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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비결 (빌 4:11-13)
기독교 윤리학자인 [리챠드 니버]의 {응답 받는 자아}라는 책에서 그는 인간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강조합니다.
1. 목적 지향적인 사람.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강도"같은 사람입니다.
2. 자기 규범에 메인 사람입니다.
어떤 규례를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스스로 지켜 가는 사람입니다. 소위 말하는 지성인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 역시 이기주의자입니다. 레위 사람이나 제사장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 스스로 상당히 거룩하고, 자기는 대단히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죄짓지 않고 착하고 깨끗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남을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남의 일을 이해하지 않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입니다.
3.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 편에 서서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잘못한 자식을 혼내지만 않고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며 같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사회의 잘못을 욕하기 전에 이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웃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도움을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기독교인들의 신분 됨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누구입니까 ? 우리는 어떻게 불리어지는 존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우리 이런 우리의 신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신분은 우리가 이 땅위에 있을 때도 이런 신분이요 천국에 가서도 이런 신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존재됨에 대한 인식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 어떻습니까 ? 우리는 과연 이런 신분 됨의 자부심(프라이드)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까 ?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쁩니까 ?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까 ?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습니까 ?
성도 여러분 !
바로 여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누구냐 라는 자기 자신을 진정 알게 될 때 진정한 승리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주인공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대로 세상 적으로 모자랄 데가 없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서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사회에서도 높은 지명도까지 받는 그런 유명인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 당시의 기독교인을 박해하는데 최선봉에 서서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실패는 주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시고 불러 주심으로 말미암아 생긴 실패이지만 그런 세상에서의 실패가 있었기에 사도바울은 이제 주안에서 진정한 성공적인 승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안에서 변화되어진 사도바울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의 인생 말년에 그것도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 우리 이 시간 이런 사도 바울을 통해 승리의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 4:11-13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에게 승리의 비결을 교훈 해 줍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진정한 승리가 무엇이며 그 승리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주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승리를 위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
자족하는 것입니다. (11절)
이 말은 만족하면서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세상 적으로 볼 때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서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되고 나서는 그는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빌 3:8에서 "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자족하는 가운데 진정한 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 됨은 어떠합니까 ? 너무나도 감사를 모르고 원망과 불평만을 일삼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런 원망과 불평의 사례를 우리들 주위에서 찾기보다는 성경 속에서 찾기를 원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저들이 무엇을 먹고살았습니까 ?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만나 처음에 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
꿀 섞은 과자(출 16:31) 그러나 그 다음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
기름 섞은 과자(민 11:9)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
박한 식물(민 21:5)을 싫어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사 내리신 귀한 것을 저들은 처음에는 감사함으로 받다가 나중에는 박한 식물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원망을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저들에게 불 뱀을 보내어 물게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 이런 경우는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도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벳세다 들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의 숫자로만 오천 명의 사람들을 먹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반응이 어떠합니까 ? 저들은 그렇게 감사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계속되어지는 말씀을 보면 요 6:31에 보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라고 저들은 말합니다. 이 말을 하는 저들의 저의는 무엇입니까 ? 당신이 이렇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서 우리들에게 점심 한끼의 양식을 공급해 준 것 물론 놀랍지만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아침 점심 저녁을 모세를 통해 만나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정도로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동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를 잊어버린 불평과 불만족은 실패를 부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를 하게 마련입니다.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은 가장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감사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 드릴 때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에게 더 풍성해 진다. 우리가 고난에 대해 감사를 드릴 때 고난이 사라짐을 보게 된다. 감사는 경건한 심령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총의 꽃으로부터 딸 수 있는 생명의 꿀이다.)
