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하는 자, 쇠하는 자   (사무엘하 2:1~17, 3:1)

사울의 집안과 다윗의 집안 사이에 전쟁이 오래 계속되었는데 다윗의 집안은 점점 강하여져 가고 사울의 집안은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도 경쟁이 치열한 사회인데 이속에서 우리는 다윗처럼 흥하는 자가 되어야지 사울처럼 쇠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흥하는 자가 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째 중요한 것이 마음의 문제인데 시기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윗과 사울의 관계는 첫째 장인과 사위의 관계이고, 둘째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둘도 없는 친구이고, 셋째 다윗은 사울의 병을 치료해 주는 치료사이고 마지막으로 다윗은 사울 군대의 핵심 장수입니다. 이처럼 사울이 다윗에게 시기심을 가질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의 마음속에 시기, 질투심이 생겨났고 이로 말미암아 사울왕의 마음이 점점 좁아져 갔습니다. 그 결과 사울왕은 쇠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항상 우리 마음에는 비교 의식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을 잘 추스려야 하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마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내 마음을 지켜주십시오. 넓은 마음을 품도록 내 마음을 축복해 주십시오.”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이 마음 생기지 않도록 성령님 막아달라고 기도함으로 흥하는 사람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자세입니다. 다윗의 훌륭한 점은 목동시절의 마음을 그가 왕이 되어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항상 겸손했습니다. 법궤가 돌아 왔을 때 너무 기뻐서 바지가 흘러 내리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미갈이 비판했지만 넓은 마음을 품고 다윗왕은 겸손하게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했다고 하며 낮아졌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 사건을 지적하자 변명하지 않고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베개가 썩도록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반대로 사울왕은 왕이 되기 전과 다르게 왕이 된 이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사무엘 제사장의 말에도 변명하고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흥합니까? 겸손한 자가 흥합니다. 교만한자가 흥합니까? 교만한 자가 쇠하는 것입니다. 항상 겸손하셔서 흥하는 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번째로 다윗은 용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용서받지 못한 죄를 저릴렀습니다. 형을 죽였고, 아버지를 몰아내려 역모를 일으켰고 아버지를 죽이려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요압을 불러서 “절대로 내 아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용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사울은 어떻습니까? 자기 아들 요나단이 다윗 편들었다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 사울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면서 하도 배고프니까 제사장이 주는 제단에 있는 진설병을 먹었습니다. 다윗이 자기도 먹고 자기 부하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때 당시 제사장이 아히멜렉인데 다윗이 도망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 사울이 그 소식을 듣고는 군대를 끌고와서 제사장 아히멜렉부터 그 마을 사람들 모조리 다 죽였습니다. 지독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제사장을 죽일 수 있습니까?

로마서 12장 19~21절 “너희들 남을 원수 갚는 일을 행하지 말아라. 원수 갚는 일은 나에게 맡겨라. 너희가 선으로서 악을 이겨야지 악으로 악을 이기려들지 말아라. 너희들 서로 사랑하라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서로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라.”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남을 용서하는 사람은 흥하게 만들지만 우리 스스로 복수하는 사람은 쇠하게 만들어주십니다. 흥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흥하는 자의 특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울에게서는 하나님이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있을 때도 하나님을 따랐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그가 암나귀를 찾으러 다닐 때는 하나님을 따르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예언자들 틈에 있느냐” 할 정도로 사울이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잘되니까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도 안듣고, 하나님의 종의 말씀도 안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렸다.”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2월 4일 41회 슈퍼볼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 슈퍼볼 게임은 인디아나 ‘콜츠’ 하고 시카고 ‘베어스’ 두 팀이 마이에미에서 참피언을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41회 슈퍼볼의 특징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인디아나팀의 감독이 토니 던지라고 하는 흑인이었고 시카고 베어스의 감독도 로비 스미스라고 하는 흑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농구, 야구, 풋볼 다 흑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지만 감독은 거의 대부분 백인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재주는 곰이 넘는다는 말처럼 흑인들은 고생을 하고 그에 대한 대부분의 영광은 백인 감독들이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41회 슈퍼볼은 흑인 감독들끼리 겨루게 되었고 인디아나 감독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승리를 거둔 토니 던지라고 하는 감독이 말하길 “내가 이같이 슈퍼볼 상을 받게 된 것을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서 최초로 이 상을 받게 된 것을 나는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 후에 그 다음 말이 중요한데, “more then anything, 그 어떤 것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시카고 베어스의 로비 스미스나 나나 다 크리스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주님의 길을 따를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비록 흑인이지만 주님의 길을 끝까지 따를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에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토니 던지는 몇 해 전 하나 뿐인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고 무너지는 아픔이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그때도 토니 던지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갔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언제든지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또한 하나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쇠하는 자가 아니라 흥하는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출처/강용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