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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믿음 (창세기 15:1-21)
요즘같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시대에 테레사 수녀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는 카톨릭에서 5년 동안의 검증 기간을 거친 후에 시호를 내리는 성인의 반열에 1년만에 성녀로 추앙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거지처럼 인생을 살았던 한 여인이 온 세계 사람들 마음속 깊은 애도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상의 어떤 대통령이나 어떤 부자 나 어떤 학자도 이 애도보다 더 깊고 크고 넓은 애도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인종을 떠나서 또 종교를 떠나서 온 세상이 그 분을 크게 애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처럼 쉽게 성자 시호를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녀의 생애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참으로 의로운 인생이었습니다.
-. 이처럼 아름다운 생애를 살았던 삶을 대게 우리들은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롬3:10-12)"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했습니다.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가치기준에서 존경에 마지않는 사람들 조차도 의인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 그런가하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신말씀을 만납니다.
(창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의롭다고 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에녹, 노아등이 언제 테레세 수녀 같이 살았습니까?
(창 6:9) 노아는 의인이요,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간 사람입니다.
테레사 같이 살아야 성녀가 되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주어서 의인이 됩니까?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아서 의인이 됩니까?
1.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의로 여기셨다는 이 말씀은 그의 행위를 의롭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1) 사실 그에게 멋진 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갈대아 우르 땅을 떠나라고 명령했을 때 그는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정든 땅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기득권을 버린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아브람은 주께서 떠나라고 하니까 순종하고 자기 기득권을 쉽게 포기했습니다.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 그런가하면 그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이 메소 포타미아 지역의 네 왕국의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혀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수하에 하인 318명으로 수만명의 연합군을 밤에 급습해 연합군을 대패시킵니다. 그리고 모든 포로와 무수한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얼마나 멋진 영웅적인 행위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의로 여겼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왔더니 소돔왕이 마중 나와 아브람 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14: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창14: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 요즘은 돈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시대입니다. 돈이면 남의 무덤도 파고 또 돈이면 부모마져도 죽이고 부모의 초상의 삼오도 지나지 않고 형제끼리 싸우다 불을 질러 죽고 마는 시대입니다.
*. 얼마전에 목사님 한분이 미국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을 하다가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기자가 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아브람은 실 한가닥이라도 취하지 않겠다고 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시대에 칭찬할만한데도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 거기다가 그가 돌아왔더니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을 노래합니다. 저 같으면 그처럼 밤에 가서 애쓰고 수고했으니까, "너 잘 했다"하면 더 기분이 좋을텐데 멜기세덱은 "이 모든 전쟁을 하나님께서 하셨다”하는데도“아멘”하면서 십일조를 최초로 드리며“하나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승리를 주셨습니다”고 감사합니다.
이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겼다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 의롭게 여김을 받을때는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자신 있어하는 할례도 받지 않은 때입니다.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이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은 아브람의 어떤 행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이 어떠할때 의롭다고 하셨습니까?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본문에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신 것은 여호와를 믿은 것 밖에 없습니다.""
아브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것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가 한 것은 “그가 여호와를 믿음이니라”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1-6절의 배경을 보면 두려워 하는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즉 말씀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 말씀에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창15:7) "..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고 소개를 하십니다.
한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기에 "그 말씀이 그대로 되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 하나님은 그 말씀 자체가 신용입니다. --빛이 있으라 명하시매 그 어둠에 빛이 쏜살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타락한 죄인들을 위해서 창3:15절에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사탄을 멸하시고 어린양으로 오셔서 자기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신 것 같이 갈4:4 여자의 후손속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사53장대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죄를 짊어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그렇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도 다 성경대로 이루셨습니다.
바울사도는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지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왜쳤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저주받은 바 되어 우리죄를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 신실하지 않습니까? 믿을수 있지않습니까? 말씀하신대로 이루셨지 않습니까?
이런 하나님앞에 아브람은 어떠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생각해서 자신의 편리한대로 현실과 타협하고 믿어볼려고 할때가 있었습니다.
(창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창15: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이런 아브람에 비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편리한대로 현실과 타협치 않습니다. 거짓인 모양도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또한 그의 믿음은 몹시 불완전했습니다. ((사실 그의 믿음은 험 투성입니다.))
*.창12:10절부터 보면 가나인의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목숨의 두려움 때문에 거짓된 삶을 삽니다.
*.블레셋땅 그랄지방가서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창20: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실패작 을 하나 낳았습니다.
