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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면 복(福)을 받습니다! (잠3:1-10)
어떤 농부가 밭을 갈다가 가냘픈 호박 넝쿨에 큰 호박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했습니다. "저 가냘픈 가지에 저렇게 큰 호박을 열게 하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러고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이 농부가 호도 나무 밑에 가서 앉아 쉬다가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보니까 그 나무에 호도가 열렸는데 큰 나무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게 너무 조그만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것을 보자 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평을 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에 저렇게 작은 열매를 맺게 하셔서 어쩌자는 겁니까?" 이 농부는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혀를 차고는 호도 나무 밑에 누워서 낮잠을 잤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호도 열매 하나가 이 불평 많은 농부의 이마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깨어난 이 농부는 호도 열매 하나가 떨어져서 자기 이마를 때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농부의 뇌리를 번뜩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호도 나무에 열린 호도 알이 작았으니 망정이지 이 호도 알이 호박만 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그러고는 하나님을 향해서 태도를 고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 호박 넝쿨에서 큰 호박 열리게 하시고, 호도 나무에서 작은 열매 맺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 참 잘하신 일입니다" 하고 하나님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잠언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혜를 얻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는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서의 중심 사상을 뽑는다면 1:7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면 하늘의 지혜를 얻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5-6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세상에는 많은 법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국법이 있으며, 미국에는 미국 법이, 일본에는 일본법이, 영국에는 영국 법이 있으며,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회사의 법이 있고, 어느 단체이건 그 나름대로의 법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에도 경기의 법칙이 있듯이 신앙생활 안에서도 법이 있고, 공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온통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은 "내 아들아" 다정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부모님이 아들에게 엄하면서도 사랑이 담긴 모습으로 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가르침을 위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 속에 나타난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접속사인 조건절이 나옵니다. 그 단어가 바로 '그리하면'인데 공동번역에는 '그렇게 하면'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2절과 4절, 6절과 10절 등 네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렇게 하면'이라는 말인데 더 쉽게 표현하면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순종하면, 그렇게 충성하면, 그렇게 살면'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어떤 복을 준다고 약속하십니까? 2절에서는 장수와 평강에 복을, 4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복을, 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길을 바르게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는 복과, 8절에서는 건강의 복과, 10절에는 창고가 가득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는 풍성한 삶의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그리하면' 복을 받습니다!▶라는 제목으로-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1절)
'내 아들아!' 얼마나 다정합니까?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자, 곧 천국을 상속받게 된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시험을 봐서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할/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법'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은 일반적 의미의 종교적, 도덕적 교훈들이면서 특히 개인적인 적용에 특징을 두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법이라고 표현했는가? 법은 표준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표준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믿음의 표준이요, 생활의 표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공법으로 보기보다는 내 자신의 삶의 철학이자 인생관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할 법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잊어버림'은 기억력의 부족에서 오는 '망각'을 뜻하지 않고, 고의적인 '무시'와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무관심해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무시해 버리시고, 무관심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손해입니까? 우리가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법과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최고의 안내문입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 속에, 삶의 범사 속에 하나님의 법과 명령인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여기에서 마음은 '감정과 사상의 원천'임을 뜻합니다. 마음은 사상과 생각을 담고 있는 틀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이 나오고, 마음이 병들면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사상이며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것은 '순종하다', '보호하여 지키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의 사상으로써의 그 위치를 두고 있는데, 이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지켜져야 할 '하나님의 명령'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사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도너츠 상표를 개발한 "던킨 도너츠" 창업주인 '로젠버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과 교육부재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주셨습니다. 저는 성공이란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자원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들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리하면'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2절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택)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장수는 동서고금과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인간이 누리는 축복으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장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주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평강의 복으로 누리면서 장수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강'은 원만한 인간 관계와 태평성대의 삶, 모든 위험과 장애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의 평정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오래도록 평안한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매 순간 순간 평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장수'의 복은 그 심령의 '평강'을 통해서 건강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평강'이 없는 '장수'란 축복이 아닙니다. 오래 살아야 하지만 평안해야 합니다. 평안하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장수가 온전한 축복이 되기 위해 평강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은 외적인 안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외적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지금 북에서는 핵을 만든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한번 붙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무섭고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2.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3절)
▶인자란 '헤세드'인데 이는 폭넓은 주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사랑을 잘 간직하라는 말씀이요, 그 사랑을 나타내라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는 말이고, 여기 진리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데, 이 말씀은 <성실과 사랑을 절대 버리지 말고…>라는 뜻입니다.
