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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예수님의 교사상
예수님의 교육훈련에 앞서 예수님은 누구시며, 과연 예수님은 교육자인지, 가르치려고 온 스승인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호온(H.H.Horn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한분의 교사로서 지니셨던 자질과 위대한 스승으로서 그가 지니셨던 성품
들을 취하여 그것으로서 우리들 자신을 한번 측정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이상으로 사
용할 수 도 있을 것이다".1)
복음서를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은 가르치는 스승으로, 진리를 전하는 설교자, 선지자로 앞날을 말하는 예언자로 그리고 병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온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가르치고 메시지를 전파하며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또 제자들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였다(마 28:10-20).
예수님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인물로 묘사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연구하는 각 계 학자들은 자기들의 입장에 따라 예수님을 정의하고 해석하며 지칭하고 있다. 사회 계획의 신학자들은 예수를 사회 혁명의 기수로 정의하였고, 묵시적 종말론자들은 예수님을 초자연적 신비와 기적을 베푸는 자로 생각하게 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육자들은 예수님을 역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육자로 정의하는 것이다.2)
그러나 예수님을 이해함에 있어서 보다 넓은 다른 면을 제거한 채 한 면만을 강조함은 부당하다. 예수님을 구속사적 성취의 목적으로 볼 때 교사이상인 의미와 교사 이하의 의미가 있었으므로 해서 사람들을 참으로 가르칠 수 있었던 스승이였다.3)
1. 성서적 근거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마 8:19) 신약성서에서 4복음서를 기록한 기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선생이라는 호칭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다. 한 서기관이 부를 때 "선생님이시여..."(마 5:35), 회당장이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할 때에도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며"(눅 7:40), 예수님 자신의 제자된 시몬을 부를 때 시몬의 대답이 "선생님 말씀하소서"(요 1:38), 라고 하였고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보고 ''랍비''(선생님)이라고 불렀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마 4:23-25).
이 밖에도 예수님께 대한 ''선생님''의 칭호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가 있다. 요한복음 13:13절에서는 예수님 자신도 ''나는 선생''이라 표현하셨으며 키헬이 쓴 [신학사전]을 보면 예수님 자신을 선생이라 한곳이 29번 나오며,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디다스카로스(didaskalos,교사)라고 부른 것이 58번, 디다스카로스 대신 랍비(rabbi) 나 랍오니(raboni)라 부른 것이 14번 사용되었다고 기록 되여 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유대사회에서 제자들에게는 물론 그의 반대자들 혹은 일반인에게도 선생으로 인정 받으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이나 성전, 혹은 공적인 장소에서 회중들을 직접 가르치셨으며, 제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시작 할 때는 갈릴리 회당에서부터 시작하셨다(마 5:1-12).
당시 회당은 민중학교로서 유대인에게는 중요한 교육기관 이였다. 예수님께서도 이곳 회당에서 회중들에게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성경을 가르치셨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들이 대부분 이었다.
산상수훈(마 5장)은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치신 내용인데 이렇게 제자들에게는 산이나 바위 어떤 때에는 길을 지나 가시면서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 이였다(마 28:19-20).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서기관과는 달리 극히 대조적으로 권위가 있었다. 옛 유대의 권위에 호소하지 않고 율법을 인용할지라도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위임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치는 형식이 따로 없으며 아주 알기 쉽고 단순한 것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독립된 하나의 교사만은 아니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틀림없는 교사의 활동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기 위해서 가르치시는 데에 본이 되신 분인 것을 볼 수 가 있으며, 뚜렷한 교육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 했으며 또한 다 이루셨다. 예수님은 그 뚜렷한 교육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목적을 가지고 최선의 방법을 가르쳤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였던 것이다.
2. 예수님의 교육방법
예수님의 생애중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고, 병을 고쳐 주신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일반적으로 선생님으로 부른 사실을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능력에 있어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명한 교사는 교회의 기본 신앙안에서 그들 자신이 경험하고 발견 될 수 있도록 올바른 행위의 내적 근원과 만나도록 학생을 돕는데 힘써야 한다".4)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을 찾아 나서 제자들을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신 것이다.
