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42
위기의 때의 믿음과 충성 (눅 19:11-2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의 말씀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를 받은 종들에 관한, 비유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두 비유 사이에는 여러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의 비유 말씀에서는 더 다양하고 풍성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비유 속에 등장하는 주인이 마태복음에서는 그냥 주인이라고 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 신분이 특별한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그를 "어떤 귀인"이라고 했고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보다 크고 강한 나라의 황제로부터 그 나라의 속국이거나 그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한 작은 나라의 왕위를 하사받게 된 어떤 지체 높은 사람으로 소개하신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그 귀인은 왕위를 받으러 먼 길을 가기 전에 자기의 종 열 명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한 사람에게 한 므나씩 나누어주며 그 돈으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각각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종의 숫자와 나누어준 돈의 단위가 마태복음에서의 비유에서와 다르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4절에서는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합니다. 여기서는 마태복음에서의 비유에는 없는 사실 하나를 봅니다. 곧 백성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백성은 그 귀인을 미워했고 그래서 그 귀인에게 왕위를 줄 황제에게 뒤로 사자를 보내 그들의 뜻을 전하기를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는 그 백성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귀인에게 왕위를 주었습니다.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온 귀인은 자기가 은화 한 므나씩을 준 종들을 불러 각각 어떻게 장사들을 했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차례로 나아와서 혹은 열 므나, 혹은 다섯 므나의 이익을 남겼노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 종들의 수고와 충성을 칭찬하며 그들에게 각각 열 고을 혹은 다섯 고을을 차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 종은 주인에게 와서 말하기를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인은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본문 22-23절) 하고는 곁에 있던 자들에게 말하기를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본문 24절) 했습니다. 주인의 곁에 있던 자들이 그 주인에게 말하기를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본문 25절) 했지만 주인이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본문 26절)고 말하고는 또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본문 27절) 명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비유 속에서의 귀인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을 다스릴 왕권을 부여받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음을 이 비유는 또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실은 이 비유 말씀에서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 속의 종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미워하고 그의 이 세상 왕 되심을 거부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는 일단 위기의 때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일꾼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주인이 왕위를 받으러 멀리 가서 없는 동안 그를 미워하며 그가 왕이 되지 못하게 반대하는 일을 꾸미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위하여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위험하기조차 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태연히 종들에게 은화 한 므나씩을 주며 그가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백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를 받아올 것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종들이 주인의 명대로 열심히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주인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누가 뭐라 하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그가 왕이 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충성스럽게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1절은 예수님께서 왜 오늘의 비유말씀을 하셨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보면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오늘의 비유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의 비유말씀을 통해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사실이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실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이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 가시면 제자와 군중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시고 붙잡히셔서 온갖 치욕과 고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는 그 사실을 여러 차례 예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조차도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이나 군중들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다윗왕국의 회복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기대와는 달리 맥없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다면 그들은 낙심하고 절망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며 송두리째 내던져버리게 될 것임을 주님께서 염려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그의 주 되심을 끝까지 믿으며 그의 충성된 종으로 남을 사람이 없을 것임을 아셨기에 오늘의 비유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미워하고 배척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의 왕권을 부여받으신 구세주이시며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임을 확실히 하시고,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말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배척하는 자들은 죽음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분명히 하심으로써 주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 위기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과 충성을 지키게 하시려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으로부터 하나님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비록 주님을 배척하거나 부인하는 세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악의적이며 위협적으로 우리를 대한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왕은 주님이시고 모든 주권은 그의 손에 있음을 굳게 믿으며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비유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 속에 등장하는 한 종의 행동과 말 그리고 그에 대한 주인의 대답을 조금 더 가까이 살펴봄이 좋을 것 같습니다. 20-26절을 다시 봅니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여기서 우리는 우선 주인이 악하다고 선언한 종에게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첫째로, 그는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20절을 보면 그 종은 주인에게 와서 말하기를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분명 그에게 한 므나를 주며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수건에 싸서 보관해두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주인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나쁜 인식 때문에 순종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 나쁜 인식이란 그 주인이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불로소득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 종은 그 마음속에 일은 자기가 하는데 그 일의 소득은 아무 것도 안 한 주인이 다 차지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가득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일 한 결과로서의 소득을 주인에게 고스란히 주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돈으로 장사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돈을 은행에 맡겨 주인에게 이자를 남겨 주는 일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종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고 그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주인이 주는 대로 먹고 살 뿐임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종으로 일하며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주인의 덕인 줄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가 일하여 번 것을 자기 자신이 다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주인을 나쁘게 여기고 있던 그 종은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그 주인을 미워하고 그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 편에 서있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어떤 해를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보신을 위해서 눈치를 보며 최대한 주인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였을 것입니다. 주인의 말씀과 세상의 시선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종을 예수님께서는 비유 속의 주인의 입을 빌어 악하다 심판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은 이 악한 종과 같은 신앙의 태도, 아니 비신앙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재능과 그 재능에 따라 크고 작은 일을 하도록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주의 일꾼들입니다. 그 부르시고 세우시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건강과 시간과 물질과 삶의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하고 활용하여 보다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 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수건에 싸서 묻어 두고 사는 게으른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악하다는 판정을 받을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확신을 갖고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란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가 쉬거나 놀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시며 낮이나 밤이나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것 같은 일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 하신 일임을 늘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힘써 일하고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일을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기쁨으로 다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고 기회주의적인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충성하며 최선을 다해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하는 칭찬을 주님으로부터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 때입니다. 교회도 어려운 때입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냉대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때입니다. 교회를 헐뜯고 기독교를 음해하는 세력들이 극성을 부리는 때입니다. 결국은 주님께서 이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하실 것 같이 여겨지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과 충성입니다. 이 사회가 혹은 지금 이 땅의 권력 잡은 자들이 주님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배척하려한다 하드라도 주님은 변함없이 이 세상의 왕이시며 여전히 그 주권을 행사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비유 말씀의 끝에서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배척하는 자들의 결국은 죽음의 심판일 뿐입니다.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그들 때문에 위축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충성으로 교회와 이 나라의 오늘의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