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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두려워함의 해결책(시 23:6)
릭 워렌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면서 돈을 씁니다. 내일을 너무 걱정하기 때문에 오늘을 결코 즐기지 못합니다. 왜 내일을 걱정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시편 23편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시23:6) 나의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미래를 염려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를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어디서 그런 확신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성도라면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지신있게 직면할 수 있는 이유는
1.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3.천국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히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따문에 나는 하나님의 보호와 제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선하심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는 내게나 이웃에게 또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항상 좋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145: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자상한 부분까지도 살펴 주십니다. 아버지처럼 미래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미래를 다스리고 계심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다스리시며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도울 것입니다. 하나니께서는 아버지처럼 우리를 돌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 . . 정녕 나를 따르리니”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윗도 삶을 통하여 실망할 때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오직 좋은 일들만이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선한 사람들에게도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는 좋은 일들만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만이 그에게 결과적으로 따라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쁜 일이나 악한 일, 또는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할지라고 그 결과는 선한 일이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이 이주 좋은 본보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아주 큰 약속을 하셨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약속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일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악을 이룹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도라면 성경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다 선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선하심이 나를 따른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패배나 재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선이 따라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슬픈 일들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기가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느끼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느끼지를 못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선하심이 숨겨진 것처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면서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의아해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하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살펴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선하심을 향하여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오직 좋은 일들만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쁜 일들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 선하심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바울은 부당하게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을 것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 있을 때에 오늘날 신약 성경으로 알려진 책의 일부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후에 선한 일이 따라 왔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바울이 당한 문제와 공통과 어려움으로 온 선한 결과를 맛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따라 옵니다.
하나님꼐서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시91:11)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나님은 천사를 사용하여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천사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살제로 존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신 이유중의 하나가 성도들을 살펴 보호해 주는 것임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들은 천사들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그들을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천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천사들”이라는 책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중심으로 하여 란로데스씨가 저술한 책입니다.
성경은 천사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에 대하여 많이 말씀해 줍니다. 천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돌보아 주는 사역에 관하여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기본적인 사항을 세 가지로 간단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 사람들이 죽으면 천사가 되지 않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자들이 사람이 죽으면 천사가 되는 것을 보여 주지만 성경에서는 그런 사실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시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2)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육체가 없습니다. 그들은 영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들이 우리 주위에서 사역함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도 천사들은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것입니다.
(3) 우리를 돌보는 천사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어떻게 돌봐줍니까? 천사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호합니까? 첫째로 천사들은 해를 받음과 상처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다니엘 6장에서 이런 실례를 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있었고 사자들은 아주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이 다니엘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천사들이 다니엘을 상처받음으로부터 보호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천사들이 이와 같은 일들을 우리에게도 함을 나타내 줍니다. 둘째로 천사들은 악을 막음으로써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열왕기하 6장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엘리야와 그의 종이 사악한 적군에 의해 포위를 당하고 있으며 그들이 엘리야의 집으로 쳐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적을 막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적을 막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종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종의 눈을 열어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종의 눈이 열렸을 때에 수백 명의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봅니다. 더 이상 그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편 91편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셋째로 천사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돌봐줍니다. 이런 예는 사도행전 27장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이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납니다. 모든 외부적인 상황을 살펴 볼 때에 배가 파손되어 모든 사람이 죽을 것처럼 보입니다. 한 천사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걱정하지 말아라, 배가 파손이 될 것이나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안전할 거이다.”라고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우리들을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사들은 우리가 절망하거나 실망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우리 교회를 보면 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다운 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데 상담을 구하기 위하여 릭목사님에게 왔습니다. 릭목사님은 그분에게 하나님께서 다운 증후군이 있는 어린 아기를 축복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분의 상황을 돌보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이 떠난 후에 릭복사님께서 포스트 카드를 써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운 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을 축복해 주시며 모든 상황을 돌보실 것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 엽서가 다른 주소로 잘못 갔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여인은 손수 그 엽서를 올바른 주소로 전해 주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엽서에다가 이렇게 추가해서 썼습니다. “당신의 목사님께서 다운 증후군 아기에 대해 당신에게 엽서를 보냈습니다. 나도 다운 증후군 아기가 있는 것을 당신이 알기를 원하며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천사가 그 편지가 가는 방향을 변경했다고 믿습니다. 천사들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천사들이 특별한 일들을 해서 사람들을 격려한 것을 보게 됩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격려하는 방법들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돌보는 천사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것들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윗을 돌보는 천사가 있었으나 그에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을 돌보는 천사가 있었으나 그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역경으로 부터 면제되도록 하시지는 않으나 역경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쁜 것들을 통하여 좋은 것들을 가져오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2.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시23:6) 나의 평생에...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사60:10)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긍흘히 여겼은 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은혜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부유함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다 은혜입니다.
