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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는 마라의 단물 (출15:22-26, 요4:13-14 )
오늘은 2006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12월 31일 365일 열두 달을 한결같은 은혜로 지켜주신 우리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어느 해보다도 금년은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요 기적의 한해였습니다. 저도 많다고는 할 수 없어도 육십 평생을 지나면서 금년같이 어려웠던 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 7월 5일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했습니다. 10월 9일은 핵실험을 했습니다. 온 세계는 놀라고 술렁거리며 강대국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유엔이 한 순간에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며 일촉즉발의 위기 가운데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야단이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모두 라면, 쌀, 연탄, 기름도 사 모으지 않고 공항으로 모두 다 달려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우리나라는 이상한 나라라고, 정신이 나갔다고,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핵 실험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남한에 있는 우리를 보고 세계가 더 놀라기도 했습니다. 저도 겉으로 표정은 말할 수 없었지만 저의 속가슴에는 ‘아~ 금년은 너무 어렵다 내가 살 수 있을까?’ 정말 정말 긴장하는 한 해였습니다. 우리가 어찌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놀란들 무슨 길이 있습니까? 공항으로 간들 무슨 길이 있습니까? 우리는 억지로 참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래도 버리시지는 않겠지.’ 그런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살았던 것이 아닙니까? 우리도 다 사람인데, 그러나 아직 그 위험은 그대로 있으며 시간은 흐르면서 연말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가슴들은 다 뛰고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터질 듯합니다. AP통신이 세계 몇 십 개국 가운데 스트레스가 어느 나라에 제일 많은가를 얼마 전에 조사를 했는데 한국 사람이 1위라고 합니다. 81%. 거의 전 국민들이 스트레스에 꽉 차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나라가 호주, 세 번째 나라가 캐나다, 프랑스, 영국, 그 다음 네 번째 나라들이 미국과 독일 그 다음 이태리, 스페인, 멕시코. 제일 다혈질이고 급한 사람은 지금 흥분하지 않는데 우리는 지금 흥분하고 있습니다. 안팎의 문제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루도 국내 정치는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우방과의 관계도, 사학법 문제도 어렵고 모두 들고 일어나는 이 화산 폭발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살아 왔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새해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지난날을 잊고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그 사랑만 있다면, 우리는 새해에 더 좋은 나라, 사회가 되고 수습이 되며 치료가 되고 길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내년은 돼지 해라고 합니다. 돼지꿈을 꾸면 모두 좋다고들 합니다. 복권을 사며 모두 돼지꿈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성서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내년은 더구나 황금돼지, 그냥 돼지가 아니고 아예 황금돼지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년에 자녀를 낳으면 더 좋다는 이런 말도 있어서 금년에 결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돼지는 불결한 동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돼지는 기르지도 않고 먹지도 않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돼지 치고 돼지 쥐엄 열매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은 돼지를 불결하게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때도 우리는 돼지 해지만 황금돼지는 있을 수도 없고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 인생은 다 황금 말이 되는 것이며, 예수 잘 믿으면, 주님 더 사랑하면, 예수님 귀히 여기고 우리 믿음만 잃지 아니하면, 황금 말이 나오고 황금의 축복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으면 안 됩니다. 세상이 말하는 대로 황금돼지 해에 황금돼지가 나올 리가 없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속았습니까? 지난 일 년도 너무 많이 속았습니다. 다단계 무슨 기업에 수십만 백성들이 속아서 수 조원을 다 잃고 사기를 당했습니다. 바다 이야기에 모두 수백만이 도박에 빠져서 자살한 사람도 많고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정이, 인생이 무너졌습니다. 