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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지수를 높이는 방법 (잠언 23장 15-18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가 병들었다고 염려합니다. 교회 성장은 멈춘 상태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런 자랑들이 참으로 허무한 자랑임을 느끼게 됩니다. 왜 한국 교회가 병들게 되었을까요? 성공지수는 높였지만 마음지수는 높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을 할 때 그 말은 예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과 병 고치는 능력을 닮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도 병 고치셨으니 우리도 병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 닮는 것의 중요한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닮는다는 것보다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을 가진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으면서 축복지수와 성공지수만 높이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는 마음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요새 “IQ 왕국이 흔들린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는 IQ 왕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IQ왕국이 우리에게 물질문명을 가져다주었지만 반면에 큰 병과 상처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병은 정말 병입니다. 지방에 사는 어떤 분이 아들의 서울대학교 입학식에 참석해서 말했습니다. “천국이 무엇인가 했더니 이 기분이 천국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좋은 대학을 선호하는 이유는 IQ 왕국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발전과 성공과 행복은 IQ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최근의 연구서에 의하면 IQ보다 EQ, 즉 감성지수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IQ가 인간의 발전, 성공,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20%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지능지수를 높이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80%의 영향력을 가진 마음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마음지수가 더 중요함을 곳곳에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과장 이하의 직급에서는 IQ가 상당히 영향을 미치지만 사장이나 탁월한 리더가 되려면 IQ보다 EQ가 높아야 합니다.
범죄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은 의외로 IQ가 높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EQ가 낮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지수입니다. 상당히 많은 성경 말씀은 마음지수를 높이기 위한 말씀들입니다.
< 마음지수를 높이는 방법 >
우리가 마음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4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혜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이 말씀은 마음을 지혜롭게 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살면서 마음이 낙담되고, 저하되고, 침체되고, 무엇인가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마음을 어떻게 잘 관리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과 환경의 빛깔은 달라집니다.
이혼한 부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혼은 대개 처음에는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극단적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이혼한 부부들만이 살기 어려운 부부들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둘이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부부는 이혼할만한 사유가 다 있지만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것은 마음을 관리하고 그 환경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 잠깐 환경을 바꾸어 볼 필요도 있습니다. 힘들면 문제의 현장에서 잠시 탈출하기 위해 여행을 한 번 다녀오는 것도 좋습니다. 둘째,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마음도 좋아집니다. 셋째,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그 힘든 마음을 새로운 에너지로 변환시켜 보는 것입니다.
지구는 중력에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건이 떨어질 때 낙차에너지가 생깁니다. 그처럼 마음이 무너질 때도 거대한 낙차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 에너지를 창조적인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한 청년이 사법고시에 낙방한 후 청혼도 거절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살까지 생각했다가 새롭게 결심하고 고시에 집중해 마침내 1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 생긴 낙차에너지를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용해 뜻을 이룬 것입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내가 만일 그 여자와 결혼했으면 판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어 큰일을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나라의 문왕은 감옥에 갇혀서 ‘주역’을 저술했고, 공자는 곤액 후에 ‘춘추’를 썼고, 손자는 두 다리를 잘라내는 형벌을 받은 후에 ‘손자병법’을 썼습니다.
또한 지혜를 얻으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독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많은 지식이 올무가 되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은 손자병법 같은 책에 감탄을 합니다. 물론 손자병법에는 성공과 승리의 원리들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마음과 영혼의 양식이 될만한 글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손자병법 36계 중에는 우리가 들어본 말도 많습니다. 3계에 ‘차도살인(借刀殺人)’이란 계책이 있습니다. “남의 칼로 죽인다”는 뜻으로 직접 나서는 것은 초보자의 방법이니까 직접 나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6계에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계책이 있습니다.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으로 공격한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라는 것입니다.
10계에는 ‘소리장도(笑裏藏刀)’라는 계책이 있습니다.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긴다”는 뜻으로 비장의 무기는 웃음으로 감추라는 것입니다. 15계에는 ‘조호이산(調虎離山)’이란 계책이 있습니다. “호랑이를 산에서 유인해 낸다”는 뜻으로 어려운 상대는 끌어내라는 것입니다. 31계에는 ‘미인계(美人計)’란 계책도 있습니다. 총칼이 침대를 당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손자병법에는 승리와 성공의 원리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사랑과 용서 및 정의와 같은 원리는 전혀 없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이기는 처세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을 살찌우는 진짜 양서를 많이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성공적인 삶과 살고 행복한 삶을 사는 모든 원리가 다 들어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면 우리의 마음지수는 현저하게 높아질 것입니다.