은혜란 내가 가치가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셔서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을 주시지 않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긍휼이란 은혜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긍휼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걸려 넘어지고 실수를 하고 실족합니다. 미래에 우리가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긍휼도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면과 고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정말로 이해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복수하기 위하여 계신 분이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당신의 삶을 바치셨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내가 지은 모든 죄와 앞으로 지을 모든 죄의 대가까지도 지불하셨음을 확실히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날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복수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이미 지불하신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복수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이해하시면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103:2-1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103: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103:6)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시103: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시103: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103: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시103: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시103: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하나님의 긍휼을 이해하게 죄면 하니님꼐서는 선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잘못과 죄와 실수를 다루시는 데에 있어서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긍휼이란 내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 삶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도 그것이 비록 나의 실수로 인하여 그런 어려움이 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기 위하여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면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아무 때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러 나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마찬가지로 긍휼도 우리의 삶에 계속 일어납니다. 어린 아이 주위를 따르면서 모든 더럽히는 것을 줍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지른 모든 잘못된 것들을 집어 올리십니다. 우리가 참지 못하고 터뜨린 것들, 실수한 것들, 일을 경솔하게 잘못 처리하고 다음 일로 나간 것 등을 하나님께서 뒤를 따라 오시면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뒤에서 모든 잘못된 것들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는 말씀은 어떤 특정한 날만이 아니라 모든 날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베풀었다 안 베풀었다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루는 우리를 아주 잘 취급하여 주시고 다음 날은 나쁘게 취급하여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루는 우리를 아주 잘 취급하여 주시고 다음 날은 나쁘게 취급하여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나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여러 종류의 다른 날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날과 슬픈날, 좌절감을 느끼는 날, 고독함을 느끼는 날과 어려운 날들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렸다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받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꼐 하십니다. 어떤 날은 그렇게 느끼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보지 못할 것이며 정말로 하나님이 함꼐 하시는지를 알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점입니다.
결혼한 부부 중에 어느 날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다른 배우자는 반려자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반드시 함께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가 당면하는 좋은 날들을 다루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가 당면하는 불우한 날들을 돌보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의 평생동안 함께 하실것입니다.
이 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아닌 것을 말씀하실 수도 없으시며 변덕스러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꼐서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만약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하면서 상상하면서 미래에 대하여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하나님꼐서 함께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미래를 의심을 가지고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직면합니다. 가정하면서 염려하지 마시고 확신하면서 편안히 쉬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심으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실 것이고 긍휼하심으로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를 도우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나를 치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우리가 살면서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받게 하시고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할 텐데 받지 않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다 필요합니다.
시편 23편은 목자에 관한 시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양은 목자가 앞에서 인도하고 소는 뒤에서 몹니다. 양과 소의 차이점은 양은 목자가 앞에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의 앞에 있습니다. 목자가 인도하고 양들이 따라갑니다. 소는 뒤에서 몰아 계속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중동 지방에 가게 되시면 목자는 앞에서 인도하며 양들의 뒤에는 한 두 마리의 개들이 양이 제자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뒤를 지켜 주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선하심과 긍휼하심은 항상 우리 뒤를 따라오면서 정상적인 자리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안전하도록 도와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이 일단 된 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대상이 된 우리들은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결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자신있게 직면하도록 도와줍니다.
(히1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3. 천국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시23:6) . . .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Psa23:6) . . .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그리고(and)”라는 말은 성경에서 나오는 아주 중요한 접속사입니다. 그 말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연결해 줍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해 위대한 삶을 계획하고 있으며 네 평생을 통하여 나의 선함과 긍휼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끝에 다른 무엇이 또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은 점점 더 크고 강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을 “우리가 천국에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끝을 냅니다. 예수님은 제일 좋은 것을 마지막까지 보류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이 더욱 더 좋아집니다. 아직도 최선의 것은 앞으로 다가 올 것입니다.
