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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거한 자 (역대상 9장 1~34절)
‘탑건(Top Gun)’이라는 유명한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미 해군 조종사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뽑힌 최고로 우수한 조종사들이 ‘전투기 공중전(aerial dogfight)’ 기술을 더욱 연마받기 위해서 특별 비행훈련학교에 소집됩니다. 그 훈련학교의 총지휘관인 비행대장 ‘바이퍼(Viper)’가 새로 ‘탑건’에 온 조종사들을 처음 만나 훈시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로 인사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귀관들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 중에서 상위 2퍼센트 안에 드는 우수한 조종사들이다.”라고 서두를 꺼내고서 약간 뜸을 들인 후에, 그 조종사들의 눈을 쭉 훑어보면서 “엘리트, 최고 중의 최고들(‘the elite, the best of the best’)이다.”라고 추켜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그런 엘리트들의 명단이 하나 나타납니다. 우리는 역대상 1장 이하 계속 이어져 오는 여러 족보 기록들의 마지막 부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본문 역대상 9장 1절 상반절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고 했습니다.
「그 보계대로 계수되었다」는 말은 ‘빠짐없이 족보에 기록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스라엘 열왕기’라는 책에 그 족보가 자세히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이스라엘 열왕기’라는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역대기는 그 상세한 족보를 다 기록하는 대신에, 각 지파별로 특별한 의미 있는 가문의 족보들만 강조해서 지난 8장까지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9장에 와서는, 그 모든 각 지파의 족보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이제 전 12지파 중에서도 특별히 돋보이는 종족들만을 뽑아서 새로운 명단을 하나 작성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각 지파별로 족보를 기록해 왔지만, 여기서는 그런 지파별 구분을 초월하여 형성된 어떤 특수그룹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그 속한 모든 종족과 가문과 개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만 이 9장에 있는 ‘엘리트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까? 오늘 이 지상교회에 많은 신자들이 있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될 만한 영적 엘리트 명단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과연 어떤 신자입니까?
1. 자신의 생활 전체를 철저히 교회 중심으로 사는 신자가 바로 신앙의 엘리트 멤버입니다.
본문 역대상 9장 1절로부터 3절에 기록하기를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유다를 비롯한 전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된 이유는 「유다가 범죄함을 인함」이었습니다. 다윗 왕조, 메시아 가문을 잇는 이 유다 지파도 범죄했으니 다른 지파들은 물론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새로운 유다, 새로운 이스라엘을 논하고자 할 때 그 첫머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었다」 - 이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는,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하지 않고는, 그 바벨론에서 해방을 받은 것이나 조국 재건설 등에 대한 참된 의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렇게 포로 생활을 하다가, 이들은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일부가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여기 「본성」이란 말은 원문에 「그들의 성읍들」이란 뜻입니다. 즉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돌아와서 각자가 살게 된 생활 터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옛날 열두 지파가 나뉘어져 있을 때의 원래의 소유지와 성읍을 그대로 다시 찾아서 살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차로 돌아온 사람들은 일단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삶의 기반을 잡아가기 시작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다 예루살렘 성 안에 산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성을 중심으로 하여 새 생활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살게 된 사람을 가리켜 2절 하반절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잘못 번역된 것입니다. 정확히 하자면 「이스라엘 사람들과, 제사장들과…」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리고 3절 이하 9절의 첫째 문단의 말씀에는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먼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사장, 레위 사람, 느디님 사람’들에 대해서는 10절 이하 34절까지의 두 번째 문단에서 다시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와 살게 된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3절에서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하 9절까지에는 그 중에서도 또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을 강조해서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짐작건대, 그처럼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수적으로 볼 때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열왕기’에는 빠짐없이 그 족보가 기록되었지만, 이 역대상 9장에서는 그 온 이스라엘 중에서 오직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중심하여 생활 터전을 잡고 「그 기업에 거한 이스라엘 백성」들만 뽑혀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범죄함을 인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하지만 해방의 감격에 감사하고 당장 「먼저」 자기 본성으로 돌아온 자들은 이 사람들뿐이었던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에는 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것도 손에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가난했고, 예루살렘 성이란 것은 불타고 파괴되어 있었으며, 그들을 적대하는 이방 민족들에게 사면초가 상태로 둘러싸인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조건 조국으로 돌아와서 그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자기 생활 터전을 잡고 기업을 일구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땅히 돌아와야 할 곳으로 남 먼저 돌아온 자들, 비록 다 무너져 있는 돌덩어리에 불과한 예루살렘 성이지만, 바로 이 곳을 중심으로 자기 조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새로이 성취해 나가야 할 사명감을 가지고 본성으로 돌아온 이들이야말로, 그 보계대로 계수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군계일학들처럼 돋보이는, 실로 특별한, 실로 우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역대상의 족보에서는 이처럼 ‘본성에 돌아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았던’ 이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길이 그 이름을 남기게 될 최고 중의 최고라고, 엘리트 멤버라고 따로 명단을 뽑아 놓은 것입니다.
