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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진목사 (와싱톤한인교회)
시편 23편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인생이 누리는 은혜와 풍성한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게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과연 나의 인생의 목자가 되고 계십니까?
부족함이 없다는 다윗의 고백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경 속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고 기억되는 말씀을 들라면 많은 사람들이 시편 23편을 꼽습니다. 장례식 자리에서도 가장 많이 읽혀지는 말씀이 시편 23편입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이 지은 노래로 전해져 오는 이 시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희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6주 동안 저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중심으로 연속설교를 드리려고 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제목 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금번에 시편 23편의 말씀을 연속설교로 채택하게 된 이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금년도 저희 교회의 표어가 "내 백성을 위로하라"입니다. 힘들고 거친 인생 길을 헤쳐가시는 여러분들께 금년 한해 동안 우리 교회는 위로와 격려를 전해드리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금년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교회는 이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23편의 말씀을 강단에서 전하게 됨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또 금년에 저희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일치가 되는 일입니다.
또 한가지 동기가 있습니다. 금년은 저희 교회가 Virginia 연회로 옮긴지 2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20년 전 Roanoke에서 열린 VA 연회에서 저희 교회의 이적이 박수 속에 통과된 바 있습니다. 또 저도 한국감리교회에서 멤버쉽을 미국연합감리교회로 옮겨서 목사회의에서 박수를 받으며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감리교 목회자는 매년 파송을 받습니다만, 금년 연회는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과 함께 달려온 20년의 세월, 20년의 사역은 한마디로 말해서 목자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온 시간들이었습니다. 20년 전 파송을 받아 부임한 후 첫 번째 주일 설교가 "그리스도를 따라서"였는데, 많이 방황하고 헤매면서 왔지만, 그래도 우리 주님은 참으로 좋은 목자이셨습니다. 그러기에 20년을 마감하고 또 새롭게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목자되심을 노래한 다윗의 노래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금번 연속설교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I.
오늘은 시편 23:1, 첫 번째 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첫 번째 구절은 이 시의 서론이면서 동시에 결론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목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양을 지키고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했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 목자라는 말을 썼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예언자들이 목자들을 꾸짖는 말씀들을 발견합니다. 여기에서 목자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는 물론 왕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서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사용되어 온 목자의 의미를 하나님께 적용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이론이나 논리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다윗의 체험 속에서 나오는 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목자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목자의 책임과 목자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에서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다윗이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신다는 이 노래 속에서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인도 그리고 보호하심입니다. 목자는 양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풀을 뜯게 합니다.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또 양들을 물가로 인도하여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양들에게 어려움과 위험이 다가올 때 앞장서서 양들을 지키고 보호합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바로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윗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인생의 걸음을 이끌어 주시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나의 목자이시라고.
여러분, 이 아침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을 누구시라고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목축업이 드물었던 한국사회에서는 하나님은 농부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하나님께서 길이 되신다는 고백이 제 마음 속에 많은 공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 인생과 역사의 길이 되시는 주님, 우리 인생의 갈 길을 깨우치시고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길이란 표현을 통하여 가깝고도 깊이 있게 느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누구십니까?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서 누구시라고 외치실 수 있습니까?
II.
이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여러분, 다윗의 이 고백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그렇게 느끼고 계십니까? 다윗은 양을 치던 목동의 자리에서 일약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범인들, 또 이 땅을 찾아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부족함이 없다고 외칠 수 있습니까?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수없이 많은 것 아닙니까? 다윗의 이 외침에 오늘 우리들 과연 "아멘" 할 수 있습니까?
(1)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족함의 문제는 많은 경우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부족함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적게 가지고도 부족함이 없음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14 이하에서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이 고백은 바로 부족함을 해결하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여러분, 많이 가졌다고 더 많이 행복한 것 아닙니다. 못 가졌다고 더 많이 불행한 것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면 어떤 형편 속에서도 풍성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 또 행복과 불행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면 그것으로 넉넉함을 깨닫게 됩니다.
