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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본문 고후1:18-22)
하나님의 약속,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시에 마게도니야에서 고린도교회에 써보낸 편지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 다른 거짓교사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용납지 말라, 그리고 크리스천들의 삶의 모범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니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 말씀 앞에 예만 하고 아니오 없이 살자!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아멘 신앙을 갖고 살면 모든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약속은 보통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부부지간에, 친구지간에, 혹은 회사의 사장과 사원 지간에 국민과 정부지간에, 어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 약속들을 성실히 이행하면 신임을 얻게 되고, 신임을 얻게 되면 신용을 함께 얻게됩니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큰 자본 중의 하나는 신용을 얻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보면 집이 없고, 재산이 많이 없어도 신용만 많이 얻어놓면 얼마든지 돈도 빌려주기도 하고 사람을 채용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어떤 분이 저와 약속을 했는데 지키지 않아서 마음이 참 괴로울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가죽제품을 만드는 한 회사의 사장님이 우리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도가 나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그 회사의 직원들이 어느 식당을 고정으로 정해놓고 계속 식사를 했는데 몇달동안 식사대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빚 독촉을 하니까 내가 한 3일 후에 주겠다하니 그 식당주인이 그동안 계속 당신이 약속을 어겼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그러면 내가 우리 목사님 앞에서 약속하겠다. 그래서 나에게 사람을 데려와서 목사님, 3일 후면 제게 돈 나올 데가 있는데 목사님이 보증을 좀 서주십시오. 보증을 어떻게 서는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 이 사람이 삼일 후에 돈 안 갚으면 내가 갚겠다고 그 말 한 마디만 해주면 된다고 해서 어려움 당하는 교인 도와줘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알았습니다, 삼일 후에 나온다니 뭐 걱정입니까? 됐습니다. 안 나오면 제가 책임질테니 화내지 말고 가세요 그랬는데 3일 후에 돈이 안 나왔습니다. 식당주인이 와서 목사 믿고 그때 돈을 못 받았는데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있어야 내놓지, 돈도 몇 십만원이 아니고 엄청나게 많은 돈인데 목사가 돈이 있어야 내놓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집사님이 미안하니까 멀리 상계동으로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가 왜 이사갔냐고 했더니 죄송하다며, 돈 언제 나오냐니까 한 달후면 나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을 기다려도 또 안나왔습니다. 그러니 식당주인이 날마다 쫓아와서 목사 새끼, 나와! 빨리 돈 내! 하여튼 전 보증한번 섰다가 얼마나 혼이 났던지 결국은 교인은 떠났고 난 바가지만 쓰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말을 믿으면 좋겠는데 믿었더니 결국은 상처만 주고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니까 결국은 돈 떠났고, 사람 떠났고 다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신용이 있는 사회는 약속을 지킵니다. 영국이 가지고 있는 진기한 것들 중에는 타다 남은 지폐 찌꺼기가 있는데 그것은 시카고에 대화재가 났을 때 이제 지폐가 불에 탔습니다. 그래서 타다 남은 부분이나 재가 된 부분들을 비닐에 잘 싸서 은행에 갖다 주었더니 그 은행에서 화학실험을 통해서 그 지폐들의 일련번호와 액면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 액면에 해당되는 돈을 소유주들에게 돌려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 은행을 믿어도 좋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여러분은 작은 약속이라도 잘 지켜서 누군가로부터 신임을 얻고 신임을 얻으므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사람이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영국의 한 시골교회에서 아프리카에 의료선교를 위한 특별 연보를 거두는 시간이었는데 그 때의 연보는 둥그런 쟁반을 돌리면서 연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 참석한 한 어린아이가 쟁반 위에 연보를 올려놓은 게 아니라 자기가 거기 올라섰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하고 야단도 치고 또 이게 무슨 짓이냐? 연보쟁반에 두 발을 딛고 일어서면 어떻게 되는거야? 하니 난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전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서 내 몸을 바칠거예요 하며 쟁반에 올라갔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이 훗날 리빙스턴입니다. 리빙스턴은 어린 시절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병으로 죽어간다는 말을 듣고 난 그 사람들 병 고쳐줄래 하고 하나님께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의사가 되고 그래서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그는 아프리카의 문을 열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 관악교회가 부흥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매년 12월 둘째 주일이 되면 꼭 나는 새해에 교회를 위해서 교사로 성가대로 그밖에 갖고 있는 달란트가 이런 것이니 이런 방법으로 봉사하겠다고 약속한 분들이 꼬박꼬박 그 약속을 지켜왔기 때문에 이렇게 교회가 부흥되고 발전된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 교회를 자꾸 확장해야 되고, 성전을 계속 늘려야 되니까 건축헌금, 어떤 분은 해외 선교사를, 방송선교를, 교도소선교를, 군경선교를, 청소년선교를, 장애자선교를 위해서 선교헌금을 작정해서 냈기 때문에 올해도 많은 선교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님은 기도응답을 약속합니다.