이 지상교회에 수많은 교인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과연 어떤 교인들이 엘리트 교인입니까? 자기의 모든 생활 전체를 오직 교회중심으로 사는 신자입니다. 과거에 우리 모두는 다 죄로 인하여 도매금으로 넘어 갔던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죄값을 대속하시고 그 죄악의 도성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중생 받은 신자들 중에서도 더욱 표가 나는 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범죄함을 인하여 사로잡혀 갔던 과거의 장망성 생활, 죄악의 종 되었던 생활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다시는 돌이켜 볼 생각조차 하지 아니하고, 이제 예수 안에서 누리게 된 이 새 예루살렘인 교회를 중심으로 살게 된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신자입니다. 각자 본성에 살기는 하지만, 비록 각자의 처소와 직장이라는 생활 터전을 잡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생활의 구심점은 철저하게 교회에만 두고 살고 있는 자 - 이들이야말로, 하고많은 이 세상의 교인들 중에서도 실로 ‘최고 중의 최고’ 신자인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중생 받았다는 신자가 이와 같은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신앙생활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여차 하면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가겠다고 양다리 걸쳐 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진짜 구원의 감격에 기뻐 떠는 사람은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숫자에 들어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지만, 이제 그 중에서도 더욱 철두철미하게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발휘함으로써, 진짜로 ‘우수한 신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 구속 역사의 엘리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가 어려울 때 더욱 교회에 충성하는 신자가 바로 신앙의 엘리트 멤버입니다.
역대상 9장 10절로부터 13절에는 「제사장 중에서는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과 /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아사랴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 / 또 아다야니 저는 여호함의 아들이요 바스훌의 손자요 말기야의 증손이며 또 마아새니 저는 아디엘의 아들이요 야세라의 손자요 므술람의 증손이요 므실레밋의 현손이요 임멜의 오대손이며 / 또 그 형제들이니 그 집의 족장이라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가 모두 일천칠백륙십 인이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의 족보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14절로부터 34절까지에는 「레위 사람 중에는…」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상은 대대로 레위의 족장이요 으뜸이라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성막의 기구를 관리하는 것이 원래의 주요 업무였는데, 여기서는 좀더 확장된 업무들이 그들에게 주어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절 이하 27절에 보면 그 레위인들 중에서 성전의 문지기를 맡게 된 자들과 그 상세한 업무를 자세하게 열거했습니다. 그리고 28절 이하 33절까지에서는 그 외에도 레위인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섬기게 된 다양한 일들, 즉 창고 관리, 제물 떡 준비, 성가대 등을 또한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자세한 족보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까 2절 말씀을 다시 보면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들 중에는 「느디님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성전의 기타 잡일을 맡았던 느디님 사람은 원래 가나안 민족 혹은 그 외의 이방 민족 출신으로서 이스라엘에 귀속된 군소 종족이었는데, 이런 자들이 해방 후에 그 성전 직무를 다시 수행하기 위하여 레위인들과 함께 돌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여기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네가 받은 특별한 직분을 참으로 귀중히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냥 바벨론에 남아 사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이들은 오직 자기네들의 본분을 지키고 성전 섬기는 직분에 다시 종사하고자 하는 그 일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란, 예루살렘 성도 그랬지만, 성전 역시 다 불타고 무너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비록 자기 직분을 찾아 돌아오기는 했지만 당장은 그 직분을 수행할 성전조차 존재하지 