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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규목사 (순복음인천교회)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결산”, “결산.” 벌써 2003년 마지막 달 12월 첫 주, 또 성찬 주일입니다. 새 목표를 세운 지 엊그제 같은데, 참 세월이 빠릅니다. 이제 12월도 한 달이 체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쯤 되면, 신문에, 뉴스에 꼭 등장하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연말정산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세금을 줄여보려고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심지어 세금공제를 더 받으려고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10월 달입니다. 울산의 모 사찰에서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발부해서 관련 기사들이 구속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말결산해야 할 것은 “돈”만이 아니라, “신앙” 결산입니다. “내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가?” 나의 삶에, 내 자신의 결산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결산하는 12월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인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기준으로 결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로 결산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4장 3절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결산해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4절인 것입니다."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님이시니라”, “다만 나를 판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를 결산할 때, 자기에게 발전이 있습니다. 변화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과거를 반성할 때,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꿈을 꾸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2003년을 마감하면서 열한 달 동안 힘써 산 우리가, 이제 결산해보자는 것입니다. 과연 나의 삶 속에서 버릴 것은 뭘까? 나의 삶 속에서 정말로 자랑스러운 것은 뭘까? 취할 것은 뭘까?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산을 잘 함으로 말미암아 2003년도를 잘 마감하고, 2004년도를 잘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게을렀다
첫째로, “게을렀다.” 아니다. 여러분 속으로 생각해보세요. “나는 게을렀다. 나는 아니다.” 아마 내가 설교자로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게을렀다” 그러면, 아마 항의할 분도 많이 계실 거예요. “목사님, 우리가 지난 한 해 게을렀다니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얼마나 내가 바쁘게 살았는데요.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요. 아니, 게을렀다니 말도 안 됩니다.” 아마 그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쁜 것과 부지런한 것은, 같은 말은 아니다. “아, 바쁘게 살았다. 그것이 곧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건 같은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일이 많을수록 냉철한 계획이 있습니다.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잘 관리합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고 신앙으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게을렀다고 말하는 이유는 삶의 진보와 열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을렀다고 말하는 이유가 뭐냐? 왜 게을렀느냐? 과연 나의 삶에 진보가 왔느냐? 나의 삶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열매가 맺어졌느냐? 나의 삶에 진보가 없다면, 나의 삶 속에 열매가 없다면, 아무리 바쁘게 살았어도 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과연 나의 신앙은 일년 전보다 성장했는가? 내 인격과 삶의 자세가 일년 전보다 성숙해졌는가? 지금 당장 주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열매가 있는가? 거기서 “아멘”, “아멘”, “아멘” 했다면 그 사람은 부지런하게 산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게 살았다 하더라도 “글쎄요”, “글쎄요”, “글쎄요” 했다면, 틀림없이 게으르게 산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게으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예수님은 게으름을 “악”이라고 말합니다. “악.” 게으름을 보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마태복음 25장 26절에 보니까,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주인이 올 때까지 그냥 땅에 묻어 놨다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달랑, 달랑, 달랑, 달랑 오니까, 아마 그 사람은 “난 본전 안 까먹었습니다. 주인님이 주신 것, 주인님이 주신 것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욕 안 먹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인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게으른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을 보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이 없다면, 신앙의 발전이 없다면, 열매가 없다면 주님은 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어떠한 사람이냐?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모든 면에서 부지런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는 주님을 섬기는 데 부지런한 성도가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주일성수예배가 부지런하고, 찬양이 부지런하고, 기도가 부지런하고, 전도가 부지런하고, 양육이 부지런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부지런해야 그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또 전심전력하여 신앙의 진보를 이뤄야한다고 그랬습니다. 보세요. 디모데전서 4장 15절 말씀이십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신앙이 진보된 것을, 그 삶이 성숙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라. 우리가 부지런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영적인 복뿐만 아니라, 땅의 복도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보세요. 잠언서 10장 4절 말씀이십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손이 부지런해서 여러분께서, 하나님이 주신 부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정직하지 않았다