(고후5: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영원은 얼마나 오래 계속됩니까? 영원히 계속됩니다! 어느 날 우리 몸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이 죽는 것이 우리 삶의 끝은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 이 둘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둘 다 실존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죽을 것이나 우리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관하여 가장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천국에서 새로운 몸을 가지고 살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죽는 것을 아주 만족스럽게 여기며 죽은 후에는 주님과 영원한 집인 천국에서 살 것입니다.”
(고후5:6)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고후5: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고린도후서 5장 6절과 8절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란 장소를 옮기는 것, 더 좋은 곳으로 승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기 전까지는 살 준비도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직 바보만이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전혀 준비함이 없이 한 평생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일까요?
천국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충성했으며 그리스도에게 순종했는가에 따라서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아는 사람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당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SHAPE)에 따라 우리가 정말로 즐기는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얀천을 받고 하루 종일 구름 위에 앉아서 하프를 탄다고 말합니다. 제게는 그런 곳이 지옥입니다. 하루 종일 구름 주위에 앉아서 하프를 타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천국에서 천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꼐서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실 것이고 그런 것들은 아주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도 얼마나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일들은 불완전합니다. 천국이 어떤 곳이라고 상상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 세상에서 파도타기를 즐기고 스키 타는 것을 즐기도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천국에 얼마나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을까를 상상해 보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는 발목을 삐는 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멋있는 일들을 생각하신다면 천국에 갈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너무나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더 이상 고통, 슬픔, 고난, 좌절감과 두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것입니다.
(계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런 것들을 생각하신다면 천국을 기다리며 그리지 않겠습니까?
천국은 누구를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곳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고백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된 곳입니다.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으나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해달라고 요청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벧전1:4-6)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천국에 안전하게 가는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면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그곳으로 안전하게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놀랍고 기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날 주님과 함게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천국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위하여 준비된 곳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몰라서 사랑하지 못하고 계시다면, 왜 영원을 그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지금 결정하십시오!
이 세상은 준비하는 곳에 불과합니다. 세상에의 삶이 최고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60년, 70년, 80년 아니면 90년을 이 세상에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되거나 지옥이 되든지 간에 그 곳에서는 천년, 만년 아니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마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보육원(Preschool)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마치 개막식과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세상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우리가 어디서 영원을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벧전2:11)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요 참 우리의 집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지금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사시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너무나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것들은 아무 것도 영원히 간직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오직 일시적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60년, 70년, 80년 사용합니다. 물질들은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전 생애를 물질을 축적하는 데 다 보냅니다. 우리들은 돈을 버는 것이 삶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인 것처럼 삽니다. 그리고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어느 날 우리가 죽게 될 것이며 그때에는 아무 돈도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삶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물질에 투자하지 마십시오. 물질을 획득하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어떻게 천국을 준비할 수 있습니까? 성품을 쌓아 올림으로 준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그것을 가지고 갑니다. 우리는 돈이나 자동차나 스테레오나 집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세상 체계에 너무 사로 잡히지 마십시오. 세상만 바라보면서 살지 마십시오. 영원을 바라보면서 사십시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결국은 소유할 수 없는 것들에만 신경을 쓰면서 물질을 더 획득하는 데만 전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다 빌려쓰고 있는 것들이지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는 포기해야 합니다. 영원을 염두에 두고 사십시오.