않던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옛날의 레위인들처럼 그 생계비가 보장될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니 모든 것들이 옛날처럼 회복되기까지는 자기 스스로 생계를 조달해야 했을 뿐 아니라, 당장 시급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 재건 공사라는 대공사에 자기네들이 먼저 앞장서서 중노동을 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그 불탄 성전터만 남아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일천칠백육십 명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줄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 ‘일천칠백육십’ 명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 성전 봉사가 가장 어려운 시절에 전적으로 투신한 이 사람들의 값어치라는 것은, 과거 솔로몬 시절, 이제 막 성전이 건축되고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황금시대와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역대상 9장에서는 바로 이 ‘일천칠백육십’명을, 비록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었지만, 그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이 특별 명단에 기록함으로써 전 이스라엘의 역사에 영원히 남도록 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히 우수한 신자가 됩니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 된 것을 기뻐하고 교회를 통하여 받은 직분을 감사함으로 지키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교회가 어려울 때 전심전력으로 충성할 줄 아는 신자만이 더 더욱 돋보이는 최정예 신자 그룹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예 요원’ 신자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에 철저하게 교회 중심으로 사는 신자도 그리 많지 않으니, 하물며 교회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오죽하겠습니까? 교회를 자기편에서 ‘마땅히 섬겨야 할 주님의 몸’인 줄로 알지 못하고, 자기가 바라는 ‘뭔가를 제공해 주어야 할 서비스업체’쯤 되는 줄로만 알고 있으니, ‘망해간다 싶은 업체’에서는 미련 없이 손발 다 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어떻게 사단과 싸워 이길 힘이 있겠습니까? 조금만 힘들다 싶으면 자기 혼자 살 길부터 찾는 겁쟁이들, 아니 비겁한 교인들만 모여 있으니, 교회가 어찌 이단과 싸우며 우상종교를 물리치며 무신론 공산주의를 대적할 엄두를 낼 수 있겠습니까? 이토록 평소부터 허약 체질에다 도망병 근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무슨 ‘전투하는 지상교회’라는 이름 자체부터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하나님의 구속사 현장에서는 그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든지 항상 ‘엘리트 신자’가 더욱 요긴한 것입니다. ‘내가 교회 봉사 열심히 하다가 못 먹고 살게 되는 것 아닐까?’라는 따위의 걱정일랑 안중에도 없고, 오직 ‘죽도록 충성’하는 것 한 가지만 아는 진짜 정예 신자 요원이 교회에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제법 안정시켜 놓은 안정된 생활, 세상 즐기며 살 기반이 꽤 갖추어진 생활보다도, 비록 타다만 돌무더기만 쌓여 있는 성전이라 할지라도 그 성전을 위하여 자기 한 몸이 번제처럼 완전히 타도록 쓰일 줄 아는, 이 시대에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위 그룹의 소수 엘리트’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름들 중에서 오직 ‘예루살렘에 돌아와 거한 자’들의 이름이 이 특별한 엘리트 명단을 만들었고 바로 그 명단이 이 족보 기록들 중에서 하일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를 부르셔서 이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면서 살 수 있게 불러 주셨다.’ -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보아도 별 재주 없는 나 자신인데 이 교회에서는 아주 요긴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직분과 사명을 주셨다.’ - 정말이지 가슴을 쫙 펴고 다니기에 충분한 자랑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경향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와 같은 이 시대의 엘리트 신자였다고 조금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참으로 교회중심으로 살면서 큰 일들을 섬겨 오셨는데, 그것도 가장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면서 이루어 오셨습니다. 이 나라가 ‘IMF’라는 대환란을 맞이하던 바로 그 시점에 우리 경향의 성도들은 오히려 각자 ‘생애 최대의 것’을 바쳐 이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습니다. 