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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장수의 복을 얻는 길 (엡 6:1-3)
< 어머니의 마음 >
일제시대에 이흥렬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필요해요." 그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솔방울을 모아 팔아서 400원을 송금해 주었습니다. 결국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너무 감격이 되어 눈물로 지은 첫 곡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입니다. 같이 한번 불러볼까요?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서 안고 업고 길러 주시며/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니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 효자들이 축복 받습니다 >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효자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자기의 목숨을 맡겼기에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효성이 지극했던 요셉도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신 효부 룻도 이방민족으로서 메시야 조상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다윗도 그 어려운 도피 과정에서도 부모를 모압 미스베로 인도하는 효성을 보여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링컨 대통령도 효자였고, 미국 28대 윌슨 대통령도 지극한 효자였다고 합니다.
윌슨의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낮에는 양계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외아들 윌슨을 공부시켰습니다. 그는 마침내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해서 대통령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을 받는 날 변변한 옷 한 벌 제대로 없어서 자랑스런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윌슨의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얘야! 오늘 바쁜 일이 있어 졸업식장에 못 갈 것 같구나!" 윌슨은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없는 수석 졸업은 제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결국 이 어머니는 졸업식에 참석했고, 아들은 수석 졸업자로서 금메달을 받고 답사를 한 후, 구석에 앉은 남루한 옷차림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그 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렸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1914년 국회의 동의를 얻어 5월 2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를 반드시 높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효 자식은 절대 축복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불효 자식이 한때 승승장구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보면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관계를 위해 주신 계명이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관계를 위해 주신 계명입니다. 그 인간관계를 위해 주신 첫 번째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사람이 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효도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성공과 장수의 축복을 얻는 길 >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어떻게 해야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한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 방법을 2가지로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치에 합당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순리이고, 그것이야말로 정의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마음은 바로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믿음도 순종하는 만큼 자라고, 이성을 내세워 따지는 만큼 죽습니다. 어떤 분은 위기를 잘 극복하는데, 반면에 어떤 분은 위기 속에서 좌절합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길까요? 순종의 차이 때문입니다. 믿음의 깊이는 곧 순종의 깊이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순종하며 다녔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 나온 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믿음이 참 큽니다. 그것은 그가 순종하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물론 혼자의 능력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질서입니다. '질서를 아는 자세'는 공동체의 번영과 축복을 위해서 '개인의 어떤 능력'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질서를 아는 자세를 배양하기 위한 기초 순종훈련 도장이 바로 가정이고, 기초 순종훈련 과목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은 잘 순종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더 많이 알고 있고, 자기가 더 능력이 있고, 자기가 더 갖추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부모님보다 더 능력이 있고, 더 지식이 있고, 더 갖춘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은 지식과 능력 및 소유와 상관없이 행해져야 합니다. 순종은 능력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질서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서도 여성은 '종용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딤전 2:12-14).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여성의 지위를 한정하셨을까요? 여자가 똑똑하지 못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과 교회의 질서를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런 상황에서 꼭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따지는 것은 불행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왜 만드시고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하고 따집니다. 그 깊은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의 다른 모든 실과를 먹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 감사한 일은 생각지 않고 오직 한 가지 먹지 못하게 한 것 가지고 따지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결국 그 따지는 태도로 인류 최초의 인간은 선악과에 손을 대고 타락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따지는 태도는 바로 몇 센티 앞에 천길 낭떠러지가 놓인 삶과 같습니다. 타락이 거기에서 생겼고 죄가 거기에서 생겼습니다. 따지는 삶은 가장 복이 달아나는 삶이고, 순종하는 삶은 가장 복이 찾아오는 삶입니다. 그 중요한 원리를 체질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부모님께 순종하라는 것을 인간관계의 첫째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은 축복을 예비하는 가장 소중한 삶의 자세입니다.
2. 둘째,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 말씀은 1절 말씀보다 한 차원 더 나간 것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소극적인 선이라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적극적인 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소극적인 선에 머물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위치에 들어서야 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소극적인 선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인간관계를 할 때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누가 먼저 인사하기 전에 먼저 인사하고, 누가 먼저 말을 걸기 전에 말을 거십시오. 그런 사람이 발전하고 성공합니다. 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좋은 일이라면 남보다 먼저 하려고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한 일이고 교회에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항상 먼저 그 일을 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이 있어야 주어진 짧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습니다. 영어를 익힐 때에도 적극적으로 외국인들과 대화에 나서야 실력이 늡니다. 연애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가만히 있는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나도 혼자 가만히 있으면 누가 좋아합니까?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많은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 보십시오.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앞장서서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행하십시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제는 소극적으로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모든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까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 부모 공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나옵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기뻐하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대개 하나님도 잘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믿을 때 어떻게 믿느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단순히 믿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믿는 자세도 좋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래서 그곳으로 갔는데 누가 그를 영접하면서 그 땅을 덥석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땅은 자기가 옛날에 살던 땅보다 훨씬 안 좋았습니다. 그래도 그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처럼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변치 않아야 우리의 믿음이 복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의 고난을 허락하셨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혼합종교가 강한 곳입니다. 그냥 들어가면 신앙을 다 잃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광야 40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훈련이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삶은 어떤 삶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리사랑'이라고 해서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에는 하나님의 큰 상급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잘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모님을 공경하는 '올리사랑'에는 하나님의 큰 상급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능을 역류하는 의지적인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보다 어려운 일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을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 부모를 공경하는 삶의 구체적 실천원리 3가지 >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말할까요? 부모님을 찾아서 큰절을 드리는 삶일까요? 저는 다음과 같은 3가지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부모님을 무시하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가끔 철없는 이민 2세들이 부모님이 영어를 못한다고 무시합니다. 그런 모습은 저주를 받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컴퓨터를 잘 모른다고 무시하지 말고, 능력이 없다고 무시하지 말고, 돈을 못 번다고 무시하지 말고,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모리아산에서 이삭은 약 120세가 넘는 아브라함이 자신을 잡아 제단 위에서 바치려고 할 때 "아버님이 노망 드셨네!"라고 무시하며 20세의 혈기로 아버지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냥 뿌리치기만 하면 아버지 아브라함은 그 힘을 당할 수 없어 금방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순히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둘째,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항상 부모님 기쁘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말할 때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는 이야기는 절대 금해야 합니다. 부모님 앞에서는 한숨 쉬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마도로스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선원이 되려고 집을 떠나는데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내 뜻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결국 선장은 되지 못했지만 그보다 몇십 배 축복 받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눈에 눈물이 나오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셋째, 부모님을 용서하는 삶을 말합니다. 살면서 자기 기억 속에 부모님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하나도 없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처의 기억을 지우고 이제는 부모님을 용서해드려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님을 이해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까 비로소 이해의 폭이 조금 커지지 않았습니까? 그처럼 지식과 경험의 한계가 있는 우리들이기에 얼마나 이해할 일이 많겠습니까?
