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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백성 (여호수와 1:1-9)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그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한 전환기를 맞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을 향해 행진해온 역사에서 이제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 차지하는 역사로 바뀌는 시점에 이른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그 시점에서 그 때까지의 이스라엘의 영도자였던 모세가 죽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로 세우신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분명 그 역사의 전환기에 섰으나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지녔던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그 다음 지도자에게서도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택하여 세우시며 모세에게 부여하셨던 권위를 그에게 허락하시는 작업을 먼저 하셨음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비롯한 여호수아서의 앞부분에서 보게 됩니다. 본문 5절에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로서의 여호수아의 권위를 세우는 결정적인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수1:16-18에 보면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온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를 향해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하며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6-9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를 향하여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주어지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여호수아에게 주신 명령이지만 동시에 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0년간 광야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을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이라는 숙원의 대업을 이루어야 하고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대전투를 지휘해야 할 지도자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히 요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강하고 담대한 것인지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이 그 분명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고 봅니다. 즉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하신 말씀 다음에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신 것을 의미 있게 되새겨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여 적진을 향해 과감히 진격하고 좌우를 살필 것도 없이 정면돌파를 하며 용맹스럽게 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뜻밖에도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명령에 연결시키신 것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위한 마지막 단계의 진격을 앞둔 지휘관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하신 말씀과 함께 주어진 명령치고는 사뭇 놀라운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진정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르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은 전혀 군사적인 의미의 것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여호수아의 승리의 열쇠가,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의 형통함의 비결이 군사들의 용맹스러움이나 무기의 우수함이나 전술의 뛰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임을 가르치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7-8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길이라는 말씀에 대한 여호수아의 신뢰를 더 확실하게 하시려는 듯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하심으로써 여호수아에게 지금 그가 듣고 있는 것이 어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며, 따라서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말씀임을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과연 그대로 해서 될까 하는 의심이나 불안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 때문에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근원적 이유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길이 형통하고 가나안에서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는 근본원리임을 가르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모든 승리와 성공의 길이라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함이 또한 모든 역경과 장애물과 적대적 세력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의 원천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하신 후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말하기 시작한 소위 "중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8절에서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시1:4)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악인들의 꾀를 따르거나, 죄인들의 길에 서거나,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함으로써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라는 것입니다(시1:1-2). 그래야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며 복 있는 삶이 되리라는 것입니다(시1:3).
따라서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의 참 뜻을 바로 그 앞에 있는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라 하신 말씀을 떠나서 보는 모든 해석은 아전인수의 우를 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로도 좌로도 치우치지 않음"이란 대립하는 두 세력이나 사조 사이에서 무조건 중간에 서려는 입장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시로 변하는 세상의 사조나 권력구조를 따라 그 중간에 서려고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중도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항상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세력을 규합하고 확보하고자 해야 할 말도 안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애매한 태도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유리할지 몰라도 진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로도 좌로도 치우치지 않음"은 항상 하나님의 진리 편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극우파로 몰리는 수도 있고 세월이 바뀌면 또 좌익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하고 굳건히 서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중도일 것입니다. 진리는 과격한 것입니다. 아니 진리는 과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과격하게 보일 뿐입니다.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일수록 진리를 과격하다고 말합니다. 진리와 함께 하는 사람이나 진리에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진리는 과격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승리하고 형통하는 길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그 명령에 순종함이 모든 역경과 장애물과 적을 이길 수 있는 힘의 원천임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확신하게 된 여호수아는 그 믿음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의 참됨을 그 크고 견고한 여리고성이 그들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으로의 진입은 세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단계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용맹스럽고 잘 훈련된 군사의 힘과 탁월한 전술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는 승리는커녕 이스라엘 군사의 전멸을 불러올 위험천만한 지휘행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취하고 명한 조치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친히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형통하게 하시고 가나안을 차지하게 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만 충실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으로의 진입의 첫 번째 단계가 무엇이었습니까?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요단강 도하작전을 위해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수3:5) 한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먼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따르라 한 것이었습니다(수3:3). 이것은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지키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가나안으로의 진입의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온 백성이 요단강을 다 건넌 후 가나안의 모든 족속이 지척에 떨어져 있는 길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한 일이었습니다. 큰 전투가 임박한 상황에서 싸움을 해야 할 모든 군사들을 자유롭게 거동하기 불편한 상태로 만든 것입니다. 지휘관으로서 이보다 더 무모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전투에서의 승리는 군사적 준비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지를 확실히 지니는 데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표지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사십년의 세월을 지내며 잊어버렸던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의 백성 됨을 확인하는 의식을 거행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섬기지도 않는 애굽의 수치를 그들에게서 떠나가게 한 것이었습니다(수5:9). 여호수아는 그렇게 함으로써 아무리 적들이 가까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그의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가나안으로의 진입의 마지막 단계는 여리고성 공략이었습니다. 그 공략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참으로 희한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모든 군사가 엿새 동안 매일 한 번씩 여리고성 주위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백성에게 들릴 때에 모두가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수6:3-5).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고 그가 어떻게 해서든 그 땅을 차지하게 해주시리라는 믿음 하나로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적군들과 몸 한 번 부딪치지 않고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은 채 거저 거둔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모든 족속에게 참으로 강하고 담대한 민족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실상은 그들이 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강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종이야말로 이스라엘의 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보여주는 놀라운 힘과 기상천외의 지략은 오직 하나님과 그에 대한 순종에서 오는 것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마치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과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선진복지국가로 진입하느냐 마느냐의 중대한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선진복지국가로 진입하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 높고 견고하며 우리의 상대들이 너무나 크고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그가 이끈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선진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처럼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굳게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이 마지막 세기에 세계를 위하여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불러 세우셨음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 된 표지를 확실히 지니고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 함께하실 백성 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험하고 어수선할수록 우리 모두 이 믿음 안에서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백성 됩시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