(1) 구전 교육방법
예수님은 가르치는 데 입으로 전하는 구전 교육을 중심으로 하였다. 글로 쓰거나 쓰기 하면서 가르치지 않고 이야기로 가르치셨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글씨를 쓴 기록은 한 번 군중에게 잡혀온 여인을 구하기 위해서 땅에 쓴 것(요8:18) 밖에는 없다. 그가 가르친 국언, 명구, 신앙과 도덕 등 결정적으로 지은 모든 말씀 곧 " 하나님의 신학"은 모두 갈릴리 농부와 어부들의 기억을 정리하여 문자로 기록된 말이다.5) 구전식 교육방법은 위험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농부가 곡식이 결실할 때까지 계속 돌모는 것처럼 예수도 가르친 말씀에 대해 계속 돌보아 주셨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의 목적을 달성하였다.6)
(2) 사건과 현장중심 교육방법
예수의 교훈 대부분은 충분한 원인을 가진 사건과 현장에서 추출되어 나왔다. 어떤 특수한 사건에도 미리부터 생각하고 목적한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설명하였다. 회당에서 반신불수 만난일(마 12:10) 길가에서 귀족청년과 대화(마 21:16), 제자들의 돌연 논쟁(눅 9:46),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바리새인들의 질문(마 22:17) 등 이 모든 사건을 통하여 자기가 목적하는 교훈을 주었다. 예수님의 교훈 대부분은 분명히 어떤 특별한 사건에 관련하여 준 것이지만 지금도 그 교훈은 진리이다.7)
(3) 감명을 주는 교육 방법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청주의 입장이 되어 교훈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가 가르친 교훈은 듣는 청중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청중은 모세의 율법에 의문을 가지기 때문에 예수는 율법으로써 자기의 교훈을 전개하였고, 거기서 또한 하나님의 더 좋은 율법의 말씀을 전하였다. 또 청중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심을 쏟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나라 없는 처지에서 영적 국가인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하였다.8) 그가 쓰는 말은 청중들에게 맞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이며 박력 있는 용어들이었다. 그래서 듣는 이로 쉽게 이해하고 감동을 받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급하거나 조급하게 말하지 않고 차분히 단계적으로 가르쳤다.
(4) 질문과 답변형식 교육방법
질문의 형식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하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특별한 방법이다. 예수님 자신이 많은 질문을 던지셨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질문을 하도록 권장하였다. 예수님의 질문을 분석해 볼 때 몇 개는 단순히 알기 위하여 물어 보신 것이 있었으나(막 6:38, 8:23, 눅 8:30)대부분은 명확한 교육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유할꼬?"(막 4:30)하는 물음 후에 그가 바랐던 생각을 이야기(비유)로 차근차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질문에 대하여 항상 친절하며 조심성과 동정심을 가지시고 답변하셨다. 항상 묻는 말에는 진지한 태도로 임했으며 진실한 질문에 대하여는 결코 경시하지 않으셨으며 조롱에 대해서도 방임하지 않고 결과는 회피하지 않으셨다.
3. 예수님의 교육목적
(1)구속의 목적
예수님의 이상은 상당히 놀랍다. 그러기에 선한 생을 위하여 사랑을 나눠주심으로 사셨기에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눅 10:10). 또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요 10:10)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생명력이 없는 사람에게 풍성하고 넘치는 생명을 살게 하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렇게 사셨고, 가르치셨고 기록하고 있다.
(2) 육체적 안녕의 목적
사람에게 있어서 질병으로부터의 고침은 예수님의 사업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마 2:16). 그러나 몸의 가치는 영혼의 가치에 비교할 수 없이 약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 하시고 육체적 안녕을 위하여 최선을 다 하셨으며 육체적 치유를 통해서 심령상의 축복을 도모하도록 모색하셨다(마 9:2-8;).
(3)올바른 행위의 강조목적
예수님께서는 간접적 암시뿐 아니나 직접적 격려로 행위를 변화시키기에 힘쓰셨다. 부자가 죄를 지게 된 것은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걸식하는 자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눅 16:19-31).
