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9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식 더 늘어간다" 라고 하는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참 평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전쟁과 기근과 재난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리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범죄한 이후에 세상에는 죄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평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 세상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 뿐인 아들을... 이 죄악된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흉악 무도한 강도가 처형당하는 십자가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요?

또한 왜 예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이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 답은 주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천사들을 통하여 들려주신 음성을 통하여 알수 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이 세상에 잃어버린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높이 쌓여져 있는...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원수 된 것을... 화평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위하여 화목을 위하여 오셔서 자신을 화목 제물로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화평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므로...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화평케 하신것입니다.

어느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의 일입니다.
적들이 총 공세를 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여야 하는데... 통신이 두절된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전선이 끊어져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급박합니다.
끊어진 전선을 연결 하여야 하지만 연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절박한 가운데 한 통신병은...
자기의 오른손과 왼손으로 끊어진 선을 잡았습니다.
메시지는 전달되었고.., 지원병은 도착되었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자랑스럽게도 검게 타죽은 통신병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허시고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십자가를 통하여 인간과 인간의 막힌 담을 허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이 사는 세상을 에덴 동산으로 다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로 그 화평의 하나님, 화평의 주님을 믿는자 역시 화평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예수님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강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화평을 이루었다.
너희도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은... 우리 신앙의 계단과 같습니다.
우리가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 갈 때에... 높은 곳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의 성장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

이 4가지 복은...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다듬어 나가는, 나의 수양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5번째 복 - 긍휼히 여기는 자는,
6번째 복 - 마음이 청결한 자는
이제 자신에게서 남에게 눈을 돌립니다.
내가 은혜 받고, 내가 복 받고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눈을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7번째 복인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어로 Peace Maker입니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 세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신앙의 초보적인 단계에서는... 내가 예수 믿고.., 내가 복 받고..,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면... 내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어떻게 세워 나갈 것인가?
어떻게 세상 속에서...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를 생각하며...
주님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 주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수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높은 신앙의 단계를 위하여... 가만히 앉아서 배우는 단계에서 지나,
가슴에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단계에서 지나,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는 단계에서 지나...
평화를 만드는 사람, 화평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 가나안에 왔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나안 땅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고, 재산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소와 양이 늘어나면서 풀과 물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과 롯의 종은 서로 자기들의 양과 소에게 먹이를주고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하여 다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를 본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보게 조카, 우리가 혈육으로서 서로 다투는 것이 선하지 못하니
자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자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네"

서로 다투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헤어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네가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하라 하고 말하셨습니다.
원칙은 조카 롯이 삼촌에게 "그래도 어른이신 삼촌이 먼저 좋은 곳을 선택하십시오. 조카인 제가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물이 흐르고 넓은 초지가 있어서 보기에 에덴 동산과 같은 풍요로운 땅을 선택하여 가게됩니다. 아브라함은 그 반대편 땅을 향하여 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과 조카 롯 사이에 더 이상 다투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평화가 왔습니다.

평화가 어떻게 이루어 집니까?
먼저 손해 보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희생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의 희생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영광 자리를 포기하는 아픔이 있었고
무섭고 끔직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희생이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성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잔멸하기 위하여 힘쓰던 젊은이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도들을 옥에 가두고 교회를 잔멸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다가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의 거역하며 살았던 것에 대하여 회개하고 주님을 위하여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사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도들을 옥에 가두고,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도 참여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함께...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변절자가 되어서... 자신들을 떠났고,
오히려 핍박하던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고... 사울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은 교인들에게도 영접을 받지못하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도 변절자로 어느 누구도 인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 바나바라는 사람이 나서게 됩니다.
사울을 만나 사울의 진실함과 믿음과 열정을 확인하였습니다.
교인들을 만나 사울이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변화되어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일할 사명자라로 교회에서 그들 받아들일 것을 권하였습니다.

이 바나바의 중재를 통하여 교회는 사울을 받아들였습니다.
후에 사울은 바울로 이름도 바꾸고... 주님을 위하여 크게 수고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었습니다.
바울을 통하여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나바의 화평케 하는 수고를 통하여 이루어진것입니다.
만일 바나바의 화평케 하는 수고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훌륭한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훌륭한 일꾼인 사도 바울을 얻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고후 5:18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평케 하는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화평케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우리들이 힘써야 할 사명은 화평케 하는것입니다.
(카터대통령...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자녀를 보면 그 부모를 알고... 부모를 보면 자녀를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은 그 부모를 닮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닮아야... 하나님의 아들임이... 입증됩니다.

하나님은 화평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그의 아들된 우리역시... 화평케 하는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그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지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지는 것... 이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왜냐면...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누리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에 화평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드렸을 때에
그것을 지켜보던 로마의 백부장이 말했습니다....
“이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우리가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며... 살아갈때에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말할것입니다...
“저 사람은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할렐루야!
이런 칭찬을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충원합니다.


           출처/윤상운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