누구나 다 천국에 갑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히틀러나 살인자들이나 집단 학살을 한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오게 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오게 한다면 천국은 더이상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실상은 지옥일 것이며 저는 그런 곳에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들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요10:27-28)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나를 알며 나를 따른다.”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살라고 하는 음성을 들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니까? 그 분이 여러분의 목자이고 구세주이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 하시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 들였고 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면 자신이 영원히 주님의 집에 살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거하게 될 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거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한 후에 죄를 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죄를 지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바칠 때에 우리는 자신의 손을 하나님의 손 위에 놓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때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잘못된 인간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나쁜 책들을 읽을 수도 있으며, 비윤리적인 결정을 하기도 하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일들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자녀로 택한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는 것은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줍니다. 내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나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내 마음대로 나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미래를 볼 때에 무엇을 보십니까? 의심의 눈을 가지고 미래를 보십니까? 비꼬는 태도를 가지고 보십니까
릭 워렌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면서 돈을 씁니다. 내일을 너무 걱정하기 때문에 오늘을 결코 즐기지 못합니다. 왜 내일을 걱정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시편 23편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시23:6) 나의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미래를 염려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를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어디서 그런 확신을 얻을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성도라면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지신있게 직면할 수 있는 이유는
1.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3.천국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히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따문에 나는 하나님의 보호와 제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선하심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는 내게나 이웃에게 또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항상 좋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145: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자상한 부분까지도 살펴 주십니다. 아버지처럼 미래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미래를 다스리고 계심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다스리시며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도울 것입니다. 하나니께서는 아버지처럼 우리를 돌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 . . 정녕 나를 따르리니”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윗도 삶을 통하여 실망할 때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오직 좋은 일들만이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선한 사람들에게도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는 좋은 일들만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만이 그에게 결과적으로 따라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쁜 일이나 악한 일, 또는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할지라고 그 결과는 선한 일이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이 이주 좋은 본보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아주 큰 약속을 하셨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약속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일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악을 이룹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도라면 성경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다 선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선하심이 나를 따른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패배나 재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선이 따라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슬픈 일들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기가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느끼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느끼지를 못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선하심이 숨겨진 것처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면서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의아해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하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살펴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선하심을 향하여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오직 좋은 일들만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쁜 일들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꼐서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 선하심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바울은 부당하게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을 것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감옥에 있을 때에 오늘날 신약 성경으로 알려진 책의 일부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후에 선한 일이 따라 왔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바울이 당한 문제와 공통과 어려움으로 온 선한 결과를 맛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따라 옵니다.
하나님꼐서 우리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십니까?
(시91:11)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나님은 천사를 사용하여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천사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살제로 존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신 이유중의 하나가 성도들을 살펴 보호해 주는 것임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들은 천사들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그들을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천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천사들”이라는 책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중심으로 하여 란로데스씨가 저술한 책입니다.
성경은 천사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가에 대하여 많이 말씀해 줍니다. 천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돌보아 주는 사역에 관하여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기본적인 사항을 세 가지로 간단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 사람들이 죽으면 천사가 되지 않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자들이 사람이 죽으면 천사가 되는 것을 보여 주지만 성경에서는 그런 사실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시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2)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육체가 없습니다. 그들은 영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들이 우리 주위에서 사역함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도 천사들은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것입니다.
(3) 우리를 돌보는 천사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어떻게 돌봐줍니까? 천사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호합니까? 첫째로 천사들은 해를 받음과 상처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다니엘 6장에서 이런 실례를 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있었고 사자들은 아주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이 다니엘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천사들이 다니엘을 상처받음으로부터 보호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천사들이 이와 같은 일들을 우리에게도 함을 나타내 줍니다. 둘째로 천사들은 악을 막음으로써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열왕기하 6장에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엘리야와 그의 종이 사악한 적군에 의해 포위를 당하고 있으며 그들이 엘리야의 집으로 쳐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적을 막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적을 막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종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종의 눈을 열어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종의 눈이 열렸을 때에 수백 명의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봅니다. 더 이상 그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편 91편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셋째로 천사들은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돌봐줍니다. 이런 예는 사도행전 27장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이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납니다. 모든 외부적인 상황을 살펴 볼 때에 배가 파손되어 모든 사람이 죽을 것처럼 보입니다. 한 천사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걱정하지 말아라, 배가 파손이 될 것이나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안전할 거이다.”라고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우리들을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사들은 우리가 절망하거나 실망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우리 교회를 보면 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다운 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데 상담을 구하기 위하여 릭목사님에게 왔습니다. 릭목사님은 그분에게 하나님께서 다운 증후군이 있는 어린 아기를 축복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분의 상황을 돌보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이 떠난 후에 릭복사님께서 포스트 카드를 써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운 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을 축복해 주시며 모든 상황을 돌보실 것을 재확인하는 내용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 엽서가 다른 주소로 잘못 갔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여인은 손수 그 엽서를 올바른 주소로 전해 주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엽서에다가 이렇게 추가해서 썼습니다. “당신의 목사님께서 다운 증후군 아기에 대해 당신에게 엽서를 보냈습니다. 나도 다운 증후군 아기가 있는 것을 당신이 알기를 원하며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천사가 그 편지가 가는 방향을 변경했다고 믿습니다. 천사들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천사들이 특별한 일들을 해서 사람들을 격려한 것을 보게 됩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격려하는 방법들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돌보는 천사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것들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윗을 돌보는 천사가 있었으나 그에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을 돌보는 천사가 있었으나 그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역경으로 부터 면제되도록 하시지는 않으나 역경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쁜 것들을 통하여 좋은 것들을 가져오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2.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시23:6) 나의 평생에...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사60:10)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긍흘히 여겼은 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은혜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부유함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다 은혜입니다.
