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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신명기 5:21
제목 :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오늘 십계명의 마지막 종착역에 도달하였습니다. 마지막 계명에 들어가기 전에 지난 10주 동안의 과정을 잠시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첫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위대한 선지자들의 능력을 봅니다. 엘리야는 그가 기도한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제단위에 놓인 제물을 불살랐습니다. 그가 하늘이 문을 열어서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다시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행하신 기적과 같이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신약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말씀하였더니 죽었던 시신이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문둥병자가 그 분 앞에 나올 때 깨끗함을 받습니다. 소경이 눈을 뜹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어서도 위대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분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않던 우리의 욕심이 그 말씀 앞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돌려서 십계명을 봅니다. 그 계명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눈길과 섭리를 봅니다. 여러분들은 십계명을 볼 때마다 무엇을 느끼십니까? 저는 십계명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죄인이고 무력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인생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하신 말씀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여 계신다고 할지라도 내가 구원받을 수 없는, 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십계명을 보면서 ‘참으로 나는 죄인이다. 나의 능력으로는 노력으로는 이 계명의 어떤 것 하나도 바로 지킬 수 없다’라는 나의 무력감과 부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마련하신 놀라운 해결 방법, 즉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하시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시키러 왔노라”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없는 삶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의 원리를 따라 십계명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원리로 생각해 보면,
제1계명은 유일한 사랑의 대상 하나님, 하나님 그분만이 영원히 사랑할 대상이십니다.
제2계명은 사랑의 올바른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그 분은 사람이 만든 어떤 형상이나 이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찾아오시는 구원의 방법으로만 나아가는 것이니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3계명은 사랑의 올바른 태도를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찬양, 습관적인 예배,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경건의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오직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요구합니다.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날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확인하는 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 날, 우리가 예배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는 축복과 위로와 은총으로 우리 앞에 임재하여 오시는 영광스러운 예배를 드리는 날로 창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제5계명은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만나는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처음으로 만나는 부모와의 인간관계가 우리의 신앙과 삶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이니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제6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함에 있어서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을 폭행하고 죽이는 것은 창조주되신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요 범죄인 것입니다.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네 이웃의 가정을 보호하라는 것과, 나아가서는 부부생활에 있어서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은 네 남편이요 네 아내라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를 거역하면 가정의 행복이 깨어지고 사랑의 배신감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제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터전인 다른 사람의 재산, 물질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도적질하는 사람은 도적질하지 말고 오히려 남을 구제할 수 있도록 힘써 일을 하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9계명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가 입으로 하는 범죄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제 10계명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문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도 말지리라”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은 세상의 법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법은 어떤 구체적인 행위가 이루어졌을 때 그 행위에 대하여만 처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서 생기는 탐심을 금할 것을 명령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언제나 탐심이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느니라”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왕상8: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나이다”
대상28:9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 앞에서 겉모습으로 마치 쇼(show)를 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경건한 겉모습은 갖추고 있으나 마음 중심에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 차있는 사람을 향하여 엄중하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기도하고, 은밀하게 구제한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의인들은 자기가 행한 의로운 일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주여 언제 우리가 그랬습니까? 언제 주님이 병들었을 때 우리가 돌아보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우리가 찾아갔으며, 굶주렸을 때 먹게 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혔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곧 내게 대하여 한 것이다.”
다른 한편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적도 행했고, 주의 이름으로 복음도 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아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을 아십니다.
한편, 이 계명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임을 확인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요즈음 세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연봉을 받는지 금액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이것으로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판단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계명을 살펴봅시다. “네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게 하였습니다. 온 천하보다, 온 우주보다 나의 생명을 더 사랑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십시오. 이 분이 어떤 분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 옆에 앉아있는 바로 이 분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탐심입니다.
그 탐심 때문에 이웃 사람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도적질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고하게 거짓증거를 합니다. 자신의 탐심을 채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고통을 주는 범죄로 연결되어 집니다. 이웃을 향한 모든 범죄의 시초는 바로 탐심입니다. 탐심이 자라면 행동으로 옮겨지고, 또 끝장을 보는데 까지 계속 성장합니다.
아담의 탐심은 에덴동산의 모든 풍요를 일순간에 잃어버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여리고 성에서 외투와 은을 몰래 감춘 아간의 탐심은 가나안 복지에 입성해서 첫 범죄자로 그 영광을 먹칠해 버렸습니다.
사울왕은 황소 몇 마리를 탐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가롯 유다는 은30개와 자기의 선생이신 예수님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그러면 우리가 이 탐심의 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믿음으로 이깁니다.
요일5: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인데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해답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이 탐심에서 이기게 만듭니다.
공중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면서 저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중의 새보다, 들의 백합화보다 못합니까? 무가치한 존재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을 통하여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불경기를 맞이하고, 때로는 실직을 당하고, 건강을 잃어버리는 때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안심입니다.
둘째, 이 세상의 무가치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돈으로 만족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결코 만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결코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되며 돈을 지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옷을 다섯벌씩 껴 입지 못합니다. 하루에 10끼씩 먹는 것이 아닙니다. 가져도 가져도 늘 부족합니다.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만족함이 없습니다. 더 갈증만 생길 뿐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살아계실 때 어떤 목사님 일행이 그 분의 식사초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고급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식사를 할 때 정 회장이 잠시 안쪽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초대받은 그 목사님은 ‘아마 따로 좋은 음식을 준비해 놓고 혼자서만 먹을려고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그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죽을 먹고 있었답니다. “내 속이 안 좋아서 기름진 음식을 못 먹는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죽을 먹은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겨우 하루에 세 끼 죽만 먹는 재벌” 그 이후로 자신이 비록 재물이 많지않아도 하루 세 번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 주심을 감사하였답니다.
세상의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이니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면서 감사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영적인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나그네와 같은 삶이니 영원히 살아갈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날마다 쌓아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주신 것에 대하여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6장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빈궁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환경이나 소유나 여건에 의하여 우리의 행복이 지배받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진 것으로 기뻐하고 슬퍼하지만 우리 성도는 우리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을 보십니까? 천국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바로 우리의 것임을 믿으십니까? 더욱 감사한 것은 그 영광스러운 천국에 무가치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순간 우리가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영광의 하나님의 보좌에서 천국의 풍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탐심을 물리치십시오.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서서 “주님,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윤성화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