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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기도 (막 9:23-29)
기도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도 없는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닙니다."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 속에 기도의 필요성, 기도의 능력, 기도 결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왜 오직 기도인가"를 찾고 우리의 기도 자세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느 곳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느 날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며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올라가 계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소이까?"
"제 자식 때문에 왔습니다. 제 자식이 귀신이 들렸는데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고, 파리해 갑니다만 고칠 길이 없어 데려 왔습니다. 제 자식을 고쳐 주옵소서."
그러나 산아래 남아 있던 제자들은 그 날 발작하는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에 오르실 때마다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 날도 예수님은 세 제자와 함께 산으로 가시면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기도하고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산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커녕 불평과 원망하는 말들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우린 뭐야! 왜 걸핏하면 선생님은 세 제자만 데리고 올라가는 거야. 이건 말도 안돼. 편가르자는거야 뭐야"라며 불평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불평스런 마음을 먹는 순간 기도의 문은 막힙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면 은혜도, 능력도, 응답도 막히고 맙니다. 그 날 제자들은 꼭 필요한 일은 제쳐놓고 불평스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기도하지 않다가 귀신에게 농락당했던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께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마17:16)
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셨고,(마 17:17; 막 9:19)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습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17:20)고 하셨고, 둘째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막 9:29)
위의 두 구절을 합하면 믿음이 적었기 때문이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의심하고 불평하느라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도, 남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동차 타이어 튜브 속의 공기와 같습니다. 제아무리 값비싼 고급 튜브라도 공기를 넣지 않으면 타이어로 쓸 수가 없습니다. 적당량의 공기를 주입하야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없으면 제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힘이 빠지고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나, 어디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죽을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제를 풀고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본문을 보면 귀신이 하는 일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디서든지" 귀신은 활동합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가리지 않고 예수님도 제자도 가리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어떤 짓이든 닥치는 대로 합니다.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게 하고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아무나 붙잡습니다. 18절을 보면 "저를 잡으면"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마치 씨름 선수처럼, 유도 선수처럼 붙잡기만 하면 공격하고 넘어뜨립니다.
예수 손에 붙잡히면 쓰러지고 넘어지고 거꾸러졌던 사람도 다시 일으켜 세워줍니다. 망한 사람 흥하게 해주고, 병든 사람 낫게 해주고, 걷지 못하는 사람 뛰어다니게 해줍니다. 그러나 귀신에게 붙잡히면 멀쩡하던 사람 주저앉고, 흥하던 사람 망하게 만들고, 서있는 사람 넘어뜨립니다.
누구에게 붙잡히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의 종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 고통들, 실패들, 아픔들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기도가 해결합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과 그 아이의 아버지 사이에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9:21)
"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물과 불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우린 이 대화 속에서 귀신이 하는 일을 확인하게 됩니다. "저를 죽이려고..." 그렇습니다. 귀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을 죽이고 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사업을 망하게 하고, 교회를 흔들고, 국가를 분열시키는 것이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벳솔은 말했습니다. "사단은 가정을 파괴하려 한다. 파괴하지 못하면 흔들어 분열시키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살리십니다. 일으키십니다. 흥하게 하십니다.
우린 본문에서 문제 해결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님이 사건 현장에 오셨습니다.
산에 올라가셨던 주님께서 제자들과 귀신들린 아이와 그 아버지가 뒤엉켜 고민하고 있는 현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 장면을 주목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주님이 떠나면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터짐니다.
제자들끼리 어느날 주님을 떠나 배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없이 제자들끼리 산아래서 불평으로 웅성거리다가 귀신에게 망신당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가까이 따라가지 못하고 멀찍이 따라가다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 없이 졸고 있다가 망신당하고 시험받았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내 가정에 사건 속에 함께 계셔야 합니다. 주님 떠나면 생명도, 인생도 헛되고 맙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인생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둘째, 기도했습니다.
본문 21-24절을 보면 예수님과 그 아이 아버지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을뿐 기도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화 속에 그 아버지의 기도가 들어 있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화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대화란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상대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독백의 대화는 다릅니다. 독백은 상대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나 대화는 상대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을 향해 하고픈 얘기를 하소연했습니다.
우리의 대화 상대는 누구입니까? 누가 내 말에 진지하게 실증 내지 않고 귀를 기울여 줄 수 있습니까? 그분은 바로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말을 들으시고 귀를 기우려 주시고 경청하시는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소리질렀습니다.