두 번째입니다. “정직하지 않았다.” 아니다. “정직하지 않았다.” 아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2003년도 우리 순복음인천교회가 여섯 가지 기도제목을 걸었습니다. 그 중에 세 번째가 뭡니까? “거짓 없는 정직”이었습니다. 첫째는 “전쟁 없는 평화”, 두 번째는 “갈등 없는 화해”, 세 번째는 “거짓 없는 정직”, 네 번째는 “욕심 없는 나눔”, 다섯 번 째는 “슬픔 없는 기쁨”, 여섯 번째는 “분열 없는 통합”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없는 전쟁으로 살겠다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더 희망이 없는 사람이고, 기도는 열심히 했는데 정말 내가 정직하게 살았나, 정직하게 살려고 내가 몸부림 쳐봤나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다니는 성도들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뭐냐? 정직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기 원합니다. 성령 받기 원합니다. 축복 받기 원합니다.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내가 정직하게 살겠다, 정직해야 된다. 정직, 정직, 정직을 말하는 성도가, 말하는 교인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미난 얘기할까요. 아빠가 저녁에 피곤하게,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셨어요. 이제 몸을 다 씻고, 저녁을 먹고, 신문을 보면서, 텔레비전 연속극을 봅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쫄랑, 쫄랑, 쫄랑 왔어요. “아빠, 전화 왔어요”, “누군데?”, “몰라요”, “없다고 해.” 그뿐이 아닙니다. 구역장이 성도에게 전화 걸었습니다. “구역예배 날짜가 목요일 열 시입니다. 어느 집입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되도 안 와요. 너무 답답하니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합니다. “오늘 구역예배 어떻게 되셨죠?”, “글쎄,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요.” 바쁘긴 뭐가 바빠. 여러분, 일주일 자기가 해야 할 일 중에, 스케줄을 짠 것 중에, 주중에 구역예배보다 더 바쁜 일이 어디 있어. 구역예배를 제일 중심의 일로 보면, 그 다음의 일은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얀 거짓말은 할 수 있어.” 아니에요. 하얀 거짓말도 거짓말이고, 작은 거짓말도 거짓말이고, 큰 거짓말도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은 죄입니다. 물에다 큰 바위를 넣어도 빠지고, 주먹만한 돌을 넣어도 빠지고, 팥만한 모래를 넣어도 빠져요. 빠지긴 다 빠지는데 소리만 풍덩, 풍덩, 쏙. 차이는 요정도 차이로 다 빠지고 다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존경하는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거짓이 잠깐은 통할 수 있어도 영원히 통할 수는 없다.” 순간의 체면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거짓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사탄은, 사탄은 뭐냐? “거짓의 아비”라고 그랬습니다. 사탄이 누구냐? “거짓의 아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거짓말 너무 너무 좋아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아직도 사탄을 아비로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싫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의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결국은 거짓말하고 죽고 말았습니다(행 5:4하). 우리가 정말로 잘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기도도 많이 해야 됩니다. 성령충만을 해야 됩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 결과가 뭐냐? 우리가 정말로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마디로 말하면 뭘까?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다.” 그렇습니다. 잠언서 14장 11절 말씀이십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그랬습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그뿐이 아닙니다. 욥기서 8장 6절입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그랬습니다. 욥기서 8장 6절이라고 그랬습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이것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 아버지 약속이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정직할 때 우리가 복 받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정직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데요. 하나님이 기뻐하신데요. 잠언서 23장 16절입니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시원하리라.” 하나님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십니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내 속이 시원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유쾌하게 해드릴 수 있다면, 우리 하나님 마음을, 정말 속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뭐냐? 우리가 정직을 말하면,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그랬습니다. 우리 모두 남의 거짓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정직합시다. 한 번 따라합시다. “나부터 정직하자”, “나부터 정직하자.” 그렇게 살기를 정말 원하시면 “아멘” 하시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정직할 때, 주님의 성산에 거한다(시 15:1-2).