Max Lucado가 시편 23편을 가지고 Traveling Light(우리말로는 짐을 버리고 길을 묻다로 번역되었음) 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트리니다드 로비고 라는 조그만 나라의 토바고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한센병 환자(과거에는 나병으로 불리었음)가 있었습니다. 이 환자의 이야기는 그 섬에 전도여행을 갔던 한 단기선교사에 의하여 알려졌습니다. 이 선교사가 선교여행을 끝내기 전날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가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함께 부르고 싶은 찬송이 있으면 누구든지 이야기하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여인의 얼굴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주 끔찍한 얼굴이었습니다. 귀도 떨어져 나가 없고, 코도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입술은 다 말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손가락도 다 떨어져 나간 뭉툭한 손을 번쩍 쳐들고 부르고 싶은 찬송가를 요청했습니다. 여러분, 이 한센병 환자가 부르자고 한 찬송가가 무슨 찬송인지 아십니까? 489장,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찬송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 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 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선교사님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다 부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제 다시는 그 찬송을 못 부르실 것 같아요" 그때 선교사님은 대답했습니다: "그럴지 않아요. 다시 부를 수 있을거예요. 그러나 그분과 똑같이 부를 수는 없을 거예요."
인기와 부를 누리면서, 수백만 불 짜리 집에 살면서도, 기쁨과 감사가 없는 사람, 수없이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와 코,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어도 받은 복을 세어보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도 그렇게 받은 복을 세어보며 찬송하며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신다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책임져 주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안전을 위하여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마련합니다. 저는 이런 준비가 다 불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준비해 놓은 그 모든 대책과 하나님의 대책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대책이 더 낫겠습니까? 어느 대책이 더 안전하겠습니까? 어느 대책이 더 부족함이 없겠습니까? 우리 인생들이 준비한 대책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마련해 주시는 대책입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인간의 대책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디에 더 신뢰를 두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대책의 문제는 무언가 잡히는 것, 보이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보이는 것, 보이는 재산, 확실해 보이는 내 자신, 내 능력을 목자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우리가 쌓아놓은 것 만큼도 믿을 수가 없다면, 여러분 그런 하나님 믿을 필요가 있으십니까? 그런 우상 믿어서 무슨 유익을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대책은 우리의 대책보다 훨씬 낫습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정말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끄시고 보호해 주시는데 어떻게 부족함이 틈을 탈 수 있겠습니까?
Calvary Chapel로 널리 알려진 척 스미스 목사님께서 교회를 처음 개척할 당시입니다. 목사님이 수백 불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빚의 목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절친한 부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부자 친구는 척 스미스에게 약간의 돈을 부칠테니 필요한 곳에 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자 친구가 부친다는 돈의 액수가 빚보다 조금 더 많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부인을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음 속에서 "스미스야, 네가 왜 덩실덩실 춤을 추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척 스미스는 "예, 친구가 기도 응답으로 돈을 보낸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춤을 춥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렇다면 너는,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도와주고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에 대해서는 감사해 보았느냐, 춤을 춰 보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보이는 재물, 보이는 사람이 더 좋은 목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재물이, 인간이 목자가 될 때는 언제나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면 더 이상 부족함이 없습니다. 온 천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주시는데, 어떻게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이시면 족합니다. 그분을 목자로 모시면 That''s it! 넉넉합니다. 충분합니다. 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어 주시면 미래의 불안으로 부터도 자유할 수 있기에 정말 부족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자꾸 쌓아 놓으려고 합니까? 미래의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아닙니까? 이 쌓아 놓은 것, 또 내 능력이 나를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 많이, 더 확실하게 쌓아 놓으려는 것 아닙니까? 많이 쌓아 놓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온전히 해방시킬 수는 없습니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연합군 병사들은 많은 어린이들을 camp에 모아서 돌보았습니다. 충분히 먹여주고 입혀 주는데도 한가지 문제는 해결할 길이 막연했습니다. 아이들이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연합군 병사들은 심리학자의 제안을 받아드렸습니다. 그것은 잠자리에 든 어린 아이들 품에 빵을 한 조각씩 안겨주도록 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했더니 아이들은 곧 잠을 잘 자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왜 잠을 못 잔 것입니까?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빵 한 조각씩을 안겨 준 것이 무슨 효과가 있었습니까? 내일도 먹을 것이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일 일은 모릅니다. 죽음 너머도 모릅니다. 인간이 쌓아 놓고 준비해 놓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도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을 목자로 삼으시면 이제는 염려를 놓으실 수 있습니다. 내일을 향한 불안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내일을 위한 준비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영어 성경은 부족함이 없다는 구절은 미래형으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I shall not want, I shall not be in want.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의 미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탄탄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미래에 대한 염려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오늘도, 또 내일도 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III.
