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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사58:8~12)
이사야 58장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유대인들의 신앙이 형식화된 데 대한 책망으로 쓰여진 장입니다. 3절을 보면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반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금식하고 자신들을 괴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자신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바로 형식주의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에 따라 교회에 나와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드리면 그것이 예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주의에 빠져 예배의 생명력을 상실한 채 순서만을 되풀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6~7에서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박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꾸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스스로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성도들의 삶이 바로 될 때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굶주리고 헐벗는 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불쌍한 자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형식적으로 금식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삶이 없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역사적 정황이나 사회적 책임에는 전혀 상관없이 예배가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는 삶이 있는 예배입니다. 롬 12:1에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은 "그리하면" 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면"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첫째로 회복의 약속입니다.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라는 말씀은 어둡고 괴로웠던 절망의 밤이 지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아침 태양이 비취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절망가운데 살았던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고난받았던 모든 상처와 아픔들이 싸맴을 받으며 치유되리라는 말씀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라는 말씀은 그 동안의 고난과 어려움에 지쳐 낙오하는 사람들을 전진시키며 뒤에서 공격하는 적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삶이 있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환경을 회복시켜 주셔서 어두움과 절망의 자리를 빛과 희망의 자리로, 아픔과 고통과 상처가 있는 삶의 자리를 기쁨과 싸맴과 평안의 자리로 바꿔 주시며 우리의 삶을 지켜주십니다.
둘째는 기도응답의 약속입니다. 9절을 보면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네가 여기 있다 하리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를 때, 부르짖을 때"라는 말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부를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뜻을 헤아려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여기 있다"는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갈멜산 위에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 450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들이 섬기는 신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해 주실 것을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바알은 "내가 여기 있다"말도 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나타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꿈에서 하나님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불로 응답하소서"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며 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하시는 실존자이시며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을 부름으로 우리를 즉각 도와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 속에 살아 계시면서 우리를 향하여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 네게 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 내게 와서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함으로 어려움이 해결되며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인도하심의 약속입니다. 11절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가기까지 하나님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블레셋이나 아낙 자손들의 앞길을 막을 때는 하나님이 저들을 앞서 인도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항상 너를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저 어느 순간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여호와를 목자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셔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며 우리 육체도 견고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항상 인도해 주심으로 영혼의 만족과 육체의 강건함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물댄 동산의 축복입니다. 11절 하반절에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했습니다. 예레미야 31:12을 보면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들려가며 사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마치 물이 마른 동산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메마른 동산에 물을 대시듯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이스라엘 풍요한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마른 동산에 물을 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예레미야 31:13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과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며 조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물댄 동산에서 대 축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갬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샘이 깊고 크다해도 물이 솟지 못하면 그것은 필요 없는 샘에 불과합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다 말라버렸고 하나님 주시는 축복의 물줄기가 다 말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의 샘이 터지고 축복의 물줄기가 솟아올라서 동산 구석구석으로 물이 흘러서 동산에 물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설명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 같이 끊어지지 않고 솟아나는 은혜의 샘물이 축복의 물줄기가 우리의 심령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 교회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또한 메마르고 삭막한 우리 사회라는 동산에 은혜의 물을 댐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요 7:37~38을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시들고 메말라 가는 내 심령 속에 생명의 물이 흘러 넘칠 때, 반목과 갈등들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가정들 위에 은혜의 샘이 넘칠 때, 증오와 투쟁이 떠나지 않는 이 역사 속에 생명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임재하실 때 물댄 동산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울 것이며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가정과 국가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물댄 동산은 에덴동산의 별명입니다. 범죄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이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되는 삶의 자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우리가 살면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와 기도응답의 축복과 인도하심과 물댄 동산의 축복을 주십니다.
출처/극동방송 설교 중에서
이사야 58장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유대인들의 신앙이 형식화된 데 대한 책망으로 쓰여진 장입니다. 3절을 보면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반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금식하고 자신들을 괴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자신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바로 형식주의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에 따라 교회에 나와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드리면 그것이 예배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주의에 빠져 예배의 생명력을 상실한 채 순서만을 되풀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6~7에서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박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꾸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스스로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성도들의 삶이 바로 될 때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굶주리고 헐벗는 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불쌍한 자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형식적으로 금식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삶이 없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역사적 정황이나 사회적 책임에는 전혀 상관없이 예배가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는 삶이 있는 예배입니다. 롬 12:1에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은 "그리하면" 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면"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첫째로 회복의 약속입니다.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라는 말씀은 어둡고 괴로웠던 절망의 밤이 지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아침 태양이 비취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절망가운데 살았던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고난받았던 모든 상처와 아픔들이 싸맴을 받으며 치유되리라는 말씀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라는 말씀은 그 동안의 고난과 어려움에 지쳐 낙오하는 사람들을 전진시키며 뒤에서 공격하는 적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삶이 있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환경을 회복시켜 주셔서 어두움과 절망의 자리를 빛과 희망의 자리로, 아픔과 고통과 상처가 있는 삶의 자리를 기쁨과 싸맴과 평안의 자리로 바꿔 주시며 우리의 삶을 지켜주십니다.
둘째는 기도응답의 약속입니다. 9절을 보면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네가 여기 있다 하리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를 때, 부르짖을 때"라는 말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부를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뜻을 헤아려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여기 있다"는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갈멜산 위에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 450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들이 섬기는 신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해 주실 것을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바알은 "내가 여기 있다"말도 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나타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꿈에서 하나님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불로 응답하소서"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며 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하시는 실존자이시며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을 부름으로 우리를 즉각 도와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 속에 살아 계시면서 우리를 향하여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 네게 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 내게 와서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함으로 어려움이 해결되며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인도하심의 약속입니다. 11절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가기까지 하나님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블레셋이나 아낙 자손들의 앞길을 막을 때는 하나님이 저들을 앞서 인도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항상 너를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저 어느 순간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여호와를 목자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셔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며 우리 육체도 견고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항상 인도해 주심으로 영혼의 만족과 육체의 강건함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물댄 동산의 축복입니다. 11절 하반절에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했습니다. 예레미야 31:12을 보면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하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들려가며 사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마치 물이 마른 동산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메마른 동산에 물을 대시듯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이스라엘 풍요한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마른 동산에 물을 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예레미야 31:13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과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며 조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물댄 동산에서 대 축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끊어지지 않는 갬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샘이 깊고 크다해도 물이 솟지 못하면 그것은 필요 없는 샘에 불과합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다 말라버렸고 하나님 주시는 축복의 물줄기가 다 말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의 샘이 터지고 축복의 물줄기가 솟아올라서 동산 구석구석으로 물이 흘러서 동산에 물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설명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 같이 끊어지지 않고 솟아나는 은혜의 샘물이 축복의 물줄기가 우리의 심령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 교회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또한 메마르고 삭막한 우리 사회라는 동산에 은혜의 물을 댐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요 7:37~38을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시들고 메말라 가는 내 심령 속에 생명의 물이 흘러 넘칠 때, 반목과 갈등들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가정들 위에 은혜의 샘이 넘칠 때, 증오와 투쟁이 떠나지 않는 이 역사 속에 생명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임재하실 때 물댄 동산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울 것이며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가정과 국가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물댄 동산은 에덴동산의 별명입니다. 범죄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이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되는 삶의 자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우리가 살면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와 기도응답의 축복과 인도하심과 물댄 동산의 축복을 주십니다.
출처/극동방송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