웬만한 교회라면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일일 터인데, 여러분께서는 그처럼 허리가 휘어지는 시기를 통과하면서도 고려신학교와 선교후원 사업 또한 조금도 늦추지 않고, 오히려 우리 교단의 약한 교회들이 미처 못다 감당하는 분량을 대신 떠맡아서 짊어지는 것까지도 기꺼이, 즐거움으로 섬겨 오셨습니다. 현재 국내의 경제 사정이 극도의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즈음에도, 여러분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성전 헌당까지 이루어 내셨고, 그런 와중에서도 또 ‘별들의 모임’ 후원을 비롯하여 총회 선교사들의 선교대회를 주최하고 이제는 고려신학교 특별회원 운동에 이르기까지, 정말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처럼 충성하고 계십니다. ‘경향교회는 반드시 부도난다.’는 소리가 드높을 때, 아니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그 말이 틀림없는 시기에, 여러분은 더욱 교회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최고의 것을 바쳤을 뿐 아니라 이제 전부를 다 바쳐서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결코 자랑이 아니고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사실대로 말해서, 여러분은 ‘엘리트, 최고 중의 최고’ 신자 그룹에 이미 그 이름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부심 없이 신앙생활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 가운데서도 또 특별하게 뽑힌 정예 중의 정예, 하나님께서 당신의 특별 명부에 따로 이름을 새겨 놓은 최고의 엘리트 신자 그룹에 속하는 이 뿌듯한 기분 - 이것은 뭐 ‘탑건’에 뽑힌 우수 조종사들의 기분 가지고는 도무지 상대도 되지 않을, 신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분이 아니겠습니까? 각자의 생활 터전인 본성들에 거하면서도 오직 교회 중심으로 사는 신자, 영적 기업에 항상 최우선을 두고 교회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자,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경향제단을 통하여 이렇게 살고 이렇게 충성함으로써, 귀한 성도들 가운데서도 또 더욱 영광스럽게 높임을 받는 최고 엘리트 신자의 이름을 남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출처/석기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탑건(Top Gun)’이라는 유명한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미 해군 조종사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뽑힌 최고로 우수한 조종사들이 ‘전투기 공중전(aerial dogfight)’ 기술을 더욱 연마받기 위해서 특별 비행훈련학교에 소집됩니다. 그 훈련학교의 총지휘관인 비행대장 ‘바이퍼(Viper)’가 새로 ‘탑건’에 온 조종사들을 처음 만나 훈시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로 인사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귀관들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 중에서 상위 2퍼센트 안에 드는 우수한 조종사들이다.”라고 서두를 꺼내고서 약간 뜸을 들인 후에, 그 조종사들의 눈을 쭉 훑어보면서 “엘리트, 최고 중의 최고들(‘the elite, the best of the best’)이다.”라고 추켜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그런 엘리트들의 명단이 하나 나타납니다. 우리는 역대상 1장 이하 계속 이어져 오는 여러 족보 기록들의 마지막 부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본문 역대상 9장 1절 상반절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고 했습니다.
「그 보계대로 계수되었다」는 말은 ‘빠짐없이 족보에 기록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스라엘 열왕기’라는 책에 그 족보가 자세히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이스라엘 열왕기’라는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역대기는 그 상세한 족보를 다 기록하는 대신에, 각 지파별로 특별한 의미 있는 가문의 족보들만 강조해서 지난 8장까지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9장에 와서는, 그 모든 각 지파의 족보에 대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이제 전 12지파 중에서도 특별히 돋보이는 종족들만을 뽑아서 새로운 명단을 하나 작성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각 지파별로 족보를 기록해 왔지만, 여기서는 그런 지파별 구분을 초월하여 형성된 어떤 특수그룹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그 속한 모든 종족과 가문과 개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만 이 9장에 있는 ‘엘리트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까? 오늘 이 지상교회에 많은 신자들이 있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될 만한 영적 엘리트 명단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과연 어떤 신자입니까?
1. 자신의 생활 전체를 철저히 교회 중심으로 사는 신자가 바로 신앙의 엘리트 멤버입니다.
