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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아꼈는가? (에베소서 5:15~21)
하나님은 세월을 아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현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세월을 아끼면서 살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세월을 아꼈는가? 이런 반성과 자성과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의미는 매우 함축적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월을 아끼라고 하시는가? 그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때가 악한 것을 극복하는 길은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악은 시간을 헛되게 합니다. 악은 시간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 악과 맞서서 세월을 아낌으로써 죽은 시간을 살려내고 헛된 시간을 가치 있는 시간으로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로 악합니다. 금년 연말에도 각 신문에서 10대 뉴스를 발표했습니다. 국내 뉴스 가운데 밝은 뉴스는 2개 내지 3개 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7개 내지 8개는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는 뉴스입니다. 우리 국민을 근심시키는 뉴스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은 악이 많습니다. 악한 환경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악하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계시방법을 여러 가지로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고, 지혜로운 분이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그 무한함과 의로움과 지혜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계시를 주시고 보이는 현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시간의 의미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이도록 우리에게 주신 도구가 달력과 시계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달력이 없고 시계가 없다면 날짜를 알지 못할 것이고 시간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생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만큼 달력과 시계는 인간에게 필요한 시간을 이해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달력과 시계로 인하여 성립되는 시간 개념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입니다. 우리는 지난 해 달력을 보면서 과거라고 해석을 합니다. 다가올 해의 달력을 보면서 미래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금년도 12월 31일을 보고 오늘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의 본질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시간의 질이 다른 게 아닙니다. 똑같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왜 과거시간, 현재시간, 미래시간의 개념이 따로 있고 의미가 다른가?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을 위한 그런 구분인 것입니다. 천국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누가 선임자냐? 누가 천국에 먼저 왔느냐? 하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시간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천국에도 현재가 있습니다. 24장로와 앞서간 성도들, 천군천사들이 어린양 보좌 앞에서 경배와 찬양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경배와 찬양과는 다릅니다. 땅위에서 드리는 우리의 예배, 우리의 찬양 속에는 불신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땅에서 누리는 현재 이 시간 속에는 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현재 시간에는 전혀 악이 없습니다. 천국 성도들의 경배는 완전한 경배입니다. 시간의 완성입니다. 그들의 찬양 속에는 불신앙이 없습니다. 천국 성도들의 경배 속에는 완전한 성령의 충만함과 완전한 영광스러운 예배이기 때문에 땅위에서 불신앙을 안고 드리는 우리의 예배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의미 없는 시간을 의미 있는 것으로 헛되이 생각하고 붙잡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계 신문에 칼럼을 하나 실었습니다. 제목은 '톱밥에 톱질하듯'입니다. 그런데 그 칼럼을 읽은 독자가 제게 격려의 말을 보내주었습니다. 톱밥에 톱질을 한다는 것은 과거에 매여 사는 것이라고 제가 해석을 했습니다. 톱질은 나무에 해야 됩니다. 톱밥은 이미 톱질을 했다는 과거입니다. 이 톱밥은 톱질을 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톱질은 나무에 해야 됩니다. 톱밥에 톱질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나무 한 토막 잘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흘러가버린 톱밥에다가 톱질하는 헛수고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흘러가 버린 과거에 집착하고 매이지 말자는 것입니다. 의미가 없는 일에 의미를 두지 말라는 말입니다. 의미가 없는 것은 의미 없는 것으로 폐기처분해 버리고 의미가 있는 것은 새롭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쁜 과거는 잊고 좋은 과거는 붙잡기 바랍니다. 톱밥에 톱질하는 헛된 인생들이 많습니다. 그 글을 읽은 독자도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1년 생활이 톱밥에만 톱질하는 자성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님 앞에서는 구분이 없습니다. 영적인 개념에서도 거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영원한 현재를 말합니다. 내일 아끼겠다고 결심하지 말고 지난날 세월을 허송했다고 절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헛된 시간을 잊어버리고 미래의 기약 없는 결심도 집착 말고 오늘 세월을 아끼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랍니다.