(4) 건설적인 성격의 목적
예수님의 교훈은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규제보다는 하라는 적극적인 이상과 충성을 내세웠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금지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선하고 아름다우며 참된 것을 하라고 권면하신 것이다.
4. 예수님의 교육형태
예수님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형태는 설교(preaching)며, 이 설교에서 다가오는 사건에 나팔부는 사자로 또한 기쁜 소식을 선포한다는 전도의 의미가 내포되어져 있다.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의 생활과 함께 그 현장 한복판에 찾아가셔서, 그곳에서 대화하면서 가르치셨고, 가르치실 때마다 인간 생활전체가 곧 설교의 장이 되었다.
가르치는 방법은 비유(parable)이였으며 청취대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리새파사람, 로마사람, 서기관:-율법을 절대적 가치 규범으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을 비판적인 (논쟁적 성격, 변증적 언어); 둘째, 대중들: 이적을 기다리는 무리들(기적과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선포) 셋째, 제자들: 자기가 직접 부른 사람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행하시며 바리새인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고난받는 자의 종으로서의 자기 정체를 알려 주셨다.
쉐릴(Lewis Sherrill)교수는 예수님의 교육형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청중들에게 맞추어 적응된 것; 예를 완벽하게 들고 있다. 셋째, 간단하지만 논리적이다. 넷째,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다섯째, 진리를 고양시키고 나아가서는 진리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여섯째, 진지할 뿐 아니라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특성을 조심 있게 그리고 다양한 접근을 하셨던 예수님의 교육 형태는 모든 계층에 대한 복음을 증거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1) 권위 있는 교육 형태
예수님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권위가 있었다.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추측이나 불확실한 상징적인 내용들이 없다.
"무리가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 함이니라"(마 7:28)고 기록한 것처럼 권위가 있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혹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등의 자신 없는 표현이 없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마 23:36-39) 와 같이 확신 있게 말을 했다. 그는 자기의 사상을 자기 스스로 말할 수 만 있었다면 대단히 훌륭한 사상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기관들의 사상과 그 처지를 일축해 버리고 전설을 기초로 삼고 있는 그들의 사상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옮겨 놓았다.9)
예수님의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말하는 권위 있는 태도에 군중이 감동을 받고 그의 체험을 통한 사실과 진리의 말에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는 분을 만났다(요 3:2; 4:29)고 믿고 말하게 되었다. 그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비웃고, 놀리고, 비판하던 산혜드린 회원도 결국 그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었다.
(2) 인내를 가진 교육 형태
예수님은 그가 가르쳐야만 할 사람에게 대하여 놀랄만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제성을 띠고 이끌기를 거절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지대로 강요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매우 존중하였다.10) 그는 자신이 베풀 수 있는 기적의 힘을 아무렇게나 쓰지 않으므로 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현혹을 주거나 판단을 그르치게 하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교훈의 기본이 되는 말씀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 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5)하였다. 예수는 강요의 방법을 쓰지 않고 권유로 "나는 진리이니 나와 함께 있으면 너는 진리를 발견하리라"(요 7:17)고 하였다.
(3) 인격존중 교육 형태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가 자기의 결정을 자기가 하도록 하는 것이 예수의 교육원칙이었다. 이것은 개개인의 인격존중이며 자아인식의 문제이다. 일찍이 그리이스의 소크라테스도 교육에 있어서 지식인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지식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색과 탐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무비판적으로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오직 자유로운 대화를 통하여 보편적인 개념 즉 진리에로 가려고 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학생들도 그러한 존재임을 확신하였다.11) 소크라테스가 그처럼 개인적인 대화를 통하여 사고하게 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도록 유도했던 것이 그를 그토록 위대한 사상가와 철학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는 그의 교훈으로서 세계가 일찍이 경험한 사실을 상기하게 하고 또 의문을 가지도록 크게 자극을 시키기도 하였다. 예수는 어떤 문제에 해답을 주었다기보다는 세계에 문제를 제시하고 세계로 하여금 거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 자신의 영적 통찰력과 실제에 대한 지각력을 사용하도록 하였다.12)
(4) 모본의 교육 형태
예수는 자신이 교훈한대로 실천하여 본을 보여 줌으로 교육의 진실성을 나타냈다.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애매하거나 추상적이거나 불확실하지 않고,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본을 보여주는 사랑의 방법으로 교육하였다.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교사 자신의 존재로서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학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인격의 영향력 때문이다. 사람은 인격을 지닌 사람들과의 만남으로부터 배움을 갖게 된다. 동기유발적 암시나 모방의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은 한 인격이 다른 인격과 더불어 만남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 자신의 주변에 두시고 그들을 각기 다른 상황들 속에서 "부르심"을 통하여 따르게 하였다. 열 두 제자들을 훈련시킴의 가장 큰 비결은 인격적인 교제였고 그 주된 목표는 봉사에 있었다.13) 현대에서는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정기적인 교제에 주안점을 두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아임스는 말하고 있다.14)
[미주]
1) H.H.Horne, [예수님의 교육방법론], 박영호 역, (서울:기독교문서 선교회, 1983), p. 11.