세상에 무슨 그런 큰 기대를 어디에 기대를 합니까? 황금돼지에, 바다 이야기에 기대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앞에 나아갈 때, 그를 사랑하고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오늘 본문에도 말씀하시기를 애굽에 있던 그런 질병을 하나 없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을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이런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도 건너고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 이제 수르 광야를 삼일동안 헤맸지만 그곳에서 물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많은 원망 불평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 홍해에 대한 놀라운 경험도 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기적도 경험하게 하지만 우리에게 참는 것도 훈련시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것은 참아서 이기는 시험도 있고 또 피해서 이기는 시험도 있으며, 우리가 정면으로 대결해서 이기는 시험도 있습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넘어뜨리려는 세력은 정면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그걸 또한 잘 참고 기다려야 시험을 이기고 좋은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돌아가야 될 때도 있습니다. 내게 누가 싸움을 걸어 올 때는 피해야 합니다. 가족과 남편이 화가 났다 이럴 때는 아내가 피해야 합니다. 같이 정면으로 부딪히면 안 됩니다. 아내가 지금 살림 살다가 속상해가지고 화가 나면 남편이 그 때는 다 들어주어야 됩니다. 그 분이 말할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믿을 이는 남편인데 믿고 말하는 것은 들어 주어야 됩니다. 속상해도 그걸 다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지난 다음에 그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러면 다 서로 풀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누가 술 한 잔 하자고 할 때는 ‘거기 가서 안 먹지.’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보자. 하여튼 가고 내가 안 먹겠다.’ 이것도 안 됩니다. ‘아예 안 간다.’ 이렇게 피해야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이지, 한잔 하는데 가서 혼자 ‘주여, 주여’ 그래봐야 그것도 덕이 안 됩니다. 거기서 내 주를 가까이 불러 보십시오. 무슨 은혜가 되겠습니까? 아예 안 가는 게 은혜지. 가서 그런 욕 얻어먹으며 술 파티에 가서 분위기 망가뜨리지 말고 그건 피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시험은 가지가지 종류가 옵니다. ‘아~ 이 거 내가 참아야 되겠구나.’, ‘이거 내가 꼭 기다려야 되겠구나.’, ‘인내해야 되겠구나.’, ‘피해야 되겠구나.’, ‘양보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하면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물이 없다고 해서 막 ‘왜 물 안주냐?’ 하는데 목마를 때가 있습니다. 갈급할 때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생수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라에 가서 저들이 물을 발견합니다. 반가워서 물을 먹었는데 이 물이 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지금도 그곳에 쓴물이 있는데 홍해바다의 짠물하고 석회석이 있는 물이 혼합이 되어 물이 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 원망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그곳에 떨어뜨려라 합니다. 그러자 그 쓴물이 단물이 됩니다. 모든 백성이 이 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의미가 깊습니다. 쓴물을 단물 만들어 놓았다고 성경은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모르는 것은 성경은 어떤 사건 속에 영적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쓴물이 단물 되었구나! 이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셨구나! 그렇게 읽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죽으셨느냐?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오늘 이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는 십자가의 나무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가 쓴 인생 쓴 물이 우리 인간인데 마라의 물은 우리 인간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쓴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죄악의 쓴물, 저주의 쓴물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온갖 불의의 쓴물이 우리 안에 철철 흘러넘치고 있는데 이 쓴물을 바꾸어 주실 이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해융에 담은 쓴 물을 주님이 마심으로 찬송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마라의 물이 되십니다.
