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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 교수 2004.01.09 조회 : 296
얼마 전부터 우리는 자살에 대한 소식을 미디어를 통해 자주 듣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동반 자살한 주부의 소식이나 기업 총수의 갑작스러운 자살,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통해 만난 청소년들의 자살 등. 이런 소식들은 우리를 처음에는 충격으로 그리고 점점 자살에 대한 최면상태로 인도하고 있다.
자살이 우리 주변에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이다. 지난 한해 동안 13,000 여명이 넘는 자살자 통계가 보여주듯이 자살은 이제 이웃나라 일본이나 먼 서구의 현실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자살을 개인의 명예로까지 끌어올린 일본과는 판연히 다르게 우리는 자살을 선망하거나 환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유순하고 소박한 민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가 보는 이 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학생시절에 나는 한때 흑인 지역사회에서 최근 들어 급증하는 흑인들의 자살 현상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사실 자살을 모르고 살아왔다. 원래 그들은 집단적인 공동체 문화 속에서 살았으며 아직도 모계의 전통이 남아있어 할머니가 대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옆에서 그들을 보면 그들은 낙천적이며 단순 소박한 공동체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악한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때 그들은 그 혹독한 세월을 지나면서도 언젠가 해방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흑인 영가로 이 영가 속에는 그들의 꿈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방의 메시지와 고통에 대한 호소를 영가에 담아 부르고 다음 세대에 전수하면서 어려움을 견뎌내도록 서로 격려하며 교훈한 것이다. 노예해방 후 아직 흑인사회가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에도 자살이라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로 교육과 기회의 확대로 흑인들이 미국 주류인 백인사회에 동화되어가고 생활수준이 높아져가면서 흑인들의 지역에도 자살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전통적인 공동체가 조금씩 와해되어 가면서 일어난 일이다.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백인 사회에 흡수되면서 그들의 공동체를 떠나거나 그 의식을 잃어버리고 홀로 서게 된 흑인들이 혼자서 고독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자살은 개인주의 문화의 극치에서 나올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하나의 극단적 표현이다. 쌩떽쥐베리는 사막의 고독 속에서 얼마나 인간은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하며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지를 깨달았다. 그는 "어떤 작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오직 물질적인 재물만을 위해 일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옥을 쌓아올리고 있다. 삶에 보람을 주는 아무것도 살수 없는 재물과 같은 돈을 안고 우리 자신을 고독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은 함께 시련을 겪으면서 맺어진 동료와의 우정이라고 증언한다. 결국 인간은 다른 인간과 맺어져야만 살아갈 수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와 연결될 수 있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의 외로운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리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발견함으로써 사람은 자신을 넓혀간다. 사람들은 큰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때 사람은 바다의 드넓음에 경탄하는 해방된 죄수와도 같다". 우리를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은 오직 하나, 내 곁에 있는 동료 인간이다. 그가 내 곁에 있거나 아니면 멀리 있더라도, 나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나의 동료 인간이 필요하다. 반드시 말이 아니라도 마음이 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통하는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시련을 겪고 위험을 뚫고 지나야 할 사람들, 즉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경험한다면 막다른 골목에서 결코 자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한한 우주 공간 속에서 작은 한 떠돌이 별인 이 지구 위에 함께 떨어진 운명의 공동체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별들과 넓은 공간들, 또 여러 세대를 거쳐서 그 많은 날 중에서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 짧은 만남의 운명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일치와 연합이 아니고서는 이것을 축복으로 누리며 살 수 없으리라.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고 받쳐주어야만 살 수 있는 생명의 공동체가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얼마나 소중한 우리의 생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