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24
아말렉 전쟁의 교훈 (출애굽기 17:8~16)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를 입어서 모세를 중심으로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애굽의 압제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중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채찍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지금 그들의 앞에 놓여진 것은 광야입니다. 풀 한포기, 마실 물조차 제대로 없는 곳입니다. 더위를 피할 그늘도 제대로 없는 곳입니다. 밤에는 추위가 엄습해 와도 피할 곳이 없는 곳입니다. 물이 쓰다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단물을 주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할 때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또 물이 없다고 아우성을 칠 때는 반석을 깨뜨리면서 생수를 주셔서 갈한 목을 축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이 가득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원함을 들어주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점차 공동체 즉 교회가 세워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보면서 과연 공동체, 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세워져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아말렉과의 전쟁
(1) 아말렉 족속
8절에 보면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들로서 광야에서 초지가 있는 곳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들입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약탈행위도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말렉 족속에게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야곱의 족속 곧 그들의 형제 민족이 바로의 군대의 추격을 뒤로 하고, 홍해를 건너 광야에 나왔다는 것을 들은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형제 민족이라는 것과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믿고 있는 자들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의 본거지가 되고 있는 초지가 이스라엘에게 빼앗기에 될 것 같은 생각에 그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애굽으로 돌려보내거나,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숫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2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민족이었고,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장정만 60만 명이 넘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택한 방법은 이스라엘의 대오에서 뒤에 쳐진 자들을 쳐서 약탈하기로 결정을 하고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찾습니다.
(2) 아말렉의 공격방법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르비딤에서의 전쟁은 일전에 애굽 홍해 바닷가에 있을 때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던 상황과는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의 군인들이 쫓아오던 때는 전면전이었습니다. 한번에 애굽의 군대가 뒤쫓아 왔습니다.
그러나 유목민들이었던 아말렉은 비록 싸움에 능하기는 하였으나 숫적으로 열세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진영 뒤편에서 피곤에 지친 자들이 이스라엘 대오에서 낙오되자 그들을 주로 공격 목표로 삼고, 약탈 행위를 하며 이스라엘을 피곤하게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신25:17-18)고 말하듯이 아말렉은 비열한 방법을 취했습니다.
이 사실이 모세에게 보고되었고 전쟁이 전면전은 아니지만, 광야에서의 첫 번째 싸움을 통한 위기였기에 모세는 신중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이 수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정복해야 하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하고, 이것은 그 시작을 알리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말렉은 그들의 사욕에 의하여 형제 민족을 공격하였고, 더욱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거역하며 이스라엘의 행진을 가로 막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곧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을,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도전으로 여기셨음을 본문 14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3) 중단된 광야행진
이스라엘의 광야행진은 중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삶의 또 다른 위기상황이 찾아 온 것입니다. 목마름으로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물을 먹었던 이스라엘의 삶은 전쟁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지나온 삶의 경주를 되돌아보면 삶이 너무도 광야 이스라엘을 닮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매순간 삶의 위기를 만나고 그것을 맞서 싸워야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는 우리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그러나 광야 이스라엘은 수많은 삶의 위기를 만났었으나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로 그 모든 삶의 위기들을 넉넉히 이겨내었었습니다.
오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승리하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삶이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처럼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채우시고, 승리케 하신다는 것을 보고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참된 위로와 평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광야교회를 세우는 방법
(1) 잘 먹고 잘 마셔야 합니다.
8절을 다시 보십시오.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때에”라는 말입니다. 어떤 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 때를 말합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산까지 가는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가는 기간은 두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불평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도 주었고, 떡도 주었고, 고기도 주었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든 것을 다주고 먹인 후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지중해 연안으로 길을 택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전쟁을 보고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출13:17)해서 홍해를 건너서 돌아가는 길로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때는 전쟁을 피하도록 하셨는데 왜 지금은 하나님이 전쟁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셨을까요?