♬두려워 말라 어린 양이여 네 푸른 목장 기름졌도다 마라의 쓴물 달게 하신 목자 그는 이미 쓴잔을 마셨도다. 오직 주님 오직 주님 능치 못함 없겠네. 오직 주님 오직 주님 오직 주님 능치 못함 없겠네 오직 주님♬(복음송 ‘오직믿음’) 예수님은 못 쓰는 인생, 죄로 인하여 쓴 물을 사람은 바꿀 수 없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니까 밖에 있는 자연의 물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 고칠 수 있습니다. 교인들 회사에 가보면 공장 하수가 내려가는데 잉어도 기르고 붕어도 기릅니다. 무엇을 저에게 소개하느냐 하면 ‘목사님! 우리는 오염된 물을 전부 정화시킨다는 그걸 알려줍니다.’ 과학이 발달하면 이 세상은 얼마든지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늪지대도 빌딩지대로 만들 수 있고 아파트 단지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오물 쓰레기장도 골프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지식이 발달해도 우리 안에 있는 이 쓴물을 바꿀 자는 없습니다. 범죄한 우리 인간 아담 이브로 말미암아 죄악의 쓴물이 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누가 우리를 건져내겠습니까?
바울이 말한 대로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질 자가 누구입니까? 로마서 1장 28절에서 31절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악한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악이 가득 찼습니다. 온갖 범죄와 불의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고칠 수 있습니까? 과학이, 물질이, 권력이, 인간의 지식이, 우리의 이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꿀 자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새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기독교는 바꾸는 종교입니다. 모든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꿉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지 않습니까? ‘내가 너희로 고기 잡는 어부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사도로 만들겠다. 제사장으로 만들겠다.’ 다 바꾸어 주셨습니다. 기생 라합을 다윗의 조상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룻이라고 하는 이 불행한 여인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전부 바꿉니다. 내 안에 역사하는 모든 저주가 떠나가고 새 생명이 내게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에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갈 때 저들이 범죄하여 원망 불평해가지고 광야에 뱀들이 나와서 이스라엘 선민을 삼키지 않습니까? 뱀이 무니까 독이 온 몸에 번져 붓고 소리 지르다가 죽습니다. 그럴 때 저들이 살려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야! 구리 뱀을 달아라.’ 해서 장대 위에 구리 뱀을 달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그걸 보고 보는 순간 그 병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몸에 있는 독이, 저주가 떠나갑니다. 이 구리 뱀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리 뱀을 보고 치료 받았지만 온 인류의 몸에 있는 이 독은, 이 뱀의 독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온 인류의 구리 뱀입니다. 우리 모두를 사망에서 내 안에 있는 독사의 독에서 건져 주실 이는 구리 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구리 뱀은 모세가 달았지만 온 인류의 구리 뱀은 하나님이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 안에 있는 수많은 독과 저주, 마라의 쓴물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내 안에 주님 오시면, 주의 영이 내 안에 오시고 내가 회개하여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모든 멸망, 저주에서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밖에 있는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마라의 쓴물이 문제가 아닙니다. 광야 생활의 전부가 어렵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살면 광야생활도 천국같이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광야에서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생활도 천국같이 살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주님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자기 안에 마라의 쓴물을 갖고 있으니까 늘 인생을 쓰게 살아갑니다.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도 여러분 안에 있는 쓴물을 제거하시고 여러분 안에 평화의 왕으로 사랑의 주님으로 임재하실 줄로 믿습니다.