2. 정직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우리는 항상 정직하기를 힘쓰고, 정직하게 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먼저 ‘거짓 자아’를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까? 바로 ‘거짓 자아’ 때문입니다. 그 거짓 자아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자기를 깨뜨리고 자기의 낮고 천한 모습을 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자아를 깨뜨렸기에 그는 가장 정직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죄성 때문에 언제든지 ‘거짓 자아’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 수 없고, 자기의 마음을 관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거짓 자아’를 깨고 항상 우리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성령과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 정직하기를 힘쓰고, 자녀들에게도 정직함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두 딸에게 몇 가지는 철저히 가르칩니다.
첫째, 바른말과 존댓말을 꼭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말이 예쁜 사람에게 사랑과 행복과 성공이 주어진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양보를 가르칩니다. 어떤 분들은 양보하며 당하는 삶을 살면 기가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는 죽어도 성령의 기운이 임해서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용서를 가르칩니다. 은혜가 맞고 들어와도 “이 바보야! 너도 때려!”라고 하지 않고 “은혜야! 맞는 한이 있어도 너를 때리면 안돼!”라고 가르칩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나쁜 버릇이 보이면 때로는 엄하게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야단을 칠 때에는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항상 다짐합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이번만은 정말 따끔하게 야단치자.” 우리는 자녀를 야단칠 때 “이 야단이 분노인가? 사랑인가?”를 정직하게 분별하고, 무엇보다 부모 자신이 정직함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사람이 정직하려면 자기와의 대화를 잘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깊은 무의식 세계에 사랑과 행복감, 아름다운 추억 등 수많은 긍정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한 감정을 끌어내 자기와 대화하면 마음지수가 현저히 높아집니다. 언젠가 아내가 말했습니다. 결혼 전에 만나던 때를 기억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억들을 자기와의 대화에서 배경으로 삼으면 마음이 얼마나 넉넉해지는지 모릅니다.
또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자기와의 대화를 해야 합니다. “아마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나쁜 감정은 금방 누그러집니다. 말은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먼저 말부터 행복하게하고 자기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할 때 “힘들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듣고 반응하실 것입니다. “힘들다고? 정말 힘든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까?” 그러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힘들어도 “행복하다!”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줄 아는데 행복하다고? 정말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그러면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3. 용서
본문 17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마음지수를 높이려면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용서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실수가 많은 존재입니다. 이런 분명한 현실 앞에서 가장 필요한 무기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행복과 직결되는 행위입니다. 선물 중에서 용서보다 큰 선물은 없습니다. 가정이 잘 되는 가장 위대한 비결도 용서에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상처로 신음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그 원인으로 부부문제, 자녀문제, 경제문제, 시부모문제 등을 들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마음지수가 낮기 때문입니다.
마음지수(EQ)는 보통 두 가지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받으려는 태도보다 주려는 태도가 얼마나 더 있는가?”로 측정할 수 있고, 둘째, “나보다 남을 얼마나 더 생각하는가?”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이 마음지수를 높이는 길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통해 마음지수를 높이기만 하면 사실상 가정 내의 거의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예를 들어, 고부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받기보다는 주고, 상대방 중심적 생각을 가지고 용서하고 용납하면 됩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관계의 문제는 대개 서로를 비난하면서 시작됩니다. 때로 잘못된 행위에 대한 지혜로운 비판은 필요하지만 사람 자체에 대한 비난은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그것은 잘못된 행위를 고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상대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비난이 심해지만 서로 경멸하게 됩니다. 여자는 보통 얼굴표정과 말투로 경멸하고, 남자는 보통 침묵과 무관심으로 밖으로 돌며 경멸합니다. 그러다가 서로 무조건 불신하게 됩니다. 사실 부부싸움의 원인은 어떤 문제가 아니라 불신이 근본원인입니다. 그런 불신 때문에 상대방의 말과 동작을 왜곡해 해석하고 나쁜 면만 상상하면서 사소한 문제로 격한 싸움을 벌이면서 서로 상처를 줍니다.
어떻게 이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부부간에 다툼이 생길 때 “누구 잘못이 크냐? 원인제공자가 누구냐? 누구 말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지능지수가 필요한 논쟁들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깁니다.
대개 보면 남편은 이성지수가 높고 아내는 감성지수가 높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가정에서 방향을 세우는 리더가 되어야 하고 아내는 가정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남편은 가정에서 아내의 가벼운 불만표출을 인격적인 공격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의 가벼운 불만표출은 가정의 감정 관리자로서 당연한 책무인데, 그때 남편은 아내의 불평을 경청하고 아내와 함께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반면에 아내는 불만을 표출할 때 남편에게 경멸감이 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면 마음지수는 점차 높아질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건 없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런 용서를 받고 우리는 원수조차 조건 없이 용서해야 하는데, 배우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받은 자로서 누구라도 조건 없이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교회 안의 어떤 사람도 조건 없이 받아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회개하면 받아주겠다!”고 하지 말고 먼저 받아주고 회개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일치를 가지고,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관용을 가지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그처럼 사랑과 용서를 앞세울 때 우리의 마음지수와 행복지수는 현저히 높아질 것입니다.
