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약1:12)

어느 들판에 진흙더미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포크레인 한 대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사정없이 진흙더미를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진흙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야야!"라고 큰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포크레인은 막무가내로 진흙을 파내서는 트럭에 실었습니다. 그리고는 큰 컨테이너 속으로 옮겼습니다.
진흙은 그 속에서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쇳덩어리 하나가 "쿵!"하면서 자기에게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더니 진흙을 아래로 계속해서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진흙은 밑을 쳐다보았습니다. 밑에는 뾰족한 칼날들이 여러 개 서 있었습니다. 그 속을 통과하는 사이에 진흙의 몸은 갈가리 다 찢겨졌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진흙은 거의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그런데 진흙 앞에는 또 큰 떡메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떡메는 진흙을 보더니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진흙은 이리 맞고 저리 맞고 하는 사이에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참 뒤에 진흙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습니다. 진흙의 몸이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는 살았구나! 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격적인 고통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진흙의 몸에 유약이 발라졌습니다. 물감으로 채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진흙은 활활 타는 불가마 속으로 집어넣어졌습니다. 진흙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완전히 까무러치고 말았습니다. 1∼2시간도 아니고, 이틀 동안이나 불가마 속에서 시달렸습니다. 진흙은 비로소 끄집어냄을 당했지만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한참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후 진흙이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진흙은 정신을 가다듬고서 간신히 눈을 떴습니다. 진흙은 자기의 몸이 그 동안 너무나도 많은 고통을 당했기에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흙은 자기의 몸을 돌아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 귀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시험을 만나는 그 순간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반드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대부호였던 록펠러가 한 번은 시골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있는 어느 호텔에 예약을 했습니다. 몇 일 그곳에 묵을 것이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호텔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를 다 끝내고 세계 제일의 갑부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호텔에서 가장 잘생긴 청년을 택해서 록펠러의 특별시중을 들도록 했습니다. 록펠러는 예정대로 그곳에 와서 몇 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떠날 날이 되었습니다. 록펠러는 체크아웃을 했습니다. 그리고 관례에 따라서 그는 자기의 시중을 든 청년에게 팁을 주었습니다. 청년은 록펠러가 세계 제일 가는 갑부니까 팁을 두둑하게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팁을 받고 보니까 남들이 주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뒤돌아 서서 록펠러가 들으라는 듯이 볼멘소리로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이게 뭐야! 세계에서 제일 가는 대재벌이 쩨쩨하게……"
록펠러는 그 말을 듣고서 청년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정당한 팁을 받으면 자네는 떳떳한 호텔의 직원일세. 그러나 자네가 정당한 팁 이상을 원하고 요구한다면 자네는 구걸하는 거지에 지나지 않을 걸세. 나는 자네를 거지처럼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네. 왜 인줄 아는가? 나는 자네가 하도 친절하고 성실해서 자네를 우리 회사에 특채로 데리고 가려고 생각했기 때문일세. 그러나 이제는 내 생각을 바꾸어야 되겠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말 그대로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확인해 보시기 위함입니다. 시험은 무한정 계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곧 우리를 옳다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야고보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교훈입니다. 편의상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간단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시험을 만났을 때 요구되는 자세가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십시다. 시험을 어떻게 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시험을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시험을 면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험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시험은 좋은 것입니다. '시험은 복된 것이다.' 우리에게 시험이 올 때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것을 잘 견뎌내면, 우리는 시험 너머에 있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미 1:2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벌벌 떨면서 겁먹지도 말고, 억지로 마지못해서 시험을 참으려고 하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시험은 좋은 것이다. 시험은 복된 것이다. 시험 너머에 생명의 면류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쁨으로 잘 견뎌내라는 말씀입니다.
스데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공회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입을 열어서 담대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이 때 스데반이 이를 갈면서 분노 속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이 나쁜 놈들! 너희가 잘될 것 같으냐? 어디 한 번 두고보자!"
이런 식으로 원망했더라면 그의 시험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눈을 들어서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하늘이 활짝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스데반의 모든 고통은 사라진 듯 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원수들까지도 용서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험을 참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옆에서 감명 깊게 지켜보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 곧 바울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결국은 바울도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였습니다. 거기에 귀신들린 여종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점치는 여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 여인에게서 물질적인 이익을 얻던 자들이 바울과 그의 동료 실라를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상소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상한 풍속을 전하면서 빌립보 성을 어지럽힙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발에는 착고가 매였습니다. 그 때 바울은 자기가 억울하게 죽였던 스데반의 얼굴이 머리 속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래. 맞아! 내가 심은 대로 거두는 거야. 내가 스데반을 억울하게 죽였기 때문에 나도 지금 억울하게 죽는 거야. 죽어도 싸지!'
만일 바울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저 눈물과 한숨 속에만 지내고 있었다면 그의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래. 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야! 나는 다메섹 도상에서 벼락맞아 죽었어야 마땅한 사람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주셨어.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어. 거기다 이제는 나도 스데반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할 수 있는 영광까지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극심한 시험 속에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의 찬미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험을 참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옥토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매였던 착고가 다 풀어졌습니다. 그 기적을 보고서 빌립보의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회개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빌립보 교회가 탄생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시험은 무작정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곧 하나님은 우리를 옳다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결코 허락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지우기까지 시험을 참았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에 던지우기까지 참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간다 할지라도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언제나 우리를 안위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확인하고 싶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가? 진실로 사랑하는가?' 이것을 확인해 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중반부를 보십시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확인해 보고 싶으신 것입니다. 사실 평안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험이 임하면,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더 사랑하는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시골에 어떤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집에서 키우는 암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송아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농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내에게 쫓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송아지 쌍둥이를 낳았지 않겠소.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우리 이 중의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칩시다!"
아내는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두 마리 중에 어느 것이 하나님의 소고, 어느 것이 우리의 소예요?"
그러자 농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 아는 수가 있지!"

