중심의 신앙이요(마16:18,고후 13:8) ② 말씀의 기본지식이 풍부하고 ③ 그 말씀을 잘 실천하며 ④ 또 연단이 넉넉한 성도의 신앙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 는 모래위에 집지은 어리석은 자 같아서 그 집이 비바람에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어리석은 신앙이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바르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말씀 지식과 실천으로 무너지지 않는 좋은 집을 지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영광을 돌리셔야 할 것입니다.
4.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권세 있는 자”같았다고 하셨습니다(28절-29절).
1) 예수님은 세상적인 권세를 갖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요 1:39)이란 말씀이 그 뜻입니다. 그러나 그의 교훈은 “권세가 있는 자 같았다”하였으니
2) 그런 “교훈의 권위”가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① 그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이요
② 풍족하고 심오하였기 때문이며
③ 말씀과 생활이 일치되시고
④ 또 성령이 충만하셨기 때문이며(마 3:26)
⑤ 받는 자의 자세가 그만큼 겸손하였기 때문입니다.
3) 그때의 그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깜짝 놀란 것은 그렇게 권세 있게 가르치는 사람을 일찍 만나지 못하였었고 또 서기관들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서기관들은 외식자들이 많았기 때문에(마15:1-14) 그들의 가르침도 권위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권세 있는 교훈자가 되려면 진리지식과 생활의 일치와 탁월한 경건과 교수의 재질과 성령님의 역사를 힘입어야 할 것입니다.
4) 결국 환난에 잘 견디는 성도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시 49:5에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두려워하랴” 한 것처럼 환난에 두려움 없이 대비하는 든든한 신앙의 소유자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5) 27절 하반에서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 믿는 성도나 또는 기성교인 중에도 믿음생활의 무너짐이 심한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앙이 ① 말씀 지식과 실천에 기초하여 성장하지 못하였거나 ② 기복주의 또는 인본주의를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였거나 ③ 연단이 부족할 때 쉽게 그런 결과를 초래 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