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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교수 2004.03.02 조회 : 407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위기에 직면할 때가 있다. 어떤 큰 상실이나 도전 위협에 부딪혀 평상시 생활의 균형을 잃게 되는 것을 위기라고 부른다. 위기개입은 Caplan(1965)이 자아심리학을 활용하여 이론을 정리한 후로 사회복지나 심리상담에 많이 활용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은 위기 자체보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 반응을 합리적으로 통제해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나에게도 이번 달에 큰 위기가 있었다. 허리를 다쳐 쓰러지게 되면서 모든 생활이 중지된 것이다. 이때 이론적으로만 알고있던 위기 개입의 진수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매일은 물처럼 흘러가지만 가다가 큰 바위에 부딪히면 그 물은 수많은 거품으로 산산조각 나버린다. 그러다 다시 모여 흐르게 되지만 그것은 이전의 물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평소에 물은 자신의 성질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고 흘러가지만 산산이 부서지면서 물은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부서짐으로써 물은 숨겨져 있었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직면하고 새로 탐구를 시작하게 된다. 위기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삼일을 꼬박 누워 있으면서 인생의 시작과 마지막에 대한 느낌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누워서 뒤집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기가 처음 태어나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누워 있다가 불편해지면 마구 울어댄다. 그러면 엄마가 달려가 아이를 안아 올리며 달래주고 자세를 바꾸어 준다. 그러다 조금 힘이 생기면 뒤집고, 앉고, 기어다니다가 붙들고 일어서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해야하는지, 또 얼마나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리고 일단 선 후로는 거기까지 온 과정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에 다가갈 때에는 이 과정이 정확하게 반대로 되풀이 될 것이다. 호스피스에서 일해온 어느 간호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람이 죽을 때에는 우리가 시작한 것과 완전히 똑같이, 그러나 거꾸로 그 과정을 밟게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붙들고 서다가, 서지 못하게 되어, 앉아 있다가, 앉을 수 없는 날이 오면 누워서 뒤척이다가 그러다 뒤척일 힘도 없어지면 옆에서 도와 뒤집어주어야 한다고.
이번 일로 나는 자유롭게 활동하며 사는 것을 이제까지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어느 현자의 글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아기가 태어나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짓지만 아기는 크게 운다.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해서 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떠날 때에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슬퍼서 울고, 자기는 미소를 지으며 떠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고민하지 않고 쉽게 살아가는 것은 웃으면서 이 생을 마감하는데 도움이 안될 것 같다. 부딪히고 부서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를 고민하고 탐구하면서 살아가야 우리가 이 생을 걸어나갈 때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누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 지를 배우는 것이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기쁘게 남에게 내 팔을 맡길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우리는 어차피 서로 의 팔을 빌려주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늘 누가 나의 도움이 필요할까, 내일은 내가 그의 도움을 받게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