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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요1:1-18)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문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 속에는 요한복음이 말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 대부분이 압축되어 들어있습니다. 본문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무슨 말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합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선언하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태초”라는 말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을 가리킵니다. 즉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아무 것도 없던 때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14절의 말씀을 통해 곧바로 확인하고 갈 것은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입니다. 14절을 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놀랍고 중요한 진리를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영원 전부터 계셨던 그 말씀이시라는 진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한 것이 그것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8절도 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버지 하나님 품속에 계시던 그 유일하신 아들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신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뒤따르는 1절 하반절 또한 놀랍고 중요한 진리의 선언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말씀과 아버지 하나님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어서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한 것은 말씀과 하나님은 분리될 수 없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참 하나님으로서 서로 혼합될 수도 없고 혼동되어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나뉠 수 없는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와 같이 참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그와 함께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성령도 같은 논리로 이해되고 추가되어 확정된 삼위일체교리의 기초를 이루는 말씀인 것입니다. 삼위일체교리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모두 영원 전부터 계시는, 서로 혼합되지 않고 구별되는, 참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시라는 신비스런 진리입니다.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그 하나님은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세 존재양식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더 이상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고 사람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진리인 것입니다. 본문 1절의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2-3절은 아들 하나님께서 행하신 천지창조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셨지만 우리같이 피조물의 일부가 아니고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처럼 피조물에 속하신 이가 아니라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4절 상반절에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생명을 품고 계십니다. 아니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그 자신 영원한 생명이시고 모든 생명의 산출자이시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일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요5:26에 보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주기도 하시고 죽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시며 또 영원히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4절 하반절에서는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합니다. 빛은 생명을 낳는 힘입니다. 빛은 진리이고 소망이며 위로를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며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소망과 위로가 되어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사실보다 더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을 살리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값진 진리도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그 생명과 진리와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명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본문 14절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당신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속에 계시던 아들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 영광은 더할 나위 없이 빛나는 영광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오셨으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실 분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품속에 계시던 바로 그 아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다시 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신 사실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잘 드러내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가장 크고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게 하시는 계시의 절정이며 그 완성입니다. 16절에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한 것은 진리이건 은혜이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것보다 더 완전한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골2:9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다 주어졌고 은혜와 진리는 더 바랄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주어진 것입니다. 17절을 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따라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위로와 소망과 힘과 지혜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대단히 심오하고 난해하게까지 여겨질 수 있으나 아주 간결하고 명백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요 위로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만이 우리에게, 아니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며 만유의 주인이시고,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그리고 그가 친히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 가운데, 내 속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했습니다. 어둠은 죄와 죽음을 가리킵니다.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자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 주어진 은혜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9-11절에서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12-13절을 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고 무슨 일을 하려고 오셨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 무엇일지에 관한 그 자신의 증언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가 누구이시고 무슨 일을 하려고 오셨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며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입니다. 이 복음 안에서 우리의 모든 위로와 소망과 기쁨과 지혜와 새 힘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지도 영접하지도 않는 세상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는 반역의 무리들이 날뛰는 세상입니다. 생명이 없는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 아래 놓여 어둠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세상입니다. 진리가 죽고 참 기쁨이 사라졌으며 참된 위로와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채 흘러가는 세상입니다. 빛을 싫어하고 빛을 소멸시키려고 발악하는 세상입니다. 이 생명이 없고, 진리는 실종되었으며, 죄와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함께 어둠의 자녀처럼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를 믿으며 그를 영접하고 사는 우리는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유업으로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저버리거나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국민이 외면하고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진정한 반성은 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인 탈당과 기만적인 간판 바꾸기로 국민을 우롱하며 국민의 분노와 짜증과 혐오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한편 생명 없는 재집권계략 세우기에만 분주한 것을 지켜보며 살맛이 안 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의 후보로 뽑히기만 하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인 줄로 알고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게 만드는 폭로전과 비방전에 목숨을 걸고 집안싸움을 일삼으며 국민에게 신선한 비전과 가슴 벅찬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과 불쾌감만 커가는 이때라 할지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핵과 미사일로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받아낼 것은 다 받아내면서도 이행해야 할 국제적 협약은 지키지 않는 북한과 그런 북한에게 퍼주지 못해 안달하며 저자세로 일관하는 정권 때문에 속이 뒤틀린다 할지라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정쩡한 타협 속에 재개정된 사립학교법 때문에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할지라도 헌법정신에 합치하는 완전한 선교의 자유와 교육의 자율권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또 인내하며 투쟁의 의지를 내던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큰소리에도 불구하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다 하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며 포기할 것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업이 잘 진척되지 않거나 경제적인 압박을 받거나 자녀문제로 근심이 생기거나 인간관계가 틀어져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더라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맙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와 영원히 복된 삶이라는 가장 큰 보화를 차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오시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도 생명을 되찾고 진리를 소유하며 그로 인해서 항상 위로와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출처/이수영 목사 설교 중에서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문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 속에는 요한복음이 말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 대부분이 압축되어 들어있습니다. 