▶또 '인자'는 전인격적인 순종과 헌신의 상태를 말하고, '진리'는 확실하게 준행하는 성실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에 대하여 가지는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어떤 채무보다 더 큰 의무로 생각하며 최대의 성실함을 보여야 합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성실함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변하지 말고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메 마음 판에 새기라' 한 것은 믿음 생활의 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목에 맨다'는 것은 항상 생활화하라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하고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진주 목걸이는 자랑삼아 매고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 목걸이는 달고 다니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나는 성림교회 여집사입니다. 성도입니다. 성가대원입니다. 나타내십시오! 그래서 주일날 세상으로 유혹하면 '나는 교회에 가야 한다'고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목에 메고 다니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판에 새기라'는 말은 믿음의 삶이 생활화되고, 그것이 내면에 자리를 잡도록 하나님이 말씀을 소중해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목에 걸고 다니면서 마음 판에 새기지 않는다면 위선이고 형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하면 복이 임합니다. 어떤 복입니까?
■4절입니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할/
은총을 받는다는 말은 쉬운 말로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귀중히 여긴다'는 말은 '귀히 여기고, 칭찬하고, 값있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주머니에 돈 1000원을 넣을 때 편한 대로 아무 데나 넣습니다. 1원짜리는 있어도 골치가 아픕니다. 물론 1원이 있어야 천원도 되고, 만원이 되지만 지금 우리 나라에서 1원의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100만원이 생기면 지갑 속에 소중히 넣을 것이고, 만약 1억짜리 수표가 생긴다면 주머니에 넣고 '잘 있나'하고 수시로 만져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도, 사람에게도 사랑 받고 칭찬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살아도, 귀중히 여김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대학에 가고, 잘 살아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멸시받고 비난받고 미움을 받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3.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5-6)
여러분! 세상은 변하고 우리가 믿을 만한 안전한 도피성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는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매민지 개민지 태풍을 보셨지요? 세상은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조차도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유혹과 미혹에 빠져들어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역사를 통하여 늘 하나님의 명령을 떠났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겠습니까? 사람들은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실에 그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세계, 영적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기대해 보는 Lotto 복권이 현실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토 복권을 수학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매기는 세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분만을 인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참된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의뢰하고'는 어떤 대상에 전적으로 몸을 의지하여 기댄다는 의미로 완전한 의탁과 신뢰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모든 인생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의뢰한다'는 말은 '기댄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지게가 지팡이에게 의지하여 세워져 있듯이 우리 자신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살아가는 삶이 겉으로 누가 보아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기초, 기반, 디딤돌)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께 기대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디딤돌이 되어 주십니다. /믿/
●여호와를 의지하는데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이 구절은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과 사상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일찍이 모세는 신6: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구약성경을 인용하시면서 막12:30과 눅10:2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믿/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꾀와 지식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명철'은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 주장만 옳다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머리로 이해되는 하나님만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이 작은 머리에 다 들어갑니까? 하나님이, 이 작은 머리에 담기는 분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엔 많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자기 명철만 의지하다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철칙입니다. 창조주로 인정하십시오! 구세주로 인정하십시오! 그 분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막9: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리하면의 복이 임합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할/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①시37: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②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③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참고: 마11:28절
④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⑤롬12:19절에서 원수 갚는 것도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⑥막11:24절에서 기도의 결과도 주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죠지 물러' 목사님은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7)
여러분!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 그분이 지혜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라가 지혜를 얻는 자리입니다. /믿/
본문 16-17절에 지혜를 얻은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여러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얻는 비결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경외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는 말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배드리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기본 정신 두 가지를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분을 높여드리는 모든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있듯, 예배는 두 기둥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것은 섬김과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마4:10절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 시험을 이기느라 동원한 말씀 속에 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구약이든 신약이든 '엎드리다, 절하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시99:5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을 높여드리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이런 행위 가운데는 하나님은 높고 위대한 분이지만 나는 낮고 천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95:6절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이것은 예배를 드리자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경배하는 것만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섬김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다음에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성경에서 예배라고 할 때, '노동, 사역, 일'이라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영어는 예배를 Service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로 해석하면 봉사입니다. 하나님께 봉사하는 게 바로 예배란 말입니다.