*. 앞으로도 그는 잘못을 합니다. 실수가 있습니다. 연약한 믿음입니다.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 사실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믿음도 불완전합니다.
아브람보다 나은것이라고는 전혀없습니다. 실수도 많고, 시험에도 잘들고, 잘 믿지도 못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믿음을 어떻게 믿을수 있습니까? 이런 행위로 어떻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연약함에도 부족함에도 오늘도 찾아오시고 어느곳이든 어떤 시간이든 말씀을 찾아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 믿는대로 되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과대 평가하면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3. 믿음은 육의 사람 옛사람은 죽고 새 생명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1) 믿음은 반드시 죽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응답으로 제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9-11)"삼년 된 암염소, 삼년된 수양,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제물로 내놓고 그 가운데를 쪼개어 놓으라..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받쳐지는 제물은 죽음의 제물이어야 하듯이 믿음은 나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나의 생과 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참 믿음안에서 사는 것은 먼저 내가 먼저 하나님앞에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고집, 성격, 게으름, 자만심, 교만, 혈기, 나쁜습관, 나약한 마음, 나의 본성, 욕심, 정욕, 불순종, 다 십자가 에 못밖으십시오.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예수님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쟁기를 잡고 따라오는 자는 합당치 않다.. 좌로나 우로나 뒤돌아 보는 자도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2) 생명있는 믿음은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창15:10)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작은 새만은 쪼개지 않았습니다.""
이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생각은 짧은 신앙적인 방법입니다.
인간의 실수와 허물입니다.
-. 사실우리는 다 이렇습니다. 변화받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드리는 제단에 하나님이 오셔야 되는데 솔개가 왔습니다.
(창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창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아브람은 해질때까지 솔개를 쫒는 괴로움을 당합니다. 환란이 왔습니다. 풍파가 왔습니다.
*.시험이 왔습니다. 그가 두려워 하는 캄캄한 밤이왔다. *.그리고 연단이 왔습니다.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연단과 시련이 왔다.
-. 여러분 우리하나님은 우리를 이세상것으로는 비교할수 없는 하늘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영광을 주실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십니다.
이렇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테스트의 시험, 환란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연단, 징계가 있습니다.
-. 본문에는 연단이 있습니다. 이 연단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벧전1:7)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해서 연단의 강도가 불로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에 있는 연단의 도구인 방해꾼 솔개는 내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강하고 더 많이 역사 합니다.
*. 우리가 잘 믿어 보려고 하면 왜 그렇게 교회 못가도록 막는 방해꾼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예) 제가 지금도 기억 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서 기도원에서 금식기도할 때 금식 3일째가 되니까 미친사람 누릉지를 가지고 나의 방문을 열고 와서 먹으면서 먹어보겠느냐고 합디다. 7일째 죽으로..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것을 이기니까 응답이 오고 은사가 임하고 합디다.
-. 연단속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솔개를 쫓다가 밤이 되어서 지쳐서 잠을 자던 그 때 캄캄한 밤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오셨습니다.
연단이 있고 시험이 있고 징계가 있는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까?
**, 그 자손들에게 이루어지는 앞으로의 "축복된 미래를 가르쳐 주시고 복주시기 위해서" 하신것입니다.
베드로는 연단의 이유를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무엇을 알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연단속에서 그릇을 키우신다음" 주십니다.
((여러분 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환난이 있습니까? 아파서 지난 간밤에도 부여잡고 잠을 못이루셨습니까?))
**.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표적이 아닙니다.
**. 하나님은 나에게 축복하시기 위해서 그릇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3) 믿음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창15:4)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여기에 무슨 아브람의 생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만이 있습니다.
신앙은 이렇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중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와 약속하실 때는 일방적으로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와 합의 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일방적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나의 생각이 필요 합니까?
예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을 당담했음을 믿습니까?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이고 갈라디아서입니다.
내 모든 죄는 동이 서에서 먼것 처럼 멀리 옮겨졌습니다. 나는 약속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의인으로 여겨주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그 완성하신 주님의 구원을 믿으십니까?
아브람같이 여러분의 행위를 믿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십자가밑에 옛사람이 못밖혀 죽은 것을 믿습니까?
죄의몸이 멸해진 것을 믿습니까?
십자가의 은총으로 나의 자아가 변화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삶과 죽음을 지배하시는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습니까?