시 50:14절 이하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내 마음에 하나님과 약속한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 신임을 받고 하나님께 신용을 얻어서 하나님 앞에 복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약속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향한 약속문서입니다. 그 약속이 몇 가지나 되냐면 3만2천500가지나 됩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네가 삼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이를 지켜 순종하여 살면 들어가도 복이요, 나가도 복이요 복이 널려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복들을 다 헤아려 봤더니 3만가지가 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근거는 감정이어서는 안됩니다. 환경이어서도 안됩니다. 내 생각이 기준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 신앙의 뿌리는 주님의 약속인줄로 믿습니다. 그 약속을 얼마만큼 신뢰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에 안정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신뢰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1년전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골든브릿지를 가봤습니다. 금문교에 가봤는데 그 금문교는 정말 장관입니다. 이 수면에서 위로 올라오는 교각의 높이가 70미터입니다. 그리고 수면에서 밑에 바닥까지 깊이가 70미터입니다. 그러니까 그 교각이 바다에 뿌리를 내렸고 그 교각이 자그마치 140미터의 높이입니다. 그래서 그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건설회사에서 그 난공사를 할 때 일년에 추락사, 높은데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23명이나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그리고 안전망을 설치하기로 했는데 중간마다 그물을 쳐놨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인부들의 마음에 떨어져도 거기에 걸리니 안죽겠구만! 그 마음에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마음에 안정이 되니까 어떤 동작이 빨라지면서 일의 능률이 20%-30%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인부들이 편안함을 느꼈던 것은 안전망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실수를 해서 떨어져도 안전망이 나를 지켜준다는 그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이 확신이 있을 때 무슨 일을 만나도 그는 두려움이 없고 앞으로 전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이 백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과 자기 아내 사라의 몸이 죽은 것같음을 알면서도, 이 죽은 것같다는 말은 남자가 남자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여자가 여자 구실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하늘의 별을 봐라! 별이 몇 개나 되느냐? 별이 너무 많아서 못 세겠는데요? 바닷가의 모래를 보라! 능히 셀 수 있겠느냐? 너무 많아서 셀 수 없습니다. 네 말이 옳도다. 앞으로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지리라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으니 그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아브라함에게만 의로 여기신 것이 아니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우리에게도니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고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도 우리가 받을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 신앙의 뿌리를 감정에 두거나 환경에 두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는 말씀에 둘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그 말씀을 지켜 삶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들을 우리가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면 꿈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라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모세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여러분,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이제 우리가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십시다. 애굽을 출발합시다! 할 때 모든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보니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춥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마늘도 먹을 수 있고, 부추도 먹을 수 있고, 고기도 먹을 수 있었는데, 광야에 나와보니 만나외에는 먹을게 없습니다. 또 시시때때로 물이 없어서 목이 마릅니다. 그때마다 믿음이 있었다면 속히 가나안땅으로 가자! 가나안에 가면 생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젖도 있고 꿀도 있다. 가나안으로 가자! 하고 앞으로 전진했더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가나안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애굽을 생각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사람은 고난, 어떤 시험이 올 때 두 가지 성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향성이고, 하나는 상향성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나를 이렇게 버릴 수 있어? 하며 의심하고 주님을 멀리 떠나는 하향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고난이 오면 올수록 더욱 주여! 주여! 도와주소서 하고 매달리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광야에서도 똑같았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고난이 오면 올수록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바라보면서 전진하는 사람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꾸 애굽으로 내려갈 생각만 했는데 그러다보니 원망하고 되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었고, 앞으로 전진하는 갈렙과 여호수아,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은 다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무수하게 많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 약속 성취는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출처/최낙중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