여러분, 이같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서 한가지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서 말씀드린다면, 우리 모두가 양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르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양이라고 하면 우리는 순하고, 목축을 위하여 잘 길들여지고 깨끗한 짐승이란 생각을 같습니다. 그러나 중동지방에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 하는 가장 상스러운 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양같은 놈"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양이란 생각이 모자라고 고집이 세며, 지저분한 짐승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은 시력이 나빠서 3m, 즉 10ft 정도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빨도 튼튼하지 못하고 자기를 보호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뿔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이같은 양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양은 누구의 도움과 보호 그리고 인도가 꼭 필요한 짐승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 보호하심 속에서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셔드려야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바르게 설 수 있으며,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누구십니까? 과연 목자이십니까? 나의, 내 인생의 목자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의 인생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양이 되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넉넉한 삶,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Houston 제일감리교회를 섬기셨던 Charles Allen목사님께서 쓰신 God''s Psychiatry(하나님의 마음 치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사업을 시작해서 큰 회사로 성장시킨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장은 성공의 가도를 달려와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한가지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는 긴장에 쌓여있었고, 염려와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던 중 목사를 좀 만나보라는 권고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Allen 목사님은 이 사람에게 처방을 써주었습니다. 그 처방이란 바로 앞으로 1주일 동안 하루에 다섯 번 시편 23편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깊이 있게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식사 후에 그리고 잠자리에서 꼭 시편 23편을 정성스럽게 읽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한꺼번에 몰아서 다섯 번 읽는다든지, 혹은 2,3일 해보고 이제는 잘 아니까 적당히 외워서 넘어간다든지 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간 맞추어서 약을 먹듯이 꼭 처방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런 처방을 하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처방대로 하다가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이 처방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일주일 동안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정성껏, 때를 맞추어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목자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23편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인생이 누리는 은혜와 풍성한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게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과연 나의 인생의 목자가 되고 계십니까?
부족함이 없다는 다윗의 고백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경 속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고 기억되는 말씀을 들라면 많은 사람들이 시편 23편을 꼽습니다. 장례식 자리에서도 가장 많이 읽혀지는 말씀이 시편 23편입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이 지은 노래로 전해져 오는 이 시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희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6주 동안 저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중심으로 연속설교를 드리려고 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제목 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금번에 시편 23편의 말씀을 연속설교로 채택하게 된 이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금년도 저희 교회의 표어가 "내 백성을 위로하라"입니다. 힘들고 거친 인생 길을 헤쳐가시는 여러분들께 금년 한해 동안 우리 교회는 위로와 격려를 전해드리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금년만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교회는 이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23편의 말씀을 강단에서 전하게 됨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또 금년에 저희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일치가 되는 일입니다.
또 한가지 동기가 있습니다. 금년은 저희 교회가 Virginia 연회로 옮긴지 2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20년 전 Roanoke에서 열린 VA 연회에서 저희 교회의 이적이 박수 속에 통과된 바 있습니다. 또 저도 한국감리교회에서 멤버쉽을 미국연합감리교회로 옮겨서 목사회의에서 박수를 받으며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감리교 목회자는 매년 파송을 받습니다만, 금년 연회는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과 함께 달려온 20년의 세월, 20년의 사역은 한마디로 말해서 목자되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온 시간들이었습니다. 20년 전 파송을 받아 부임한 후 첫 번째 주일 설교가 "그리스도를 따라서"였는데, 많이 방황하고 헤매면서 왔지만, 그래도 우리 주님은 참으로 좋은 목자이셨습니다. 그러기에 20년을 마감하고 또 새롭게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목자되심을 노래한 다윗의 노래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금번 연속설교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I.