오늘도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 시험을 치르시고 연단시켜서 준비시켜서 하늘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출처/이호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요즘같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시대에 테레사 수녀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는 카톨릭에서 5년 동안의 검증 기간을 거친 후에 시호를 내리는 성인의 반열에 1년만에 성녀로 추앙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거지처럼 인생을 살았던 한 여인이 온 세계 사람들 마음속 깊은 애도를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상의 어떤 대통령이나 어떤 부자 나 어떤 학자도 이 애도보다 더 깊고 크고 넓은 애도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인종을 떠나서 또 종교를 떠나서 온 세상이 그 분을 크게 애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처럼 쉽게 성자 시호를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녀의 생애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참으로 의로운 인생이었습니다.
-. 이처럼 아름다운 생애를 살았던 삶을 대게 우리들은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롬3:10-12)"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했습니다.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가치기준에서 존경에 마지않는 사람들 조차도 의인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 그런가하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신말씀을 만납니다.
(창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의롭다고 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에녹, 노아등이 언제 테레세 수녀 같이 살았습니까?
(창 6:9) 노아는 의인이요,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간 사람입니다.
테레사 같이 살아야 성녀가 되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주어서 의인이 됩니까?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아서 의인이 됩니까?
1.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의로 여기셨다는 이 말씀은 그의 행위를 의롭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1) 사실 그에게 멋진 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갈대아 우르 땅을 떠나라고 명령했을 때 그는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정든 땅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기득권을 버린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아브람은 주께서 떠나라고 하니까 순종하고 자기 기득권을 쉽게 포기했습니다.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 그런가하면 그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이 메소 포타미아 지역의 네 왕국의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혀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수하에 하인 318명으로 수만명의 연합군을 밤에 급습해 연합군을 대패시킵니다. 그리고 모든 포로와 무수한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얼마나 멋진 영웅적인 행위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께서 의로 여겼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왔더니 소돔왕이 마중 나와 아브람 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14: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창14: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 요즘은 돈이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시대입니다. 돈이면 남의 무덤도 파고 또 돈이면 부모마져도 죽이고 부모의 초상의 삼오도 지나지 않고 형제끼리 싸우다 불을 질러 죽고 마는 시대입니다.
*. 얼마전에 목사님 한분이 미국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을 하다가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기자가 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아브람은 실 한가닥이라도 취하지 않겠다고 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시대에 칭찬할만한데도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 거기다가 그가 돌아왔더니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을 노래합니다. 저 같으면 그처럼 밤에 가서 애쓰고 수고했으니까, "너 잘 했다"하면 더 기분이 좋을텐데 멜기세덱은 "이 모든 전쟁을 하나님께서 하셨다”하는데도“아멘”하면서 십일조를 최초로 드리며“하나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승리를 주셨습니다”고 감사합니다.
이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겼다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 의롭게 여김을 받을때는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자신 있어하는 할례도 받지 않은 때입니다.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이 의롭게 여김을 받은 것은 아브람의 어떤 행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이 어떠할때 의롭다고 하셨습니까?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본문에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신 것은 여호와를 믿은 것 밖에 없습니다.""
아브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것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가 한 것은 “그가 여호와를 믿음이니라”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1-6절의 배경을 보면 두려워 하는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즉 말씀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 말씀에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실 때
(창15:7) "..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고 소개를 하십니다.
한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기에 "그 말씀이 그대로 되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 하나님은 그 말씀 자체가 신용입니다. --빛이 있으라 명하시매 그 어둠에 빛이 쏜살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타락한 죄인들을 위해서 창3:15절에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사탄을 멸하시고 어린양으로 오셔서 자기백성을 구원하신다고 하신 것 같이 갈4:4 여자의 후손속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사53장대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죄를 짊어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그렇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도 다 성경대로 이루셨습니다.
바울사도는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지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왜쳤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저주받은 바 되어 우리죄를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 신실하지 않습니까? 믿을수 있지않습니까? 말씀하신대로 이루셨지 않습니까?
이런 하나님앞에 아브람은 어떠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생각해서 자신의 편리한대로 현실과 타협하고 믿어볼려고 할때가 있었습니다.
(창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창15: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이런 아브람에 비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편리한대로 현실과 타협치 않습니다. 거짓인 모양도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또한 그의 믿음은 몹시 불완전했습니다. ((사실 그의 믿음은 험 투성입니다.))
*.창12:10절부터 보면 가나인의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목숨의 두려움 때문에 거짓된 삶을 삽니다.
*.블레셋땅 그랄지방가서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창20: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실패작 을 하나 낳았습니다.