은혜란 내가 가치가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셔서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을 주시지 않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주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긍휼이 무엇입니까? 긍휼이란 은혜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긍휼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걸려 넘어지고 실수를 하고 실족합니다. 미래에 우리가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긍휼도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면과 고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정말로 이해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복수하기 위하여 계신 분이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당신의 삶을 바치셨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내가 지은 모든 죄와 앞으로 지을 모든 죄의 대가까지도 지불하셨음을 확실히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날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복수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이미 지불하신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복수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이해하시면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103:2-1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103: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103:6)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시103: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시103: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103: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시103: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시103: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하나님의 긍휼을 이해하게 죄면 하니님꼐서는 선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잘못과 죄와 실수를 다루시는 데에 있어서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긍휼이란 내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 삶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도 그것이 비록 나의 실수로 인하여 그런 어려움이 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기 위하여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면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아무 때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러 나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마찬가지로 긍휼도 우리의 삶에 계속 일어납니다. 어린 아이 주위를 따르면서 모든 더럽히는 것을 줍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지른 모든 잘못된 것들을 집어 올리십니다. 우리가 참지 못하고 터뜨린 것들, 실수한 것들, 일을 경솔하게 잘못 처리하고 다음 일로 나간 것 등을 하나님께서 뒤를 따라 오시면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뒤에서 모든 잘못된 것들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는 말씀은 어떤 특정한 날만이 아니라 모든 날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베풀었다 안 베풀었다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루는 우리를 아주 잘 취급하여 주시고 다음 날은 나쁘게 취급하여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루는 우리를 아주 잘 취급하여 주시고 다음 날은 나쁘게 취급하여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의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나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여러 종류의 다른 날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날과 슬픈날, 좌절감을 느끼는 날, 고독함을 느끼는 날과 어려운 날들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렸다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받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꼐 하십니다. 어떤 날은 그렇게 느끼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보지 못할 것이며 정말로 하나님이 함꼐 하시는지를 알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점입니다.
결혼한 부부 중에 어느 날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다른 배우자는 반려자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반드시 함께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가 당면하는 좋은 날들을 다루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우리가 당면하는 불우한 날들을 돌보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의 평생동안 함께 하실것입니다.
이 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아닌 것을 말씀하실 수도 없으시며 변덕스러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꼐서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만약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하면서 상상하면서 미래에 대하여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하나님꼐서 함께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미래를 의심을 가지고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직면합니다. 가정하면서 염려하지 마시고 확신하면서 편안히 쉬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심으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실 것이고 긍휼하심으로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를 도우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나를 치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우리가 살면서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받게 하시고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할 텐데 받지 않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다 필요합니다.
시편 23편은 목자에 관한 시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양은 목자가 앞에서 인도하고 소는 뒤에서 몹니다. 양과 소의 차이점은 양은 목자가 앞에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의 앞에 있습니다. 목자가 인도하고 양들이 따라갑니다. 소는 뒤에서 몰아 계속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중동 지방에 가게 되시면 목자는 앞에서 인도하며 양들의 뒤에는 한 두 마리의 개들이 양이 제자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뒤를 지켜 주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선하심과 긍휼하심은 항상 우리 뒤를 따라오면서 정상적인 자리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안전하도록 도와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이 일단 된 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대상이 된 우리들은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결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자신있게 직면하도록 도와줍니다.
(히1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3. 천국이 나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시23:6) . . .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Psa23:6) . . .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그리고(and)”라는 말은 성경에서 나오는 아주 중요한 접속사입니다. 그 말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연결해 줍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해 위대한 삶을 계획하고 있으며 네 평생을 통하여 나의 선함과 긍휼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끝에 다른 무엇이 또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은 점점 더 크고 강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을 “우리가 천국에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끝을 냅니다. 예수님은 제일 좋은 것을 마지막까지 보류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모든 것이 더욱 더 좋아집니다. 아직도 최선의 것은 앞으로 다가 올 것입니다.