우리가 소리 지를 수 있는 신앙행위는 세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찬송할 때, 전도할 때입니다.
우울증, 조울증, 신경쇠약증, 노이로제 환자는 소리내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자기 감정 표현 방법이고, 자기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자기 치료에 좋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생각하고 좋은 일을 위해 소리를 질러야지 걸핏하면 악을 쓰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키게 됩니다.
기도할 때, 찬송할 때, 성경 읽을 때, 예수를 이야기할 때 `일을 열고 소리`를 지릅시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믿고 소리 지른 그 행위는 바로 그의 위대한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문제를 풀고, 기도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스트레스, 욕심, 불평, 불안, 증오, 분노가 자리를 잡게 되면 인체 내에서 생체 반응이 나타납니다. 맨 먼저 나타나는 반응이 피의 응고 현상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맑고 깨끗하게 혈관을 흐르던 피가 갑자기 걸쭉해져서 순환에 장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혈관이 막히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피를 다시 맑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물치료가 아닙니다. 기분을 좋게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질 수 있습니까?
그때 찬송하고, 박수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정신도, 영혼도, 육체도, 사건도, 문제도 해결합니다.
셋째, 주님이 해결하십니다.
23절을 보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25절을 보면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자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6절을 보면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귀신이 소리지르며 경련을 일으키고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25절에 귀신의 특징이 나와 있습니다. "더럽고 벙어리 되고 귀먹고"라고 했습니다. 더럽고, 말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입니다. 오늘도 귀신은 더럽고 추한 짓만 골라 합니다. 예수를 말하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더럽고 추한 귀신아, 말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
오늘 본문의 결론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디크이스트맨은 "우리가 기도하기로 작정하는 시간부터 마귀는 우리 앞에 여러 종류의 방해물들을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직장에서 일거리가 늘어날 것이며, 갈곳이 많아지고,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가족들이 시간을 빼앗아갈 것이며, 화내고 신경질 낼 일들이 많아질 것이며, 걱정거리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 기도를 포기하면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기도, 기도말고는 길도 방법도 없습니다.
기도가 최선이고 제일입니다.
오직 기도!
오직 기도!
출처/박종순목사 설교 중에서
기도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도 없는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닙니다."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 속에 기도의 필요성, 기도의 능력, 기도 결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왜 오직 기도인가"를 찾고 우리의 기도 자세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느 곳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느 날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며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올라가 계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소이까?"
"제 자식 때문에 왔습니다. 제 자식이 귀신이 들렸는데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고, 파리해 갑니다만 고칠 길이 없어 데려 왔습니다. 제 자식을 고쳐 주옵소서."
그러나 산아래 남아 있던 제자들은 그 날 발작하는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에 오르실 때마다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 날도 예수님은 세 제자와 함께 산으로 가시면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기도하고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산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커녕 불평과 원망하는 말들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우린 뭐야! 왜 걸핏하면 선생님은 세 제자만 데리고 올라가는 거야. 이건 말도 안돼. 편가르자는거야 뭐야"라며 불평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불평스런 마음을 먹는 순간 기도의 문은 막힙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면 은혜도, 능력도, 응답도 막히고 맙니다. 그 날 제자들은 꼭 필요한 일은 제쳐놓고 불평스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기도하지 않다가 귀신에게 농락당했던 것입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께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라고.(마17:16)
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셨고,(마 17:17; 막 9:19)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습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17:20)고 하셨고, 둘째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막 9:29)
위의 두 구절을 합하면 믿음이 적었기 때문이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뿐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의심하고 불평하느라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도, 남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자동차 타이어 튜브 속의 공기와 같습니다. 제아무리 값비싼 고급 튜브라도 공기를 넣지 않으면 타이어로 쓸 수가 없습니다. 적당량의 공기를 주입하야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없으면 제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힘이 빠지고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나, 어디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죽을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제를 풀고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본문을 보면 귀신이 하는 일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디서든지" 귀신은 활동합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가리지 않고 예수님도 제자도 가리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어떤 짓이든 닥치는 대로 합니다.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게 하고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아무나 붙잡습니다. 18절을 보면 "저를 잡으면"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마치 씨름 선수처럼, 유도 선수처럼 붙잡기만 하면 공격하고 넘어뜨립니다.