몇 일 뒤에 두 마리의 송아지 가운데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농부가 얼굴에 근심 띤 빛을 보이면서 아내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여보, 송아지 가운데 한 마리가 죽었소! 그런데 그만 하나님의 소가 죽고 말았지 뭐요!"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왜 매번 우리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소가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진실된 것을 입증해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려라."
물론 아브라함에게는 할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이제는 도로 달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직접 데리고 가시지, 왜 저로 하여금 그 아들을 저의 손으로 죽게 만드십니까? 제가 살인자입니까?"

얼마든지 따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제야 네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줄 알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이삭을 통해서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이삭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결단을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수련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가 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이삭 때문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에 지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신앙수련회에 참석하시는데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는 줄 압니다. 직장에 출근해야 되고, 가게문도 열어야 할 것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너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내게 번제로 드려라."
"주님, 알겠습니다. 제가 도저히 신앙수련회에 참석할 형편이 안되지만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순종하겠습니다. 주를 위해서라면 저의 사랑하는 이삭을 바치겠습니다."
이러한 결단이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옳다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모쪼록 이번 신앙수련회를 통해서 우리의 처음 사랑이 회복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이 물으실 때,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주저없이 진실된 대답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시험을 잘 참고 이겨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12절 끝 부분입니다.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요즘은 경기에서 우승하면 목에 메달을 걸어줍니다. 또는 가슴에 트로피를 안겨줍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경기에서 우승하면 그 사람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주었습니다. 면류관은 승리의 상징입니다.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시험을 잘 참고 이겨내면,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그 면류관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생명은 사망의 반대입니다. 사망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입니다. 지극한 행복, 천국적인 행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생명의 면류관을 부분적으로는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욥이 많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험을 참고 이겨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쓴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험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잘 참고 이겨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그의 머리에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태어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후 1년 7개월이 되었을 때 아주 심한 열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의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불행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8살이 되었을 때 앤 설리반이라는 20살된 아주 헌신적인 여교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앤 설리반은 헬렌 켈러에게 계속해서 이것을 강조시켰습니다.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사람을 결코 패배시킬 수 없다. 하나님은 너의 그 어떠한 환경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는 헬렌 컬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불꽃이 되어서 헬렌 켈러는 자기에게 임한 시험들을 하나씩하나씩 극복하고 이겨내었습니다. 그는 성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우등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1930년대 다녀갔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자기의 삶을 다 살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 참으로 나의 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그의 머리에 씌워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땅에서 시험을 참고 승리할 때, 어느 정도까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생명의 면류관은 우리가 언제 받는 것입니까?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미국인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를 했습니다. 정열을 다 쏟아서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그의 아내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선교사는 외톨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선교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자기의 몸을 미국으로 돌아오는 배에 싣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배가 미국의 항구에 도달했습니다. 갑자기 부두에서 예포소리가 들렸습니다.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갑판 위로 올라왔습니다. 한참 뒤에 그는 그 배에 아프리카로 휴가차 사냥을 갔다오는 미국의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두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습니다. 그 위로 대통령이 걸어갑니다. 수많은 환영인파들이 성조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면서 대통령 내외를 맞이했습니다.
선교사는 일부러 제일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습니다. 이미 환영인파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그는 깊은 고독감과 실패감 때문에 흐느끼면서 쓸쓸히 부두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나 열렬히 환영해 주었는데, 선교지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기까지 한 나는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는구나!"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그의 발을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석양빛이 환하게 그 선교사의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빛 유리가 깔린 길이 예비되고 내가 너를 친히 마중 나갈 것이다. 너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이곳에 너를 위한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날까지 인내하라. 이곳에서 너를 위한 성대한 환영식이 베풀어질 때까지…"

선교사는 그 음성을 듣고 다시금 발길을 돌려 선교지인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선교사역에 더욱더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확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험은 무작정 계속되지 않습니다. 시험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시험은 복된 것입니다. 시험은 좋은 것입니다. 남들도 참아낸 시험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시험 너머에 있는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인내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옳다고 인정하심을 받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박상훈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