오늘은 시편 23:1, 첫 번째 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첫 번째 구절은 이 시의 서론이면서 동시에 결론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목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양을 지키고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했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의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 목자라는 말을 썼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곳에서 예언자들이 목자들을 꾸짖는 말씀들을 발견합니다. 여기에서 목자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는 물론 왕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서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사용되어 온 목자의 의미를 하나님께 적용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이론이나 논리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다윗의 체험 속에서 나오는 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목자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목자의 책임과 목자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에서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다윗이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신다는 이 노래 속에서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채워주심과 인도 그리고 보호하심입니다. 목자는 양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풀을 뜯게 합니다. 먹을 것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또 양들을 물가로 인도하여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양들에게 어려움과 위험이 다가올 때 앞장서서 양들을 지키고 보호합니다. 다윗의 생애에서 바로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윗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인생의 걸음을 이끌어 주시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나의 목자이시라고.
여러분, 이 아침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을 누구시라고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목축업이 드물었던 한국사회에서는 하나님은 농부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하나님께서 길이 되신다는 고백이 제 마음 속에 많은 공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 인생과 역사의 길이 되시는 주님, 우리 인생의 갈 길을 깨우치시고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길이란 표현을 통하여 가깝고도 깊이 있게 느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누구십니까?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서 누구시라고 외치실 수 있습니까?
II.
이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여러분, 다윗의 이 고백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그렇게 느끼고 계십니까? 다윗은 양을 치던 목동의 자리에서 일약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범인들, 또 이 땅을 찾아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부족함이 없다고 외칠 수 있습니까?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수없이 많은 것 아닙니까? 다윗의 이 외침에 오늘 우리들 과연 "아멘" 할 수 있습니까?
(1)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족함의 문제는 많은 경우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부족함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적게 가지고도 부족함이 없음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14 이하에서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이 고백은 바로 부족함을 해결하는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우쳐 줍니다.
여러분, 많이 가졌다고 더 많이 행복한 것 아닙니다. 못 가졌다고 더 많이 불행한 것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면 어떤 형편 속에서도 풍성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 또 행복과 불행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면 그것으로 넉넉함을 깨닫게 됩니다.
Max Lucado가 시편 23편을 가지고 Traveling Light(우리말로는 짐을 버리고 길을 묻다로 번역되었음) 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트리니다드 로비고 라는 조그만 나라의 토바고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한센병 환자(과거에는 나병으로 불리었음)가 있었습니다. 이 환자의 이야기는 그 섬에 전도여행을 갔던 한 단기선교사에 의하여 알려졌습니다. 이 선교사가 선교여행을 끝내기 전날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가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함께 부르고 싶은 찬송이 있으면 누구든지 이야기하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여인의 얼굴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주 끔찍한 얼굴이었습니다. 귀도 떨어져 나가 없고, 코도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입술은 다 말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손가락도 다 떨어져 나간 뭉툭한 손을 번쩍 쳐들고 부르고 싶은 찬송가를 요청했습니다. 여러분, 이 한센병 환자가 부르자고 한 찬송가가 무슨 찬송인지 아십니까? 489장,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찬송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 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 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선교사님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다 부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제 다시는 그 찬송을 못 부르실 것 같아요" 그때 선교사님은 대답했습니다: "그럴지 않아요. 다시 부를 수 있을거예요. 그러나 그분과 똑같이 부를 수는 없을 거예요."
인기와 부를 누리면서, 수백만 불 짜리 집에 살면서도, 기쁨과 감사가 없는 사람, 수없이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와 코,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어도 받은 복을 세어보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도 그렇게 받은 복을 세어보며 찬송하며 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신다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책임져 주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안전을 위하여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마련합니다. 저는 이런 준비가 다 불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준비해 놓은 그 모든 대책과 하나님의 대책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대책이 더 낫겠습니까? 어느 대책이 더 안전하겠습니까? 어느 대책이 더 부족함이 없겠습니까? 우리 인생들이 준비한 대책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마련해 주시는 대책입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인간의 대책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디에 더 신뢰를 두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대책의 문제는 무언가 잡히는 것, 보이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보이는 것, 보이는 재산, 확실해 보이는 내 자신, 내 능력을 목자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우리가 쌓아놓은 것 만큼도 믿을 수가 없다면, 여러분 그런 하나님 믿을 필요가 있으십니까? 그런 우상 믿어서 무슨 유익을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대책은 우리의 대책보다 훨씬 낫습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정말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이끄시고 보호해 주시는데 어떻게 부족함이 틈을 탈 수 있겠습니까?