4. 경외
본문 1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두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된 두려움’이고 또 하나는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두려움을 가지면 사단은 신나서 더 찾아옵니다. 개들을 보십시오. 마음에 두려움을 가지면 더 짖어댑니다.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실패와 죽음, 그리고 진실의 노출과 체면 손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죄와 위선과 외식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교만의 죄입니다. 또한 우리는 실패와 질병과 사고와 운명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일과 운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존 낙스의 무덤에는 이런 묘비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뿐, 결코 인간을 두려워한 일이 없는 자가 여기 잠들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그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에 자유와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강도는 주무시는 목사님을 발로 툭 차고 말했습니다. “돈이나 귀중품이 어디 있는지 말해!” 목사님은 벌벌 떨면서 장롱 서랍을 열고 돈과 귀중품을 다 내주었습니다. “이것밖에 없어?”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실은요, 저 목사입니다. 목사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강도가 말했습니다. “요새는 목사들이 더 돈이 많다던데...”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극히 일부만 그래요.” 그러자 강도는 “이제 돈 좀 모으시오.”라고 말하고 곧 달아났습니다.
다음 주일에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강도 만난 얘기를 했습니다. “제 평생에 그렇게 겁나기는 처음입니다. 강도 앞에서 벌벌 떨며 돈과 귀중품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강도가 도망간 후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그만큼 떨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고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무릎 꿇는 연습을 잘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제 하루의 시작입니다! 오늘도 승리하게 하소서” 그런 식으로 일터에서, 식사하기 전에, 잠자리에 들면서, 운전하면서 먼저 기도하는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도 조금 일찍 와서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예배 중에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 그런 마음을 가지면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말씀듣기 전에 이미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은혜에 젖어들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삶은 우리의 마음지수를 높이는 최대의 비결입니다. 바로 거기에 진정한 발전, 승리, 행복의 비결이 있고,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성도가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 마음지수를 높인 결과 >
마음지수를 높이면 어떻게 될까요? 첫째,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본문 15-16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둘째,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마음을 잘 관리하면 우리에게는 복된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훌륭한 신자가 되려면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여 예수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과 용서입니다. 사랑과 용서로 무장하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할 사람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 남편 구실을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1년 내내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혼자 장사를 하면서 애들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한이 맺혀 만나는 사람마다 남편 흉을 보고 욕을 했습니다. “사람이 그럴 수 있어요? 그런 사람과 참고 살아야 하나요?”
어느 날, 그 아내가 이웃의 전도를 받고 성경 말씀을 읽다가 로마서 12장 14절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그 말씀을 보고 아내가 감동을 받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이제 남편을 원망만 하지 말고 축복을 해 주자.”
그때부터 만나를 사람들마다 남편의 좋은 점을 얘기하고, 칭찬하고, 남편을 위해 축복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 남편으로부터 처음으로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편지를 보니까 사랑이 가득 찬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아내는 감격하고 더욱 열심히 남편을 칭찬하고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러자 한 달 후에 또 편지가 왔습니다. “여보, 그 동안 고생이 많았소. 가정에 무심했던 나를 용서해줘요. 앞으로 매달 생활비를 보낼 게요. 몸조심해요.”
남편의 변화를 보고 아내는 더욱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남편을 칭찬하고 축복했습니다. 그러자 가을에 편지가 왔습니다. “여보! 이제 이 방황을 끝내고 싶소. 당신이 용서해주면 가정으로 돌아가 이제 훌륭한 남편과 아빠가 되도록 노력하겠소.”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정말로 집으로 돌아와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욱 아내와 자녀를 위해 헌신하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갖고 있는 것도 없어지고 가까운 것도 멀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감사하고 축복하면 없는 것도 있게 되고 멀어진 것도 가까워지게 됩니다. 우리는 원수를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아리랑의 한 문화’를 잘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아리랑 가사가 어떻습니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누구든지 나를 버리고 가면 얼마 되지 않아서 저주받는다는 노래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사랑하는 님은 더 멀어지고 축복과 행복도 더 멀어집니다. 반면에 나를 버리고 가는 사람조차 축복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수한 축복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신앙으로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따라 우리도 마음지수를 높여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고, 비전은 크게 가지되 욕망은 줄임으로 영적인 가난과 고통을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꾸면 현실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주신 마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가지고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사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풀처/ 이한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