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고후 2:12-17)

옛날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사모하여 그를 방문할 때에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아름다운 꽃을 심은 화분 둘을 가져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꽃들은 똑같은데 실상은 하나는 진짜 꽃이요 다른 하나는 사람이 만든 조화였습니다.

시바 여왕이 화분 둘을 멀리 갖다 놓고 솔로몬 왕에게 어느 화분이 참꽃이냐고 물었을 때 솔로몬 왕은 조금 생각하더니 신하에게 “동산에 나가서 벌과 나비 몇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여 신하가 벌과 나비를 잡아 왔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 벌과 나비를 방안에 놓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벌과 나비들은 그  방에서 조금 날더니 금방 화분 있는 대로 날아가더니만 한쪽 화분에 가서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솔로몬 왕은 웃으면서 “저 벌과 나비가 앉은 화분이 진짜 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진짜 화분의 꽃에는 향기가 있었기 때문에 벌과 나비는 향기 있는 화분을 찾아 날았던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습니다. 모양은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으면 이미 그는 가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식당에 가면 음식 냄새가 납니다. 병원에서는 소독 냄새가 납니다. 생선 가게에 가면 비린내가 납니다. 화장품 가게에 가면 화장품 향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쓰레기 하치장에 가면 썩은 악취로 호흡이 곤란함을 겪습니다. 그것은 온갖 채소, 과일, 생선, 음식물들이 뒤범벅되어 썩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소나 과일이나 생선이나 음식물들이 처음부터 악취를 내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방치되고 돌보지 않아 부패되면서 부터 악취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예수님을 모신 감격과 기쁨으로 살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나 혼자만 지닐 수 없어서 그 감격과 기쁨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지금 혹시 마치 쓰레기 하치장의 썩은 악취를 내듯 나의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세속적 비도덕, 비윤리, 비신앙적 삶을 통하여 악취를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진솔한 대답으로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말씀을 전합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15절)
여기의 “향기”는 헬라어에서 ‘유오디아’(ευωδια)라는 말인데 이 말은 구약에서 “희생 제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창8:21, 출29:18, 레1:9, 민15:3)  바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복음 증거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적인 제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에베소서 5:2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향기로운”에 해당되는 헬라어 ‘에이스 오스멘 유오디아스’(εις οσμην ευωδιας)는 70인 역에서 희생 제사와 관련된 문맥에 많이 나타나는데(창8:21, 출29:18, 레1:9, 민15:3),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향기로운 제물임을 시사하고 성도들도 그와 같은 희생적인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8에서도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동일한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빌립보 교회의 바울의 필요를 체우고도 남았다는 “풍부한지라”(περισσεύω,페릿슈오)로 연결되는데, 즉 바울의 복음 선교 사역을 돕는 빌립보 교회의 물질적 도움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의미가 부여되고 그것은 곧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을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는 놀라운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됨은 바로 예수의 복은 선교 사역에서 표현되어지는 지고한 축복이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희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지는 거룩한 성도의 희생적 삶에서 표현되어지는 아름다움입니다.

향기 가운데서도 고급 향기로 살아갈 것인가 싸구려 향기로 살아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컨대 ‘샤넬 넘버 5’(Chanel Number Five)는 전세계의 여성들에게 사랑 받는 대표적인 향수입니다. 이 향수는 장미 꽃잎 45Kg을 가지고 향수액 28g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약 1.600배로 농축을 한 것입니다. 장미 꽃잎 45Kg은 대단한 양입니다. 장미 꽃잎이 그 정도 무게를 가지려면 트럭으로 몇 대는 족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향수는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줄 것입니다.
인삼에서 뽑은 향기가 인삼향이고, 국화향, 모과향, 오렌지향 등도 나름대로 각각의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의 향기, 봉사의 향기, 전도의 향기,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양의 향기 등 각자의 독특한 향기를 나타내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싸구려 향기는 다른 사람의 속을 매쓰겁게 하고 도 아무리 많이 뿌려도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악취를 내는 성도의 생활을 하면서 헐뜯고, 흉보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파당을 짓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악취가 납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싸구려 향기인 것입니다.

향수 가운데서도 고급 향수가 있고 싸구려 향수가 있듯이 성도 가운데서도 고급 신자가 있고 싸구려 신자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체는 3일 동안 그대로 두면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눈을 들어서 세상을 한번 바라봅시다. 가혹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걸어다니는 시체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육체가 살았다고 영혼이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이 죽어서 온갖 악취가 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2. 그런데 그리스도의 향기는 두 가지 냄새를 나타냅니다.