본문 역대상 9장 1절로부터 3절에 기록하기를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유다를 비롯한 전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된 이유는 「유다가 범죄함을 인함」이었습니다. 다윗 왕조, 메시아 가문을 잇는 이 유다 지파도 범죄했으니 다른 지파들은 물론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새로운 유다, 새로운 이스라엘을 논하고자 할 때 그 첫머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었다」 - 이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는,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하지 않고는, 그 바벨론에서 해방을 받은 것이나 조국 재건설 등에 대한 참된 의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렇게 포로 생활을 하다가, 이들은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일부가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여기 「본성」이란 말은 원문에 「그들의 성읍들」이란 뜻입니다. 즉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돌아와서 각자가 살게 된 생활 터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옛날 열두 지파가 나뉘어져 있을 때의 원래의 소유지와 성읍을 그대로 다시 찾아서 살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차로 돌아온 사람들은 일단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삶의 기반을 잡아가기 시작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다 예루살렘 성 안에 산 것은 아니었지만, 그 성을 중심으로 하여 새 생활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살게 된 사람을 가리켜 2절 하반절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잘못 번역된 것입니다. 정확히 하자면 「이스라엘 사람들과, 제사장들과…」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그리고 3절 이하 9절의 첫째 문단의 말씀에는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먼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사장, 레위 사람, 느디님 사람’들에 대해서는 10절 이하 34절까지의 두 번째 문단에서 다시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와 살게 된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3절에서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하 9절까지에는 그 중에서도 또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을 강조해서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짐작건대, 그처럼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수적으로 볼 때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열왕기’에는 빠짐없이 그 족보가 기록되었지만, 이 역대상 9장에서는 그 온 이스라엘 중에서 오직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중심하여 생활 터전을 잡고 「그 기업에 거한 이스라엘 백성」들만 뽑혀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범죄함을 인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하지만 해방의 감격에 감사하고 당장 「먼저」 자기 본성으로 돌아온 자들은 이 사람들뿐이었던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에는 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것도 손에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가난했고, 예루살렘 성이란 것은 불타고 파괴되어 있었으며, 그들을 적대하는 이방 민족들에게 사면초가 상태로 둘러싸인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조건 조국으로 돌아와서 그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자기 생활 터전을 잡고 기업을 일구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땅히 돌아와야 할 곳으로 남 먼저 돌아온 자들, 비록 다 무너져 있는 돌덩어리에 불과한 예루살렘 성이지만, 바로 이 곳을 중심으로 자기 조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새로이 성취해 나가야 할 사명감을 가지고 본성으로 돌아온 이들이야말로, 그 보계대로 계수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군계일학들처럼 돋보이는, 실로 특별한, 실로 우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역대상의 족보에서는 이처럼 ‘본성에 돌아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았던’ 이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길이 그 이름을 남기게 될 최고 중의 최고라고, 엘리트 멤버라고 따로 명단을 뽑아 놓은 것입니다.
이 지상교회에 수많은 교인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과연 어떤 교인들이 엘리트 교인입니까? 자기의 모든 생활 전체를 오직 교회중심으로 사는 신자입니다. 과거에 우리 모두는 다 죄로 인하여 도매금으로 넘어 갔던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죄값을 대속하시고 그 죄악의 도성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중생 받은 신자들 중에서도 더욱 표가 나는 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범죄함을 인하여 사로잡혀 갔던 과거의 장망성 생활, 죄악의 종 되었던 생활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다시는 돌이켜 볼 생각조차 하지 아니하고, 이제 예수 안에서 누리게 된 이 새 예루살렘인 교회를 중심으로 살게 된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신자입니다. 각자 본성에 살기는 하지만, 비록 각자의 처소와 직장이라는 생활 터전을 잡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생활의 구심점은 철저하게 교회에만 두고 살고 있는 자 - 이들이야말로, 하고많은 이 세상의 교인들 중에서도 실로 ‘최고 중의 최고’ 신자인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중생 받았다는 신자가 이와 같은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신앙생활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여차 하면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가겠다고 양다리 걸쳐 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진짜 구원의 감격에 기뻐 떠는 사람은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숫자에 들어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임은 틀림없지만, 이제 그 중에서도 더욱 철두철미하게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발휘함으로써, 진짜로 ‘우수한 신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 구속 역사의 엘리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가 어려울 때 더욱 교회에 충성하는 신자가 바로 신앙의 엘리트 멤버입니다.