물도 먹고, 떡도 먹고, 고기도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바로 전쟁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배고프고 힘들 때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를 때 일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고 힘이 돋아날 때까지 돌보셨습니다. 그 후에야 전쟁을 주시고 이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또는 교회를 키우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각별하신 인도하심입니다. 사람은 먼저 영적으로 먹고 마시고 난후에야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야 힘 있게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절에 보면 “다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만나는 4절에 보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했습니다.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경험하고 받는 성령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해서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는 먹고 마시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이것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분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 후에야 결국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먹고 배부르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목마른 사람을 데리고 물을 주지 않고 일을 하라고 하면 당장은 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잘 먹이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큰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큰 은혜를 주시고, 말씀의 충만을 주신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얼마나 크기에 이렇게 은혜를 주시는가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먹이시고 마시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잘 먹어야 합니다.
(2) 전정터에 나갈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9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라고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 보고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라고 말합니다. 10절에서 여호수아는 군사를 뽑아 전쟁터에서 아말렉과 싸웁니다.
민수기 24:20절에 보면 “아말렉은 으뜸 중에 으뜸이라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국 중에 으뜸이라는 말입니다. 싸움에서는 최고라는 말입니다. 최고의 강적입니다. 신명기 25: 17,18절에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족속입니다. 이스라엘 족속 중에서 행렬에 뒤쳐진 사람들을 치는 간교한 족속입니다. 그 이름이 간사해서 도말할 족속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이런 민족과 싸울만한 사람을 뽑아서 전쟁터에 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영적 전쟁을 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과연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우리교회에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들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교회의 곳곳에서 이런 전쟁을 위해 땀을 흘리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20대, 30대, 40대, 50대가 많아야 합니다. 사람의 현장에 나가 직접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3) 열정으로 기도할 소수의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9절에서 모세가 말한대로 모세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섰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용사들이 보이는 곳입니다.
모세가 든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 홍해를 가르게 했던 지팡이, 반석에서 물을 내게 했던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는 지팡이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충만했습니다. 이 전쟁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기도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8절에 보면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연약한 존재이오니 주께서 도와달라는 순종의 모습입니다.
기도는 모두가 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열정을 가지고 제사의 제물과 같이 기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교회를 위해 스스로 기도의 제물이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독특한 기도였는데 손을 올리는 것에 따라서 승패가 좌우됩니다. 손을 올리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패합니다. 즉 아말렉과의 전쟁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슥4:6).
② 소수 사람의 기도
모세가 여호수아의 전쟁을 위해 기도하러 산꼭대기로 올라갈 때 많은 사람이 가지 않았습니다. 10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라고 말합니다. 기도하고 있는 사람은 세 명 뿐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큰 소리를 지르며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은 수지만 하나님 앞에 산제물이 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제물이 되어서 열정으로 기도할 때 교회가 세워지고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③ 쉽게 피곤해지는 기도
12절에 보면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강한 팔이라도 오래 지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능력의 팔과 펴신 팔을 가지고 계신 분은 하나님 뿐 입니다.
전쟁을 하면서 여호수아의 팔이 무거워졌다는 표현은 없는데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졌다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라는 신학자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일이 영적이면 영적일수록 그만큼 더 실패하기도 쉽고 약해지기도 쉬운 법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일은 영적인 피로가 쉽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손을 들고 오래 기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쉽게 힘들어지고 지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영적인 일일수록 우리는 쉽게 힘들어지고 피곤해집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아론과 훌 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힘들어할 때 그 옆에는 항상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옆에서 손을 잡고 있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수고할 때 그 교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역입니다. 동역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릴 때 비로소 힘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3. 승리의 깃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의 깃발을 흔들 수 있었던 것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아론과 훌의 훌륭한 동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용감하게 칼을 높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말렉이 아무리 용감하고 강한 적이라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도였습니다. 이것을 도운 것이 아론과 훌 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동역이 있었기에 강적 아말렉과의 전쟁이 승리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아말렉의 계획을 좌절시키시고 그 민족의 이름을 지워버리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후에 다윗 왕 때에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삼하1:10).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승리의 깃발을 흔들기 위해 우리는 영적으로 잘 먹고 잘 마셔야 합니다. 영적 전쟁터에 나갈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스스로 산제물이 되어 열정적으로 기도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승리의 깃발을 주실 것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