셋째, 나만 위해 살았다
세 번째입니다. “나만 위해 살았다.” 아니다. “나만 위해 살았다.” 아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우리 교회 기도제목 네 번째가 뭡니까? “욕심 없는 나눔”입니다. 우리 순복음인천교회 목회정신이 뭡니까? “예수 사랑, 사랑실천”인 것입니다. 교회 들어올 때는 예수 사랑 받으러 옵니다. 예수 사랑 받고 나서 세상으로 갈 때는, 세상으로 사랑실천 하러 갑니다. 그 말이 뭡니까? “남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 말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본 회퍼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을 위한 존재”, “남을 위한 삶”, “남을 위한 존재”, “타자를 위한 삶”이라고 본 회퍼는 예수님을 평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뭐냐? 간단합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뭐냐? 머리를 길게 하고, 예수님처럼 모습을 어떻게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면 그것이 예수님을 닮는 삶이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며 살 때, 자기 몸에게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이웃에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그랬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이거지. 하나님이 여기 있냐, 저기 있냐 말할 필요가 없다 이거지.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을 위해 살면, 벌써 그 안에는 하나님이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 안에서 벌써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다, 율법이 이루어졌다, 그런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돌이켜봐야 됩니다. 지난 일년 간 나는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았나, 지나간 일년간 우리는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았나, 한국교회는, 순복음인천교회는 지난 일년 간 불신자를 위해서 살았나, 이웃을 위해서 살았나, 질문하고 대답해봐야 할 것입니다. 개인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가, 내 가정만 자랑하고, 내 집만 자랑하고, 내 교회만 위하고, 내 교단만 위하고, 혹이라도 아니면 기독교만 위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교회가 더 건강하려면 이제 교회의 담을 넘어서, 교단의 담을 넘어서, 교파의 담을 넘어서, 이제 기독교의 담을 넘어서 불신자의 세계로 가야 합니다.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복음 가지고, 성령의 힘을 의지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제는 찾아가는 것입니다. 구하는 기도만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찬송만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제 기독교가 산 기독교가 되고, 이 기독교가 정말 세계를 다 덮어버리려면 성령 받고 권능을 얻어서,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야 한다 그 말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었을 때,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이고 그런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야, 교회 참 멋지다. 야, 교회 정말 살아있다. 야, 정말 교회가 예수님을 닮았다.” 여러분, 불신자가 예수님을 잘 압니다. 불신자가 예수님을 모를 것 같아요? 잘 압니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님을 보여주지 못하니까, 불신자가 교회로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선 먼저, 나부터, 우리부터, 순복음인천교회부터, 한국의 교회부터 예수님을 보여주는 겁니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만 위하는 삶은 어둡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 살면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0절 말씀이십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그래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해서 눈물을 흘립시다. 이웃을 위해서 땀을 흘립시다. 이웃을 위해서 헌신의, 봉사의 피를 흘려 보십시다. 자기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자기만을 위해서 땀을 흘리고, 자기만을 위해서 피를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나보다 부족한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불쌍히 보고, 긍휼히 보고, 울어주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래서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주는 삶으로 살아가는 삶, 이런 삶이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 보십시다. 꿈을 이루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넷째,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자
네 번째, 하나 더 합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자.”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자” 이것이 오늘 결론의 메시지입니다. 혹이라도 내가 게을렀다 하더라도, 정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만 위해 살았다 하더라도, 이제 남은 12월 한 달 동안,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한 달을 일년 같이.” 열한 달 동안 잘못 산 것을, 오늘 이제 결산을 해봤더니 “아, 아니었구나.” 이제 나머지 12월 한 달 동안 “그렇다. 내가 성경 안에서 부지런하자. 내가 정직하자. 남을 위해 살자. 한번 해보자.” 성령이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 따라합시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런 격언이 있지 않습니까?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기회다” 그럽니다. 12월 한 달을 의미 있게 보내면, 정말로 남은 한 달을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면 2003년도 성공한 것이고, 2004년도 빛나게 될 것이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는 겁니다. 