예수 손에 붙잡히면 쓰러지고 넘어지고 거꾸러졌던 사람도 다시 일으켜 세워줍니다. 망한 사람 흥하게 해주고, 병든 사람 낫게 해주고, 걷지 못하는 사람 뛰어다니게 해줍니다. 그러나 귀신에게 붙잡히면 멀쩡하던 사람 주저앉고, 흥하던 사람 망하게 만들고, 서있는 사람 넘어뜨립니다.
누구에게 붙잡히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의 종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 고통들, 실패들, 아픔들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기도가 해결합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과 그 아이의 아버지 사이에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9:21)
"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물과 불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우린 이 대화 속에서 귀신이 하는 일을 확인하게 됩니다. "저를 죽이려고..." 그렇습니다. 귀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을 죽이고 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사업을 망하게 하고, 교회를 흔들고, 국가를 분열시키는 것이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벳솔은 말했습니다. "사단은 가정을 파괴하려 한다. 파괴하지 못하면 흔들어 분열시키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살리십니다. 일으키십니다. 흥하게 하십니다.
우린 본문에서 문제 해결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님이 사건 현장에 오셨습니다.
산에 올라가셨던 주님께서 제자들과 귀신들린 아이와 그 아버지가 뒤엉켜 고민하고 있는 현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 장면을 주목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주님이 떠나면 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터짐니다.
제자들끼리 어느날 주님을 떠나 배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없이 제자들끼리 산아래서 불평으로 웅성거리다가 귀신에게 망신당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가까이 따라가지 못하고 멀찍이 따라가다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 없이 졸고 있다가 망신당하고 시험받았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내 가정에 사건 속에 함께 계셔야 합니다. 주님 떠나면 생명도, 인생도 헛되고 맙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인생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둘째, 기도했습니다.
본문 21-24절을 보면 예수님과 그 아이 아버지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을뿐 기도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화 속에 그 아버지의 기도가 들어 있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화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대화란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 상대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독백의 대화는 다릅니다. 독백은 상대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나 대화는 상대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을 향해 하고픈 얘기를 하소연했습니다.
우리의 대화 상대는 누구입니까? 누가 내 말에 진지하게 실증 내지 않고 귀를 기울여 줄 수 있습니까? 그분은 바로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말을 들으시고 귀를 기우려 주시고 경청하시는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소리질렀습니다.
우리가 소리 지를 수 있는 신앙행위는 세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찬송할 때, 전도할 때입니다.
우울증, 조울증, 신경쇠약증, 노이로제 환자는 소리내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자기 감정 표현 방법이고, 자기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자기 치료에 좋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생각하고 좋은 일을 위해 소리를 질러야지 걸핏하면 악을 쓰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키게 됩니다.
기도할 때, 찬송할 때, 성경 읽을 때, 예수를 이야기할 때 `일을 열고 소리`를 지릅시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믿고 소리 지른 그 행위는 바로 그의 위대한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문제를 풀고, 기도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스트레스, 욕심, 불평, 불안, 증오, 분노가 자리를 잡게 되면 인체 내에서 생체 반응이 나타납니다. 맨 먼저 나타나는 반응이 피의 응고 현상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맑고 깨끗하게 혈관을 흐르던 피가 갑자기 걸쭉해져서 순환에 장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혈관이 막히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피를 다시 맑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물치료가 아닙니다. 기분을 좋게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질 수 있습니까?
그때 찬송하고, 박수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정신도, 영혼도, 육체도, 사건도, 문제도 해결합니다.
셋째, 주님이 해결하십니다.
23절을 보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25절을 보면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자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6절을 보면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귀신이 소리지르며 경련을 일으키고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25절에 귀신의 특징이 나와 있습니다. "더럽고 벙어리 되고 귀먹고"라고 했습니다. 더럽고, 말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입니다. 오늘도 귀신은 더럽고 추한 짓만 골라 합니다. 예수를 말하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더럽고 추한 귀신아, 말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라"
오늘 본문의 결론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디크이스트맨은 "우리가 기도하기로 작정하는 시간부터 마귀는 우리 앞에 여러 종류의 방해물들을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직장에서 일거리가 늘어날 것이며, 갈곳이 많아지고,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가족들이 시간을 빼앗아갈 것이며, 화내고 신경질 낼 일들이 많아질 것이며, 걱정거리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 기도를 포기하면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기도, 기도말고는 길도 방법도 없습니다.
기도가 최선이고 제일입니다.
오직 기도!
오직 기도!
출처/박종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