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되라시니 빛되야지  (마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 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그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3-14)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인상깊은 삶의 자세를 말해주고 계십니다. 먼저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염광교회, 광염교회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 옆에도 <빛과 소금 교회>가 있습니다. 좋은 이름입니다.
빛으로 살라는 말씀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가요?

1. 밝히며 사는 사람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은 주변을 밝게 비추면서 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그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비추게 되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르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 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그래서 빛되신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비추이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베드로는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두 가지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죄가 보였고 다른 하나는 놀라운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단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정말 피곤한 밤이었습니다. 기분도 안 좋은 밤이었습니다. 아침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갑자기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갑자기 죄인이라고 엎드렸습니다. 우리 같으면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한 방에 날렸군요. 기적입니다. 돈이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전화번호 주세요, 한 턱 내겠습니다. 한 번 만나주세요.>
그러나 베드로는 빛되신 예수님은 만나고 나서 자기의 죄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 보이다가 거울을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캄캄 하다가 불을 비추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게 됩니다. 방안이 어두울 때는 몰랐는 데 빛 줄기가 비추면 먼지가 날라 다니는 것이 보입니다.
베드로는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자 안 보이던 죄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 후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하루에 3천명, 5천명씩 회개시키는 제자중에 제자, 사도중에 사도, 전도자중에 전도자, 별중에 별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죄를 보고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허물이 보이게 되고 우리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이 폭팔하게 됩니다.
빛의 사명은 비추는 것입니다.

철학자 디오니게스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어느 소경이 등을 들고 다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앞도 보지 못 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녀요?>
소경이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보고 부딪치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요.>
빛은 비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이 세상이 밝도록 빛을 비추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2. 눈에 뜨이는 사람
빛이 있으면 눈에 뜨입니다. 캄캄한 밤에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밑으로 조그만 섬이 보이는 데 등대 불빛 하나가 유난히 밝게 눈에 띄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은 눈에 띄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간판도 찬란한 빛으로 빛나게 합니다.
우리교회 간판은 올림픽 대로, 강변 북로 그리고 청담대교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입니다. 2200만원 투자된 간판입니다..
어둠은 아무 것도 보지 못 하게 가리웁니다. 어둠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 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그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3-14)

이스라엘에 있는 동네들은 산 위에 있습니다. 지중해 바람을 맞아야 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850m 산위에 세워진 동네입니다. 아직도 산 밑에는 집인 한 채도 없습니다. 밑에는 기드론 골짜기, 힌놈의 골짜기, 중앙 계곡입니다.
빛은 눈에 뜨이게 둡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드러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행사나 일이 끝나고 그 사람이 드러나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다른 사람입니다. 빛된 사람이기에 보이는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나는 보이는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결단하지 않으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집을 다니셨어도 마리아 집만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에게 부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그 여자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온 천하 어느 곳에서든지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이 이야기도 전하여 지리라.>

나는 지금까지 약 1000여 교회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한 교회에서 평균 500명 정도를 만났다면 500만명을 만난 셈입니다. 500만명 만난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사람 한 사람이 있습니다, 충청도에서 집회할 때였습니다. 숙소가 교회에 있는 방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불을 키며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 왔습니다. 아직 잠옷 그대로일 때입니다.
<할머니! 아직 옷도 안 갈아 입었어요.>
그러면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괜찮아. 내 아들이야.>
그리고 그의 손에는 새 양말 한 켤레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양말을 나에게 신켜 주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강사님 오늘 이 양말 신고 설교 잘 하게 하여 주세요.>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할머니입니다. 빛은 눈에 띄입니다. 눈에 띄이는 사람이 빛된 사람입니다.

3. 생명력이 있는 사람
빛은 생명입니다.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제주도 만장굴에 들어가서 신기한 것이 보였습니다. 캄캄한 동굴속에 조그만 구멍이 뜷려서 빛 한 줄기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이 들어오는 곳에 일렬로 작은 풀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는 풀들이 없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은 꿈틀거립니다. 어둠은 죽음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떠내려 갑니다. 죽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움직입니다. 살아 있는 고기는 세찬 물살을 헤치고 급하게 올라갑니다.
멋있습니다.