회개가 뭡니까? 돌아서는 것입니다. 잘못했던 일에서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이제 하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새벽기도 해야겠다” 하고 안 했지만 하는 겁니다. 효 실천 안 했으면 하는 겁니다. 양육 안 했으면 하는 겁니다. 자기 발전을 위한 독서와 운동도 하는 겁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서, 자기 건강을 위해서 운동해야 되요. 자기 발전을 위해서 책도 읽어야 되요. 신문도 봐야 되요. 특별히 복음 실은 국민일보를 봐야 되요. 거기에는 정치뉴스, 사회뉴스, 경제뉴스만 아니라 뭐가 더 들어갔습니까? 복음뉴스가 들어갔습니다.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혹이라도 주님의 은혜 때문에 잘 하고 있다면, 감사하시고 더 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또 시편 101편 6절에 보니까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그랬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인도에서 생명을 바친, 성녀라고 하는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고, 충성하라고 부르셨다.”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고, 충성하라고 부르셨다.” 이 말이 여러분에게 들려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성공만 하고자 하면, 틀림없이 실패하고 망합니다. 그러나 충성하고자 하면, 틀림없이 흥하고 성공을 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 왕, 솔로몬 왕은 초기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사울 왕, 대단한 사람입니다. 솔로몬 왕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충성이 끝까지 가지 못해서 결국은 사울 왕은 처참하게 망했고, 처참하게 죽었고, 솔로몬 왕은 그 자손들이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남은 한 달을 일년처럼 보내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베드로후서 1장 5절로 7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그래서 우리는 올라가고, 성숙되고, 진보될 것을 말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해주십니다.
결론입니다. 지금은 결산할 때인 것입니다. 한 해의 결산을 잘 해야, 우리의 일생이 끝나는 날 후회 없는 결산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힘으로 안 됩니다. 능으로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영, 하나님의 영,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수 믿는 믿음이 확실함을 갖고,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자가 되고, 결국은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결산”, “결산.” 벌써 2003년 마지막 달 12월 첫 주, 또 성찬 주일입니다. 새 목표를 세운 지 엊그제 같은데, 참 세월이 빠릅니다. 이제 12월도 한 달이 체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쯤 되면, 신문에, 뉴스에 꼭 등장하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연말정산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세금을 줄여보려고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심지어 세금공제를 더 받으려고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10월 달입니다. 울산의 모 사찰에서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발부해서 관련 기사들이 구속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말결산해야 할 것은 “돈”만이 아니라, “신앙” 결산입니다. “내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가?” 나의 삶에, 내 자신의 결산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결산하는 12월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인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기준으로 결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로 결산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4장 3절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그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결산해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4절인 것입니다."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님이시니라”, “다만 나를 판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를 결산할 때, 자기에게 발전이 있습니다. 변화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과거를 반성할 때,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꿈을 꾸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2003년을 마감하면서 열한 달 동안 힘써 산 우리가, 이제 결산해보자는 것입니다. 과연 나의 삶 속에서 버릴 것은 뭘까? 나의 삶 속에서 정말로 자랑스러운 것은 뭘까? 취할 것은 뭘까?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산을 잘 함으로 말미암아 2003년도를 잘 마감하고, 2004년도를 잘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게을렀다