역대상 9장 10절로부터 13절에는 「제사장 중에서는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과 /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아사랴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 / 또 아다야니 저는 여호함의 아들이요 바스훌의 손자요 말기야의 증손이며 또 마아새니 저는 아디엘의 아들이요 야세라의 손자요 므술람의 증손이요 므실레밋의 현손이요 임멜의 오대손이며 / 또 그 형제들이니 그 집의 족장이라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가 모두 일천칠백륙십 인이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의 족보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14절로부터 34절까지에는 「레위 사람 중에는…」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상은 대대로 레위의 족장이요 으뜸이라 예루살렘에 거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성막의 기구를 관리하는 것이 원래의 주요 업무였는데, 여기서는 좀더 확장된 업무들이 그들에게 주어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절 이하 27절에 보면 그 레위인들 중에서 성전의 문지기를 맡게 된 자들과 그 상세한 업무를 자세하게 열거했습니다. 그리고 28절 이하 33절까지에서는 그 외에도 레위인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섬기게 된 다양한 일들, 즉 창고 관리, 제물 떡 준비, 성가대 등을 또한 자세히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자세한 족보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까 2절 말씀을 다시 보면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들 중에는 「느디님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성전의 기타 잡일을 맡았던 느디님 사람은 원래 가나안 민족 혹은 그 외의 이방 민족 출신으로서 이스라엘에 귀속된 군소 종족이었는데, 이런 자들이 해방 후에 그 성전 직무를 다시 수행하기 위하여 레위인들과 함께 돌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틀림없는 것은 여기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네가 받은 특별한 직분을 참으로 귀중히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냥 바벨론에 남아 사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이들은 오직 자기네들의 본분을 지키고 성전 섬기는 직분에 다시 종사하고자 하는 그 일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란, 예루살렘 성도 그랬지만, 성전 역시 다 불타고 무너져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비록 자기 직분을 찾아 돌아오기는 했지만 당장은 그 직분을 수행할 성전조차 존재하지 않던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옛날의 레위인들처럼 그 생계비가 보장될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니 모든 것들이 옛날처럼 회복되기까지는 자기 스스로 생계를 조달해야 했을 뿐 아니라, 당장 시급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 재건 공사라는 대공사에 자기네들이 먼저 앞장서서 중노동을 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그 불탄 성전터만 남아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일천칠백육십 명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맨땅에서 맨주먹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줄을 뻔히 알면서도 기꺼이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 ‘일천칠백육십’ 명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느디님 사람들, 성전 봉사가 가장 어려운 시절에 전적으로 투신한 이 사람들의 값어치라는 것은, 과거 솔로몬 시절, 이제 막 성전이 건축되고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황금시대와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역대상 9장에서는 바로 이 ‘일천칠백육십’명을, 비록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었지만, 그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이 특별 명단에 기록함으로써 전 이스라엘의 역사에 영원히 남도록 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히 우수한 신자가 됩니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 된 것을 기뻐하고 교회를 통하여 받은 직분을 감사함으로 지키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교회가 어려울 때 전심전력으로 충성할 줄 아는 신자만이 더 더욱 돋보이는 최정예 신자 그룹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예 요원’ 신자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에 철저하게 교회 중심으로 사는 신자도 그리 많지 않으니, 하물며 교회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오죽하겠습니까? 