본문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무슨 말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합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선언하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태초”라는 말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을 가리킵니다. 즉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아무 것도 없던 때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14절의 말씀을 통해 곧바로 확인하고 갈 것은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입니다. 14절을 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놀랍고 중요한 진리를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영원 전부터 계셨던 그 말씀이시라는 진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한 것이 그것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8절도 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버지 하나님 품속에 계시던 그 유일하신 아들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신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뒤따르는 1절 하반절 또한 놀랍고 중요한 진리의 선언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말씀과 아버지 하나님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어서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한 것은 말씀과 하나님은 분리될 수 없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참 하나님으로서 서로 혼합될 수도 없고 혼동되어서도 안 되지만 또한 나뉠 수 없는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와 같이 참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그와 함께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성령도 같은 논리로 이해되고 추가되어 확정된 삼위일체교리의 기초를 이루는 말씀인 것입니다. 삼위일체교리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모두 영원 전부터 계시는, 서로 혼합되지 않고 구별되는, 참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시라는 신비스런 진리입니다.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그 하나님은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세 존재양식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더 이상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고 사람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진리인 것입니다. 본문 1절의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2-3절은 아들 하나님께서 행하신 천지창조의 사역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셨지만 우리같이 피조물의 일부가 아니고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처럼 피조물에 속하신 이가 아니라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4절 상반절에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생명을 품고 계십니다. 아니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그 자신 영원한 생명이시고 모든 생명의 산출자이시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일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 하나님이시기에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요5:26에 보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주기도 하시고 죽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시며 또 영원히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4절 하반절에서는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합니다. 빛은 생명을 낳는 힘입니다. 빛은 진리이고 소망이며 위로를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며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소망과 위로가 되어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사실보다 더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을 살리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값진 진리도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그 생명과 진리와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명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본문 14절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당신의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속에 계시던 아들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 영광은 더할 나위 없이 빛나는 영광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오셨으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실 분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품속에 계시던 바로 그 아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다시 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신 사실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잘 드러내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가장 크고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알게 하시는 계시의 절정이며 그 완성입니다. 16절에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한 것은 진리이건 은혜이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것보다 더 완전한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골2:9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다 주어졌고 은혜와 진리는 더 바랄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주어진 것입니다. 17절을 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따라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위로와 소망과 힘과 지혜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대단히 심오하고 난해하게까지 여겨질 수 있으나 아주 간결하고 명백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요 위로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만이 우리에게, 아니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며 만유의 주인이시고,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그리고 그가 친히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 가운데, 내 속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했습니다. 어둠은 죄와 죽음을 가리킵니다. 죄와 죽음 가운데 있는 자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 주어진 은혜와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9-11절에서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12-13절을 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고 무슨 일을 하려고 오셨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 무엇일지에 관한 그 자신의 증언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가 누구이시고 무슨 일을 하려고 오셨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며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복음의 소식입니다. 이 복음 안에서 우리의 모든 위로와 소망과 기쁨과 지혜와 새 힘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지도 영접하지도 않는 세상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는 반역의 무리들이 날뛰는 세상입니다. 생명이 없는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 아래 놓여 어둠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세상입니다. 진리가 죽고 참 기쁨이 사라졌으며 참된 위로와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채 흘러가는 세상입니다. 빛을 싫어하고 빛을 소멸시키려고 발악하는 세상입니다. 이 생명이 없고, 진리는 실종되었으며, 죄와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함께 어둠의 자녀처럼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를 믿으며 그를 영접하고 사는 우리는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유업으로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받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저버리거나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국민이 외면하고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진정한 반성은 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인 탈당과 기만적인 간판 바꾸기로 국민을 우롱하며 국민의 분노와 짜증과 혐오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한편 생명 없는 재집권계략 세우기에만 분주한 것을 지켜보며 살맛이 안 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의 후보로 뽑히기만 하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인 줄로 알고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게 만드는 폭로전과 비방전에 목숨을 걸고 집안싸움을 일삼으며 국민에게 신선한 비전과 가슴 벅찬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과 불쾌감만 커가는 이때라 할지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핵과 미사일로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받아낼 것은 다 받아내면서도 이행해야 할 국제적 협약은 지키지 않는 북한과 그런 북한에게 퍼주지 못해 안달하며 저자세로 일관하는 정권 때문에 속이 뒤틀린다 할지라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정쩡한 타협 속에 재개정된 사립학교법 때문에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할지라도 헌법정신에 합치하는 완전한 선교의 자유와 교육의 자율권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또 인내하며 투쟁의 의지를 내던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큰소리에도 불구하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하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다 하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며 포기할 것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업이 잘 진척되지 않거나 경제적인 압박을 받거나 자녀문제로 근심이 생기거나 인간관계가 틀어져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더라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맙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와 영원히 복된 삶이라는 가장 큰 보화를 차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오시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도 생명을 되찾고 진리를 소유하며 그로 인해서 항상 위로와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출처/이수영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