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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강림절 메시지 (행2:1-21)
새 천년을 맞고 있는 우리는 이제 21세기에 걸맞은 새 국가건설에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해방 이후 첫만남으로 냉전극복에 대한 통일염원의 실천이며 새 천년 화해와 협력의 전기가 되는 6.13 남북 정상회담과 그 민족사적 의의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6.15 남북공동선언"을 적극 찬성하고, 화해 정착을 위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제는 분열과 대결의 지난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을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라"는 성서의 말씀 아래 김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제의하고 화해의 사도로서 먼저 찾아가고 민족화합, 상호불가침, 교류협력의 3대 남북 기본합의서 원칙을 재확인하는 등 북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열렬한 환영과 북한 인민들의 눈물과 신들린 환영인파는 한 민족 반세기의 한을 풀어주기에 넉넉했고, 남한 온 겨레의 피솟는 감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화해의 움직임은 7천만 민족의 화해 일치의 실천자가 되어 냉전 체제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을 믿는다.
하나의 민족이 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의 피를 흘린 지 반세기(50년), 그 희년의 역사를 계획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만나기 전 비행기 트랩 위에서 잠시 기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 하심을 생방송으로 세계와 함께 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해방되었다'고 고백하는 북조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백 속에서 그동안 우리 모두가 감옥을 만들고 스스로 갇혀 살았던 냉전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는 성령의 은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은 과거 역사로부터의 단절이며 미래의 새 역사에 돌입하는 하나의 기회이다. 희년 정신의 중요성은 공동체성의 회복, 곧 일치에 있다. 한반도에 있어 공동체성의 회복과 일치는 민족의 통일과 민족의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한편 교회력의 새 천년 첫 성령강림절에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한 사건으로 이어지고 평화정착의 전기를 마련한 점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한 민족을 역사(役事)하심이라 생각하고 이것은 우연한 예사로움이 아닌 것을 깨닫게 한다.
성령강림주일을 지내면서 성령강림절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두 종류의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내용은 오순절날 모인 제자들에게 임한 불같은 성령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심으로서 그 곳에 모인 경건한 유대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인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내용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자제하는 듯한 역사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행 2:1~21, 요한20:19~23).
우리는 요한복음 쪽이 바른 것이고 다른 한편은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의 지나친 열성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바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둘 다 성경에 속하는 것이요, 신앙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수세기에 걸쳐 교회들은 이들의 특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성과는 명확히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가장 좋은 길은 한편을 틀린 것으로 하여 제거하기보다는 둘 다 진실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강림하시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은 성령강림절에만 역사한 것이 아니고 창세기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리라"와 같이 처음부터 영원까지 계속적으로 역사 하는 것이다. 성령강림절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오셨는가를 이해하는데 제일 쉬운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역사 할 때가 있다. 우리 인생의 긴 여정에는 높은 산꼭대기도 있고 깊은 계곡도 있다. 모든 것이 다 잘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때도 있으나 어둡고 절망적인 순간이 닥쳐오는 때도 있는 것이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택하신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임재한 것처럼 때에 따라서는 고요하게 거의 알 수 없게 마치 숨결처럼 우리에게 임재 하신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부활절 저녁에 예수는 성령을 그 제자들에게 불어넣었으며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체험이다. 죽어 가는 자의 숨결이다. 세미한 음성을 들은 엘리야처럼 고요한 성령의 숨결을 통해 우리의 사명을 깨닫고 마음에 참된 평화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동분서주하며 돌아다니는 일상생활 중에서라도 고요히 묵상하며 성령의 임재 하심으로 내게 맡겨진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크신 힘을 의지하여 이 사명을 다하는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으며 성령의 역사(役事) 안에서 또 그 역사를 통해 역사 안에 계속 참여 하셨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복음의 내용이지만 이 복음을 '사회에 변화와 구원을 가져다주는 실재'로 만들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다. 성령이 없었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교회도 없었을 것이다.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며(계2:7,11,17,29), 교회를 세상에 보내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는 분도 성령이시며(행13:1~4) 교회가 모든 환경 하에서 복음을 충성되게 증거 할 수 있도록 능력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오순(50)절 성령강림사건과 6.25한국전쟁 발발 50년 되는 해에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화해정착의 전기가 마련되게 된 것은 온갖 죄와 죽음의 세력에 예속되어 속박 당하고 있으면서 분열과 적대와 갈등의 현실에 매여 있는 인간의 해방, 화해, 평화, 통일(일치)을 가능케 하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 사건은 둘이 하나되는 사건임을 고백하게 된다.
