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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강 (빌립보서 4:4-7)
시대가 너무나 혼란하고 살아가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국가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고 사단이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될수 있는대로 믿는자라도 유혹하고 미혹하는 시대입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14:27)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돈,명예,권세를 얻는것도 좋겠습니다만 그것은 한시적이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기만 한다면 사자가 으르렁 거리는 앞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니 다니엘이 그러했습니다.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도 춤을 출수가 있었던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십시오. 불안한 시대요,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의 삶을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다 할찌라도 불속에서도 춤을 추고 사자의 발톱 앞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갖은 멸시와 천대와 박해와 고통을 당하면서도 내면에 끓어오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하시면서 7절에 “그리하면 지각이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주실것이라 하셨으니 “그리하면”이란 이렇게 살면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겠다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으니 기뻐하라는 것은 본서의 핵심적인 주제요 단어입니다. 바울사도도 진정한 기쁨을 체험하고 권면하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복음전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갇혔고 발에는 착고까지 채워 놓았던 것입니다. 좋고 평안할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이라는 것은 어려울때에도 해야하는 것이니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주안에서”의 기쁨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바울서신 중 164번이나 사용되어진 “주안에서”란 외부의 여건은 어려우나 내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기쁨이 있고 구원의 감격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쁨이 충만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 하신것도 외부적인 몇가지의 기적이 전부가 아니라 영적으로 누릴 기쁨을 더욱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참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평강을 받고 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2.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이란 어려움을 당해도 쉽게 요동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내 라고 칼빈은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태도를 모든 사람 즉,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보여야 한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든 이들에게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너그럽게 품어주는 것으로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 까지라도 불쌍히 여겨 용납해 주고 이해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관용해야할 이유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입니다.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의 사랑 받은 우리가 그 사랑을 나타내야 하나님 앞에서 할말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받은 우리가 땅에서 모든 것을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고(마18:18) 하셨으니 관용함으로 모든 막혔던 것이 풀어지며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3. 모든일에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셨으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하심은 염려할 일이 많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현실적 어려운 환경과 조건이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할때에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니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그 염려가 인격을 파괴하고 지성을 와해시켜 버려서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할말은 아니하고 안할말을 하고, 할일보다 안해야 할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 정신병이 많아지는 이유는 괜한 염려 때문입니다. 2차대전때 미.일 전쟁시에 전시자가 35만명이었는데 비해 염려하여 심장병으로 죽은자가 백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염려할 일은 믿음으로 주께 맡기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어 하나님의 평강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 간구, 구할것, 감사, 아뢰어라는 것을 동일하게 느낄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자 해야할 일을 구하는 것이요, 간구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요, 감사란 모든 것이 선하게 이루어질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란 내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닫고 그 뜻을 이땅에 이루는 것이니 모든 일에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집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현실만 볼수 밖에 없으니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염려할 일들이 우리를 짜증스럽게 하여도 이제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시려 독생자 보내시어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주님안에서 늘 기뻐하며 찬양하는자가 되시고 그 사랑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관용을 베푸는 자가 되어 막혔던 것을 뚫고 얽혔던 것 풀어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시고 내 힘으로 못하겠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참 평안을 누리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
시대가 너무나 혼란하고 살아가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국가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고 사단이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될수 있는대로 믿는자라도 유혹하고 미혹하는 시대입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14:27)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돈,명예,권세를 얻는것도 좋겠습니다만 그것은 한시적이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기만 한다면 사자가 으르렁 거리는 앞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니 다니엘이 그러했습니다.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도 춤을 출수가 있었던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십시오. 불안한 시대요,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의 삶을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다 할찌라도 불속에서도 춤을 추고 사자의 발톱 앞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갖은 멸시와 천대와 박해와 고통을 당하면서도 내면에 끓어오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하시면서 7절에 “그리하면 지각이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주실것이라 하셨으니 “그리하면”이란 이렇게 살면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겠다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으니 기뻐하라는 것은 본서의 핵심적인 주제요 단어입니다. 바울사도도 진정한 기쁨을 체험하고 권면하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가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복음전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갇혔고 발에는 착고까지 채워 놓았던 것입니다. 좋고 평안할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이라는 것은 어려울때에도 해야하는 것이니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주안에서”의 기쁨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바울서신 중 164번이나 사용되어진 “주안에서”란 외부의 여건은 어려우나 내적으로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기쁨이 있고 구원의 감격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기쁨이 충만한 성도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의 보고를 받으면서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 하신것도 외부적인 몇가지의 기적이 전부가 아니라 영적으로 누릴 기쁨을 더욱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참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평강을 받고 사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2.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이란 어려움을 당해도 쉽게 요동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내 라고 칼빈은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태도를 모든 사람 즉,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보여야 한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든 이들에게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너그럽게 품어주는 것으로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 까지라도 불쌍히 여겨 용납해 주고 이해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관용해야할 이유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입니다.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의 사랑 받은 우리가 그 사랑을 나타내야 하나님 앞에서 할말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받은 우리가 땅에서 모든 것을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고(마18:18) 하셨으니 관용함으로 모든 막혔던 것이 풀어지며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3. 모든일에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셨으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하심은 염려할 일이 많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현실적 어려운 환경과 조건이 낙심하게 하고 좌절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할때에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니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는 것은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그 염려가 인격을 파괴하고 지성을 와해시켜 버려서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할말은 아니하고 안할말을 하고, 할일보다 안해야 할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 정신병이 많아지는 이유는 괜한 염려 때문입니다. 2차대전때 미.일 전쟁시에 전시자가 35만명이었는데 비해 염려하여 심장병으로 죽은자가 백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염려할 일은 믿음으로 주께 맡기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어 하나님의 평강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 간구, 구할것, 감사, 아뢰어라는 것을 동일하게 느낄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자 해야할 일을 구하는 것이요, 간구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요, 감사란 모든 것이 선하게 이루어질줄 믿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란 내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닫고 그 뜻을 이땅에 이루는 것이니 모든 일에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집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현실만 볼수 밖에 없으니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염려할 일들이 우리를 짜증스럽게 하여도 이제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시려 독생자 보내시어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주님안에서 늘 기뻐하며 찬양하는자가 되시고 그 사랑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관용을 베푸는 자가 되어 막혔던 것을 뚫고 얽혔던 것 풀어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시고 내 힘으로 못하겠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참 평안을 누리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