2007년 대학교수들이 교수 신문에 2007년 소망하는 사자성어를 전체적으로 제일 많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반구제기’입니다. 이것은 무엇 뜻이냐 하면 군인이 화살을 가지고 쏘았을 때 적을 쏘았지만 내 화살은 빗나가고, 내가 어려움을 당해서 전쟁에 졌을지라도 적과 싸워 이기지 못했을지라도 그 문제를 적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게서 문제를 찾는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구제기’입니다. 그래서 전국에 있는 교수들이 바라는 것이 2007년에는 이런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모두 ‘문제가 당신에게 있다.’, ‘핵실험, 핵에 있다.’ 핵도 위험합니다. 그러나 핵은 우리 안에 핵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무서운 미사일이 내게 있습니다. 이게 날아가서 남편을 강타하고 아내를 강타하며 우리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다 내 안에 있는 죄악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핵이 제일 무섭습니다. 내 안에 쓴물이 내 안에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은 이걸 모릅니다. 전부가 세상에 있고 오늘 우리나라는 높거나 낮거나 모두 쏘아댑니다. 지도자들도 전부 순진한 국민들을 향하여 전부 여기 다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그렇게 있겠습니까? 다 서로가 가정이든 사회든 오늘 이렇게 우리 사회가 얼키설키 엉켜서 걷잡을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은 ‘모두 자기는 문제가 없고 나는 잘하고 있고, 나는 이렇게 훌륭한데 모두 다른데 문제가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내게 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을 만나게 되고 이 쓴물이 기적이 일어나서 단물로 바뀌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요한복음 4장도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지 않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을 보고 ‘아주머니! 이 물을 먹으면 아주머니는 영원히 목마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으세요.’, ‘선생님! 그 물은 내게 좀 주세요.’ 그러니까 ‘네 남편을 데려오라.’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마리아 여인이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맞다. 너는 남편이 없다는 말이 맞다. 너는 남편을 찾았으나 남편을 못 만났어. 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이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를 행복하게 할 행복을 밖에서 찾은 것입니다. 멋진 남자, 이해심 많고 관용심 많으며, 좋은 직장 갖고 있고 돈 많은 저 아저씨 만나면 행복하리라 자기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습니다. 반구제기하지 않고 어디 멋진 사람 만나면 내가 멋진 인생이 되리라고 생각하여 찾아보니 다 멋진 아저씨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만나보니 저게 문제고 저기 만나보니 이게 문제입니다. 저 사람은 얼굴은 편한데 일을 하나도 안 해 내가 먹여 살려야 하니 그것도 문제고, 거기서 낙심하고 상처받으며 그 다음 열심히 일하는 사람 찾아가니 일만 알고 아무것도 몰라. 자기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 밤새도록 일하고 집에 오지도 않아. 그러니까 또 돌아섭니다. ‘아~ 이제는 나만 알아주는 사람, 나만 알기는 아는데 돈을 한 푼도 못 벌어.’ 그러니까 그것도 또한 문제입니다. 이래가지고 계속 찾아다니다가 밖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불행과 고통은 행복을 밖에서 찾는 것입니다. 남자를 밖에서 찾고 사랑을 밖에서 찾습니다. 좋은 아름다운 모든 것을 가져다 놓으면 행복한 줄 아는데 내 안에 쓴물이 있는 한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셔서 여러분의 쓴물 죄악의 모든 쓴물들을 다 제거하시고 꿀물, 허니, 허니 워터, 허니 샘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샘솟는 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는 한이 없습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내 안 때문에 나오지 바깥 때문에 나옵니까? 안에 능력이 크고 안에 은총이 큰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안을 새롭게 할 때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지만 우리 인간이 범죄 한 다음에 안에 쓴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담 이브가 안에 쓴물을 가지고 서로 살아가니 부부간에 온갖 다툼 원망 불평이 생기고 내잘났다 그러고 오늘 성경에 읽어드린 로마서 1장에 있는 대로 교만하고 강퍅하고 자기만 알고 온갖 불의가 가득 차 있게 됩니다. 쓴물이 막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아담 이브도 서로 원망하고 책임 전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보고 ‘너 왜 이것 먹었느냐’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나 먹으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브 보고 ‘너는 왜 그것 먹고 네 남편에게 주었냐?’ 하니까 ‘내가 그랬습니까? 저 뱀이 나를 유혹했지 않습니까?’ 세상에 말도 안 되는 말이 요사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을 아무리 이해하고 일백 번 고쳐 이해하려고 해도 모두 말이 안 되는 말을 합니다. 