부모님 시대는 훨씬 힘들게 살았던 시대였기에 상처의 가능성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 시대의 문화도 대개 그랬기에 상처의 가능성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어려워서 그런 상처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 몇 가지 이유만 생각해도 우리는 부모님을 용서해 드릴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부모님을 겸허한 자세로 용서해 드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서로 용서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부모와 자식 관계로 같이 살다 보면 약점도 많이 알고 서로 상처를 주는 경우도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부모님을 용서해 드려야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벨 평화상을 받고 세계 사람들은 큰 인물로 보지만 이 땅에서는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허물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약점과 허물을 너무 잘 알기에 더 힘써 용서하려고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나는 절대 그 일을 잊을 수 없어!" 하면서 아예 용서를 포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일을 잊을 수 없어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그 일을 잊을 수 있고, 잊어야 합니다.
요셉이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용서의 능력 때문입니다. 사람은 용서하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입습니다. 용서가 없을 때 그 가정은 망가지지만 용서가 회복될 때 그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됩니다. 내가 용서해야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내가 용서해야 내 심령에 진정한 자유가 생깁니다. 이 시간 마음에 미운 사람을 머리에 그리며 속으로 선포하십시오.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 말이 가정을 살리고, 인간관계를 살리고, 내 심령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 진정 축복 받고 싶으면 효도해야 합니다 >
우리에게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이주일은 폐암으로 죽기 전에 병상에서 "가족이 이렇게 소중한 존재인 줄 이제야 알았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사람이 철들만 하면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족이 가장 소중한 존재인 줄 알고, 남은 여생 동안 가족에게 더욱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우리 부모님이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우리는 자연스런 내리사랑에만 만족하지 말고, 우리 부모님을 자식만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가족관계에서 왜 상처와 아픔이 많습니까? 바로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작년에 우리 나라에서 30만 쌍이 결혼하고, 14만 쌍이 이혼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이혼율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이 되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이 왠지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받으려고만 하고, 자존심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부관계와 가족관계에서 가장 일차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이기주의와 자존심입니다.
가족은 서로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받기보다는 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랑은 다 주는 것, 다 버리는 것입니다. 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평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려고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주는 가정이 축복을 받고, 주는 인생이 축복된 인생입니다.
며칠 전에 제 3세계 외국인 학생 및 근로자들에게 무료로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월드 크리스챤 네트웍의 정길진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 오후까지 매주 80명에서 120명까지 무료로 식사를 해주고 컴퓨터를 가르쳐줍니다. 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하나같이 훌륭한 전파 선교사들이 되어 모슬렘권 선교에 일익을 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그들 식사로 지출한 비용만 160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정 목사님이 안양 성문 중고등학교 이사장의 맏아들이지만 정직하게 학교를 운영하며 지난 30년간 전 재산을 학교에 쏟아 부어 넉넉한 형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1600만원을 마련하는 것도 참 힘들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제 입에서 "그 식사 값은 제가 맡겠습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올 뻔하다가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 감동이 있으신 분은 그 필요의 작은 일부분이라도 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교후원/ 신한은행 642-12-079560 이승연)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을 출입할 때마다 항상 경비들에게 정중히 경례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대통령이 경비에게 그렇게 정중히 경례하느냐?"고 묻자 트루먼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인격과 충성심에 존경을 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연로하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부모님이 연세가 들어 더 연약해질수록 더 공경하십시오. 그리고 더 사랑의 손길을 베푸십시오. 부모님의 힘이 없어지면서 우리에게 더 줄 것이 없을수록 더 공경하시고 더 도우십시오. 힘이 없는 부모님은 우리에게 갚아주시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보상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소리 없이 도울수록 하나님의 축복과 상급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마음의 평안 가운데 장수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효도하십시오. 자녀가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자녀들에게 나의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부모님 잘못했다는 소리는 자녀들 있는 데서는 단 한 마디라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녀에게 독을 먹이는 일입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란 자녀는 절대 효도하지 않습니다. 자식이니까 나중에 내가 늙고 힘이 없을 때 도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정심의 발로이지 효도의 발로는 아닙니다.
왜 자식이 효도하지 않습니까? 효도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효도하지 않고 자식이 잘되고 내가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주 모순입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정 축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면 부모님께 효도하십시오. 성경을 보면 축복을 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효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상 불효하는 자들이 잘된 예가 없고, 효도하는 자들이 잘못된 예가 없습니다. 항상 부모님께 효도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살펴줌으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