한국교회의 발전은 교회성장이라는 명분으로 양적인 팽창만을 도모해 오면서 교회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이해하게 되어 교파간의 협력 없이 교회지상주의와 성서절대주의로 교회를 역사와 사회로부터 유리시키고 신비주의와 기복신앙으로 그릇된 한국형 교회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 한국교회의 면면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인 모습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 아래 지나온 55년 간 지속된 분단상황에서 이념적인 대립과 맞물려 철저하게 반공을 앞세운 교회는 역사와 미래에 대하여 문을 굳게 닫아걸고 살아왔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과의 사이에 쳐 놓은 담을 헐어야 한다. 인간이 무덤 속에 설정해 놓고 모든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고 있는 교리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세를 낮추고 세상 속으로 진실하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와 국가, 신앙과 정치, 또는 이념의 담을 헐어야 하며, 교파 사이에 쳐놓은 담도 헐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선교에 용기 있게 동참하여 화해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일치와 화합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역사적인 6.13 남북정상회담은 해방 이후 첫 만남으로 냉전극복에 대한 통일염원의 실천이며, 새 천년의 민족사적 의의를 더하여 가면서 우리 앞에는 민족 구원과 하나님 선교를 이어가야 할 책임과 민족의 통일이라는 커다란 과제가 놓여져 있다.
민족도 분열되어 있고 교회도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있고 사회 각계 각층은 갈등과 분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의 현실 앞에서 이제 한국교회는 그 모든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되기 위하여 교회가 먼저 하나되는 일치운동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민족의 분단이 우리 모두의 죄인인 것처럼 한국 교회의 분열도 한국교회의 죄이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쪼개고 쪼개서 산산조각을 내고 있다. 한국교회의 물량적 성장의 자랑 이면에는 교회분열의 책임에 통감치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는 교단과 보수 진보 사이에서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화해와 일치의 사역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화해의 다리를 놓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화평이시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였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분열과 개교회주의는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라면 교리적, 신학적,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극복하고 교권과 이권의 문제로 분열의 역사를 거듭해 온 과거를 회개하고 진정한 성령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이 땅에서 예수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은사로 하나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에게서 낳고 성령은 교회의 숨결이며 활동의 원천이다. 성령의 은총 안에 있는 교회,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자신의 희생을 통한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을 나누어주고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하여 단호히 대결하며 창조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헌신한다. 이런 교회의 사역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선교적 과제를 분명히 할 때 지금은 비록 교단과 교파가 다를지라도 성령 안에서 하나의 몸이 될 수 있고 교회의 일치의 길은 열릴 것이다.
구원은 개개인에게 성령을 통하여 오직 은총만으로 오직 신앙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율법과 대립관계에 있는 복음으로서 전달된다. 개개인은 교회의 일원으로서 구원받되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세상과 함께 더불어 구원받는다. 이러한 구원의 확실성은 예정에 기초해 있고, 또 하나님만이 홀로 구원을 이룬다는 사실에 근거해 있다. 성령은 현존하는 그리스도이다. 오순(50)절 성령강림사건은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새 천년 첫 성령강림절에 그리고 6.25전쟁 50주년에 남북정상회담의 민족사적 의의, 이것은 한국교회가 비로소 하나된 기도의 숨결로 일치와 화해를 염원하는 마음을 모아 화해의 제단을 쌓을 것이며 민족의 통일과 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희년 실천의지로 화해 공동체를 이루고 성령의 역사(役事)로 화해의 복음이 넘쳐나기를 기도해야 한다.