이게 다 어디서 나옵니까? 내 안에 쓴물에서 나옵니다. 무서운 독이, 저주가 막 나옵니다. 여러분! 예수의 보혈로 주님이 마라의 쓴물 마시므로 십자가 위에서 해융에 담은 쓴물을 마시므로 내 쓴 모든 저주가 떠나가고 달고 달콤한 단물의 인생이 되며, 가정이 되고 이 민족의 장래가 그렇게 되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보다 열배나 잘 사는 나라도 단물 먹으며 사는데, 똑같은 광야를 지나면서 광야 아닌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광야 아닌 삶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인구가 많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모두 단 인생을, 단 꿀맛 같은 사회, 꿀맛 같은 교육, 꿀맛 같은 노조가 되는데 오늘 왜 우리는 이렇게 쓴물만 마셔야 합니까? 새해에는 모두 이 나라에 단물만 나오는 기적이 주님으로부터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저는 새해에 바라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나라 우리의 삶에 평화의 단물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주의 십자가 보혈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미움과 증오와 오해와 이기적인 것과 ‘나 살고 너 죽어야겠다.’ 이런 마음이 다 십자가 앞에 녹아져 버립니다. 다 사라져 버립니다. 어떤 독도 다 제거됩니다. 제가 독수리를 보니까 다 썩은 것만 먹어도 독수리 위는 얼마나 건강한지 수많은 병균들이 여기 지나가면서 다 죽어버립니다. 다 녹아버립니다. 그 위산에 안 녹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병 덩어리가 들어가도 다 녹아버립니다. 십자가 앞에 안 녹을 게 무엇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샘솟는 은혜, 샘솟듯 하는 피의 능력, ♬샘 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샘 솟듯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찬송가 190장) 솟아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얼굴들이 너무 붉으락 푸르락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극한 상황입니다. 포용과 관용을 말하면서도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은 무시무시한 동물의 왕국의 용어들을 쓰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까지 갈기 갈기로 모두 찢어졌습니다. 선생과 학생이 아닙니다. 모든 계층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모두 찢어졌습니다. 쓴물이 납니다. 이 쓴물이 누구 때문에 난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닙니다. 다 내 안에서 나옵니다. 농촌, 도시, 가정, 사회 한 구석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쓴물이 막 나옵니다. 새해에는 이 나라에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하나만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내 하나만 잘한다고 하는 이 쓴 독물들이 다 제거되고 실로암의 단물, 주님이 주시는 보혈의 단물이 강같이 샘솟듯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고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 위에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도 나가보니 교회가 쓴물이 더 많습니다. 지금 어느 다른 종교보다도 한국교회는 모두 무서운 전쟁터와 같습니다. 목사님을 고소하고 설교하러 올라가면 끌어내리고 무서워졌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산다고... 잠깐 살다가 죽는데 저도 얼마 살겠습니까? 저는 80을 산다고 그래도 명성교회 개척한지 삼분의 일만 살면 갑니다. 원통합니다. 잠깐인데... 그래도 교인은 무엇이 다릅니까? 죽는 것 하나 놓고 사는 게 교인인데 죽는 것 때문에 우리가 전도하고, 죽는 것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죽는다는 것 이것 하나 때문에 우리가 늘 주님 앞에 순종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 죽는다는 것 없애버리면 사람이입니까? 동물입니다. 동물도 어느 정도 죽을 때를 안답니다. 우리가 항상 힘쓰고 살 수 있습니까? 항상 큰소리치며 살 수 있느냐 말입니다. 겸손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새해에 평화가 찾아와야 되겠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평화를 사랑하는, 만나면 서로 모두 웃는, 즐거워하는, 내 안에 어떤 무기도 갖고 있지 않고 모두 품을 수 있는 이 넓은 마음, 사랑이 넘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가난, 극빈자 이 가난의 쓴물이 제거되었으면 합니다. 몇 년 동안 계속 가난한 자를 자꾸 생각하며 한국교회도 기업도 적극적으로 돕지만 가난한 사람은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 가난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이게 전체적인 답입니다. 공산주의가 다 같이 잘 살려고 전부 가난한 자 없이하려고 부자끼리 힘을 모았는데, 이 지상에 거지는 다 공산주의 촌으로 찾아갔습니다. 공산주의 말만하면 가난이 찾아갑니다. 우리를 부유케 하신 이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부요하신 분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정말 부요하신 주님을 내 안에 모시면 우리 인간은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와주어야 잘산다.’ 