교회를 자기편에서 ‘마땅히 섬겨야 할 주님의 몸’인 줄로 알지 못하고, 자기가 바라는 ‘뭔가를 제공해 주어야 할 서비스업체’쯤 되는 줄로만 알고 있으니, ‘망해간다 싶은 업체’에서는 미련 없이 손발 다 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어떻게 사단과 싸워 이길 힘이 있겠습니까? 조금만 힘들다 싶으면 자기 혼자 살 길부터 찾는 겁쟁이들, 아니 비겁한 교인들만 모여 있으니, 교회가 어찌 이단과 싸우며 우상종교를 물리치며 무신론 공산주의를 대적할 엄두를 낼 수 있겠습니까? 이토록 평소부터 허약 체질에다 도망병 근성까지 가지고 있으니, 무슨 ‘전투하는 지상교회’라는 이름 자체부터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하나님의 구속사 현장에서는 그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든지 항상 ‘엘리트 신자’가 더욱 요긴한 것입니다. ‘내가 교회 봉사 열심히 하다가 못 먹고 살게 되는 것 아닐까?’라는 따위의 걱정일랑 안중에도 없고, 오직 ‘죽도록 충성’하는 것 한 가지만 아는 진짜 정예 신자 요원이 교회에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제법 안정시켜 놓은 안정된 생활, 세상 즐기며 살 기반이 꽤 갖추어진 생활보다도, 비록 타다만 돌무더기만 쌓여 있는 성전이라 할지라도 그 성전을 위하여 자기 한 몸이 번제처럼 완전히 타도록 쓰일 줄 아는, 이 시대에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상위 그룹의 소수 엘리트’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름들 중에서 오직 ‘예루살렘에 돌아와 거한 자’들의 이름이 이 특별한 엘리트 명단을 만들었고 바로 그 명단이 이 족보 기록들 중에서 하일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나를 부르셔서 이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면서 살 수 있게 불러 주셨다.’ -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보아도 별 재주 없는 나 자신인데 이 교회에서는 아주 요긴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직분과 사명을 주셨다.’ - 정말이지 가슴을 쫙 펴고 다니기에 충분한 자랑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경향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와 같은 이 시대의 엘리트 신자였다고 조금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참으로 교회중심으로 살면서 큰 일들을 섬겨 오셨는데, 그것도 가장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면서 이루어 오셨습니다. 이 나라가 ‘IMF’라는 대환란을 맞이하던 바로 그 시점에 우리 경향의 성도들은 오히려 각자 ‘생애 최대의 것’을 바쳐 이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습니다. 웬만한 교회라면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일일 터인데, 여러분께서는 그처럼 허리가 휘어지는 시기를 통과하면서도 고려신학교와 선교후원 사업 또한 조금도 늦추지 않고, 오히려 우리 교단의 약한 교회들이 미처 못다 감당하는 분량을 대신 떠맡아서 짊어지는 것까지도 기꺼이, 즐거움으로 섬겨 오셨습니다. 현재 국내의 경제 사정이 극도의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즈음에도, 여러분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성전 헌당까지 이루어 내셨고, 그런 와중에서도 또 ‘별들의 모임’ 후원을 비롯하여 총회 선교사들의 선교대회를 주최하고 이제는 고려신학교 특별회원 운동에 이르기까지, 정말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처럼 충성하고 계십니다. ‘경향교회는 반드시 부도난다.’는 소리가 드높을 때, 아니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그 말이 틀림없는 시기에, 여러분은 더욱 교회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최고의 것을 바쳤을 뿐 아니라 이제 전부를 다 바쳐서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결코 자랑이 아니고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사실대로 말해서, 여러분은 ‘엘리트, 최고 중의 최고’ 신자 그룹에 이미 그 이름을 올려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부심 없이 신앙생활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 가운데서도 또 특별하게 뽑힌 정예 중의 정예, 하나님께서 당신의 특별 명부에 따로 이름을 새겨 놓은 최고의 엘리트 신자 그룹에 속하는 이 뿌듯한 기분 - 이것은 뭐 ‘탑건’에 뽑힌 우수 조종사들의 기분 가지고는 도무지 상대도 되지 않을, 신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분이 아니겠습니까? 각자의 생활 터전인 본성들에 거하면서도 오직 교회 중심으로 사는 신자, 영적 기업에 항상 최우선을 두고 교회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자,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경향제단을 통하여 이렇게 살고 이렇게 충성함으로써, 귀한 성도들 가운데서도 또 더욱 영광스럽게 높임을 받는 최고 엘리트 신자의 이름을 남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출처/석기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