16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16절)
그리스도의 향기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 얻는 자에게 생명의 냄새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부하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냄새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우리가 이해하여야 할 것은 “멸망하는”의 헬라어 ‘아폴뤼메노이스’(απολλυμενοις)와 “구원 얻는”의 헬라어 ‘소조메노이스’(σωζομενοις는 둘 다 현재 분사형으로 쓰여 그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결과가 계속적으로 일어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의 실제적 의미를 말하는 것인데 곧 그리스도의 향기는 복음의 내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성도들에게는 집 모통이의 요긴한 돌이 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며(마21:42, 행 4:11),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냄새가 되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똑같은 하나의 냄새지만 어떤 사람은 그 냄새로 힘을 얻고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냄새를 맡으면 죽어 버리고 맙니다. 마치 여름에 모기향을 피울 때 그 향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지만 모기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냄새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꿀벌은 주인을 위해서는 꿀을 준비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독침을 줍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향기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지만 멸망할 사람들에는 이 냄새가 역겨워 맡기도 싫은, 그래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고 있습니까? 똑같은 포장이지만 비누를 쌌던 포장지는 향내가 배어 잇고 굴비를 쌌던 포장지는 비린내가 배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들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의 모습에서 풍겨 나는 냄새는 맡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배어 나오고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냄새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풍겨나야함은 두말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향기로서 우리는 기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성도의 기도는 금 대접에 담긴 향기라고 했습니다.(계5:8, 8:3)

우리는 ‘기도하는 손’ 그림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손’ 성화는 독일의 앨버트 듈라라고 하는 사람이 그린 것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앨버트 듈라는 친구와 함께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가난한 환경에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여 도시로 갑니다. 그러나 가난한 그들은 공부를 할 수 없어서 한 사람은 공부를 하고 한 사람은 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친구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여 한 친구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고 한 친구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가서 미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일을 하는 친구의 손은 엉망이 되어 갔고 어느 날 이 친구는 교회에 가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친구로 하여금 유명한 화가가 되게 하기 위하여 제가 이렇게 일을 해가면서 친구의 학비를 담당하였는데 이제 제 손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 손으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사오니 내 친구에게 하나님 은총을 내려 주셔서 제 소원까지도 이룰 수 있도록 유명한 화가로 만들어 주소서”
마침 이 때에 그 친구가 우연히 그 곳을 지나다가 교회를 들였다 보았는데 자기 친구가 자기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기도하는 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피어나는 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입니다.(히11:5) 그리스도의 향기로서의 우리들은 순종의 냄새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제사보다 나은 것은 순종입니다.(삼상15:22) 그리고 헌신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성도의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롬12:1) 우리는 또 감사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향기도 발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4절)
성도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주 안에서”(εν κυριω, 엔 퀴리오)는 성도의 기쁨과 감사와 축복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할 수 있는 향기입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흙에서 굉장한 향기가 발산되었습니다. 나그네는 진흙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아니오”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아니오”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그저 한 덩이 진흙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하찮은 진흙 한 줌도 백합화와 오랫동안 함께 했을 때 사람의 이목을 끄는 굉장한 물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 세월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1년? 10년? 아니면 30년? 그런 세월을 예수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예수 냄새와 성령 냄새가 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입으로는 예수와 함께 했지만 실제로는 물질과, 세상과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흔드는 골치 아픈 악취를 발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그리고 당신은 지금 누구와 함께 하고 있습니까?
언젠가 중앙 일보에 보도된 기사 내용입니다. 상점 안의 향기로운 냄새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상품 구매 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미국 워싱턴 주립 대 마케팅 교수 3명이 발표를 했습니다. 이들은 연구 결과를 통해 소비자들은 좋은 냄새가 나는 매장에 다시 가려는 경향이 있으며 같은 상품이라도 냄새가 좋은 매장의 것을 더 좋은 품질로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좋은 매장에 손님이 다시 가고 싶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교회가 되면 사람들은 그 교회에 서로 오고 싶어할 것입니다. 교회가 싸움 냄새를 풍기면 구경꾼밖에 더 몰려들겠습니까? 교회가 원망과 불평의 독기를 발산한다면 교인들은 저절로 멀리 멀리 피하여 달아나게 하는 훼방꾼밖에 더 되겠습니까?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됩니다. 서로 사랑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됩니다. 감사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됩니다. 찬양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됩니다.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 했는데(아2:2)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은 불평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아름다운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내게서 소중한 것이라 생각되는 것도 주님을 위하여 깨뜨릴 수 있을 때 향유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듯 하나님의 교회가 나의 희생과 헌신과 봉사와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시스가 제자들과 함께 전도를 나갔습니다. 제자들은 프란시스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복음을 선포할 줄 알았는데 프란시스는 밭에서 땀 흘리면서 김을 매는 사람에게 가서 함께 김을 매어 주고, 힘겹게 짐을 진 사람의 짐을 대신 져 주고, 그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으시오”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의아해서 묻자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우리 인격과 삶에서 예수의 향기가 충만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발산되는 것이고 그 향기를 통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당신은 어떠하십니까?

출처/박청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