출처/배성산목사 설교정보 중에서
새 천년을 맞고 있는 우리는 이제 21세기에 걸맞은 새 국가건설에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정상회담은 해방 이후 첫만남으로 냉전극복에 대한 통일염원의 실천이며 새 천년 화해와 협력의 전기가 되는 6.13 남북 정상회담과 그 민족사적 의의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6.15 남북공동선언"을 적극 찬성하고, 화해 정착을 위해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제는 분열과 대결의 지난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을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라"는 성서의 말씀 아래 김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제의하고 화해의 사도로서 먼저 찾아가고 민족화합, 상호불가침, 교류협력의 3대 남북 기본합의서 원칙을 재확인하는 등 북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열렬한 환영과 북한 인민들의 눈물과 신들린 환영인파는 한 민족 반세기의 한을 풀어주기에 넉넉했고, 남한 온 겨레의 피솟는 감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화해의 움직임은 7천만 민족의 화해 일치의 실천자가 되어 냉전 체제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을 믿는다.
하나의 민족이 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의 피를 흘린 지 반세기(50년), 그 희년의 역사를 계획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한다.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만나기 전 비행기 트랩 위에서 잠시 기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 하심을 생방송으로 세계와 함께 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해방되었다'고 고백하는 북조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백 속에서 그동안 우리 모두가 감옥을 만들고 스스로 갇혀 살았던 냉전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는 성령의 은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것은 과거 역사로부터의 단절이며 미래의 새 역사에 돌입하는 하나의 기회이다. 희년 정신의 중요성은 공동체성의 회복, 곧 일치에 있다. 한반도에 있어 공동체성의 회복과 일치는 민족의 통일과 민족의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한편 교회력의 새 천년 첫 성령강림절에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한 사건으로 이어지고 평화정착의 전기를 마련한 점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한 민족을 역사(役事)하심이라 생각하고 이것은 우연한 예사로움이 아닌 것을 깨닫게 한다.
성령강림주일을 지내면서 성령강림절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두 종류의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내용은 오순절날 모인 제자들에게 임한 불같은 성령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하심으로서 그 곳에 모인 경건한 유대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인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내용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자제하는 듯한 역사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행 2:1~21, 요한20:19~23).
우리는 요한복음 쪽이 바른 것이고 다른 한편은 초대교회 당시 제자들의 지나친 열성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바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둘 다 성경에 속하는 것이요, 신앙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수세기에 걸쳐 교회들은 이들의 특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성과는 명확히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가장 좋은 길은 한편을 틀린 것으로 하여 제거하기보다는 둘 다 진실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강림하시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은 성령강림절에만 역사한 것이 아니고 창세기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리라"와 같이 처음부터 영원까지 계속적으로 역사 하는 것이다. 성령강림절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오셨는가를 이해하는데 제일 쉬운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역사 할 때가 있다. 우리 인생의 긴 여정에는 높은 산꼭대기도 있고 깊은 계곡도 있다. 모든 것이 다 잘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때도 있으나 어둡고 절망적인 순간이 닥쳐오는 때도 있는 것이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 위해 적절한 방법을 택하신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임재한 것처럼 때에 따라서는 고요하게 거의 알 수 없게 마치 숨결처럼 우리에게 임재 하신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부활절 저녁에 예수는 성령을 그 제자들에게 불어넣었으며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체험이다. 죽어 가는 자의 숨결이다. 세미한 음성을 들은 엘리야처럼 고요한 성령의 숨결을 통해 우리의 사명을 깨닫고 마음에 참된 평화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동분서주하며 돌아다니는 일상생활 중에서라도 고요히 묵상하며 성령의 임재 하심으로 내게 맡겨진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크신 힘을 의지하여 이 사명을 다하는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으며 성령의 역사(役事) 안에서 또 그 역사를 통해 역사 안에 계속 참여 하셨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복음의 내용이지만 이 복음을 '사회에 변화와 구원을 가져다주는 실재'로 만들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다. 성령이 없었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교회도 없었을 것이다.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며(계2:7,11,17,29), 교회를 세상에 보내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는 분도 성령이시며(행13:1~4) 교회가 모든 환경 하에서 복음을 충성되게 증거 할 수 있도록 능력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오순(50)절 성령강림사건과 6.25한국전쟁 발발 50년 되는 해에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화해정착의 전기가 마련되게 된 것은 온갖 죄와 죽음의 세력에 예속되어 속박 당하고 있으면서 분열과 적대와 갈등의 현실에 매여 있는 인간의 해방, 화해, 평화, 통일(일치)을 가능케 하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 사건은 둘이 하나되는 사건임을 고백하게 된다.