Calvary Chapel로 널리 알려진 척 스미스 목사님께서 교회를 처음 개척할 당시입니다. 목사님이 수백 불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빚의 목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마자 절친한 부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부자 친구는 척 스미스에게 약간의 돈을 부칠테니 필요한 곳에 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자 친구가 부친다는 돈의 액수가 빚보다 조금 더 많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부인을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음 속에서 "스미스야, 네가 왜 덩실덩실 춤을 추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척 스미스는 "예, 친구가 기도 응답으로 돈을 보낸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춤을 춥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렇다면 너는,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도와주고 인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에 대해서는 감사해 보았느냐, 춤을 춰 보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보이는 재물, 보이는 사람이 더 좋은 목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재물이, 인간이 목자가 될 때는 언제나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면 더 이상 부족함이 없습니다. 온 천하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주시는데, 어떻게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한 분이시면 족합니다. 그분을 목자로 모시면 That''s it! 넉넉합니다. 충분합니다. 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3) 셋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어 주시면 미래의 불안으로 부터도 자유할 수 있기에 정말 부족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자꾸 쌓아 놓으려고 합니까? 미래의 불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아닙니까? 이 쌓아 놓은 것, 또 내 능력이 나를 불확실한 미래로부터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 많이, 더 확실하게 쌓아 놓으려는 것 아닙니까? 많이 쌓아 놓으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온전히 해방시킬 수는 없습니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연합군 병사들은 많은 어린이들을 camp에 모아서 돌보았습니다. 충분히 먹여주고 입혀 주는데도 한가지 문제는 해결할 길이 막연했습니다. 아이들이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연합군 병사들은 심리학자의 제안을 받아드렸습니다. 그것은 잠자리에 든 어린 아이들 품에 빵을 한 조각씩 안겨주도록 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했더니 아이들은 곧 잠을 잘 자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왜 잠을 못 잔 것입니까?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빵 한 조각씩을 안겨 준 것이 무슨 효과가 있었습니까? 내일도 먹을 것이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일 일은 모릅니다. 죽음 너머도 모릅니다. 인간이 쌓아 놓고 준비해 놓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도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을 목자로 삼으시면 이제는 염려를 놓으실 수 있습니다. 내일을 향한 불안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내일을 위한 준비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영어 성경은 부족함이 없다는 구절은 미래형으로 옮겨놓고 있습니다. I shall not want, I shall not be in want.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의 미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탄탄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미래에 대한 염려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오늘도, 또 내일도 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III.
여러분, 이같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서 한가지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서 말씀드린다면, 우리 모두가 양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의 인도를 따르는 양이 되어야 합니다.
양이라고 하면 우리는 순하고, 목축을 위하여 잘 길들여지고 깨끗한 짐승이란 생각을 같습니다. 그러나 중동지방에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 하는 가장 상스러운 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양같은 놈"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양이란 생각이 모자라고 고집이 세며, 지저분한 짐승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은 시력이 나빠서 3m, 즉 10ft 정도 이상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빨도 튼튼하지 못하고 자기를 보호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뿔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이같은 양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양은 누구의 도움과 보호 그리고 인도가 꼭 필요한 짐승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 보호하심 속에서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모셔드려야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바르게 설 수 있으며,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누구십니까? 과연 목자이십니까? 나의, 내 인생의 목자이십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의 인생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양이 되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넉넉한 삶,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Houston 제일감리교회를 섬기셨던 Charles Allen목사님께서 쓰신 God''s Psychiatry(하나님의 마음 치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사업을 시작해서 큰 회사로 성장시킨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사장은 성공의 가도를 달려와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한가지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는 긴장에 쌓여있었고, 염려와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던 중 목사를 좀 만나보라는 권고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Allen 목사님은 이 사람에게 처방을 써주었습니다. 그 처방이란 바로 앞으로 1주일 동안 하루에 다섯 번 시편 23편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깊이 있게 읽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아침 식사 후에, 점심 식사 후에, 저녁식사 후에 그리고 잠자리에서 꼭 시편 23편을 정성스럽게 읽으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한꺼번에 몰아서 다섯 번 읽는다든지, 혹은 2,3일 해보고 이제는 잘 아니까 적당히 외워서 넘어간다든지 하면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간 맞추어서 약을 먹듯이 꼭 처방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런 처방을 하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처방대로 하다가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이 처방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일주일 동안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정성껏, 때를 맞추어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목자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시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