생각이 살아 있는 사람은 생각이 생생하게 움직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은 히말라야 산입니다. 8850 m입니다. 남산의 40배 쯤 됩니다. 이 산에 오르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이 산에 도전한 사람은 1924년 6월 8일 영국의 두 사람이었습니다. 죠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번입니다. 이들은 최초로 이 산을 오르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 하고 눈속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그 후 수 많은 이들이 이 산에 오르기를 도전하였습니다. 그 후 1952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도전하였다가 실패하고 내려왔습니다. 어느 날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산 사진을 붙여 놓고 강연하면서 외쳤습니다.
<에베레스트야! 지난 번에는 네가 날 이겼다. 그러나 다음에는 내가 너를 이길 것이다. 이유가 분명하다. 너는 성장을 멈추었다. 그러나 나는 성장하였다. 그리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다음 해 1953년 5월 29일 11시 30분 드디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습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오늘도 내일도 세차게 움직여야 합니다.

4. 뜨겁게 사는 사람
빛은 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빛되라고 하시는 말씀은 열이 있는 사람, 뜨거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의미입니다. 죽은 사람의 특징은 몸이 찹니다. 섬짓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36.5 도 적당한 체온을 유지입니다.
빛은 뜨거움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하늘에 인공위성으로 거대한 반사경을 띄웁니다. 그리고 그 것을 조정하여 빛을 지치면 그 빛이 닿는 곳은 모두 타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구름에 이 반사경을 비치면 구름이 모두 사라지기에 가뭄이 옵니다. 산에 이 반사경을 비치면 산이 타버립니다.
빛은 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든기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그 일을 해냅니다.

죤 헨리 뉴먼의 아버지는 그를 영국의 유명한 법률가로 기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사가 되어 오직 복음을 이 땅 구석구석에 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간절한 권유를 뿌리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열심히 일하다가 병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목회를 포기하고 요양차 시실리 섬으로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의 빛으로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 오는 배에서 이런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 데 빛 되신 주
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 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찬송가 379장)

우리는 성경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에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자 실망한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슴 전체는 실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이 때 빛되신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하였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 하였습니다. 죽은 예수가 감히 여기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 본 순간 예수님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뜨거움만 남기고 떠나가셨습니다.두 제자는 뜨거운 가슴을 안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뜨거움을 주시는 빛이십니다.
그렇기에 추운 이는 난로가로 가야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 열정을 잃어버린 이들은 빛되신 예수님에게로 가야 합니다.

나는 여 운학 장로님이 쓴 <이슬비 장로의 전도 이야기>를 읽다가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존 퍼킨즈라는 흑인이 미국 동부 미시시피에 살고 있었습니다. 백인들이 어떻게 흑인들을 미워하면서 혹사시키며 인종을 차별하는 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고 말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인생에 처음으로 맛보는 행복감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진작 올 것을 그랬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첫 날부터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옥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엄청난 사랑이었음이 뜨겁게 가슴속에 와닿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퍼킨즈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직장을 포기하였습니다.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를 포기하고 흑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미시시피로 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백인은 우리를 미워하여도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하고 계심을 뜨겁게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5년간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가장 가난한 동네에 빛되신 예수님이 스미기 시작하였습니다. 흑인들은 오직 빛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평안한 삶을 살시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고 우리에게 빛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이 임재하면 가슴은 뜨거워집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웨슬레가 그랬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올더스케잇의 체험을 통하여 불붙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중국을 복음화시킨 죤 성이 그랬습니다. 유니온에서 박사학위를 받아가지고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 오는 도중에 배에서 잠간 잠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관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박사학위 모자를 쓰고 몸에는 박사학위 까운을 입고 손에는 박사학위 증서를 든 채 관속에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박사학위 받은 것을 우상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빛되신 주님이 이런 교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박사학위 모자 까운 그리고 증서를 바다속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엎드려서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박사 학위를 자랑하려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의 빛이 조용히 죤 성에게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구덩어리를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지구 덩어리에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들을 위하여 일하여라>
그는 불붙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빛되신 주님이 임재하시니까 뜨거워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되라고 하시니 빛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빛되게 사는 것일가요?
1. 밝히며 사는 사람
2. 눈에 띄이며 사는 사람
3. 생명력이 있는 사람
4. 뜨겁게 사는 사람

출처/강문호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