경배가 마음의 작용이라면 섬김은 행위의 영역입니다. 경배가 의식이라면 섬김은 의식을 살아있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경배가 뼈대라면 섬김은 살입니다. 경배가 원리라면 섬김은 실천입니다. 경배가 내적 태도라면 섬김은 외적 태도입니다. 경배가 예배시간에 하는 것이라면 섬김은 예배시간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이 두 영역 중 한 가지만 있다면 올바른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배만 있으면 외식이고 섬김만 있으면 사랑의 실천은 돼도 예배는 아닙니다.
바른 예배자들은 악에서 떠난 자들입니다. /믿/
●7절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에게도 '그리하면'의 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그리하면이 빠지고 '이것이' 나옵니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여기서 양약은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약인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보약은 100% 보약입니다. 세상 보약은 가짜가 판을 칩니다.
여기 '골수'는 의학용어로 히브리어는 '척수'를 말하는 것인데 골수는 피의 응고를 돕는 혈소판과 산소를 날라다 주는 적혈구와 싸워 백혈구를 생산하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골수(척수)에 이상이 있으면 신체의 부분 부분이 마비가 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중풍도 척수와 연관이 있고 소아마비 같은 것도 척수에 바이러스가 침범하여 신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척수는 뇌와 신체 각 부위를 연결하는 주도로와 같아서 척수를 통하여 정보가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척수가 건강하지 못하면 신체에 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골수가 윤택케 된다'는 말씀을 받으면 그 얼마나 복된 축복입니까?
5.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9절)
이 말씀에는 몇 가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있는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얻는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헌금을 드릴 때 우리가 드리는 그 재물에는 피, 땀, 눈물이 담긴 것입니다.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돈을 벌기 위해 모욕을 당하고,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라 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첫 아들, 처음 탄 월급, 탐스런 첫 열매는 남 주기 정말 아까운 것들이 바로 처음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구약 시대에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축복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표였습니다. 그들이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뢰한다'고 하는 신앙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첫 것에 대한 마음이, 최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머지 모든 것도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은 본문을 십일조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물질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성별시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백적 표시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물질 헌금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시적 표식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행위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십일조의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석원태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반대 유형: ①신약시대는 은혜의 시대요 구원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율법적 규례는 없어져야 하고,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롬6:14). ②재물의 소유주는 인간 자신이라는 주장입니다. ③또한 나의 수입이 너무 적다는 이유입니다. ④반대로 나의 십일조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다 드릴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⑤자기 십일조에 대한 산출근거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⑥교회가 헌금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⑦십일조는 구원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그것을 율법화 할 수는 없다는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혀 성경 교훈과 모순되는 인간 중심의 생각입니다.
▶마지못해서 드리는 유형: ①마지못해서 억지로, 의무감으로 내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요구는 즐겨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엡6:6-7,고후8:7). ②하나님의 응징(벌)이 두려워서 내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신이 아니라 사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③자기 기분대로 내는 십일조 유형입니다. 형편 따라 적당하게 사전에 준비 없이 내는 십일조입니다. 자기가 급한 대로 우선적으로 다 쓰고, 여유가 있거나 나머지 부분을 십일조라는 이름을 붙여서 냅니다. 그러나 십일조 헌금은 최우선의 제물이 되어야 하고(마6:33),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함이 되어야 합니다(잠3:9). ④공명주의나 체면, 눈치껏 내는 십일조입니다. 자기의 교회 직분상, 또 타인과 비교해가면서 이른바 체면세우기식(?)의 십일조입니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십일조입니다.