아닙니다. 지하자원, 이 세상에 있는 것 다 가져도 내 안에 독물이 있는 한, 쓴물이 있는 한 잘 살수 없습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제가 우리나라에서, 실지로 된 걸 텔레비전에 보여주는 걸 보았습니다. 바다이야기에 작년에 몇 백만이 빠졌는데 도박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어떻게 하느냐 하면, 집 재산 싹 다 잃어버리고 직장 다 버리고 거지노릇 합니다. 저녁이 되니까 완전히 옷을 거지로 갈아입고 정신병자인척 하면서 나갑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나가서 지하철에서도 촬영을 방송국에서 계속했습니다. 보면 100% 불쌍한 거지입니다. 멀쩡한 젊은이가 그래가지고 만원 벌어서 옷을 갈 입고 어디고 가느냐하면 도박장으로 바로 갑니다. 여러분! 이 사람에게 전 세계가 도와주어도 백 억 불이 있어도 이 사람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내 안에 쓴 물을 두고 누구 도움을 받겠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안에는 잘 살 수 있는 요소가 무한히 많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주님을 내 안에 모시면 첫째 부지런해집니다. 돈을 아껴서 삽니다. 돈 하나만 가지고도 몇 백배를 늘립니다. 근면합니다. 사치하지 않습니다. 잘난 척 안 합니다. 진실하니까 모두 돈을 빌려줍니다. 장사 잘 됩니다. 그리고 예수 믿으면 소망이 생깁니다. 비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의 능률이 오릅니다. 머리가 깨서 총명해집니다. 아이디어가 막 살아납니다. 어떤 분야든지 예술이든 정치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과학이든 비즈니스든 어떤 것이든 그리스도의 영이 안에 들어가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안에 있는 능력을 꺼내는 것입니다. 보화, 황금돼지는 밖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황금마차는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나라는 100% 잘 삽니다. 주님이 오시면 100% 잘 됩니다. 가난이 다 물러갑니다. 오늘 돈을 가지고 어디로 갑니까? 유대인들 보십시오. 세계에 돈이라는 돈은 유대인들이 다 가지고 있는데 노벨상 받은 사람, 이건 바로 며칠 전에 이스라엘 정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유대인은 1948년에 해방된 나라입니다. 지금 반세기 조금 넘었습니다. 우리하고 다릅니다. 그런데도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얼마인줄 아십니까? 노벨의학상이 48명, 물리학상이 44명, 노벨화학상이 27명, 노벨경제학상이 20명, 노벨문학상이 12명, 평화상을 제외하고도 150명의 현대인들이 유대인 출신입니다. 히브리대학은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해마다 안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2006년에도 노벨화학상을 금년에 로저 콘버그 교수가 받았습니다. 히브리대학 객원교수로 2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한 사람입니다. 작년에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일 오먼 교수입니다. 역시 히브리대학입니다. 2004년에 아브라함교수와 아론교수 두 명이 받았습니다. 다 히브리대 졸업생이고 히브리대학에서 일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3백 개의 대학이 있는데도 대학에서 노벨상이 한 명도 아직 안 나왔습니다. 상고에서 나오고 그 외에는 한 명도 안 나왔습니다. 대학이 뭐가 필요합니까? 전부 상고 세워야지, 대학가서 뭐하냐 말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 교육은 우리의 능력은 전부 밖에 것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유대인들 교육의 핵심은 내 안에 하나님이 창조한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개발해 내는 것입니다. 교육은 하나도 강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일등 가는 민족이 되고 일등 가는 사람을 길러내려면 내 안에 기업도 있고 과학도 있습니다. 오늘 성가대에서 불렀던 베토벤의 ‘천사의 합창’도 그 사람이 공부해서 이런 것 작곡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 기도하니 그 안에서 ‘천사의 합창’ 같은 곡이 나온 것입니다. 제가 오늘 그 찬양 듣고 눈물이 너무 나오고, 세상에 이런 노래가 어디 있을까? 제가 오늘 1부 때도 그랬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이 천사의 합창을 하라고,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첫째가 다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예수를 내 안에 모신데서 나옵니다. 부유함이, 행복도 여기서 나옵니다. 가정의 화목도 소 잡아먹고 호텔에 가서 음식 먹어서 행복한 게 아닙니다. 다 먹고 나올 때 싸웁니다. 식비 내다가 싸웁니다. 행복은 이 안에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습니다. 이 안에 있는 사랑은 무궁무한한 자원입니다. 2007년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여러분의 가는 길에 만만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삼환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