첫째로, “게을렀다.” 아니다. 여러분 속으로 생각해보세요. “나는 게을렀다. 나는 아니다.” 아마 내가 설교자로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은 게을렀다” 그러면, 아마 항의할 분도 많이 계실 거예요. “목사님, 우리가 지난 한 해 게을렀다니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얼마나 내가 바쁘게 살았는데요.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요. 아니, 게을렀다니 말도 안 됩니다.” 아마 그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쁜 것과 부지런한 것은, 같은 말은 아니다. “아, 바쁘게 살았다. 그것이 곧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건 같은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일이 많을수록 냉철한 계획이 있습니다.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잘 관리합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고 신앙으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게을렀다고 말하는 이유는 삶의 진보와 열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을렀다고 말하는 이유가 뭐냐? 왜 게을렀느냐? 과연 나의 삶에 진보가 왔느냐? 나의 삶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열매가 맺어졌느냐? 나의 삶에 진보가 없다면, 나의 삶 속에 열매가 없다면, 아무리 바쁘게 살았어도 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과연 나의 신앙은 일년 전보다 성장했는가? 내 인격과 삶의 자세가 일년 전보다 성숙해졌는가? 지금 당장 주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열매가 있는가? 거기서 “아멘”, “아멘”, “아멘” 했다면 그 사람은 부지런하게 산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게 살았다 하더라도 “글쎄요”, “글쎄요”, “글쎄요” 했다면, 틀림없이 게으르게 산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게으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예수님은 게으름을 “악”이라고 말합니다. “악.” 게으름을 보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마태복음 25장 26절에 보니까,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주인이 올 때까지 그냥 땅에 묻어 놨다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달랑, 달랑, 달랑, 달랑 오니까, 아마 그 사람은 “난 본전 안 까먹었습니다. 주인님이 주신 것, 주인님이 주신 것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욕 안 먹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인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게으른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을 보고, 악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이 없다면, 신앙의 발전이 없다면, 열매가 없다면 주님은 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어떠한 사람이냐?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모든 면에서 부지런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는 주님을 섬기는 데 부지런한 성도가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주일성수예배가 부지런하고, 찬양이 부지런하고, 기도가 부지런하고, 전도가 부지런하고, 양육이 부지런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부지런해야 그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또 전심전력하여 신앙의 진보를 이뤄야한다고 그랬습니다. 보세요. 디모데전서 4장 15절 말씀이십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신앙이 진보된 것을, 그 삶이 성숙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줘라. 우리가 부지런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영적인 복뿐만 아니라, 땅의 복도 받는다고 그랬습니다. 보세요. 잠언서 10장 4절 말씀이십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손이 부지런해서 여러분께서, 하나님이 주신 부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정직하지 않았다
두 번째입니다. “정직하지 않았다.” 아니다. “정직하지 않았다.” 아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2003년도 우리 순복음인천교회가 여섯 가지 기도제목을 걸었습니다. 그 중에 세 번째가 뭡니까? “거짓 없는 정직”이었습니다. 첫째는 “전쟁 없는 평화”, 두 번째는 “갈등 없는 화해”, 세 번째는 “거짓 없는 정직”, 네 번째는 “욕심 없는 나눔”, 다섯 번 째는 “슬픔 없는 기쁨”, 여섯 번째는 “분열 없는 통합”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없는 전쟁으로 살겠다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더 희망이 없는 사람이고, 기도는 열심히 했는데 정말 내가 정직하게 살았나, 정직하게 살려고 내가 몸부림 쳐봤나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다니는 성도들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뭐냐? 정직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기 원합니다. 성령 받기 원합니다. 축복 받기 원합니다.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내가 정직하게 살겠다, 정직해야 된다. 정직, 정직, 정직을 말하는 성도가, 말하는 교인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미난 얘기할까요. 아빠가 저녁에 피곤하게,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셨어요. 이제 몸을 다 씻고, 저녁을 먹고, 신문을 보면서, 텔레비전 연속극을 봅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쫄랑, 쫄랑, 쫄랑 왔어요. “아빠, 전화 왔어요”, “누군데?”, “몰라요”, “없다고 해.” 그뿐이 아닙니다. 구역장이 성도에게 전화 걸었습니다. “구역예배 날짜가 목요일 열 시입니다. 어느 집입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되도 안 와요. 너무 답답하니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합니다. “오늘 구역예배 어떻게 되셨죠?”, “글쎄,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요.” 바쁘긴 뭐가 바빠. 여러분, 일주일 자기가 해야 할 일 중에, 스케줄을 짠 것 중에, 주중에 구역예배보다 더 바쁜 일이 어디 있어. 구역예배를 제일 중심의 일로 보면, 그 다음의 일은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얀 거짓말은 할 수 있어.” 아니에요. 하얀 거짓말도 거짓말이고, 작은 거짓말도 거짓말이고, 큰 거짓말도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은 죄입니다. 물에다 큰 바위를 넣어도 빠지고, 주먹만한 돌을 넣어도 빠지고, 팥만한 모래를 넣어도 빠져요. 