▶기복적 십일조의 유형: 이는 일종의 기복적 축복관념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뇌물(?)을 드리는 심정이나 십일조를 축복 받는 공로처럼 여기는 유형입니다. 결코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상거래 행위나 기복적 공로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존속시키려는 목적으로 드리는 유형: 물론 십일조 헌금이 교회 재정운영에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존속시키고 부흥시키는 원동력은 주님 자신이고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런 이유로 십일조를 내는 자는 자신이 교회의 주인역(主人役)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드리는 십일조: 십일조는 하나님 자신의 지고하신 명령에 감심으로 순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영광의 수단으로 드린다는 사상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사상입니다(고전 10:31).
이런 의미에서 아드리안 로저스(A. Rogers)는, "십일조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통로이다. 왜냐하면 십일조 생활을 통하여 당신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석원태 목사님의 십일조에 대한 실제적 문답을 참조합니다.
▶십일조가 연보의 전부인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모든 연보의 기본입니다. 성경에는 그 외에도 여러 류의 감사행위가 많습니다.
▶십일조 계산은 총수입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순 이득에서 할 것인가? 성경은 소득의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눅18:12). 또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말3:10). 모든 경우의 소득에서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십일조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나, 또 너무 많아서 고액일 경우에는 어찌하는가? 양자 다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적거나 많거나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할 창고가 교회뿐인가?
그렇습니다. 교회뿐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말3:10). 그렇다면 '나의 집', '나의 창고'가 비단 교회만을 가리킴인가? ①신학교나 기타 자선사업단체나 선교기관, 농촌 모(母)교회에 자기 십일조를 나누어 보낼 수 있지 않은가?
②심지어 십일조 중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는 특정한 교역자나, 자기가 벌여놓은 복음사업을 위해서, 아니면 교회 각종 기관에 월정회비나 교역자들 접대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종류는 십일조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금(公金)입니다.
그러므로 소유권이나 사용권도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의 몸된 기관인 교회에 바쳐야 하고, 교회는 공적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빚더미 속에 앉아 있을 때에도 십일조를 드림이 마땅한가?
마땅히 드려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이 여러 경우에 부채를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빚더미 속에 앉아 있을 때에는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십일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퇴직금이나 유산을 받았을 때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당연히 드려야 합니다. 종신토록 받을 퇴직금은 종신토록 주의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유산은 유언에 따를 것이나, 특별한 유언이 없을 때에는 그 유산을 받아 자기 소유가 되는 재산 중에서 십일조를 구별시킴은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 영'은 "우리가 드리는 모든 헌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에 대한 보은 중심이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십일조 생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①십일조를 드림으로 자기 신앙이 더욱 확고해짐을 보고 놀랐고, ②자신의 물질적 생활이 넉넉해짐을 보고 놀랐고, ③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찌 내가 이런 돈을 낼 수 있는가 하는 사실에 놀랐고, ④믿음의 담력이 더하여짐에 놀랐고, ⑤나머지 십의 구(10/9)도 지혜롭고 규모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놀랐고, ⑥ 이 축복을 알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살았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놀랐다"라고 하였습니다.
'록펠러'는 두 가지 가훈(家訓)을 정했다고 합니다. 첫째로 나는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둘째로 부자가 되어도 돈을 절대로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는자"는 ●그리하면의 축복이 임합니다. ●10절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차고 넘쳐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득히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벌어서 가득히 차고 넘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많이 벌어서 ①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②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③자신도 윤택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생각합니다. 자신만 윤택하게 살려 하고 종업원에게는 인색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더 인색합니다. 그러니까 자신도 어려울 정도로 안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자신도 윤택한 삶을 살게 사시기 바랍니다."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어떤 농부가 밭을 갈다가 가냘픈 호박 넝쿨에 큰 호박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했습니다. "저 가냘픈 가지에 저렇게 큰 호박을 열게 하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러고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습니다.