한국교회의 발전은 교회성장이라는 명분으로 양적인 팽창만을 도모해 오면서 교회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이해하게 되어 교파간의 협력 없이 교회지상주의와 성서절대주의로 교회를 역사와 사회로부터 유리시키고 신비주의와 기복신앙으로 그릇된 한국형 교회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 한국교회의 면면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독선적이며 배타적인 모습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 아래 지나온 55년 간 지속된 분단상황에서 이념적인 대립과 맞물려 철저하게 반공을 앞세운 교회는 역사와 미래에 대하여 문을 굳게 닫아걸고 살아왔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과의 사이에 쳐 놓은 담을 헐어야 한다. 인간이 무덤 속에 설정해 놓고 모든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고 있는 교리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세를 낮추고 세상 속으로 진실하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와 국가, 신앙과 정치, 또는 이념의 담을 헐어야 하며, 교파 사이에 쳐놓은 담도 헐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교회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선교에 용기 있게 동참하여 화해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일치와 화합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역사적인 6.13 남북정상회담은 해방 이후 첫 만남으로 냉전극복에 대한 통일염원의 실천이며, 새 천년의 민족사적 의의를 더하여 가면서 우리 앞에는 민족 구원과 하나님 선교를 이어가야 할 책임과 민족의 통일이라는 커다란 과제가 놓여져 있다.
민족도 분열되어 있고 교회도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있고 사회 각계 각층은 갈등과 분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의 현실 앞에서 이제 한국교회는 그 모든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되기 위하여 교회가 먼저 하나되는 일치운동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민족의 분단이 우리 모두의 죄인인 것처럼 한국 교회의 분열도 한국교회의 죄이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쪼개고 쪼개서 산산조각을 내고 있다. 한국교회의 물량적 성장의 자랑 이면에는 교회분열의 책임에 통감치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는 교단과 보수 진보 사이에서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화해와 일치의 사역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와 인간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화해의 다리를 놓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화평이시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였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분열과 개교회주의는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라면 교리적, 신학적,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극복하고 교권과 이권의 문제로 분열의 역사를 거듭해 온 과거를 회개하고 진정한 성령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이 땅에서 예수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 사역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의 은사로 하나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에게서 낳고 성령은 교회의 숨결이며 활동의 원천이다. 성령의 은총 안에 있는 교회,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자신의 희생을 통한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물질을 나누어주고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하여 단호히 대결하며 창조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헌신한다. 이런 교회의 사역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선교적 과제를 분명히 할 때 지금은 비록 교단과 교파가 다를지라도 성령 안에서 하나의 몸이 될 수 있고 교회의 일치의 길은 열릴 것이다.
구원은 개개인에게 성령을 통하여 오직 은총만으로 오직 신앙만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율법과 대립관계에 있는 복음으로서 전달된다. 개개인은 교회의 일원으로서 구원받되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세상과 함께 더불어 구원받는다. 이러한 구원의 확실성은 예정에 기초해 있고, 또 하나님만이 홀로 구원을 이룬다는 사실에 근거해 있다. 성령은 현존하는 그리스도이다. 오순(50)절 성령강림사건은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새 천년 첫 성령강림절에 그리고 6.25전쟁 50주년에 남북정상회담의 민족사적 의의, 이것은 한국교회가 비로소 하나된 기도의 숨결로 일치와 화해를 염원하는 마음을 모아 화해의 제단을 쌓을 것이며 민족의 통일과 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희년 실천의지로 화해 공동체를 이루고 성령의 역사(役事)로 화해의 복음이 넘쳐나기를 기도해야 한다.
출처/배성산목사 설교정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