아낀다는 의미
지금도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대고 투병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 환자들은 12월 31일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 오늘이 마지막 날이구나!’ 하는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내일이 1월 1일이구나! 아, 서해안에 가서, 동해안에 가서 일출을 보았으면…’ 그런 계획도 없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대고 중병을 앓는 그 사람들에게 12월 31일이 무슨 뜻이 있고 1월 1일이 무슨 뜻이 있습니까? 그 환자에게는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하는 날이 최상의 날입니다. 다른 날이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의 질을 가지고 보면 달력의 일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시계 속에 명시된 시간도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의 본질을 살아야지 시계에 맞추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계에 맞추는 그것은 기계입니다. 우리는 시계라는 이 기계를 초월하는 질을 누리고 살아야 됩니다. 달력을 뛰어넘는 시간의 질을 누리고 살아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12월 31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1월 1일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그날이 가장 좋은 날입니다. 1월 1일이 설이라고 좋은 게 아니고 출소하는 그날이 가장 좋은 날입니다. 우리에게 세월을 아낀다는 의미는 시간의 본질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세월을 아낀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뜻을 이해하는 것이 세월을 아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에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는 시간은 무효라는 것입니다. 앞에 보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인지 무엇인가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리석음을 극복해야 주의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성경은 부정어법을 강조하는 기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 이하에 보면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참말 열 마디를 해도 거짓말 한마디를 해버리면 그 참말 열 마디가 다 무너져 버립니다. 참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짓말 하는 습관부터 버리라는 것입니다. 거짓말부터 버리고 참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적질하지 말고, 빈궁한 자에게 구제하고 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구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남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까지 같이 하면 안 됩니다. 도적질하는 것을 버리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먼저 하지 말라고 명령을 합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우선되는 명령입니다. 십계명도 그렇습니다.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지 말라는 것부터 우리는 순종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라는 명령을 곧잘 하는데도 문제가 일어납니까? 그 속에 하지 말라는 것을 아직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도 앞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술 취함은 세상과 타협하고 죄에 오염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불신앙에 오염되어 있으면서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먼저 술 취함을 극복하고 그 다음에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삶은 나를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게 하고, 죄를 이기게 하고,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가지게 합니다.
세 번째는 찬미와 감사와 복종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 피차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찬양과 감사와 복종, 이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여러분, 시간은 인간의 편에서는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하다가 끝맺음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간이 끝이 납니다. 인간 편에서는 다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의 시간은 끝남이 없습니다. 중지가 없습니다. 내가 죽어도 하나님의 시간은 그대로 연속이 됩니다. 인간의 죽음은 우리 편에서는 끝이지만, 우리의 죽음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는 영생으로 이어지는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를 통하여 세상을 심판했습니다. 끝났습니다. 그러나 노아 가정을 통하여 새로운 믿음의 후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은 하나의 끝맺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새로운 구약의 선교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여러분, 끝났다고 좌절하지 말기 바랍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시간을 살리라
데일 카네기가 세일즈맨으로 생활할 때 도무지 실적을 올리지 못합니다. 세일즈맨은 실적을 못 올리면 퇴출됩니다. 그래서 다시 그는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절망을 안고 하염없이 해변을 거닐고 가는데, 어느 조그마한 가게에 그림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보니까 그 그림이 자기 심정을 잘 표현해 주는 그림이었습니다. 단순한 그림입니다. 바닷물이 다 빠져버린 모래밭에 낡고 작은 배 한 척이 그 모래에 얹혀 있는 처량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해변에 낡은 배 한 척이 모래 위에 얹혀 있는 그 처량한 모습을 보고 ‘저게 내 처지와 같구나!’ 그렇게 자꾸 마음이 끌려서 가까이 가게 되었는데, 그 그림 밑에 보니까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 제목은 ‘반드시 밀물 때는 온다’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새로운 감동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구나! 이 배의 모습은 너무나 절망적이지만, 밀물이 밀려오면 이 배 밑에도 물이 찰 것이고, 물위에 떠서 배가 살아날 것이다’라는 새로운 감동을 보게 된 겁니다. 그는 자기의 생애에도 밀물 때가 온다는 소망을 붙잡게 됩니다. 그는 그 그림 한편에 그 밑에 있는 제목 한 마디에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시간으로는 끝난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간은 끝남이 없습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이 말의 헬라어는 ‘엑사고라죠’입니다. 이 말 뜻은 아주 심오합니다. 이 말은 건져 올려 살린다는 뜻입니다. 지금 떠내려가는 것을 그대로 놓아두면 죽습니다. 그런데 건져 올려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말은 죽어가는 시간을 살려낸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잘못 관리하면 죽은 시간이 됩니다. 이 죽은 시간, 하나님과 단절된 시간, 범죄한 시간, 불신앙에 처해있는 그 시간을 살려내는 것을 가리켜서 세월을 아낀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분명히 1년 365일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주님 앞에서 의미 있게 산 시간은 그리 많지 못합니다. 그 외 시간은 다 우리가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간을 죽이는 것이 불신앙이고 불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이 주신 시간을 우리는 살려야 됩니다. 그 시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시간의 조정은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시간의 통치자도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살 뿐이고 하나님이 정한 시간의 스케줄 안에서 복종할 뿐입니다.