그리고 이 농부가 호도 나무 밑에 가서 앉아 쉬다가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보니까 그 나무에 호도가 열렸는데 큰 나무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게 너무 조그만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것을 보자 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평을 했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에 저렇게 작은 열매를 맺게 하셔서 어쩌자는 겁니까?" 이 농부는 한심하다는 생각으로 혀를 차고는 호도 나무 밑에 누워서 낮잠을 잤습니다.
한참 잠을 자고 있는데 호도 열매 하나가 이 불평 많은 농부의 이마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깨어난 이 농부는 호도 열매 하나가 떨어져서 자기 이마를 때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농부의 뇌리를 번뜩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호도 나무에 열린 호도 알이 작았으니 망정이지 이 호도 알이 호박만 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그러고는 하나님을 향해서 태도를 고치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참 잘하셨습니다. 호박 넝쿨에서 큰 호박 열리게 하시고, 호도 나무에서 작은 열매 맺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 참 잘하신 일입니다" 하고 하나님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잠언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혜를 얻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는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서의 중심 사상을 뽑는다면 1:7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면 하늘의 지혜를 얻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5-6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세상에는 많은 법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국법이 있으며, 미국에는 미국 법이, 일본에는 일본법이, 영국에는 영국 법이 있으며, 로마에는 로마의 법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회사의 법이 있고, 어느 단체이건 그 나름대로의 법이 있습니다. 운동경기에도 경기의 법칙이 있듯이 신앙생활 안에서도 법이 있고, 공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온통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은 "내 아들아" 다정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부모님이 아들에게 엄하면서도 사랑이 담긴 모습으로 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가르침을 위한 것입니다.
이 가르침 속에 나타난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접속사인 조건절이 나옵니다. 그 단어가 바로 '그리하면'인데 공동번역에는 '그렇게 하면'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2절과 4절, 6절과 10절 등 네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렇게 하면'이라는 말인데 더 쉽게 표현하면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순종하면, 그렇게 충성하면, 그렇게 살면'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어떤 복을 준다고 약속하십니까? 2절에서는 장수와 평강에 복을, 4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복을, 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길을 바르게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는 복과, 8절에서는 건강의 복과, 10절에는 창고가 가득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는 풍성한 삶의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그리하면' 복을 받습니다!▶라는 제목으로-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1절)
'내 아들아!' 얼마나 다정합니까?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자, 곧 천국을 상속받게 된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시험을 봐서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할/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법'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은 일반적 의미의 종교적, 도덕적 교훈들이면서 특히 개인적인 적용에 특징을 두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법이라고 표현했는가? 법은 표준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표준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믿음의 표준이요, 생활의 표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공법으로 보기보다는 내 자신의 삶의 철학이자 인생관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지켜야 할 법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잊어버림'은 기억력의 부족에서 오는 '망각'을 뜻하지 않고, 고의적인 '무시'와 '무관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무관심해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무시해 버리시고, 무관심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손해입니까? 우리가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손해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법과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최고의 안내문입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 속에, 삶의 범사 속에 하나님의 법과 명령인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여기에서 마음은 '감정과 사상의 원천'임을 뜻합니다. 마음은 사상과 생각을 담고 있는 틀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이 나오고, 마음이 병들면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사상이며 가치관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했는데, 이것은 '순종하다', '보호하여 지키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의 사상으로써의 그 위치를 두고 있는데, 이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지켜져야 할 '하나님의 명령'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사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도너츠 상표를 개발한 "던킨 도너츠" 창업주인 '로젠버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과 교육부재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주셨습니다. 저는 성공이란 '사람의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자원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들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리하면'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2절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택)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장수는 동서고금과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인간이 누리는 축복으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장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 주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평강의 복으로 누리면서 장수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평강'은 원만한 인간 관계와 태평성대의 삶, 모든 위험과 장애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의 평정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오래도록 평안한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매 순간 순간 평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장수'의 복은 그 심령의 '평강'을 통해서 건강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평강'이 없는 '장수'란 축복이 아닙니다. 오래 살아야 하지만 평안해야 합니다. 평안하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장수가 온전한 축복이 되기 위해 평강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강'은 외적인 안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나라가 외적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지금 북에서는 핵을 만든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한번 붙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무섭고 어처구니없는 말입니다.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2.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3절)
▶인자란 '헤세드'인데 이는 폭넓은 주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사랑을 잘 간직하라는 말씀이요, 그 사랑을 나타내라는 말씀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는 말이고, 여기 진리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데, 이 말씀은 <성실과 사랑을 절대 버리지 말고…>라는 뜻입니다.