겸손이 바로 승리의 비결입니다. (11절)
사도 바울은 늘 겸손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겸손하게 배움의 자세를 취한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안산동산교회의 김인중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교회가 수년사이에 급속도로 성장을 한 교회인데 이 분이 다른 목사님과 틀린 점은 항상 공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설교를 하거나 강의하는 내용을 아주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분은 서울대 출신이고 신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알만한 것은 다 안다고 보아도 될 그런 분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제가 보기에는 그 어떠한 강의나 설교를 들으면서도 겸손하게 열심히 받아 적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겸손하게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그 분이 그렇게 크게 된 비결이 아닌가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나의 이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비결이 바로 온유와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초대교회시절의 교부인 어거스틴에게 하루는 그의 제자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덕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첫째는 겸손이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 [겸손이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 [셋째도 겸손이다}
{그러면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 [교만이다]
제자는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 교만은 무엇입니까 ?}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러분 ! 교만하고 건방지면 승리하지를 못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트레이드 마크는 온유와 겸손 그리고 감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고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최종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 승리합시다. 이 땅위에서도 승리합시다. 그리고 천국에서도 승리한 자로서의 삶을 삽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인생의 양면성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2)
바울은 배고픔과 배부름을 유목민의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한쪽은 어디든지 풀로 가득 차서 풍부하게 먹을 수 있는 초원지대를 연상시킵니다. 입만 대면 먹을 것이 있습니다. 적어도 10월에서 1월 사이의 우기 때에는 비가 많이 와서 거치른 광야로 푸른 초원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정 반대의 환경이 있습니다. 메마르고 텅 빈 광야입니다.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샘은 말라 있고 풀들은 말라죽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어떤 때는 아무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몹시 궁핍하여 허덕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양면성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풍족할 때이든지 핍절할 때이든지 변함 없이 감사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생활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아굴은 기도했습니다. "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요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잠30:8)
그러나 바울은 이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고(11)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12)
인생에게는 언제나 이 같은 양면성이 교차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자족하기를 배우고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고 흔들림이 없는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절)
이 부분은 승리의 비결 중에서 자장 중요하고도 결론적인 부분입니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은 그의 나라를 신앙의 자유와 개혁 운동으로 이끌고자 하였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 생애는 끝났다. 온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 내게 절망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단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빌4:13절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청교도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고 그 혁명으로 영국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크롬웰은 자신이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능력은 이미 결론이 난 능력입니다. 내 능력은 어느 때는 성공했다가 어느 때는 실패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는 능력이 내게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능력을 주시면 무너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는 힘의 근원 승리의 근원을 다음과 같은 것에 의지합니다.
1) 경제적인 힘 돈의 위력입니다. 2) 지식의 힘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입니다.
3) 권력의 힘입니다. 4) 경험의 힘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다하더라도 처음 하는 일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험은 알게 모르게 자신감을 주고 그 자신감은 곧 힘이 되어집니다.
5) 육신의 힘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 이것만 가지고 됩디까 ? 한계가 있고 영원한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주안에서 사용되어질 때 그것이 참된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그 당시 애굽의 실세였던 공주의 아들로서 40년 동안 이런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실패를 맞보고 광야로 도망갑니다. 세상 적인 것의 허무함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광야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의 인생은 새롭게 변해졌고 진정한 승리의 행진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역시도 세상의 모든 힘을 가졌을 때는 실패의 삶을 살았지만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로는 승리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
우리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앞에서 열거한 힘들을 다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하실 때 낮에는 일하시고 밤과 새벽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기도의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공생애 기간동안 병을 이기시고 악한 마귀를 이기시고 가난을 이기시고 오해를 이기시고 배신을 이기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도 승리를 하셨습니다.
누구와 함께 함으로 이런 승리를 했습니까 ?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승리를 위하여 처절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상태에서 승리를 집행하고 승리를 실현하고 끝까지 승리하시면서 승리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승리의 비결을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이웃으로부터 찾아서는 안됩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승리의 주님으로부터 찾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천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 실화를 소개해 드림으로 말씀을 마무리 짖겠습니다.
수년 전에 전과 13범인 복면 강도를 취조한 재판관이 어떤 집에 강도질하기가 제일 어렵더냐 ?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저들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1) 창문 안에 또 창문이 있는 집. 문에는 자물쇠가 두 개씩 잠겨있는 집. 이와 같이 주의가 주밀한 집에선 실패합니다.
2) 강도질하러 들어갔다가 그 사람들이 크게 소리를 치면 오히려 더 용기도 나고 민첩해 지는데 그 집사람들이 태연하게 행동을 하고 찬찬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하면서 여유를 부리면 오히려 겁이 나서 일을 그르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의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넘어드리고 저들이 승리를 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의 모든 영역 속에서 그러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가정 속에서 사회 속에서 교회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특히 인간관계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통해 교묘하게 침투해 들어옵니다.
우리 이런 도전과 공격을 막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 역시도 늘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배운 대로 감사하는 마음의 무기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의 무기를 가지고 대적을 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이길 수 있는 능력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늘 준비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 마지막에 우리 역시도 사도바울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 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