빠지긴 다 빠지는데 소리만 풍덩, 풍덩, 쏙. 차이는 요정도 차이로 다 빠지고 다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가 존경하는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거짓이 잠깐은 통할 수 있어도 영원히 통할 수는 없다.” 순간의 체면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거짓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사탄은, 사탄은 뭐냐? “거짓의 아비”라고 그랬습니다. 사탄이 누구냐? “거짓의 아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거짓말 너무 너무 좋아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아직도 사탄을 아비로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싫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의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결국은 거짓말하고 죽고 말았습니다(행 5:4하). 우리가 정말로 잘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기도도 많이 해야 됩니다. 성령충만을 해야 됩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 결과가 뭐냐? 우리가 정말로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마디로 말하면 뭘까?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있다.” 그렇습니다. 잠언서 14장 11절 말씀이십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그랬습니다.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그뿐이 아닙니다. 욥기서 8장 6절입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그랬습니다. 욥기서 8장 6절이라고 그랬습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이것보다 더 확실한 하나님 아버지 약속이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정직할 때 우리가 복 받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정직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데요. 하나님이 기뻐하신데요. 잠언서 23장 16절입니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시원하리라.” 하나님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십니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내 속이 시원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유쾌하게 해드릴 수 있다면, 우리 하나님 마음을, 정말 속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뭐냐? 우리가 정직을 말하면,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그랬습니다. 우리 모두 남의 거짓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정직합시다. 한 번 따라합시다. “나부터 정직하자”, “나부터 정직하자.” 그렇게 살기를 정말 원하시면 “아멘” 하시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정직할 때, 주님의 성산에 거한다(시 15:1-2).
셋째, 나만 위해 살았다
세 번째입니다. “나만 위해 살았다.” 아니다. “나만 위해 살았다.” 아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우리 교회 기도제목 네 번째가 뭡니까? “욕심 없는 나눔”입니다. 우리 순복음인천교회 목회정신이 뭡니까? “예수 사랑, 사랑실천”인 것입니다. 교회 들어올 때는 예수 사랑 받으러 옵니다. 예수 사랑 받고 나서 세상으로 갈 때는, 세상으로 사랑실천 하러 갑니다. 그 말이 뭡니까? “남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 말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본 회퍼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을 위한 존재”, “남을 위한 삶”, “남을 위한 존재”, “타자를 위한 삶”이라고 본 회퍼는 예수님을 평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뭐냐? 간단합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는 것이 뭐냐? 머리를 길게 하고, 예수님처럼 모습을 어떻게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면 그것이 예수님을 닮는 삶이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며 살 때, 자기 몸에게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이웃에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그랬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이거지. 하나님이 여기 있냐, 저기 있냐 말할 필요가 없다 이거지.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을 위해 살면, 벌써 그 안에는 하나님이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 안에서 벌써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졌다, 율법이 이루어졌다, 그런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돌이켜봐야 됩니다. 지난 일년 간 나는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았나, 지나간 일년간 우리는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았나, 한국교회는, 순복음인천교회는 지난 일년 간 불신자를 위해서 살았나, 이웃을 위해서 살았나, 질문하고 대답해봐야 할 것입니다. 개인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가, 내 가정만 자랑하고, 내 집만 자랑하고, 내 교회만 위하고, 내 교단만 위하고, 혹이라도 아니면 기독교만 위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교회가 더 건강하려면 이제 교회의 담을 넘어서, 교단의 담을 넘어서, 교파의 담을 넘어서, 이제 기독교의 담을 넘어서 불신자의 세계로 가야 합니다.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복음 가지고, 성령의 힘을 의지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이제는 찾아가는 것입니다. 