(고후5: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영원은 얼마나 오래 계속됩니까? 영원히 계속됩니다! 어느 날 우리 몸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이 죽는 것이 우리 삶의 끝은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 이 둘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둘 다 실존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죽을 것이나 우리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관하여 가장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천국에서 새로운 몸을 가지고 살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죽는 것을 아주 만족스럽게 여기며 죽은 후에는 주님과 영원한 집인 천국에서 살 것입니다.”
(고후5:6)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고후5: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고린도후서 5장 6절과 8절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란 장소를 옮기는 것, 더 좋은 곳으로 승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기 전까지는 살 준비도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직 바보만이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다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전혀 준비함이 없이 한 평생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일까요?
천국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충성했으며 그리스도에게 순종했는가에 따라서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아는 사람들을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일들을 할당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SHAPE)에 따라 우리가 정말로 즐기는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얀천을 받고 하루 종일 구름 위에 앉아서 하프를 탄다고 말합니다. 제게는 그런 곳이 지옥입니다. 하루 종일 구름 주위에 앉아서 하프를 타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천국에서 천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꼐서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실 것이고 그런 것들은 아주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도 얼마나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일들은 불완전합니다. 천국이 어떤 곳이라고 상상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 세상에서 파도타기를 즐기고 스키 타는 것을 즐기도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천국에 얼마나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을까를 상상해 보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는 발목을 삐는 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멋있는 일들을 생각하신다면 천국에 갈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너무나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더 이상 고통, 슬픔, 고난, 좌절감과 두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것입니다.
(계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런 것들을 생각하신다면 천국을 기다리며 그리지 않겠습니까?
천국은 누구를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곳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고백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된 곳입니다.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으나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해달라고 요청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벧전1:4-6)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천국에 안전하게 가는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면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그곳으로 안전하게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놀랍고 기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날 주님과 함게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천국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위하여 준비된 곳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몰라서 사랑하지 못하고 계시다면, 왜 영원을 그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지금 결정하십시오!
이 세상은 준비하는 곳에 불과합니다. 세상에의 삶이 최고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60년, 70년, 80년 아니면 90년을 이 세상에서 살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되거나 지옥이 되든지 간에 그 곳에서는 천년, 만년 아니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마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보육원(Preschool)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마치 개막식과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세상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우리가 어디서 영원을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벧전2:11)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요 참 우리의 집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지금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사시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너무나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것들은 아무 것도 영원히 간직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오직 일시적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60년, 70년, 80년 사용합니다. 물질들은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전 생애를 물질을 축적하는 데 다 보냅니다. 우리들은 돈을 버는 것이 삶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인 것처럼 삽니다. 그리고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어느 날 우리가 죽게 될 것이며 그때에는 아무 돈도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삶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물질에 투자하지 마십시오. 물질을 획득하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어떻게 천국을 준비할 수 있습니까? 성품을 쌓아 올림으로 준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그것을 가지고 갑니다. 우리는 돈이나 자동차나 스테레오나 집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세상 체계에 너무 사로 잡히지 마십시오. 세상만 바라보면서 살지 마십시오. 영원을 바라보면서 사십시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결국은 소유할 수 없는 것들에만 신경을 쓰면서 물질을 더 획득하는 데만 전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다 빌려쓰고 있는 것들이지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는 포기해야 합니다. 영원을 염두에 두고 사십시오.
누구나 다 천국에 갑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히틀러나 살인자들이나 집단 학살을 한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오게 한다면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오게 한다면 천국은 더이상 천국이 아닐 것입니다. 실상은 지옥일 것이며 저는 그런 곳에 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들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요10:27-28)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나를 알며 나를 따른다.” 지금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살라고 하는 음성을 들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니까? 그 분이 여러분의 목자이고 구세주이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 하시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 들였고 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면 자신이 영원히 주님의 집에 살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거하게 될 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거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한 후에 죄를 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죄를 지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바칠 때에 우리는 자신의 손을 하나님의 손 위에 놓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때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잘못된 인간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나쁜 책들을 읽을 수도 있으며, 비윤리적인 결정을 하기도 하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일들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자녀로 택한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는 것은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줍니다. 내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나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내 마음대로 나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미래를 볼 때에 무엇을 보십니까? 의심의 눈을 가지고 미래를 보십니까? 비꼬는 태도를 가지고 보십니까