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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지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KL)에서 사업을 하는 김용철 집사님의 초청으로 총회세계선교회의 이사 목사님 여섯 부부가 이번 한 주간 다녀오게 되었다.
김용철 집사님은 이사 목사님 한분의 동생으로서 말레이지아는 물론 우리나라 공영방송 프로에도 몇 번 출연한 유명(?)인사 이었다. 코타키나발루의 건설 현장에 있다가 우리가 그 곳에 도착한 날 밤에 함께 들어와서 우리 일행을 영접해 주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형님 목사님 일행을 위해 KL의 자신의 사업장인 큰 규모의 한국식당에서 우리 일행을 극진하게 대접하며 숙소도 6성급 호텔을 준비하여 자기 사업장 차량으로 일행의 모든 일정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이었다.
일행중엔 현지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는 목사님도 있었고 ‘엄마, 울지마!’의 저자요 세 자녀를 글로벌 리더로 키워내고 있는 세미나로 각광을 받고 있는 황경애 사모님의 KL시내 한인교회 네 곳의 집회가 즉흥적으로 잡히는 바람에 스케쥴이 굉장히 복잡했지만 그 집사님은 자그마한 짜증이나 싫은 내색 전혀없이 웃으며 우리들을 편안하게 안내 해 주었다.
말레이지아에 온 지가 올해로 이십삼년째인데 그 동안 자신의 겪었던 많은 고생스러웠던 날들을 회상하듯 잠깐씩 고백하면서도 그의 입에선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인식당 부지가 삼천평이나 되는데, 어느날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몇 성도와 함께 식당의 한 룸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신이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약100여평의 건물을 교회로 내어 주어 지금까지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그렇게 바쁘면서도 아프카니스탄 현지 선교와 몽골 등으로 다니며 후원을 통한 복음선교를 하고 있었으며 많은 미얀마 난민들을 자신의 레스토랑에 취업시키고 또 그들이 모여 신앙생활하는 미얀마 교회를 개척해 주고 지속해서 후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식당에서 국수 등 간단한 것을 대충 먹고 잠도 하루 서너시간도 못자며 열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훌륭해 보였다.
“저는 지금 천국에 빨리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가 주를 위해 순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저는 자기것을 모두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 것이 어디 있나요? 원래부터 내것이 아닌데 무얼 바친다는 건가요? 모두 하나님 것인데요....”
참 부끄러웠다. 그는 현재 서리집사였는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목사보다 훨씬 목사다운 성도였다.
오! 주여
우리 김용철집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만방에 나타나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일년 칠월 셋째 주)
김용철 집사님은 이사 목사님 한분의 동생으로서 말레이지아는 물론 우리나라 공영방송 프로에도 몇 번 출연한 유명(?)인사 이었다. 코타키나발루의 건설 현장에 있다가 우리가 그 곳에 도착한 날 밤에 함께 들어와서 우리 일행을 영접해 주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형님 목사님 일행을 위해 KL의 자신의 사업장인 큰 규모의 한국식당에서 우리 일행을 극진하게 대접하며 숙소도 6성급 호텔을 준비하여 자기 사업장 차량으로 일행의 모든 일정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이었다.
일행중엔 현지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는 목사님도 있었고 ‘엄마, 울지마!’의 저자요 세 자녀를 글로벌 리더로 키워내고 있는 세미나로 각광을 받고 있는 황경애 사모님의 KL시내 한인교회 네 곳의 집회가 즉흥적으로 잡히는 바람에 스케쥴이 굉장히 복잡했지만 그 집사님은 자그마한 짜증이나 싫은 내색 전혀없이 웃으며 우리들을 편안하게 안내 해 주었다.
말레이지아에 온 지가 올해로 이십삼년째인데 그 동안 자신의 겪었던 많은 고생스러웠던 날들을 회상하듯 잠깐씩 고백하면서도 그의 입에선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인식당 부지가 삼천평이나 되는데, 어느날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몇 성도와 함께 식당의 한 룸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신이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약100여평의 건물을 교회로 내어 주어 지금까지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그렇게 바쁘면서도 아프카니스탄 현지 선교와 몽골 등으로 다니며 후원을 통한 복음선교를 하고 있었으며 많은 미얀마 난민들을 자신의 레스토랑에 취업시키고 또 그들이 모여 신앙생활하는 미얀마 교회를 개척해 주고 지속해서 후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식당에서 국수 등 간단한 것을 대충 먹고 잠도 하루 서너시간도 못자며 열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훌륭해 보였다.
“저는 지금 천국에 빨리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가 주를 위해 순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저는 자기것을 모두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 것이 어디 있나요? 원래부터 내것이 아닌데 무얼 바친다는 건가요? 모두 하나님 것인데요....”
참 부끄러웠다. 그는 현재 서리집사였는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목사보다 훨씬 목사다운 성도였다.
오! 주여
우리 김용철집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만방에 나타나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일년 칠월 셋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