▶또 '인자'는 전인격적인 순종과 헌신의 상태를 말하고, '진리'는 확실하게 준행하는 성실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에 대하여 가지는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어떤 채무보다 더 큰 의무로 생각하며 최대의 성실함을 보여야 합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성실함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변하지 말고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메 마음 판에 새기라' 한 것은 믿음 생활의 더 강력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목에 맨다'는 것은 항상 생활화하라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하고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진주 목걸이는 자랑삼아 매고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 목걸이는 달고 다니면서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나는 성림교회 여집사입니다. 성도입니다. 성가대원입니다. 나타내십시오! 그래서 주일날 세상으로 유혹하면 '나는 교회에 가야 한다'고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목에 메고 다니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판에 새기라'는 말은 믿음의 삶이 생활화되고, 그것이 내면에 자리를 잡도록 하나님이 말씀을 소중해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목에 걸고 다니면서 마음 판에 새기지 않는다면 위선이고 형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하면 복이 임합니다. 어떤 복입니까?
■4절입니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할/
은총을 받는다는 말은 쉬운 말로 사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귀중히 여긴다'는 말은 '귀히 여기고, 칭찬하고, 값있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주머니에 돈 1000원을 넣을 때 편한 대로 아무 데나 넣습니다. 1원짜리는 있어도 골치가 아픕니다. 물론 1원이 있어야 천원도 되고, 만원이 되지만 지금 우리 나라에서 1원의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100만원이 생기면 지갑 속에 소중히 넣을 것이고, 만약 1억짜리 수표가 생긴다면 주머니에 넣고 '잘 있나'하고 수시로 만져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도, 사람에게도 사랑 받고 칭찬 받고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 살아도, 귀중히 여김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대학에 가고, 잘 살아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멸시받고 비난받고 미움을 받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3.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5-6)
여러분! 세상은 변하고 우리가 믿을 만한 안전한 도피성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는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매민지 개민지 태풍을 보셨지요? 세상은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조차도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유혹과 미혹에 빠져들어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역사를 통하여 늘 하나님의 명령을 떠났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겠습니까? 사람들은 당장에 눈에 보이는 현실에 그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세계, 영적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기대해 보는 Lotto 복권이 현실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토 복권을 수학을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매기는 세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갖지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분만을 인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참된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의뢰하고'는 어떤 대상에 전적으로 몸을 의지하여 기댄다는 의미로 완전한 의탁과 신뢰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모든 인생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의뢰한다'는 말은 '기댄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지게가 지팡이에게 의지하여 세워져 있듯이 우리 자신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살아가는 삶이 겉으로 누가 보아도 그렇게 느껴지도록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기초, 기반, 디딤돌)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께 기대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디딤돌이 되어 주십니다. /믿/
●여호와를 의지하는데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이 구절은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과 사상의 원천이 되는 곳으로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나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일찍이 모세는 신6: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구약성경을 인용하시면서 막12:30과 눅10:2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이 되는 신앙의 기본 원리'입니다. /믿/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꾀와 지식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명철'은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기 주장만 옳다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작은 머리로 이해되는 하나님만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이 작은 머리에 다 들어갑니까? 하나님이, 이 작은 머리에 담기는 분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엔 많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이 자기 명철만 의지하다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철칙입니다. 창조주로 인정하십시오! 구세주로 인정하십시오! 그 분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막9: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여호와를 의뢰하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그리하면의 복이 임합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할/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①시37:5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②잠16:3절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③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참고: 마11:28절
④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⑤롬12:19절에서 원수 갚는 것도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⑥막11:24절에서 기도의 결과도 주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죠지 물러' 목사님은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7)
여러분!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 그분이 지혜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라가 지혜를 얻는 자리입니다. /믿/
본문 16-17절에 지혜를 얻은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여러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얻는 비결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경외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는 말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배드리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기본 정신 두 가지를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분을 높여드리는 모든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있듯, 예배는 두 기둥으로 이뤄져있습니다. 그것은 섬김과 경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마4:10절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 시험을 이기느라 동원한 말씀 속에 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구약이든 신약이든 '엎드리다, 절하다, 무릎을 꿇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시99:5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을 높여드리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이런 행위 가운데는 하나님은 높고 위대한 분이지만 나는 낮고 천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95:6절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이것은 예배를 드리자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경배하는 것만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섬김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다음에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성경에서 예배라고 할 때, '노동, 사역, 일'이라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영어는 예배를 Service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로 해석하면 봉사입니다. 하나님께 봉사하는 게 바로 예배란 말입니다.
