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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척받으신 예수님 (마13:53-58)
서 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이므로 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지만 일부 사람들로부터만 인정을 받으셨고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왕따와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왜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배척을 당하여야 하셨습니까?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신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오늘 아침에는 배척받으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메시야로 인정을 받지 못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의 지혜로 고향의 회당에서 하늘나라 진리를 전파하셨는데, 가르치심에 모두가 놀라서 이 사람의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라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리켜서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진리를 전하신 회당은 ‘쉬나고게’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율법을 배우는 장소입니다.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만을 보고 사람이상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가르침의 능력에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누구 하나도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을 옹호하거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언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시기 위해서 요셉과 약혼을 하고 육체관계를 아직 갖지 않았던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그 가문을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죄와 죽음과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시면서도 메시야로 인정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의 원래 신분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해를 받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고 오해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오해를 받을 때에 속이 많이 상하겠지만 속이 상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도 오해를 받으신 것을 생각하시면서 잘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2.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고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배척하였다는 말은 적대시하다, 용납지 않다, 감정을 매우 상하게 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고향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부족해서 배척까지 하였습니다.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격언은 유대나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눅4: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 날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강해를 하셨는데 강해를 듣고 있던 무리들이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알아차리시고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시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배척을 받으셔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 때문입니다.
사53:4-6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고후8:9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들을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갈3:13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은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을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흠도 티도 없으신 하나님의 본체시오 메시야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찔림을 당하시고 버림을 당하시고 가난하게 사시고 저주를 받으시고 배척을 받으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아 또 다른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많은 고통과 버림과 배척을 당하시면서 단 한번도 짜증이나 불평이나 원망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고통을 당하고 버림을 당하고 배척을 당하고 망신을 당할 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신 백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자세로 잘 참고 견디어 내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불신 세계로부터 오해를 받고 배척을 받고 왕따를 당할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배신을 당하고 이용을 당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주님을 생각하면서 잘 견뎌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우리 주님이 머리되시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 참겠느냐는 각오와 결단으로,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잘 지고 달려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3.고향에서 능력을 행치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
본문 5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행하시는 것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장소에서나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실 때 믿음을 보시고 행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나 병을 고치실 때 믿음을 보시고 치료를 하여 주셨습니다.
마8:13에 보면, 하인의 중풍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오신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 마9:2에 보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9:22에 보면,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통을 앓던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9:23에 보면,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가 복을 받고 못 받는 것, 기적을 체험하고 체험을 하지 못하는 것, 병을 고침 받고, 또 받지 못하는 것은 다 믿음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고, 받지 못하는 것, 기적을 체험하고 체험하지 못하는 것, 응답을 받고 받지 못하는 것, 질병을 고침 받고 또 받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믿음의 장소냐 아니면 불신의 장소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믿음의 장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이훈구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