구하는 기도만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찬송만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제 기독교가 산 기독교가 되고, 이 기독교가 정말 세계를 다 덮어버리려면 성령 받고 권능을 얻어서,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야 한다 그 말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었을 때,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이고 그런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야, 교회 참 멋지다. 야, 교회 정말 살아있다. 야, 정말 교회가 예수님을 닮았다.” 여러분, 불신자가 예수님을 잘 압니다. 불신자가 예수님을 모를 것 같아요? 잘 압니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님을 보여주지 못하니까, 불신자가 교회로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선 먼저, 나부터, 우리부터, 순복음인천교회부터, 한국의 교회부터 예수님을 보여주는 겁니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만 위하는 삶은 어둡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 살면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0절 말씀이십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그래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해서 눈물을 흘립시다. 이웃을 위해서 땀을 흘립시다. 이웃을 위해서 헌신의, 봉사의 피를 흘려 보십시다. 자기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자기만을 위해서 땀을 흘리고, 자기만을 위해서 피를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나보다 부족한 사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불쌍히 보고, 긍휼히 보고, 울어주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래서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을 주는 삶으로 살아가는 삶, 이런 삶이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 보십시다. 꿈을 이루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넷째,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자
네 번째, 하나 더 합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자.”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자” 이것이 오늘 결론의 메시지입니다. 혹이라도 내가 게을렀다 하더라도, 정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만 위해 살았다 하더라도, 이제 남은 12월 한 달 동안,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한 달을 일년 같이.” 열한 달 동안 잘못 산 것을, 오늘 이제 결산을 해봤더니 “아, 아니었구나.” 이제 나머지 12월 한 달 동안 “그렇다. 내가 성경 안에서 부지런하자. 내가 정직하자. 남을 위해 살자. 한번 해보자.” 성령이 도와 주실 줄 믿습니다. 따라합시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런 격언이 있지 않습니까?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기회다” 그럽니다. 12월 한 달을 의미 있게 보내면, 정말로 남은 한 달을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면 2003년도 성공한 것이고, 2004년도 빛나게 될 것이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는 겁니다. 회개가 뭡니까? 돌아서는 것입니다. 잘못했던 일에서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이제 하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새벽기도 해야겠다” 하고 안 했지만 하는 겁니다. 효 실천 안 했으면 하는 겁니다. 양육 안 했으면 하는 겁니다. 자기 발전을 위한 독서와 운동도 하는 겁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서, 자기 건강을 위해서 운동해야 되요. 자기 발전을 위해서 책도 읽어야 되요. 신문도 봐야 되요. 특별히 복음 실은 국민일보를 봐야 되요. 거기에는 정치뉴스, 사회뉴스, 경제뉴스만 아니라 뭐가 더 들어갔습니까? 복음뉴스가 들어갔습니다.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혹이라도 주님의 은혜 때문에 잘 하고 있다면, 감사하시고 더 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또 시편 101편 6절에 보니까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그랬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인도에서 생명을 바친, 성녀라고 하는 테레사 수녀가 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고, 충성하라고 부르셨다.”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하라고 부르지 않고, 충성하라고 부르셨다.” 이 말이 여러분에게 들려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성공만 하고자 하면, 틀림없이 실패하고 망합니다. 그러나 충성하고자 하면, 틀림없이 흥하고 성공을 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성공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 왕, 솔로몬 왕은 초기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사울 왕, 대단한 사람입니다. 솔로몬 왕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충성이 끝까지 가지 못해서 결국은 사울 왕은 처참하게 망했고, 처참하게 죽었고, 솔로몬 왕은 그 자손들이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남은 한 달을 일년처럼 보내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베드로후서 1장 5절로 7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그래서 우리는 올라가고, 성숙되고, 진보될 것을 말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해주십니다.
결론입니다. 지금은 결산할 때인 것입니다. 한 해의 결산을 잘 해야, 우리의 일생이 끝나는 날 후회 없는 결산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힘으로 안 됩니다. 능으로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영, 하나님의 영,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수 믿는 믿음이 확실함을 갖고,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자가 되고, 결국은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