*. 앞으로도 그는 잘못을 합니다. 실수가 있습니다. 연약한 믿음입니다.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 사실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믿음도 불완전합니다.
아브람보다 나은것이라고는 전혀없습니다. 실수도 많고, 시험에도 잘들고, 잘 믿지도 못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믿음을 어떻게 믿을수 있습니까? 이런 행위로 어떻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연약함에도 부족함에도 오늘도 찾아오시고 어느곳이든 어떤 시간이든 말씀을 찾아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 믿는대로 되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과대 평가하면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3. 믿음은 육의 사람 옛사람은 죽고 새 생명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1) 믿음은 반드시 죽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응답으로 제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9-11)"삼년 된 암염소, 삼년된 수양,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제물로 내놓고 그 가운데를 쪼개어 놓으라..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받쳐지는 제물은 죽음의 제물이어야 하듯이 믿음은 나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나의 생과 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참 믿음안에서 사는 것은 먼저 내가 먼저 하나님앞에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고집, 성격, 게으름, 자만심, 교만, 혈기, 나쁜습관, 나약한 마음, 나의 본성, 욕심, 정욕, 불순종, 다 십자가 에 못밖으십시오.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예수님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쟁기를 잡고 따라오는 자는 합당치 않다.. 좌로나 우로나 뒤돌아 보는 자도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2) 생명있는 믿음은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창15:10)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작은 새만은 쪼개지 않았습니다.""
이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생각은 짧은 신앙적인 방법입니다.
인간의 실수와 허물입니다.
-. 사실우리는 다 이렇습니다. 변화받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드리는 제단에 하나님이 오셔야 되는데 솔개가 왔습니다.
(창 15: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창 15: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아브람은 해질때까지 솔개를 쫒는 괴로움을 당합니다. 환란이 왔습니다. 풍파가 왔습니다.
*.시험이 왔습니다. 그가 두려워 하는 캄캄한 밤이왔다. *.그리고 연단이 왔습니다.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연단과 시련이 왔다.
-. 여러분 우리하나님은 우리를 이세상것으로는 비교할수 없는 하늘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영광을 주실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십니다.
이렇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테스트의 시험, 환란에서 인내로 인내에서 연단, 징계가 있습니다.
-. 본문에는 연단이 있습니다. 이 연단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벧전1:7)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해서 연단의 강도가 불로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에 있는 연단의 도구인 방해꾼 솔개는 내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강하고 더 많이 역사 합니다.
*. 우리가 잘 믿어 보려고 하면 왜 그렇게 교회 못가도록 막는 방해꾼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예) 제가 지금도 기억 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서 기도원에서 금식기도할 때 금식 3일째가 되니까 미친사람 누릉지를 가지고 나의 방문을 열고 와서 먹으면서 먹어보겠느냐고 합디다. 7일째 죽으로..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것을 이기니까 응답이 오고 은사가 임하고 합디다.
-. 연단속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솔개를 쫓다가 밤이 되어서 지쳐서 잠을 자던 그 때 캄캄한 밤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오셨습니다.
연단이 있고 시험이 있고 징계가 있는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까?
**, 그 자손들에게 이루어지는 앞으로의 "축복된 미래를 가르쳐 주시고 복주시기 위해서" 하신것입니다.
베드로는 연단의 이유를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무엇을 알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은 "연단속에서 그릇을 키우신다음" 주십니다.
((여러분 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환난이 있습니까? 아파서 지난 간밤에도 부여잡고 잠을 못이루셨습니까?))
**.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표적이 아닙니다.
**. 하나님은 나에게 축복하시기 위해서 그릇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3) 믿음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창15:4)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여기에 무슨 아브람의 생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만이 있습니다.
신앙은 이렇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중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와 약속하실 때는 일방적으로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와 합의 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일방적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나의 생각이 필요 합니까?
예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을 당담했음을 믿습니까?
우리는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이고 갈라디아서입니다.
내 모든 죄는 동이 서에서 먼것 처럼 멀리 옮겨졌습니다. 나는 약속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의인으로 여겨주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그 완성하신 주님의 구원을 믿으십니까?
아브람같이 여러분의 행위를 믿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십자가밑에 옛사람이 못밖혀 죽은 것을 믿습니까?
죄의몸이 멸해진 것을 믿습니까?
십자가의 은총으로 나의 자아가 변화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삶과 죽음을 지배하시는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습니까?
오늘도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 시험을 치르시고 연단시켜서 준비시켜서 하늘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출처/이호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