경배가 마음의 작용이라면 섬김은 행위의 영역입니다. 경배가 의식이라면 섬김은 의식을 살아있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경배가 뼈대라면 섬김은 살입니다. 경배가 원리라면 섬김은 실천입니다. 경배가 내적 태도라면 섬김은 외적 태도입니다. 경배가 예배시간에 하는 것이라면 섬김은 예배시간 밖에서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이 두 영역 중 한 가지만 있다면 올바른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배만 있으면 외식이고 섬김만 있으면 사랑의 실천은 돼도 예배는 아닙니다.
바른 예배자들은 악에서 떠난 자들입니다. /믿/
●7절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에게도 '그리하면'의 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그리하면이 빠지고 '이것이' 나옵니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여기서 양약은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약인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보약은 100% 보약입니다. 세상 보약은 가짜가 판을 칩니다.
여기 '골수'는 의학용어로 히브리어는 '척수'를 말하는 것인데 골수는 피의 응고를 돕는 혈소판과 산소를 날라다 주는 적혈구와 싸워 백혈구를 생산하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골수(척수)에 이상이 있으면 신체의 부분 부분이 마비가 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중풍도 척수와 연관이 있고 소아마비 같은 것도 척수에 바이러스가 침범하여 신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척수는 뇌와 신체 각 부위를 연결하는 주도로와 같아서 척수를 통하여 정보가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척수가 건강하지 못하면 신체에 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골수가 윤택케 된다'는 말씀을 받으면 그 얼마나 복된 축복입니까?
5.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9절)
이 말씀에는 몇 가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있는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얻는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헌금을 드릴 때 우리가 드리는 그 재물에는 피, 땀, 눈물이 담긴 것입니다.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돈을 벌기 위해 모욕을 당하고,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라 함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첫 아들, 처음 탄 월급, 탐스런 첫 열매는 남 주기 정말 아까운 것들이 바로 처음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구약 시대에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축복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표였습니다. 그들이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뢰한다'고 하는 신앙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첫 것에 대한 마음이, 최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나머지 모든 것도 하나님께 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은 본문을 십일조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물질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성별시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백적 표시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물질 헌금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시적 표식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행위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십일조의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석원태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반대 유형: ①신약시대는 은혜의 시대요 구원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율법적 규례는 없어져야 하고,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롬6:14). ②재물의 소유주는 인간 자신이라는 주장입니다. ③또한 나의 수입이 너무 적다는 이유입니다. ④반대로 나의 십일조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다 드릴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⑤자기 십일조에 대한 산출근거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⑥교회가 헌금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⑦십일조는 구원과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그것을 율법화 할 수는 없다는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혀 성경 교훈과 모순되는 인간 중심의 생각입니다.
▶마지못해서 드리는 유형: ①마지못해서 억지로, 의무감으로 내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요구는 즐겨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엡6:6-7,고후8:7). ②하나님의 응징(벌)이 두려워서 내는 유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신이 아니라 사랑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③자기 기분대로 내는 십일조 유형입니다. 형편 따라 적당하게 사전에 준비 없이 내는 십일조입니다. 자기가 급한 대로 우선적으로 다 쓰고, 여유가 있거나 나머지 부분을 십일조라는 이름을 붙여서 냅니다. 그러나 십일조 헌금은 최우선의 제물이 되어야 하고(마6:33),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함이 되어야 합니다(잠3:9). ④공명주의나 체면, 눈치껏 내는 십일조입니다. 자기의 교회 직분상, 또 타인과 비교해가면서 이른바 체면세우기식(?)의 십일조입니다.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십일조입니다.
