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중부협의회 목회자 부부 수양회를 마치고 2박3일의 일정으로 중국청도엘 가야 되는데 이상하게 맘이 내키질 않았다. 그러나 총회 중진들과의 일정이 잡혀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박을순 권사님께서 소천 하셨다는 문자를 받게 되었다.

순간 앞이 캄캄해 지면서 어떻게 하든 빨리 돌아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이미 저녁 비행기는 끝이 나고 하룻 밤을 지내고 귀국해야하는데 휴가철이라 좌석이 있는지 불확실 하지만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돌아가야 하니 비행기 표를 구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좀 더 찾아 뵙고 전화도 자주 드렸어야 하는데 몸이 더 쇠약해 지시면서 면역력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도 자제해야하고 또 전화도 걸면 받으시느라 힘드실것 같아 늘 기도로만 간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소천 하셨다고 하니 권사님께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평소에 목회자인 나를 끔찍하게 사랑하시고 또 의지 하시면서 그 어려운 순간순간들을 잘 견디시고 이겨내셨는데 막상 소천 하셨다고 하니 전화라도 한번 더 해드릴 걸 하는 후회스런 맘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다행히도 오전 9:45 첫 비행기 좌석을 얻어 귀국길에 올라 서울대 병원 영안실에서 입관을 참관케 되어 소천하신 사랑스런 권사님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지만 다시는 이 땅에서 뵐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슬프고 아쉬웠다.

물론 우리 권사님께서는 고통스런 육신의 옷을 벗으시고 주님 품안에 안기셔서 너무 너무 행복하고 편안하시겠지만 남은 가족들과 교우들의 정섞인 이별의 마음이 아쉽고 애석하고 슬픈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십이 년 전, 통나무교회 시절에 산성가족이 되신 후 ‘ 목사님 ! 저는 이제 새 삶을 사는 것 같아요.’하시며 너무 좋아 하시고 근 사십 여년 동안 장복하시던 두통약을 끊고 기뻐하시던 권사님. 그 후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제 목회를 도와 여전도회장을 몇 번이나 하시고 구역장 직분을 감당 하시면서 열정적으로 주의 일에 힘쓰시던 우리 권사님의 소원은 병상에서 일어나 좀 더 주의 일에 쓰임 받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제 내일은 권사님의 발인이 있는 날인데 어떻게 집례해야 하나 - . 그러나 참아야지. 이제 꿈에도 그리던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엘 가면 영정사진 모습대로 활짝 미소띤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게 될텐데···········.

오! 주여

우리 김장로님을 위로해 주시고

건강과 소망의 믿음으로 이별의 슬픔을 이기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일년 팔월 둘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