2) 천정웅, [교사이신 예수님], (서울:지혜문화사, 1983), p. 11.
3) 정웅섭, [기독교 교육개설] (서울:대한기독교 교육협회, 1989), pp. 113-115.
4) 김문철, [교회 교육사론], (서울:종로서적, 1989), p. 22.
5) 스튜어트, J. S. [예수의 생애와 교훈], 문창수, 김성수, 역 (서울:정경사, 1981), p. 98.
6) Ibid., p. 99.
7) Ibid., p. 100.
8) Ibid., p. 100.
9) Stuart, J. S. [예수의 생애와 교훈], 김성수 역. (서울:정경사, 1981), p. 103.
10) Stuart, op. cit., p. 104.
11) 신득렬, [교육사상 연구], (대구:계명대학교 출판부, 1970), p. 91.
12) Stuart, op. cit., p. 105.
13) H.H.Horne, op. cit., pp. 179-180.
14) Liroy,Aims, [제자삼는 사역의 기술], (서울:한국네비게이토 선교회, 1981), p. 63.
Ⅲ. 예수님의 교사상
예수님의 교육훈련에 앞서 예수님은 누구시며, 과연 예수님은 교육자인지, 가르치려고 온 스승인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호온(H.H.Horn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한분의 교사로서 지니셨던 자질과 위대한 스승으로서 그가 지니셨던 성품
들을 취하여 그것으로서 우리들 자신을 한번 측정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이상으로 사
용할 수 도 있을 것이다".1)
복음서를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은 가르치는 스승으로, 진리를 전하는 설교자, 선지자로 앞날을 말하는 예언자로 그리고 병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온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가르치고 메시지를 전파하며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또 제자들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였다(마 28:10-20).
예수님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면 여러 가지 인물로 묘사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연구하는 각 계 학자들은 자기들의 입장에 따라 예수님을 정의하고 해석하며 지칭하고 있다. 사회 계획의 신학자들은 예수를 사회 혁명의 기수로 정의하였고, 묵시적 종말론자들은 예수님을 초자연적 신비와 기적을 베푸는 자로 생각하게 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육자들은 예수님을 역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교육자로 정의하는 것이다.2)
그러나 예수님을 이해함에 있어서 보다 넓은 다른 면을 제거한 채 한 면만을 강조함은 부당하다. 예수님을 구속사적 성취의 목적으로 볼 때 교사이상인 의미와 교사 이하의 의미가 있었으므로 해서 사람들을 참으로 가르칠 수 있었던 스승이였다.3)
1. 성서적 근거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마 8:19) 신약성서에서 4복음서를 기록한 기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선생이라는 호칭을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다. 한 서기관이 부를 때 "선생님이시여..."(마 5:35), 회당장이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할 때에도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며"(눅 7:40), 예수님 자신의 제자된 시몬을 부를 때 시몬의 대답이 "선생님 말씀하소서"(요 1:38), 라고 하였고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보고 ''랍비''(선생님)이라고 불렀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마 4:23-25).