곡식은 1년을 생각하고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내기를 해서 벼를 거두는 것이 몇 달 사이에 됩니다. 그러니까 벼농사가 몇 달 만에 되는 게 아닙니다. 벼농사도 알고 보면 1년 농사입니다. 타작을 할 때부터 볍씨를 미리 구분을 하는 것입니다. 감자를 거둘 때부터 씨감자를 구분합니다. 1년 스케줄이 농사의 스케줄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스케줄입니다. 나무는 10년을 생각하고 심어야 됩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서 재목이 되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속성재목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의 생리적 스케줄도 하나님이 정한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아기를 석 달, 넉 달 만에 못 낳습니다. 10개월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의 스케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시간의 스케줄 앞에 복종할 줄 알아야 힙니다. 복종이 바로 지혜요 신앙이요 의로움입니다. 사람은 100년을 생각하고 키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재는 키워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사는데, 따지고 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의 혜택을 우리가 다 받고 사는 것입니다. 100년 전에 좋은 일 했던 사람, 100년 전에 깨달았던 사람, 100년 전에 희생했던 그 사람들 덕택으로 오늘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해방 후 우리의 정치사를 보아도 살아있는 대통령의 역할도 크지만, 사실은 죽은 대통령의 역할이 더 큰 것입니다. 그 사람들 은공으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은 100년 대계입니다. 성급하게 교육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나무는 10년 대계입니다. 농사는 1년 대계입니다. 하나님의 스케줄에 복종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부질없이 하나님의 시간에 대항을 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주의 뜻을 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도 부질없이 시간을 역행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곧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때가 악하니라.” 다가오는 한 해도 인간의 시각으로 크게 기대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 속에는 악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악이 항상 공존합니다. 그러므로 악이 없는 세상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세상은 악하고 때는 악하지만 때가 악하기 때문에 불리한 게 아니라 때가 악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세월을 아낄 줄 알면 더 유리하다는 뜻입니다. 밤이 캄캄할수록 하늘의 별빛이 더욱 빛납니다. 우리의 때가 악하고 환경이 악하다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약화되고, 의미가 약화되고 믿음으로 사는 일이 불리한 게 아니라 세월을 아끼는 지혜를 가지면 더 우리에게 축복과 은총의 시간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시작하자
금년 세모에 우리 모두가 느꼈듯이 모두 힘들어 합니다. 지금 점포에서 장사하시는 우리 성도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세모에는 우리 시민들이 모두가 힘들어 합니다. 경기가 많이 침체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그런데 힘들다고 하는 이것이 우리가 더 나은 환경, 분위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있지만, 금년 세모에는 우리 국민들이 많이 피곤한 것 같습니다. 금년 국내 뉴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톱뉴스가 된 게 북한 핵실험 문제입니다. 이것을 단순한 정치, 안보, 군사적인 문제 뿐 아니라 북한 핵실험이 우리들에게 준 심리적인 불안감, 압박, 좌절감, 북한 핵을 대처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온갖 감정들이 우리를 너무 슬프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사회에 몰아쳤던 이 부동산 광풍으로 떼돈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좌절감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심리적인 분위기도 예년에 없이 금년 연말에 우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그것을 초월합니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스트레스가 있고, 아무리 우리에게 불리한 환경이 있을지라도 성경이 이미 말하기를 때가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악하고, 환경이 불리한 그것을 붙잡고 절망하고 힘을 빼지 말기 바랍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이 주님의 말씀 앞에 바로 응답하고, 적응하고, 세월을 아끼는 지혜를 발휘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세월을 죽이는 불신앙에서, 세월을 아끼는 신앙으로 우리의 삶을 채널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써서 이 지구촌에 모든 백성들 앞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분 책 가운데 이런 글이 한 줄 나옵니다. ‘고통의 채널을 빨리 바꿔라.’ TV를 보다가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이 나오면 불평하지 말고 채널을 빨리 바꾸라고 합니다. 화면을 보고 절망하고 욕 할 필요가 없습니다. 채널만 바꿔 버리면 됩니다. 오늘 우리 삶이 하나님과 어긋나 있는 삶의 채널을 하나님께로 바꾸기 바랍니다. 우리의 채널을 신앙의 채널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불신앙의 채널을 그대로 틀어놓고는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개선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채널을 바꾸세요. 10년 전에 고정시켜 놓은 채널을 그냥 두고 무슨 은혜를 구하며 축복을 구합니까? 채널을 하나님께로 바꾸어야 됩니다. “세월을 아끼라!” 이 말씀을 안고 2007년도를 복되게 살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