▶기복적 십일조의 유형: 이는 일종의 기복적 축복관념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뇌물(?)을 드리는 심정이나 십일조를 축복 받는 공로처럼 여기는 유형입니다. 결코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상거래 행위나 기복적 공로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를 존속시키려는 목적으로 드리는 유형: 물론 십일조 헌금이 교회 재정운영에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존속시키고 부흥시키는 원동력은 주님 자신이고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런 이유로 십일조를 내는 자는 자신이 교회의 주인역(主人役)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드리는 십일조: 십일조는 하나님 자신의 지고하신 명령에 감심으로 순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영광의 수단으로 드린다는 사상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사상입니다(고전 10:31).
이런 의미에서 아드리안 로저스(A. Rogers)는, "십일조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통로이다. 왜냐하면 십일조 생활을 통하여 당신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석원태 목사님의 십일조에 대한 실제적 문답을 참조합니다.
▶십일조가 연보의 전부인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모든 연보의 기본입니다. 성경에는 그 외에도 여러 류의 감사행위가 많습니다.
▶십일조 계산은 총수입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순 이득에서 할 것인가? 성경은 소득의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눅18:12). 또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였습니다(말3:10). 모든 경우의 소득에서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십일조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나, 또 너무 많아서 고액일 경우에는 어찌하는가? 양자 다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적거나 많거나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할 창고가 교회뿐인가?
그렇습니다. 교회뿐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말3:10). 그렇다면 '나의 집', '나의 창고'가 비단 교회만을 가리킴인가? ①신학교나 기타 자선사업단체나 선교기관, 농촌 모(母)교회에 자기 십일조를 나누어 보낼 수 있지 않은가?
②심지어 십일조 중에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는 특정한 교역자나, 자기가 벌여놓은 복음사업을 위해서, 아니면 교회 각종 기관에 월정회비나 교역자들 접대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종류는 십일조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금(公金)입니다.
그러므로 소유권이나 사용권도 오로지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의 몸된 기관인 교회에 바쳐야 하고, 교회는 공적으로 선용해야 합니다.
▶빚더미 속에 앉아 있을 때에도 십일조를 드림이 마땅한가?
마땅히 드려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이 여러 경우에 부채를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빚더미 속에 앉아 있을 때에는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십일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퇴직금이나 유산을 받았을 때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당연히 드려야 합니다. 종신토록 받을 퇴직금은 종신토록 주의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유산은 유언에 따를 것이나, 특별한 유언이 없을 때에는 그 유산을 받아 자기 소유가 되는 재산 중에서 십일조를 구별시킴은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 영'은 "우리가 드리는 모든 헌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에 대한 보은 중심이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십일조 생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①십일조를 드림으로 자기 신앙이 더욱 확고해짐을 보고 놀랐고, ②자신의 물질적 생활이 넉넉해짐을 보고 놀랐고, ③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어찌 내가 이런 돈을 낼 수 있는가 하는 사실에 놀랐고, ④믿음의 담력이 더하여짐에 놀랐고, ⑤나머지 십의 구(10/9)도 지혜롭고 규모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놀랐고, ⑥ 이 축복을 알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살았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놀랐다"라고 하였습니다.
'록펠러'는 두 가지 가훈(家訓)을 정했다고 합니다. 첫째로 나는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겠다는 것과, 둘째로 부자가 되어도 돈을 절대로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는자"는 ●그리하면의 축복이 임합니다. ●10절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차고 넘쳐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가득히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벌어서 가득히 차고 넘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 많이 벌어서 ①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②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③자신도 윤택한 삶을 사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생각합니다. 자신만 윤택하게 살려 하고 종업원에게는 인색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더 인색합니다. 그러니까 자신도 어려울 정도로 안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자신도 윤택한 삶을 살게 사시기 바랍니다."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