이 밖에도 예수님께 대한 ''선생님''의 칭호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가 있다. 요한복음 13:13절에서는 예수님 자신도 ''나는 선생''이라 표현하셨으며 키헬이 쓴 [신학사전]을 보면 예수님 자신을 선생이라 한곳이 29번 나오며,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디다스카로스(didaskalos,교사)라고 부른 것이 58번, 디다스카로스 대신 랍비(rabbi) 나 랍오니(raboni)라 부른 것이 14번 사용되었다고 기록 되여 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유대사회에서 제자들에게는 물론 그의 반대자들 혹은 일반인에게도 선생으로 인정 받으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이나 성전, 혹은 공적인 장소에서 회중들을 직접 가르치셨으며, 제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시작 할 때는 갈릴리 회당에서부터 시작하셨다(마 5:1-12).
당시 회당은 민중학교로서 유대인에게는 중요한 교육기관 이였다. 예수님께서도 이곳 회당에서 회중들에게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성경을 가르치셨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들이 대부분 이었다.
산상수훈(마 5장)은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치신 내용인데 이렇게 제자들에게는 산이나 바위 어떤 때에는 길을 지나 가시면서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 이였다(마 28:19-20).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서기관과는 달리 극히 대조적으로 권위가 있었다. 옛 유대의 권위에 호소하지 않고 율법을 인용할지라도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위임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치는 형식이 따로 없으며 아주 알기 쉽고 단순한 것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독립된 하나의 교사만은 아니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틀림없는 교사의 활동으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기 위해서 가르치시는 데에 본이 되신 분인 것을 볼 수 가 있으며, 뚜렷한 교육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 했으며 또한 다 이루셨다. 예수님은 그 뚜렷한 교육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목적을 가지고 최선의 방법을 가르쳤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였던 것이다.
2. 예수님의 교육방법
예수님의 생애중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고, 병을 고쳐 주신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일반적으로 선생님으로 부른 사실을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능력에 있어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명한 교사는 교회의 기본 신앙안에서 그들 자신이 경험하고 발견 될 수 있도록 올바른 행위의 내적 근원과 만나도록 학생을 돕는데 힘써야 한다".4)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을 찾아 나서 제자들을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신 것이다.
(1) 구전 교육방법
예수님은 가르치는 데 입으로 전하는 구전 교육을 중심으로 하였다. 글로 쓰거나 쓰기 하면서 가르치지 않고 이야기로 가르치셨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글씨를 쓴 기록은 한 번 군중에게 잡혀온 여인을 구하기 위해서 땅에 쓴 것(요8:18) 밖에는 없다. 그가 가르친 국언, 명구, 신앙과 도덕 등 결정적으로 지은 모든 말씀 곧 " 하나님의 신학"은 모두 갈릴리 농부와 어부들의 기억을 정리하여 문자로 기록된 말이다.5) 구전식 교육방법은 위험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농부가 곡식이 결실할 때까지 계속 돌모는 것처럼 예수도 가르친 말씀에 대해 계속 돌보아 주셨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의 목적을 달성하였다.6)
(2) 사건과 현장중심 교육방법
예수의 교훈 대부분은 충분한 원인을 가진 사건과 현장에서 추출되어 나왔다. 어떤 특수한 사건에도 미리부터 생각하고 목적한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설명하였다. 회당에서 반신불수 만난일(마 12:10) 길가에서 귀족청년과 대화(마 21:16), 제자들의 돌연 논쟁(눅 9:46),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바리새인들의 질문(마 22:17) 등 이 모든 사건을 통하여 자기가 목적하는 교훈을 주었다. 예수님의 교훈 대부분은 분명히 어떤 특별한 사건에 관련하여 준 것이지만 지금도 그 교훈은 진리이다.7)
(3) 감명을 주는 교육 방법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청주의 입장이 되어 교훈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가 가르친 교훈은 듣는 청중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청중은 모세의 율법에 의문을 가지기 때문에 예수는 율법으로써 자기의 교훈을 전개하였고, 거기서 또한 하나님의 더 좋은 율법의 말씀을 전하였다. 또 청중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심을 쏟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나라 없는 처지에서 영적 국가인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하였다.8) 그가 쓰는 말은 청중들에게 맞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이며 박력 있는 용어들이었다. 그래서 듣는 이로 쉽게 이해하고 감동을 받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급하거나 조급하게 말하지 않고 차분히 단계적으로 가르쳤다.
