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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7:13-14
본문에서 예수님은 “좁은 문, 협착한 길을 찾는 이가 적지만 그 길이 생명의 길인고로 그 길을 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좁은 문이나 협착한 길은 일맥상통하는 것이요, 그 반대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다”하셨는데 여기의 “큰문과 넓은 길”도 역시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인생의 길에는 생명 길과 멸망길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1. “생명의 길”이란 무엇일까요?
1) 이 길은 “구원 받는 유일한 신앙의 길”입니다.
요14:6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유일한 길(헤,호도스)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14:6)는 말씀이나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다”(행 4:12)고 하시므로 생명의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 외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을 내세워 숭배하거나 따르는 일은 결국 구원과는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 생명의 길이 좁고 협착하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1) 생명 얻을 선민의 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① 본문에서도 “찾는 이가 적다”하셨고 눅 13:23-24에도 보시면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하는자가 많으리라”하셨고 또 눅 12:32에서는 “적은 무리여 무서워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시므로, 구원받을 자의 수가 멸망자의 수에 비할 때 적은 것이 사실이며 또 “찾는 이가 적다”하신만큼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② 또 구원의 대상은 좁은 길로 갈 수 있는 성도를 뜻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선택된 자가 갈수 있습니다(릅 8:29).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요(눅 12:24), 하나님의 이끌어 주심에 따라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요3:3).
③ 어떤 사람은 만민 구원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만민 구원설”이란 예수님이 모든 인류를 위하여 죽으셨고 모든 인류가 다 믿으면 다 구원 받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택하셨고 (엡 1:4,행 13:48), 적은 수를 택하셨으며(본문) 택자를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신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요17:9). 따라서 전도능력이 미약하여 구원받을 자가 누락되거나 성도의 수가 많지 못한 것을 불행한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실을 다하면 되고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마 1:21,18:11). 하나님은 노아당시에 8명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 사실도 있었습니다(창 9:1-3). 성도는 구원받는 백성이 많은 것을 원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된 백성이 주님 앞으로 나오기를 소원하셔야 할 것입니다.
2) 바른 신앙의 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을 가져야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신앙의 지식을 갖되 최소한 구원 받을 만한 믿음(행 14:9)은 가져야 하며 또 구원받지 못할 요소를 내포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을 신앙이라면
① 우선 성경관의 바른 신앙과 사도신경을 믿는 것과 믿음과 생활이 일치하는 진실성이 있어야 할 것이요, 구원받지 못할 신앙은 잘못된 교리를 믿거나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② 바른 신앙의 길이란 한마디로 표현하면 성경적인 신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성경적인 신앙을 추구하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성경적 신학은 칼빈주의입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최대한 바른 신학의 노선을 택하여 바르게 배우고 구원을 받으며 칭찬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으는 그물과 같아서 많은 고기를 에웠으나 좋은 것만 그릇에 담는다”(마 13:47)고 하셨습니다. 필히 바른 신앙 가진 자만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3) 십자가 중심으로 사는 생활 입니다. 인본주의, 개인주의, 현실주의, 명예주의, 안일주의, 적당주의 등 잘못된 생활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넓은 길을 택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이 지고가신 십자가의 길은 현실을 다복하게 하는 길이 아니었으며, 예수님은 분명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따르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이면서 또 사랑의 십자가였습니다. 우리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닌 사랑의 십자가만을 성실하게 져야할 것입니다. 십자가 이면에는 하나님 뜻에 대한 절대순종과 최고의 겸손과 죽기까지의 인내와 희생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핍박을 받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바울사도는“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 14:22)하셨고 또 “누구든지 경건하게 살고저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 중심이란 무조건 어렵게 핍박스럽게 믿는 것이 아니고 ① 현실주의를 떠나서 주님을 더 사랑하고(갈 5:24,요일 2:15) ② 사랑을 따라 생활하며 ③ 핍박을 받으면서도 의를 지켜나가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 교회 안에 적당주의와 안일주의와 명예주의와 기복주의로 나가는 성도가 얼마나 되겠으며, 또 십자가 중심으로 나가는 성도는 얼마나 되겠는지를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들은 분명히 십자가 중심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4) 생명의 좁은 길은 예수님과 자기만으로 크게 만족하는 생활입니다. 좁은 길로 가는 성도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자기를 나타내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골방에 있기를 원하고 골방에서 말씀을 상고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할 것입니다. 세상의 영화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주님과 함께 있는 것과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과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최고의 만족을 삼을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인간적 고독과 고난이 따르기 때문에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3. 넓은 길은 어떤 길입니까?
1) 넓은 길은 우선 멸망의 길입니다.
구원의 소망이 없는 ① 불신앙의 생활이며 ② 이방 종교의 길이며 ③ 이단적 신앙의 길을 의미합니다. ④ 성경적으로 적중하지 못하는 불건전한 생활의 길입니다. 다수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성도는 이런 면에도 주의하셔야 합니다. 요즈음 신앙세계 안에 얼마나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제도와 생활이 많습니까? 성경과 사도의 모범을 떠나서 현실 문화를 무분별하게 따라가고 많은 교회와 많은 성직자, 선배가 그렇게 하니까 따라 갈수 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넓은 길이 아니겠습니까! 혹 이런 생활의 길이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소돔 고무라성에서 의인 열 명을 찾으셨습니다. 저희들이 바로 이 시대에 의인 열 명에 속하는 생활을 하셔야할 장본인임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방 종교나 이단 사상은 물론 다수주의, 적당주의, 편의주의, 안일주의, 기복주의 등을 경계하시고 좁은 길로 가기를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