(4) 질문과 답변형식 교육방법
질문의 형식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하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특별한 방법이다. 예수님 자신이 많은 질문을 던지셨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질문을 하도록 권장하였다. 예수님의 질문을 분석해 볼 때 몇 개는 단순히 알기 위하여 물어 보신 것이 있었으나(막 6:38, 8:23, 눅 8:30)대부분은 명확한 교육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유할꼬?"(막 4:30)하는 물음 후에 그가 바랐던 생각을 이야기(비유)로 차근차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질문에 대하여 항상 친절하며 조심성과 동정심을 가지시고 답변하셨다. 항상 묻는 말에는 진지한 태도로 임했으며 진실한 질문에 대하여는 결코 경시하지 않으셨으며 조롱에 대해서도 방임하지 않고 결과는 회피하지 않으셨다.
3. 예수님의 교육목적
(1)구속의 목적
예수님의 이상은 상당히 놀랍다. 그러기에 선한 생을 위하여 사랑을 나눠주심으로 사셨기에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눅 10:10). 또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요 10:10)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생명력이 없는 사람에게 풍성하고 넘치는 생명을 살게 하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렇게 사셨고, 가르치셨고 기록하고 있다.
(2) 육체적 안녕의 목적
사람에게 있어서 질병으로부터의 고침은 예수님의 사업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마 2:16). 그러나 몸의 가치는 영혼의 가치에 비교할 수 없이 약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 하시고 육체적 안녕을 위하여 최선을 다 하셨으며 육체적 치유를 통해서 심령상의 축복을 도모하도록 모색하셨다(마 9:2-8;).
(3)올바른 행위의 강조목적
예수님께서는 간접적 암시뿐 아니나 직접적 격려로 행위를 변화시키기에 힘쓰셨다. 부자가 죄를 지게 된 것은 재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걸식하는 자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눅 16:19-31).
(4) 건설적인 성격의 목적
예수님의 교훈은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규제보다는 하라는 적극적인 이상과 충성을 내세웠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금지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선하고 아름다우며 참된 것을 하라고 권면하신 것이다.
4. 예수님의 교육형태
예수님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형태는 설교(preaching)며, 이 설교에서 다가오는 사건에 나팔부는 사자로 또한 기쁜 소식을 선포한다는 전도의 의미가 내포되어져 있다.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의 생활과 함께 그 현장 한복판에 찾아가셔서, 그곳에서 대화하면서 가르치셨고, 가르치실 때마다 인간 생활전체가 곧 설교의 장이 되었다.
가르치는 방법은 비유(parable)이였으며 청취대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바리새파사람, 로마사람, 서기관:-율법을 절대적 가치 규범으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을 비판적인 (논쟁적 성격, 변증적 언어); 둘째, 대중들: 이적을 기다리는 무리들(기적과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선포) 셋째, 제자들: 자기가 직접 부른 사람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행하시며 바리새인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고난받는 자의 종으로서의 자기 정체를 알려 주셨다.
쉐릴(Lewis Sherrill)교수는 예수님의 교육형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청중들에게 맞추어 적응된 것; 예를 완벽하게 들고 있다. 셋째, 간단하지만 논리적이다. 넷째,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다섯째, 진리를 고양시키고 나아가서는 진리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여섯째, 진지할 뿐 아니라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특성을 조심 있게 그리고 다양한 접근을 하셨던 예수님의 교육 형태는 모든 계층에 대한 복음을 증거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1) 권위 있는 교육 형태
예수님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권위가 있었다.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추측이나 불확실한 상징적인 내용들이 없다.
"무리가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 함이니라"(마 7:28)고 기록한 것처럼 권위가 있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혹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등의 자신 없는 표현이 없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마 23:36-39) 와 같이 확신 있게 말을 했다. 그는 자기의 사상을 자기 스스로 말할 수 만 있었다면 대단히 훌륭한 사상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기관들의 사상과 그 처지를 일축해 버리고 전설을 기초로 삼고 있는 그들의 사상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옮겨 놓았다.9)
예수님의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말하는 권위 있는 태도에 군중이 감동을 받고 그의 체험을 통한 사실과 진리의 말에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는 분을 만났다(요 3:2; 4:29)고 믿고 말하게 되었다. 그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비웃고, 놀리고, 비판하던 산혜드린 회원도 결국 그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었다.
(2) 인내를 가진 교육 형태
예수님은 그가 가르쳐야만 할 사람에게 대하여 놀랄만한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강제성을 띠고 이끌기를 거절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지대로 강요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매우 존중하였다.10) 그는 자신이 베풀 수 있는 기적의 힘을 아무렇게나 쓰지 않으므로 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현혹을 주거나 판단을 그르치게 하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교훈의 기본이 되는 말씀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 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5)하였다. 예수는 강요의 방법을 쓰지 않고 권유로 "나는 진리이니 나와 함께 있으면 너는 진리를 발견하리라"(요 7:17)고 하였다.
(3) 인격존중 교육 형태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가 자기의 결정을 자기가 하도록 하는 것이 예수의 교육원칙이었다. 이것은 개개인의 인격존중이며 자아인식의 문제이다. 일찍이 그리이스의 소크라테스도 교육에 있어서 지식인이 무지한 사람들에게 지식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색과 탐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무비판적으로 의견을 수용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오직 자유로운 대화를 통하여 보편적인 개념 즉 진리에로 가려고 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학생들도 그러한 존재임을 확신하였다.11) 소크라테스가 그처럼 개인적인 대화를 통하여 사고하게 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도록 유도했던 것이 그를 그토록 위대한 사상가와 철학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는 그의 교훈으로서 세계가 일찍이 경험한 사실을 상기하게 하고 또 의문을 가지도록 크게 자극을 시키기도 하였다. 예수는 어떤 문제에 해답을 주었다기보다는 세계에 문제를 제시하고 세계로 하여금 거기에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 자신의 영적 통찰력과 실제에 대한 지각력을 사용하도록 하였다.12)
(4) 모본의 교육 형태
예수는 자신이 교훈한대로 실천하여 본을 보여 줌으로 교육의 진실성을 나타냈다.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애매하거나 추상적이거나 불확실하지 않고,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본을 보여주는 사랑의 방법으로 교육하였다.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교사 자신의 존재로서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학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인격의 영향력 때문이다. 사람은 인격을 지닌 사람들과의 만남으로부터 배움을 갖게 된다. 동기유발적 암시나 모방의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은 한 인격이 다른 인격과 더불어 만남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 자신의 주변에 두시고 그들을 각기 다른 상황들 속에서 "부르심"을 통하여 따르게 하였다. 열 두 제자들을 훈련시킴의 가장 큰 비결은 인격적인 교제였고 그 주된 목표는 봉사에 있었다.13) 현대에서는 제자를 삼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정기적인 교제에 주안점을 두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아임스는 말하고 있다.14)
[미주]
1) H.H.Horne, [예수님의 교육방법론], 박영호 역, (서울:기독교문서 선교회, 1983), p. 11.
2) 천정웅, [교사이신 예수님], (서울:지혜문화사, 1983), p. 11.
3) 정웅섭, [기독교 교육개설] (서울:대한기독교 교육협회, 1989), pp. 113-115.
4) 김문철, [교회 교육사론], (서울:종로서적, 1989), p. 22.
5) 스튜어트, J. S. [예수의 생애와 교훈], 문창수, 김성수, 역 (서울:정경사, 1981), p. 98.
6) Ibid., p. 99.
7) Ibid., p. 100.
8) Ibid., p. 100.
9) Stuart, J. S. [예수의 생애와 교훈], 김성수 역. (서울:정경사, 1981), p. 103.
10) Stuart, op. cit., p. 104.
11) 신득렬, [교육사상 연구], (대구:계명대학교 출판부, 1970), p. 91.
12) Stuart, op. cit., p. 105.
13) H.H.Horne, op. cit., pp. 179-180.
14) Liroy,Aims, [제자삼는 사역의 기술], (서울:한국네비게이토 선교회, 1981), p.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